영화검색
검색
“애국·반공주의와 궤를 달리하고자 했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곽경택 감독
2019년 10월 21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친구>(2001)를 비롯해 <똥개>(2003), <태풍>(2005) 그리고 <극비수사>(2015) 등 남성 중심의 선 굵은 영화를 선보였던 곽경택 감독이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이하 <장사리>)로 관객을 찾는다. 오랜 업력을 자랑하는 그로서도 전쟁 드라마는 처음인 데다 이름 없이 사라져 간 어린 학도병들의 실화를 바탕으로 했기에 상당히 부담되는 작업이었다. 급히 투입된 탓에 촉박한 제작 기간 안에 영화를 끝내야 했던 곽 감독은 일단 시나리오부터 대폭 손을 봤다.

한 명의 주인공이 끌고 나가는 게 아니라 개개인에 나름의 사연을 부여해 관객에게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신경 썼다. 마치 단체 사진 찍을 때 자리다툼이 있듯 미묘한 신경전이 있기도 했다고 밝힌 그는 평소 현장에서 스태프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즐기지만, 이번엔 주로 홀로 보냈다며, 편의점표 족발을 에너지 원천 삼아 하루의 피로를 ‘혼술’로 풀었다고 털어놓는다. 무지했던 스스로가 미안했다는 곽 감독, 잊혀진 역사적 사실을 조명하고 나아가 그들의 희생 덕분에 현재의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자 한다.


충분하지 않은 촬영 기간에 대해 곽 감독은 “천만다행인 게 굉장히 훌륭한 스태프를 만났다. 그들은 아주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내곤 했는데 가령 태풍에 배가 흔들리는 것을 촬영하기 위해 고가의 장비를 도입하기보다 바닥을 굴곡 있게 디자인해 제작비를 세이브하는 식이었다. 또 요즘 환경 오염 문제로 바닷물에 일체의 색소를 사용할 수 없어 포기할 부분은 포기해 처음부터 CG로 작업할 부분을 명확히 했다”라고 함께한 스태프에게 그 공을 돌렸다.

또, “시나리오를 펼쳐 놓고 장면 하나하나 모두 분배했다. 김 감독이 CG 회사를 운영한 경험이 있어 비주얼적인 영역에서 배울 거리가 많았다”라고 김태훈 감독과 공동 연출 방식에 대해 말했다. 다만 “극 중 ‘기하륜’(김성철)이 11남매 중 다섯째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어린 시절에 관해 이야기한다. 이와 비슷한 심정이랄까. 내가 촬영하지 않은 장면은 내 새끼가 아닌 것 같더라. 이건 김 감독도 마찬가지일 거다. (웃음) 그런 마음을 다스릴 필요가 있었다”고 고백한다.

유능한 스태프와 김태훈 감독과의 협업 덕분에 전쟁 영화 규모로는 비교적 작은 120억 원의 제작비와 3개월이라는 짧은 촬영 기간 안에 완성한 <장사리>는 330만 명과 704만 명을 각각 동원했던 <포화 속으로>(2010)와 <인천상륙작전>(2016)의 제작사 태원엔터테인먼트의 후속작이다.

당시 상업적으로 크게 성공했지만, 과한 애국주의와 반공주의로 인해 평단으로부터 냉담한 시선 혹은 외면을 받았었다.

이번 <장사리> 역시 유사한 분위기를 어느 정도 예상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의외로 영화는 단조롭게 느껴질 정도로 담백한 맛을 지녔다. 참혹한 상황에 빠진 어린 학도병을 지켜보며 울컥울컥 때때로 격해질 수밖에 없는 것은 소위 ‘국뽕과 신파’와는 다른, 희생 위에 세워진 현재를 사는 입장에서 가지게 되는 당연한 감정일 것이다.

곽 감독은 “정태원 대표가 그 당시의 이야기를 채집하면서 자연스럽게 장사리 전투를 알게 됐고, 오래전부터 준비했지만 제작이 지연되던 중 내게 연출을 제안했다”라면서 “이전 두 영화와 다른 궤로 만들고 싶었다. 카리스마를 지닌 북한군을 부각하거나 그들의 악랄함을 드러내기보다 희생자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다. 우리는 착한 편 북한은 나쁜 편 이런 이분적이고 진부한 사고는 너무 올드하지 않나”라고 반문한다.

감독의 의도가 전달된 듯 <장사리>는 ‘동족상잔’이라는 말의 의미를 되새긴다. 전쟁에 강제로 차출돼 상대를 향해 총을 겨누지만, 그 안에는 개인적인 원한이나 감정은 없다. 단지 살아남기 위한 몸부림만 있을 뿐이다.

<장사리> 속에는 월남하는 과정에 가족을 모두 잃은 ‘최성필’(최민호), 포수 아들 ‘이개태’(이재욱), 울퉁불퉁 모난 모습의 ‘기하륜’(김성철), 친구를 항시 챙기는 ‘국만득’(장지건)과 그의 보호를 받은 ‘문종녀’(이호정)까지 각기 다른 사연을 지닌 여러 학도병이 등장한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장사리: 잊혀진 영웅들>

이중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여자 학도병 ‘문종녀’인데 “무리수일 수 있다. 하지만 미국 종군 기자 ‘매기’(메간 폭스) 외에 여성 캐릭터가 있었으면 했다.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겠지만, 남아선호사상이 심한 당시라면 아들 대신 딸을 보내려고 시도한 집도 있을 것이라는 점에 착안했다”고 설명한다.

영화는 관찰자인 종군 기자 ‘매기’의 눈과 입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전달한다. 사지로 학도병을 몰아넣은 채 책임 회피에 바쁜 군 수뇌부와 미온적인 태도로 관망하는 미군 등을 향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트랜스포머> 시리즈로 국내에도 유명한, 섹시한 여배우 이미지가 강한 메간 폭스의 캐스팅에 대해 “이전 모습과 이번 ‘매기’역 사이 이미지의 갭이 커 처음엔 고민했었다. 그의 전작들을 보고 배우에 관해 좀 더 알아보니 단순한 섹시 스타가 아니었다. 시골 출신에 세 아이의 엄마이자 아내로 인생의 굴곡을 거쳤고, 와인스타인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 권력에 휘둘리지 않고 소신을 지킨 배우라는 확신이 들었다”라면서 “극 중은 9월이지만 사실 한겨울 몹시 추운 날씨에 촬영했고, 입김 하나하나를 CG로 지웠다. 평소보다 훨씬 열악하고 낯선 환경이었을 텐데 매우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연기 주문을 해내고 또 주문하고 이런 식으로 신뢰를 쌓아갔다”고 뒷얘기를 전한다.

말했듯 혼술과 편의점 족발로 버틴(?) 현장이었지만 좋은 점도 많았다. 무엇보다 촬영 현장의 총소리를 들으면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곽 감독은 “남자 안에 있는 전투본능을 깨운다고 할까. 화장실에 한번 다녀오려면 15~20분이나 걸리는 편치 않은 환경이었지만 일단 촬영에 들어가면 흥분되더라”며 당시를 회상한다.

영화 외적으로 여담이지만, 올해 최고의 수확인 <기생충>을 제작한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는 곽 감독의 여동생, 복고 감성 풍성한 <유열의 음악앨범>으로 컴백한 정지우 감독은 그의 매제다. 대표적인 영화 패밀리인데 작품에 대한 조언과 향후 공동 작업 여부에 관해 묻자 “모두 자기 색이 강해서 영화에 대해 평가하기 굉장히 조심스럽다. 가족이기에 상처받아도 물론 치유되겠지만, 그래서 더 조심하게 된다”고 말하면서 “그간 공동 작업했던 <모던 보이>(2008, 제작 곽신애 연출 정지우)와 <희생부활자>(2015, 제작 곽신애 연출 곽경택) 모두 폭망했다. 앞으로 각자 알아서 하고 웬만하면 뭉치지 않기도 했다”라며 호탕하게 웃는다.

마지막으로 요즘 주목하는 관심 주제에 대해 “한국 영화 산업의 축소가 우려되는 지점이다. 우리나라 인구 규모로 볼 때 내수 시장 확대에 한계가 있다. 결국 해외 진출이 답인데 아시아에서 최고라고 자부하지만, 할리우드가 꽉 잡은 세계 영화 시장을 대상으로 수출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라며 국내 영화 산업의 미래 동력을 고민 중이라고 답한다.

2019년 10월 21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