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겁나는 건 없지만, 무서운 건 있다 <걸캅스> 라미란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라미란 스스로 밝혔듯이 <걸캅스>는 48편 만의 작품 참여 끝에 첫 주연을 꿰찬 작품이다. 자신을 두고 썼다면서 들려준 시나리오를 딱 보니 액션을 하라는 건가 싶어 처음에는 당황스러웠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가 달리 ‘희망의 아이콘’이 됐을까. 배역의 경중과 고됨을 따지지 않고 불러준다면 다 한다는 마음으로, 버티는 게 이기는 거라는 신념으로 달려온 ‘라미란’답게 더운 날씨에 가죽 재킷 입는 수고도 마다치 않고 빡세게 연습해서 현실적인 액션을 완성했다. 예능을 통해 군대를 간접적이나마 경험해봤고, 이번엔 액션을 소화했으니 앞으로 어떤 장르이든 겁나지 않는다는 도전 정신 충만한 그이지만, 그럼에도 무서운 건 있다. 바로 식.상.함, 한순간에 훅 가지 않기 위해 요모조모 이미지 변화를 꾀하고 있다는 나름 치밀한 배우 라미란을 만났다.

# <걸캅스>

경찰기동대 출신 민원상담실 주무관 ‘미영’(라미란)을 맡아 액션에 도전했다. 완성된 영화를 보니 어떤가. 촬영할 때와는 또 느낌이 다를 것 같다.
나는 객관성을 잃었다. (웃음) 액션이 생각보다 잘 나왔더라. 화려하진 않지만, 현실적이면서 본능이 살아있는 액션이라고 할까.

액션 얘기가 나왔으니.. 엔딩에서 범인을 ‘백 드롭’하는 장면이 절정이 아니었나 싶다.
그런 얘기를 많이 들었다. 실제 위험해서 선수들도 잘 사용 안 하는 기술이라고 하더라.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 사진이 첨부돼 있었는데 그걸 보고 ‘내가??’ 이 생각이 딱 들었었다.
 <걸캅스> 스틸컷
<걸캅스> 스틸컷

초반 가죽 재킷 입은 채 범인을 추적 끝에 검거하는 액션 시퀀스 역시 인상적이었다. 특히 가죽 재킷이!
그래? 개인적으로 너무 마음에 안 들었다. 그 상황이 극 중에서 현재가 아닌 과거인데 오히려 현재보다 더 늙어 보이지 않나! CG 처리 좀 해주지.. 안 해주더라. 게다가 가죽 재킷 입고 한여름에 촬영하자니 정말 더웠었다. 아마 감독님이 <예스마담> 시리즈의 양자경을 연상하게끔 유도한 것 같기도 하다.

액션을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예능에 나온 모습을 보면 주로 누워있는 모습이 많던데 운동 신경이 좋은가 보다.(웃음)
운동 신경은 좋은 편인데 운동을 평소 하진 않는다. 촬영 들어가기 전에 시간이 별로 없어 한 달 정도 빡세게 배우고 연습했었다. 집이 파주라 액션스쿨과 가까워서 다행이었다. 보면 그곳 선생님들이 가르치는 노하우가 대단하시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해 주시니 나도 모르게 더욱 힘내서 하게 되는 거다! 정말 한 세트 끝내고 나면 숨이 턱까지 차오를 정도였다. 첫날은 연습하고 돌아와 아예 앓아 누웠었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당신을 모델로 했다고 들었다. 시나리오를 받아 본 느낌은.
음.. 그런 이야기를 듣긴 했는데, 막상 시나리오 받고 나니 액션을 하라는 건가 싶어 좀 당황했었다. 기존의 나를 분석한 것이 아니라 아마도 내가 보여줬으면 하는 모습을 그린 게 아닌가 한다. 시나리오 자체는 쓱쓱 넘어갈 정도였다. 그만큼 호흡이 빠르고 재미있었다. 제작자와의 인연이 원체 깊고 또 나를 두고 썼다는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라 이상한 작품이라도 해야 할 상황이었는데, 좋은 작품이라 그야말로 감사했다.

각본과 연출을 겸한 정다원 감독의 첫 상업영화다.
그래서 모든 게 도전이었다. 정 감독 입장에선 상업 영화 입봉작이고 나 역시 첫 주연작이니 말이다. 스태프들도 모두 연령대가 낮아 젊은 피를 수혈받은 듯했다. 젊은 감독이라 감각과 시선이 참신해 오글거리는 부분이 있으면 과감하게 컷해 줬다. 어떻게 하면 뒤처지지 않을지 그들에게 많이 배운 시간이었다. 걱정하다가도 막상 현장에 가면 할 수 있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생기기도 했고, 스스로 늙었다는 생각에 안주하지 않았나 싶어 좀 더 뛰어 봐야겠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영화의 톤앤 매너를 떠나 온전히 여자가 중심이 돼 극을 끌고 나간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작자나 감독은 남자지만, 여성 중심 영화가 그간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은 않았음에도 용기를 내준 결과라고 본다. 책임감으로 시작한 건 아니지만, 어느 순간 느껴지기도 했었다.

최근 심각한 문제로 대두한 몰카 동영상을 비롯한 디지털 성범죄를 다룬다는 점 역시 주목할 만하다.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대다수가 여성이지 않나. 극 중 ‘미영’(라미란)과 ‘지혜’(이성경)는 성범죄에 노출된 피해자가 정신적· 신체적으로 얼마나 피폐해지는지 공감하기에 직접 행동에 나섰다고 본다. 사실 제목이 ‘걸캅스’이지 두 사람 모두 경찰이 아니지 않나. ‘미영’은 민원봉사실에 근무하고 있고 ‘지혜’는 정직 기간이니 말이다. 앞뒤 안 보고 무식하게 뛰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아무도 손을 잡아주지 않을 때, (피해) 여성들에게 기꺼이 손을 내밀어 준 거다.

일각에선 남성 캐릭터를 하나같이 지질하거나 부정적으로 묘사한다는 지적도 있다.
남성 캐릭터를 일부러 지질하게 묘사하려는 의도는 없었다고 본다. 평소 남성 형사가 등장할 때 여성 캐릭터가 보통 그런 식으로 소진되지 않나. 또 남성 경찰이 그리 비하됐다고 생각하지 않는 게 결국 나중에 서로 협력 관계가 된다. 한편으론 실적에 얽매이고 몸 사리는 그들의 근무 태도가 이해되기도 하고 말이다. 다만 ‘미영’(라미란)의 남편(윤상현)이 백수라고 구박당하는데 누군가는 그가 육아를 담당하는데 백수로 폄하한 것에 관해 이의를 제기하더라. 확실히 밝히자면 그는 극 중 육아와 살림을 전담하지 않는다! 다만 영화적으로 극적이게 묘사한 것은 맞다. 다행히 윤상현이라는 배우가 지닌 타고난 사랑스러움이 어떤 불편함을 희석시켰다고 본다.

또 욕설의 사용이 지나친 인상이다.
개인적으로 욕하는 걸 싫어하고 아이들에게도 그렇게 교육한다. 내가 특히 하지 말라고 하는 게 거짓말, 욕, 예의없음 이 세가지다. 감독님이 나중에 그렇게 욕이 많이 들어갔는지 몰랐다고 하면서 사실 어느 정도 거둬낸 거다. 그런데 젊은 세대들이 실제 욕을 정말 많이 사용한다고 들었다.
 <걸캅스> 스틸컷
<걸캅스> 스틸컷

극 중 ‘미영’과 실제 당신과의 공통점이 있다면.
글쎄.. 워킹맘이라는 게 공통점 이긴 한데 ‘미영’은 공무원으로 규칙적인 근무인 반면 나는 들쑥날쑥하게 일을 해서 차이점이 있다. 게다가 운 좋게도 부모님께서 육아의 많은 부분을 도와주셔서 편하게 일한 편이다. 같은 워킹맘이라고 해도 될까 싶을 정도로 일과 육아와 가사를 병행하는 데서 오는 고단함을 잘 모른다. 게다가 ‘미영’은 자신이 좋아하는 경찰기동대 일을 뒤로 하고 육아를 위해 현실과 타협한 인물인데, 나는 양껏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입장이라 진심으로 이해한다고 말하긴 힘들 것 같다. 나와 공통점이 있는지 없는지보다 중요한 건 ‘미영’이 잊고 있던 과거를 기억해 내고 현재 자신을 가둔 알을 깨고 나가는 인물이라는 거다. 그건 ‘지혜’(이성경)도 ‘장미’(최수영)도 마찬가지다. 영화 후반부를 보면 그들 모두 현재보다 한단계 발전한 모습이 보인다.

하정우, 안재홍 등 카메오 출연자가 많은 것도 특징으로 소소한 웃음을 안긴다. 특히 안재홍과는 인연이 깊지 않나.(웃음)
예전에 <응답하라 1988>에서 내 큰아들이었다. 오랜만에 만나니 너무 반갑더라. 머뭇거리는 그 특유의 호흡이 있는데 개인적으로 너무 좋아한다.

<걸캅스> 전후 생각의 변화라고 할까. 달라진 점이 있다면.
솔직히 평소 정치나 사회 경제에 크게 관심있는 편이 아니었는데 작품을 하면서 하나씩 알아가게 됐다. 디지털 범죄에 대해 잘 몰랐는데 알고 보니 개인이 조심해서 될 문제가 아니더라. 스스로 경각심을 갖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무엇보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범죄 인식과 폐해에 대한 사회적 공론이 형성돼야 할 것 같다.

# 라미란

이번에 소위 ‘걸크러쉬’의 전형을 보여준 것 같다. 당신에게도 롤모델이 있을까. (웃음)
전에는 별생각이 없었는데, 드라마 <눈이 부시게>로 백상시상식에서 수상하신 김혜자 선생님이 너무 멋있으시더라. 후배에게 나아갈 길을 몸소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그야말로 진정한 걸크러쉬다. 내 새로운 롤모델로 등극하셨다. 내가 그 연배가 됐을 때 선생님 같은 에너지로 연기하고 싶다.

<걸캅스>는 48편 만의 첫 주연작이다.
아.. 누군가 ‘희망의 아이콘’이냐고 놀리더라.(웃음) 결혼하고 쉬고 있던 차에 오디션을 제안 받고 합격해 첫 출연한 영화가 <친절한 금자씨>(2005)였다. 다시 무대에 설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였는데 일하러 나가니 살 것 같더라. 그 이후 이것저것 안 가리고 내게 오는 역할을 다했던 것 같다. 그렇게 48편이 된 거다.

연기 입문은 어떻게 하게 됐나.
그냥 어릴 때부터 연기와 노래에 관심 있었던 것 같다. 다섯 살 때인가 옆 동네에 놀러 갔는데 어떤 꼬마애가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동네 사람들이 호응을 아주 크게 해주는 거다. 그 모습을 보고 우리 동네로 와서 아이들을 모아 작은 연극을 하기도 했었다. 그런데 사실 초등학교 때는 부끄럼을 많이 타 누가 노래 한 번 불러 보라고 하면 얼굴이 벌개지곤 했었다. 중학교 때부터 좀 활달해졌던 것 같다. 노래, 개그맨 등 하고 싶은 게 많았는데 어느 날 퍼뜩 연극을 하면 하고 싶은 것들을 다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진학을 그 방향으로 했다. 당시 TV 배우는 예쁘고 잘 생겨야 할 수 있어서 아예 생각도 안 했었다.

연기 경력에 터닝 포인트가 된 작품을 꼽는다면.
일단 첫 영화인 <친절한 금자씨>, 나를 이 세계로 밀쳐 넣어준 작품이다. 학교 졸업 후 연극과 뮤지컬 위주로 활동하다가 결혼 후 아이 낳고 쉬고 있을 때 오디션 제안을 받았다. 그것도 예전에 프로필 사진을 돌렸던 게 돌고 돌아 제안이 온 건데 정말 너무 떨렸었다. 내가 웬만해선 잘 안 떨거든.(웃음) 그다음은 이석훈 감독님의 <댄싱 퀸>(2012)으로 처음으로 오디션을 안 보고 참여한, 분량도 많고 배우 ‘라미란’의 얼굴을 알리게 한 작품이다. 당시 윤제균 감독님이 <헬로우 고스트>(2010)에 출연한 나를 보고 불러 주셨었다. 그리고 나를 나름의 주인공 반열에 올려준 이준익 감독의 <소원>(2013)도 나에겐 매우 중요한 영화다. 이번 <걸캅스> 제작사 대표님과 인연의 시작점이자 배우로서 가장 환기가 많이 된 작품이다. 매번 눈물을 흘리며 카타르시스를 느끼면서 작업했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해도 짠하다.

배우를 그만두고 싶은 시기가 혹시 없었나. 또 당신의 경쟁력을 자평한다면.
진짜로 없었다. 연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다. 그 흔한 엑셀도 전혀 못한다. 내 꿈은 가늘고 길게 있는 듯 없는 듯 죽을 때까지 연기하는 거다. 지구력은 없는데 오래 살아남고 싶은 마음은 간절하다. 그래서 역할에 경중을 두지 않고 나를 원한다면 얼마든지 하고 싶다. 한순간에 훅갈까봐 걱정이다.

가끔 경쟁력 관련해 질문받으면 농담인 듯 진심으로 비주얼이라고 대답하곤 한다. 어디다 갔다 놔도 평범하지 않나, 튀지 않고 그 자리에 어우러진다. 외모로 승부한다고 생각한다. (웃음)

훅 간다는 건..
대부분의 배우 입장에서 가장 두려운 건 흔히 이야기하는 이미지 소모일 거다. 관객이 지겨워하는 거 말이다. 나 역시 유사한 역을 몇 번 하면 그런 걱정이 앞서고 달리 보이기 위해 무던히 노력한다. 시대물과 현대물을 교대로 한다든지 헤어나 외모적으로 변화를 주고 또 가끔 쉬어 가는 느낌으로 예능을 하기도 하는 등 나름 치밀한? 계산하에 움직이고 있는 거다. (웃음) 안 그런 척하지만, 겁이 많고 의심도 많고 소심한 편이다.

끊임없이 달려올 수 있었던 동력은 뭘까.
삶에 대한 질긴 생명력이라고 할까. 먹고 살아야 하니 말이다. 그런데 무엇보다 이렇게 재미있는 직업이 어디 있을까. 다른 사람으로 살아본다는 것 자체도 흥미진진한데 게다가 돈까지 주니! 말했듯이 다른 능력 없는 내겐 최고의 직업으로 불러 주는 한 죽을 때까지 하고 싶다.

‘희망의 아이콘’으로 등극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또 제 2의 ‘라미란’을 꿈꾸는 후배에게 조언한다면.
내게 하고 싶은 말이라..조금만 더 하자, 안주하지 말자. 차곡차곡 쌓아왔다지만, 견고한 탑인지는 확신할 수 없다. 어떤 배우로 남을지는 이제부터 결정된다고 본다. 안 하고 후회하는 것보다 하고 후회하는 게 낫다는 생각이다. 욕을 먹더라도 끊임없이 도전해 보려고 한다. 예능 ‘진짜 사나이’로 군대도 간접이나마 경험했고 이번 <걸캅스>로 액션도 해보니 자신이 좀 생겼다. 스릴러든 걱정스러운 멜로든 모두 새로울 것 같아 기대 중이다.

예전엔 후배들에게 일단 10년 이상은 버티라고 했었는데 이젠 그 버티어야 할 시간이 길어진 것도 같다. 그래서 요즘엔 버틸만큼 버티고 포기할 건 적당히 포기하라고 말한다. 혹여 오디션에 떨어지더라도 내 몫이 아니라고 쿨하게 떨쳐버리는 것도 필요하다. 무엇보다 살아남는 게 이기는 거다. 죽을 만큼 고통스러운데 참으라는 게 아니라 버티는 것조차 즐길 수 있을 때 버티라는 것이니 오해는 말길.

‘라미란’ 만의 연기 철칙이 있다면.
되게 힘든 일인데 ‘연기하지 않기’다. 즉 최대한 힘 빼고 극 중 인물로 그 장소에 있고 싶다. 그러다 보니 어떤 역할을 하든 내 본연의 모습이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인위적인 모습을 지양하다 보니 내 모습이 투영되는 듯하다.

차기작 소개를 부탁한다.
아직 결정된 것 없고, 장르나 플랫폼 구분 없이 자유롭게 움직이려고 한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속마음을 잘 내색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쌓아 두지도 않는다. 그래서 스트레스 지수가 낮고 행복감이 높은 편으로 멍 때리고 그냥 있는 것도 맛있는 것을 먹는 것도 다 즐겁다. 특히 대사가 적은 회차의 촬영을 앞둔 경우, 즉 업무량이 적으면 아주 행복하다.


2019년 5월 15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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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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