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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 속에 소신 심는 고수 <봉오동 전투> 유해진
2019년 9월 3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유해진과의 인터뷰는 남다른 즐거움이 있다. 노트북을 펼친 채 기자를 맞은 그는 허전해서 하나 마련했노라며 씩 웃는다. 이후 이어지는 그의 아재 개그와 표정 연기와 상황극. 마치 그의 일인극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적절한 웃음과 가벼운 농담으로 화기애애하게 분위기 이끄는 선수인 유해진. 국뽕이라는 일각의 시선에 대해 질문하자, 국뽕과 신파 등을 향한 예민한 잣대에서 벗어나 좀 더 둥글둥글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겠냐며 소신 있게 답한다.

일제 강점기 최초의 승리를 그린 <봉오동 전투>에서 독립군 ‘해철’을 연기한 유해진은 얼굴에 새겨진 낙인 같은 상처를 꿈틀거리며 일본인을 향해 자비 없는 칼을 휘두른다. 전투 시 보이는 카리스마와 일상의 유연함 사이 균형을 맞추는 게 숙제였노라고 밝힌 그. 원신연이 없었다면 <봉오동 전투>는 없었다고 감독에게 고마움을 깊이 표한다.


매 작품 저마다의 각오로 임하겠지만, 이번 <봉오동 전투>는 아무래도 여러 생각이 들었을 것 같다.
늘 그렇듯이 잘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컸다. 다만 이번엔 시나리오가 통쾌하고 좋은데 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을지 좀 걱정됐다. 전투신이 워낙 많은 데다 읽는 것만도 벅찰 정도인데 어떻게 표현할지 감이 안 잡혔다.

임시 정부 100주년이 되는 올해, 승리의 역사를 다룬 <봉오동 전투>는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크게 보자면 임시정부 100주년이 되는 해라는 점을 빼놓을 수 없지만, 그보다는 승리를 이끈 이들을 조명한 것에 더 큰 의미를 두고 싶다. 일본군을 봉오동 골짜기까지 유인해 가는 과정을 한 번 생각해 봤으면 한다. 이름조차 남기지 않은 무명의 독립군이 있었기에 승리가 가능했고, 그분들 덕분에 우리가 독립해서 현재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는 것 아닌가.

무거운 무기를 들고 수백 번 산을 오르락내리락하고, 말 타고 질주하고 누가 봐도 고생한 흔적이 역력하더라. 그렇게 고생한 덕분에 우리 산과 들을 배경으로 한 사실적인 전투 장면이 탄생했다고 본다. 만족도는 어떤가.
개인적으로 좋게 봤는데 참여한 배우 입장에서 막 좋다고 표현하기 그렇고, 그냥 모두에게 고생했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뭐하나 쉬운 장면이 없었거든. 전투신이 거의 매일 있어 액션 합을 맞춰야 했고 또 폭파 장면이 많아 늘 긴장한 상태였다.

군자금과 무기를 운반하면서 독립군을 돕는 ‘황해철’을 맡았다. 짧게 친 헤어스타일에 롱코트, 항일 대도라고 쓰인 긴 칼을 차는 등 외형적인 변화가 상당하다. 게다가 뺨에 크고 깊은 상처를 지녔다. 마치 낙인처럼 말이다.
의상은 다 고증에 의한 거다. 짧은 머리를 좋아하지만, 그동안 역할상 기회가 없었는데 이번에 하게 돼서 아주 좋았다. 상처는 그가 살아온 삶의 방증 같은 거다. 영화를 봐서 알겠지만, 상처를 지니게 된 사연이 매우 기구하지 않나.

극 중 인물들이 주로 총을 사용하는 데 비해 ‘해철’은 총과 대도, 심지어 주먹까지 가리지 않고 사용한다. 준비는 어떻게 했나. 또 칼이 길이뿐 아니라 무게도 상당하겠더라.
다른 이들보다 특별히 더한 건 없었다. 대도의 경우, 칼을 사용하는 모습이 멋있게 보이길 원하지 않았다. 보면 알겠지만, ‘해철’의 액션이 화려하지 않다. 살고자 하는 몸짓에서 나오는 칼부림인 거지.
칼의 무게가 한 3~4킬로인데 이게 길다 보니 5초 동안 들고 서 있기도 힘들 정도였다. 칼을 쓰는 장면이 멋있게 보이지 않는 게 목표였지만, 사실 기교를 펼칠 여력도 없었다. 무거워서 그냥 확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좀 더 힘있게 느껴졌을 수 있다.

내외적으로 멋있는 부분을 꼽는다면.
남들은 몰라도 나만 아는 멋이 있다. 원신연 감독, 사실은 친한 친구인데 그가 원래 무술 감독과 스턴트맨 출신이라 액션에 일가견이 있다. 또 정두홍 무술 감독님이 내 액션 대역을 맡아주셨는데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전한다 두홍 형과 신연이 그리고 내가 가장 아끼고 공들인 부분이 있다. ‘해철’이 “다 찢어 죽이겠다”면서 항일 대도를 휘두르는 장면으로 우리끼린 ‘쾌도난마’라고 부른 장면이다

영화 보면서 진짜 봉오동에서 촬영한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실제 촬영은 어디서 진행됐나.
주로 제주도에서 촬영했는데, 당시 비바람이 심해서 고생했다.

연기에 중점을 둔 부분은.
‘해철’이 지닌 인간적인 카리스마를 어떻게 표현할지 고민했다. 강, 강, 강 매번 힘을 줄 수 없으니 적당한 지점에 쉼표가 필요했거든. 무리를 이끌어가는 리더로서 전투할 때는 폭발적인 지휘력을 보이지만. 그렇지 않을 때의 편안한 모습 또한 동시에 표현하고자 했다.
 <봉오동 전투> 스틸컷
<봉오동 전투> 스틸컷

말했듯이 리더로서 발산하는 카리스마와 가끔 보이는 유머가 극에 활기를 더하는 인상이다. 반면 극이 지닌 본질적인 비장함을 희석한다는 시선도 있다.
연기하며 생각해 봤었다. 그분들이 생사를 오가는 순간순간을 경험하고 그게 어떻게 보면 일상이었을 것인데 항상 긴장하고 정색하면서 살았겠나. 절체절명의 회오리바람이 지나고 나면 극 중처럼 감자라도 나눠 먹으며 가족 이야기 등 사람 사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을까. 그렇게 나름의 숨 쉴 구멍이 있었을 거로 본다. 무리를 이끄는 ‘해철’이 항상 날이 서 있다면 함께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숨 막히겠나. 그런 생각에 적당한 유연함과 웃음을 보여주려 했다.

극 중뿐만 아니라 실제 촬영장에서도 선배 위치에 있다. 현장을 부드럽고 즐겁게 이끌어 후배들이 편했다고 하던데. (웃음)
촬영하다 보면 예민해질 때는 예민해진다. 하지만 비교적 부담 적은 장면 촬영 때조차 혼자 심각하게 있으면 분위기가 너무 다운된다. 또 나 역시 숨 쉴 구멍이 필요하고. 예전엔 미처 인식하지 못했는데 선배 입장이 돼 보니 알겠더라. 후배와 스태프들이 편하게 작업할 수 있는 판을 마련해 줘야 한다는 거 말이다. 내가 그런 역할을 잘 못하고 있다는 생각이 내심 있었는데 후배들이 그렇게 말했다니 다행이다. (웃음)

엔딩 부분에서 대선배가 등장한다. 원래 바다에서 나라를 지켜야 할 분인데..(웃음) 함께 연기한 소감은.
촬영하면서 특히 고마웠던 두 분 중에 한 분이다. 사실 이번에 (최) 민식 선배와 처음 작품에서 만난 것인데, 잠깐 나오는데도 그런 에너지를 내뿜을 수 있다니 정말 대단했고, 감탄했다.

다른 고마운 한 분은 누구인가.
아까 잠시 말한, 정두홍 무술 감독님이다. 무술 총괄은 김민수 감독님이지만, 따로 부탁해 두홍 형이 내 무술 대역을 해주셨다. 아까 말한 ‘쾌도난마’ 장면을 비롯해 말이다. 물론 나도 날로 먹진 않았다!(웃음) 형이 시연한 후 내가 따라 하는 식으로 진행했다. 내가 직접 한 것을 쓸 수 있으면 쓰고 그렇지 않은 경우 형의 촬영분을 사용했다. 사실 형이 누구 대역을 할 위치가 아닌데 ‘해진이면 오케이’ 이러면서 흔쾌히 허락하셔서 매우 감사하다.
 <봉오동 전투> 스틸컷
<봉오동 전투> 스틸컷

<택시운전사>(2017) 이후 류준열 배우와 다시 만나 더 깊고 길게 호흡 맞췄다. (웃음)
촬영하며 좋았는데 끝나고 나서 더 좋아지는 것 같다. 좀 전에 인터뷰 시작하기 전에도 미리 와서 이런저런 얘기하며 장난치고 갔다. 그러면서 정이 점점 더 깊어진다. 그는 톡톡 튀는 유머를 지니고 있다. 내가 은단이라면 그는 톡톡 터지는 캔디 같다고 할까. 하하!

영화 보며 가슴이 점차 뜨거워지다 마지막 독립군 연합을 소개할 때는 그야말로 울컥하더라. 하지만, 일각에선 국뽕을 자극한다는 의견도 있다.
민감한 사안이고 말하기 조심스럽지만, 사회가 너무 날카롭고 예민해지는 게 아닌가 한다. 비단 국뽕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파 등 연관된 비난을 보자면, ‘그렇다와 아니다’로 너무 이분법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는 것 같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고받을 텐데 모든 면에서 좀 더 둥글둥글한 시선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국뽕 요소가 있다는 지적 혹은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하다. 또 우리 영화가 그에 속하는지 아닌지 여부와 별개로 관객이 해석하고 받아드리는 것에 따라 달리 느끼지 않을까 한다.

<택시운전사>(2017), <말모이>(2018), <봉오동 전투>까지 엄혹한 시대 속에 용기 낸 개인의 모습을 연기했다. 사회적 반향이 큰 작품들을 연속하고 있다.
배우는 다양하게 이것저것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웃음을 줄 수 있는 것, 메시지를 전달해 주는 것 모두 나름의 의미를 지니고 있다. 끌리는 것을 찾아 연기하는 게 내 일이라고 생각하는 데 그러면서 조금씩 책임감이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뭐 거창하게 사명감까지는 아니지만 말이다.

<택시운전사> 속 평범한 소시민, <말모이>에서 뒤늦게 우리말의 소중함에 눈 뜬 까막눈 이번엔 일본군에 향해 자비심 없는 칼을 휘두르는 독립군까지 전혀 다른 모습인데, 평소 연기하면서 중요시하는 부분은.
내 최고의 숙제는 그 속에 녹아 있느냐이다. 이전과 차별화를 꾀하거나 혹은 독특한 캐릭터를 만드는 것보다 작품에 어우러지는 게 중요하다. 혼자 겉돌지 않는지 새 영화에 들어갈 때마다 항상 고민한다. 만약 그간 내가 나온 모습을 좋게 봐주셨다면 아마 이런 고민 덕분일 거다.

원신연 감독과 개인적으로 친분이 두텁다고 했다. 친구 원신연 감독께 한마디!
(전화 거는 척하며) “신연이니?” 한마디 했지? 장난 한번 쳐 봤다. (웃음) 예전부터 이런 영화를 해보자는 말을 했었다. 다만 규모가 큰 작품인 데다 전투 신이 너무 많아 엄두를 못 냈었다. 알다시피 영화 한 편을 만들기 위해 규모가 크든 작든 신경 쓸 일이 정말 많다. 하나부터 열까지 정말 별의 별 일을 다 결정해야 한다. 그런데 우린 폭파, 전투, 액션 등등 위험한 촬영이 대부분이니 그가 얼마나 신경이 예민해졌을지…. 그런데도 그런 힘듦을 전혀 표현하지 않는다. 아마 나 같으면 고함의 연속이었을 텐데 그는 ‘한 번만 더 가자고’ 조용히 말한 후 혼자 머리 쥐어뜯는다. 그를 쥐어짜면? 고민이 팍팍 쏟아져 내릴 것 같은 느낌이라고 할까. 예민한 현장을 누르고 다스리느라 정말 정말 고생 많이 했다. 원신연이 없었다면 <봉오동 전투>도 없었을 것이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조성희 감독의 SF <승리호>로 인사할 것 같다. 우주에 관한 영화로 새로운 경험을 하는 중이다.


2019년 9월 3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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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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