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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열’해서 좋았다 <우상> 한석규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전작 <프리즌>(2016)에서 감옥의 절대자로 군림했던 한석규가 딜레마에 빠진 아버지 ‘구명회’로 돌아왔다. 극 중 ‘구명회’는 도지사 출마를 앞둔 전도 유망한 정치인으로 아들이 저지른 교통사고를 무마하고자 악수(惡手)에 악수를 거듭하는 인물이다. 무엇이 그를 나락으로 인도하는가. 아마도 ‘우상’화된 욕망이었을 것이다.

<우상>은 전작 <한공주>로 성폭력 피해자와 가해자가 뒤바뀐 듯한 현실의 민낯을 날카롭게 고발했던 이수진 감독의 신작이다. 사건과 사고가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를 바라보며 이 감독은 <우상>을 제작했고 한석규는 그의 생각에 반응했다. ‘반응’이라는 어휘를 참으로 광범위하게 사용하는 그인데, 아무려면 어떤가. 의미만 통하면 됐지. 그가 연기한 ‘구명회’가 무엇보다 비열한 캐릭터라 좋았다며 ‘반응’하는 한석규를 만났다.


“지금 문득 요새는 글의 시대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까지 글로 읽는 게 편하고 여전히 종이 신문을 구독하고 있는데 말이다. 내가 한겨레 평생 독자거든. 물론 신문을 읽는 것 외에 여러 용도로 사용하지만 말이다”라며 다소 뜬금없는 서두를 꺼내는 한석규. 얼마 전에 아주 오랜만에 영화주간지 씨네 21의 표지 작업을 했노라고 덧붙인다.

이수진 감독이 처음 <우상>을 제안했을 때 한석규는 투자 등 제작 관련한 어떤 결정도 되지 않은 상태로 알고 있었기에 제작이 가능할지 의문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수진 감독의 이야기에 의하면 이미 CGV 아트하우스의 투자가 확정된 상태였다고. 중요한 것은 제작될지 안 될지도 모르는 작품에 기꺼이 참여를 결정했다는 거다.

그는 “한 50억 정도 들 것 같은데 누가 투자할까 싶었고 한편으론 <한공주> 제작하며 그 개고생을 했는데 이 감독이 또…, 이런 생각도 들었다. 하지만 막상 시나리오를 보니 아주 정성스럽게 쓴 데다가 그 의도가 아주 마음에 들었다”고 기억한다.

“한숨이 확 나왔다. 이 감독은 ‘현재’, 즉 ‘지금’(2017년 제작 당시)의 이야기를 하는구나!” 그가 시나리오를 덮으며 든 생각이었다.

더불어 “<우상>은 시나리오 자체가 분위기로 압도하면서 정곡을 찌른다. 이야기의 주제와 그것을 드라마로 풀어내는 방식 그리고 곳곳에 등장하는 은유 등 모든 것이 인상적이었다”고 처음 시나리오를 접한 느낌을 전한다.
 <우상> 스틸컷
<우상> 스틸컷

영화란 시대와 그 속을 사는 사람을 그리는 것으로 영화를 보면 해당 사회와 분위기를 대략 짐작할 수 있다는 게 평소 지론인 한석규는 <우상>에 ‘반응’했노라고 이야기한다.

그가 말하는 ‘반응’이란 무엇일까.

“연기라는 건 어떤 반응의 결과인 것 같다. 내가 어떤 반응 때문에 연기를 하고 싶었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결과 연기자가 됐다. 그 후 내 연기가 액션인지 리액션인지에 대해 꽤 오래 생각했는데 예전엔 액션에 집중했다면 요새는 리액션에 집중하게 된 것 같다”고 알 듯 모를 듯한 이야기를 전한다.

“사람은 반응하며 살아가는 존재이기에 나 역시 어떤 반응을 하며 사는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떤 사회 문제 혹은 사회적 메시지가 있을 때, 정치 성향에 따라 받아들이는 게 다를 거다. 다른 게 당연한 거지. 만약 만인이 똑같이 반응하도록 강요받는다면 그것은 건강하지 못한 사회라는 방증일 거다. 각양각색인 것은 당연한데 그게 발전적인 방향의 반응이길 바라는 거다”라고 부언하는 한석규에게 ‘당신의 반응’은 어떤 것이었냐고 콕 집어 묻자 “어떻게 설명하기 힘들다. 오랫동안 나를 봐왔으니 어렴풋이 짐작할 것”이라고 해석의 몫을 상대에게 돌린다.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여러 사건 사고를 보고 반응한 이수진 감독에게 ‘반응’한 그이니…해석은 알아서 하기로!
 <우상> 스틸컷
<우상> 스틸컷

<우상>에는 사회적 지위도 경제적 능력도 천차만별인 두 아버지가 등장한다. 유명한 한의사 출신으로 이미지메이킹의 달인에 도지사를 꿈꾸는 도의원 ‘구명회’(한석규)와 지체 장애 아들을 극진히 보살피고 사랑하는, 단순하고 저돌적인 기술자 ‘유중식’(설경구)이다.

처음 한석규에게 <우상> 시나리오가 전달됐을 때, 그의 배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 상태였다고, 이수진 감독은 내심 ‘유중식’ 역을 염두에 뒀었다고 한다. 하지만 한석규는 ‘구명회’의 ‘비겁함’에 반응했다.

“그(구명회)가 비겁해서였다. 비겁한 연기를 하는 새로운 한석규를 관객이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다”고 말하며 “영화 속에서 ‘구명회’는 주제를 드러내는, 제목과 스토리를 또렷이 하는 캐릭터로 계속 리액션을 하는 인물이다. 출장에서 돌아와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냈던 차가 주차돼 있는 지하실 문을 여는 순간부터 그의 리액션은 시작한다. 계속 반응하는데 아주 병든, 썩은 내가 진동하는 반응을 거듭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구명회’가 처음부터 악인은 아니었다. 그는 영화 속 어떤 시점을 기점으로 브레이크 고장 난 차와 같이 폭주하기 시작한다. ‘구명회’에게 있어 질주를 제어했던 브레이크는 무엇이었을까.
 <우상> 리딩 연습 현장
<우상> 리딩 연습 현장

“그는 겉으론 선인이다. 잘 드러나지 않았을지 모르지만, 스스로 정당화하며 그릇된 선택을 한다. 그 기준은 ‘부끄러움’이라고 생각한다. 아마 그가 내면에서 오는 부끄러움의 신호를 무시한 순간부터 서서히 마취됐을 거다. 그렇게 폭주한 결과 나락으로 떨어지는 거다”라고 답한다.

한석규는 ‘구명회’가 병든 반응 끝에 지옥으로 걸어 들어갔다고 하지만, <우상>이 보여주는 마지막 엔딩 장면은 다양한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이에, “아주 강렬한 엔딩이다. 우리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그 한 장면에 집약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며 어떻게 반응할 것인지는 역시 관객의 몫으로 돌린다.

한편, <우상>이 지닌 메타포가 다소 불친절하게 느껴지고 배우의 대사가 잘 들리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 한석규는 얼마나 사투리를 잘 구사했으면 그렇겠냐고 반응하는 동시에 의미를 놓칠 수도 있을 거라고 일정 부분 인정한다. 중반부 이후 혼란이 올 수도 있다고…하지만 그것 역시 이수진 감독이 여러 경험 끝에 반응한 결과이니 다소 물음표가 느껴져도 이해하려 노력했노라고 전한다.

“선·후배라고 하지만 먼 훗날 보면 동시대의 배우일 거다. 존중할 수 있는 동료이자 연기자”라고 함께한 배우인 설경구와 천우희를 칭찬하며, “<우상>은 인간 한석규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를 던졌다고 말하는 그에게 당신의 우상은 무엇이냐고 마지막으로 물었다.

“우상이라고 할 수는 없지만, 내게 가장 많은 영향을 준 사람은 어머니이다. 나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혹은 하지 말라고 강요하지 않으셨었다. 심지어 어떤 일이 하고 싶냐고 묻지도 않고, 그냥 그 어떤 질문 없이 지켜봐 준 분이시다. 어릴 때 극장을 자주 데리고 가셔서 당시 <혹성 탈출> 등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때 본 영화들이 연기자로서 살아가는데 자양분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답하며 살며시 미소 짓는다.


2019년 3월 20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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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GV 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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