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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로는 그만, 무협으로 돌아오겠다 <마왕의 딸 이리샤> 장형윤 감독
2019년 9월 30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종종 사고 치는 엄마 탓에 아르바이트하면서 녹록지 않은 현실 세계를 사는 가수 지망 여고생 ‘이리샤’, 알고 보니 요정 세계의 공주님이었다고? 거기다 수줍게 사랑 고백하는 개구리와 청혼하는 금발에 푸른 눈의 멋진 남자까지. 꿈 같은 이야기이지만, 상당히 낭만적인 스토리 아닌가! 이 로맨틱하고 판타스틱한 세계를 창작한 장형윤 감독. 약 15년 전쯤 ‘지금이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에 회사를 차린 그는 이후 쭉 애니메이션 업계를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대학 시절 멜로에 꽂히기 시작했다고 털어놓는 장 감독은 <마왕의 딸 이리샤>로 마음껏 감성 펼쳤으니 이후는 무협으로 돌아오겠다고 약속한다.

<마왕의 딸 이리샤>를 공동제작한 ‘지금이 아니면 안돼’ 스튜디오를 책임지고 있다. 이름에 뭔가 사연 있어 보인다.
2005년경에 애니메이션을 계속할지 말지 고민했었다. 좋아하는 일은 취미로 하면 된다면서 주위에선 그만두라고 부추기던 때 이것저것 끄적였던 노트를 봤다. 거기에 ‘사랑도 음악도 시도 영화도 지금이 아니면 안돼’라고 쓰여 있더라. 그걸 보고 계속 나가보자 결심했고 회사를 차렸다.

그 결과 <무림일검의 사생활>(2007)을 비롯한 여러 편의 단편과 장편 데뷔작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2013)을 거쳐 이번 <마왕의 딸 이리샤>를 선보였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가끔 후회할 때도 있긴 한데 이 길이 아닌 인생을 생각해보면 딱히 부럽거나 하지 않더라. 애니메이션이나 영화가 아닌 정치외교학을 전공한지라 친구들이 주로 은행을 비롯해 대기업에 근무하고 있다. 보면 나보다 돈이야 많이 벌겠지만, 대출 갚느라 빠듯해 막 풍족한 삶을 영위하진 못하더라. 나랑 먹고사는 수준도 비슷하고. 나야 싱글에 집, 차, 교육에 투자 안 하니 얼추 그들과 삶의 수준?이 비슷하더라. 그래서 인생 뭐 있냐, 즐겁게 살자를 모토로 지내는 중이다.

<마왕의 딸 이리샤>의 제작비와 기간, 투입 인력은 어느 정도 인가.
시나리오 초고 작업을 포함해, 한 3년 정도 걸렸다. 그전에는 6년 걸렸으니 비약적으로 빨라진 거다. 13명의 애니메이터가 상근했고 외주로 30명 정도 더 투입됐다. 순제작비는 6.5억 원으로 굉장히 작은 예산으로 만들었다. 보통 2D 애니메이션의 경우 40억 정도면 알뜰한 것, 좀 제대로 만든다고 하면 70억 원 정도를 적정 예산으로 잡는다. 얼마전 개봉한 <레드슈즈> 같은 3D CG는 200억 원이든 300억 원이든 그야말로 들이는 만큼이다.

2D 애니메이션의 경우 그림체가 중요한데 직접 작화한 건가.
원안을 잡았었는데 내 그림은 출판 일러스트용이라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과는 잘 안 맞더라. 좀 더 입체감이 필요해서 작화는 다른 사람에게 맡겼다.

전작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 역시 판타지인데 계승점과 차별점은.
전작은 한국 서울에 마법 세계가 들어오는 설정이었다. 서울을 한번 보여줬으니 이번엔 좀 더 이국적인 풍경과 모습을 보이려 했다. 또 자연과 숲을 그리는 재미를 느끼고 싶은 마음도 컸다. 요정 세계로 넘어가는 거로 하되 한국적인 판타지를 만들고 싶어 서울에 사는 평범한 고등학생을 주인공으로 했다. 현실에서는 아르바이트하면서 힘들게 사는 소녀지만 마법의 나라에서는 공주로, 그 차이에서 오는 재미를 주려고 했다. 순정 만화 속 왕자처럼 생긴 남자가 청혼하는 등 동화 같은 이야기 말이다.

그래서 푸른 눈동자에 금발 머리의 남자가 등장한 거군! 어려서 순정만화를 즐겼나 보다. (웃음)
어릴 땐 건담을 좋아했는데 어느 순간 멜로 감성에 꽂히더라. 고등학교와 대학교를 거치며 왕가위 감독의 <중경삼림>(1994), 라디오 정은임의 영화음악, 정성일 평론가의 목소리 쫙 깐 지적인 해설 등등 그때부터 예술 쪽 특히 영화에 관심이 커졌다. 그래서 방향을 틀어 도제식으로 배우다 KAFA(한국영화아카데미) 애니메이션 과에 진학해 지금까지 해오고 있다.
 <마왕의 딸 이리샤> 스틸컷
<마왕의 딸 이리샤> 스틸컷

애니메이션을 전공한 게 의외다. 영화와 달리 작화라는 벽이 있는데 말이다. 사실은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건가.
글과 그림에 관심이 많았다. 이것저것 글을 쓰다 보니 나만의 문체가 없더라. 결국 글은 선택받은, 본인은 쓰고 싶지 않아도 쓸 수밖에 없는 이들이 쓰는 거라는 것을 깨닫고 그림 쪽으로 눈을 돌렸다. 당시 일본 애니메이션 <원령공주>(1997) 등을 보면서 새로운 세계에 깜짝 놀랐고 눈떴는데 그 영향도 있다.

마왕에게 쫓기는 오프닝이 괴테의 시 ‘마왕’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들었다. 서양 귀족을 연상시키는 마왕의 모습이 특이하다.
여러 번의 변화를 거쳐 지금의 마왕이 탄생했다. 처음에는 <반지의 제왕>의 엘프 같은 느낌이었는데 그렇게 되면 시대적 배경이 중세로 가야 하더라. 복장과 의상 등 요즘 중세를 연상시키는 판타지가 너무 많아 그 시기를 피해 서양으로 가되 근대적 느낌, 1800년대 자본주의가 발단한 영국 정도를 배경으로 했다. 마왕 이미지는 르네 마그리트 그림에서 영감받았다. 모습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질 것 같았다. 흔히 마왕 하면 떠오르는 뿔 달리고 불타는 모습이 떠오르는데 그건 너무 전형적이고, 신사적이고 귀족적인 모습이 오히려 무섭게 느껴질 것 같더라.

가수 지망 여고생, 두 발로 걷는 큰 개구리, 기타 요정이 주요 캐릭터이다. 전작에는 의인화된 두루마리 휴지가 큰 활약했는데 이번엔 기타가 그 역할을 한다. (웃음)
장르가 판타지인 데다 인간만 나오는 것은 재미없지 않나. 의인화된 캐릭터를 좋아하다 보니 자주 등장시키게 되고 또 그들은 사람이 아니라 여러 기능(?)을 넣을 수 있다. 그래서 주인공급 조연으로 활용하기 아주 용이하다. 개구리의 경우 애니메이션이나 동화 속에 많이 등장하지만, 우리처럼 크고 두 발로 걷는 경우는 드물다. ‘이리샤’를 요정 세계로 인도할 안내자가 필요해 고민하다가 개구리로 낙점했다. 토끼, 개와 고양이는 너무 흔하고 물고기는 좀 비호감 또 조류 역시 메인 조연이 되기는 힘들기 때문에 제외했다. (웃음)

작화에 있어 주안점은. 또 전체적인 톤은 어떻게 가져갔나.
전체적으로 밝은 톤을 지향했고 의도한 대로 잘 나온 것 같다. 다만 어두운 숲을 통과하고 비바람 치는 장면들이 꽤 있어 어둡다고 느낄 수도 있겠다. 미술(배경) 담당자가 작업해야 할 분량이 엄청나게 많은데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생각보다 미술(배경)을 담당하는 인력이 충분치 않다. 함께하던 미술감독이 이전까진 작화와 미술을 겸했는데 이번엔 미술 쪽을 전담했다. 몇 안 되는 인력을 그나마 쪼개 분배한 거지. (웃음)
 <마왕의 딸 이리샤> 스틸컷
<마왕의 딸 이리샤> 스틸컷

배우 천우희와 심희섭이 ‘이리샤’와 개구리 목소리 연기로 참여했다. 게다가 천우희는 직접 노래까지 불렀다. 목소리 캐스팅 시 고려 사항은.
전작 <우리별 일호와 얼룩소>에서 정유미 배우가 두루마리 휴지 캐릭터가 마음에 무척 든다면서 선뜻 참여해줬다. 물론 휴지가 아닌 주인공을 연기했지만 말이다. 또 그의 소개로 유아인 배우도 참여했었다. 캐스팅 기준이야 일단 목소리 좋고 연기 잘하는 게 우선이다. 이번에 천우희 배우가 수락할지 몰랐는데 마침 애니메이션을 한번 해보고 싶던 참이라며 의외로 흔쾌히 OK 해줬다. 전작을 유명 배우가 해서 이번 캐스팅에도 덕을 본 것도 같아 정유미 배우에게 고맙다. 심희섭 배우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2014) 당시 함께 했던 PD와 친분이 있어 가능했다.

극 중 ‘이리샤’가 부르는 곡 등 인디밴드 ‘굿나잇 스탠드’가 음악을 담당했다. 음악은 좋은데 개인적으로 극과 어우러지지 않는다는 인상이었다.
취향은 다 다양하니 그렇게 느낄 수 있다. 개인적으로 만족했고 괜찮았다. 그들이 지금 군대 갔는데 별로였다고 하면 너무 섭섭할 것 아닌가! 농담이고 진심으로 좋았다.

한국적 판타지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해답은 찾았나.
애니메이션의 양대 산맥은, 알겠지만 디즈니와 재패니메이션이다. 요즘엔 일본 애니메이션 그림체를 따라가면 반발이라고 할지 비난의 시선이 있다. 반면 디즈니는 글로벌 스탠다드가 되다 보니 거부감이 없는 편이다. 일본과 디즈니 사이 한국 애니메이션의 정체성이 애매한 게 사실로 공간과 인물로 차별화 두려 한다. 단편을 비롯해 전작과 이번 모두 한국 특히 서울의 풍경을 담은 이유다.

중국을 애니메이션계의 신흥 강자로 보는 시선도 있다. 개인적으로 풍부한 역사 문화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콘텐츠가 강점인 것 같다.
지금 중국은 국가적 차원의 지원을 등에 업고 수준이 매우 높이 올라왔다. 개인적으로 디즈니에 대적할 유일한 주자가 아닐까 한다. 중국 국내 시장이 엄청 큰 데다 외국 애니메이션의 진입 장벽이 높으니 거의 자국 애니메이션에 날개를 달아준 격이다. 요즘엔 한·중·일 서로 외주를 주다 보니 어디서 제작하든 제작비가 비슷한 수준이다. 물론 일본의 경우 인건비가 다소 높지만 크게 차이 안 난다. 한국은 국내 시장이 매우 작은 게 문제다. 비슷한 수준의 제작비로 만들었는데 중국은 한국보다 약 26배 큰 시장을 가지고 있으니 앞으로 무한히 발전할 거다. 게다가 중국 애니메이션 제작사 사장들이 대체로 1세대 부호 자녀로 어릴 때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라 긍정적인 비전을 가진 세대다. 실제로 엄청나게 투자하고 있는 거로 알고 있다.

말했듯 한국에서 애니메이션 작업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건 쉽지 않은 길이다. 이 길을 희망하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음.. 안 하는 게 자신과 가족들을 위한 길이다? 혹은 하더라도 집은 손대지 마라? 농담 같은 진심 혹은 진심 같은 농담이다. (웃음) 애니메이션이라는 게 돈이 있으면 다 투자하게 된다. 한국에서 극장용 장편 애니메이션을 만들려면 직접 스튜디오를 차릴 수밖에 없다, 그만한 리스크를 감당할 여력을 지닌 회사가 없기 때문이다. 하고 싶은 사람이 회사를 차려서 시작하는데 제작 중에 투자 등이 끊기면 도중에 엎을 수가 없으니 결국 자기 돈을 넣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이후 어렵게 개봉하고.. 뭐 결과야 알겠지만 대략 망하는 것? 나 역시 전세금을 뺏는데 후배들은 제발 그러지 말기를!

아!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 아프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관심사는.
이전에 작업했던 단편 애니메이션 <무림일검의 사생활>을 장편 실사로 작업하려 한다. 또 <무협은 이제 관뒀어>라는 실사 단편이 10월 촬영에 들어간다. 현대에 숨어 사는 무림 고수 이야기인데 독립 영화계의 라이징 스타 곽민규 배우가 주인공이다.


2019년 9월 30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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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이노기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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