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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아니면 못 할 것 같아서...<마약왕> 우민호 감독
2019년 1월 4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내부자들>(2015)을 끝낸 후 청불(청소년 관람불가) 영화는 안 하리라 다짐했다는 우민호 감독. 하지만 그의 선택은 ‘마약’을 소재로 한 인물의 흥망성쇠를 다룬 <마약왕>이었다. 30년도 더 전의 당시 신문 기사 두 개를 확대 복사해 가져온 우민호 감독은 그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마약왕>이 시작됐다고 말한다. ‘마약왕’이라는 다소 식상한 타이틀과 지나친 극화에 대한 의구심에 맞서 실재했던 ‘사실’에 충실했노라고 증거를 내민다.

유신 독재가 낳은 기형아 마약왕 '이두삼'의 10년을 한정된 시간 안에 조명하며 우민호 감독은 취사 선택과 서사의 빈틈을 메우는 작업이 필요했다. 그가 꺼내든 카드는 바로 천만 배우 혹은 국민 배우라는 칭호를 달고 다니는 송강호, 그의 선택은 옳았다. 다만 상업적 장르적 문법보다 은유와 상징을 다수 녹여 넣었기에 다소 낯설게 느낄 수 있을 거라고 자인하며 우 감독은 그 어느 때보다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고 한다. "지금 아니면 못할 거 같아서"라며, 감독을 끌어당긴 소재를 원하는 화법으로 밀어붙인 그 뚝심에 응원을 보낸다.


2017년 말 크랭크업해 근 1년 만에 개봉했다. 후반 작업에 시간이 많이 소요됐나 보다.
총 100회차 촬영을 했기에 아무래도 편집에 시간이 많이 걸렸다. 요즘 영화가 보통 50회차 내외인 점을 감안하면 영화 두 편을 찍었다고 보면 된다. 영화가 1970년대를 배경으로 한 인물의 무용담에 일대기를 다루기에 등장인물들이 어딘가로 자주 돌아다닌다. 그렇다 보니 전국 방방곡곡 다니면서 6개월에 걸쳐 촬영했다. 편집하면서 덜어낸 부분도 많다.

러닝타임 139분으로 지금도 짧은 분량이 아닌데…. 만약 덜어내지 않고 욕심껏 했다면?
음, 그렇다면 한 세 시간? 그 정도면 충분하지 않을까 한다.

시간과 공을 들여 완성했는데 개인적인 만족도와 작업을 마친 소감은.
만족한다. 전작인 <내부자들>(2015)이 명확하고 선명한, 상업영화의 장르에 충실했다면 <마약왕>은 완전히 다른 영화다. 일반적인 상업 영화가 지닌 분위기와는 다른 느낌일 거로 본다. 관객의 반응이 궁금하다.

촬영 마친 후 숙소에 돌아가 그날 촬영을 복기하곤 하기에 보통 감독은 외로운 포지션이다. 지금까지 많은 작품을 한 것은 아니지만, <마약왕>이 가장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덜 외로울 수 있었던 건 송강호 선배와 함께한 덕분인 것 같다.

좀 전에 언급한 다른 점에 대해 좀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한 남자의 흥망성쇠를 다룸에 있어 타인과의 대립과 갈등으로 파멸하는 게 통상이다. 하지만 <마약왕>은 완벽하게 혼자 자멸하는 이야기다. 허상과 헛된 욕망을 맹렬히 좇다가 스스로 성에 갇혀 서서히 미쳐가는 거지. 마치 ‘리어왕’ 같다고 할까. 그래서 후반 20분간 펼쳐지는 뽕 맞은 연기는 연극처럼 담으려고 했다. 낯설 수 있으나 새로운 도전으로 생각하고 시도해봤다.

음, 연극 톤인 것이 의도한 거였군! 주인공인 마약왕 ‘이두삼’역에 처음부터 송강호 배우를 염두에 둔 건가.
기획 후 시나리오 나오면서부터 꼭 송강호 선배와 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당시 선배가 <택시운전사>를 지방에서 촬영하고 있었기에 직접 찾아가서 책(시나리오)을 드렸다. 실화를 배경으로 한 이야기라고 설명하며 이 사진을 보여줬다. (기자 주 인터뷰 당시 우민호 감독이 80년대 신문 기사 중 두 개를 발췌해 크게 확대 복사해서 가져왔음) 사실 내가 처음 영화를 기획하게 된 계기가 바로 이 사진이었다.

좀 더 자세히.
이 사진을 봐라. 실제로 한 남자가 문 앞에 장총을 들고 있다. 그가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검사다. 이걸 보고 이들이 검거하려는 사람이 도대체 누구일지 호기심이 생겼다. 검사가 총 들고 있는데, 그들이 누구를 잡으려고 하는가. 70년대 후반 당시 실제 총격전이 벌어졌다는 게 놀랍지 않나!

조사해보니 바로 ‘마약왕’ 이었다. 그가 당시 2백억 정도 가치의 마약을 소유하고 있었고, 지하실에 밀조 공장을 돌렸다고 한다. 그 위에 장미꽃을 쌓아 놓았고, 집에서 총기만 11정이 발견됐다더라. 처음에 형사 8명이 수갑만 가지고 잡으러 갔다가 실패, 결국 경찰 특공대 35명이 투입됐다는 거다. 솔직이 유신 독재 시절에 ‘마약왕’이 존재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는데 찬찬히 생각해 보니 유신 시절이라 가능했던 것 같다.

오! 정말 총을 들고 있다니…. 영화 타이틀을 ‘마약왕’이라고 한 이유는. 썩 참신한 느낌은 아니다.
당시 신문 기사에서 ‘이두삼’을 ‘마약왕’이라고 지칭했었다. 그대로 사용한 거다.

우문이지만, 왜 ‘송강호’였나.
영화가 10년의 세월을 다루다 보니 서사에 구멍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 틈을 메울 사람은 송강호 선배밖에 없다고 생각했고, 결과적으로 다 채워주셨다. 아마도 선배는 현장에서 아주 외로웠을 거다. 특히 마지막 파멸해 가는 연기를 할 때는 더더욱 그랬을 것이다. 피상적인 자료를 통해 막연히 추측할 뿐, 마약을 직접 복용해 본 일이 없으니 어떻게 체화해 표현할지 얼마나 막막했겠나. 나 역시 감독 입장에서 어떻게 방향을 제시할 수도 없고 단지 그 모습을 지켜볼 뿐이었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점점 미쳐 가는 리어왕 같았다는 게 빈말이 아니다.

그간 인권 변호사, 소시민 택시 운전사 등 정의롭고 친근한 모습으로 다가왔던 송강호 배우인데, 이번 ‘마약왕’으로의 변신을 낯설게 느끼는 관객도 있을 것 같다.
예전 <넘버 3>(1997) 등에서 보여줬던 모습을 그리워하는 관객도 있을 테니 이번 악역을 충분히 즐기실 거로 본다. 이후엔 다시 관객이 좋아하는 얼굴로 돌아오실 거고 말이다.

한 인물의 10년의 시간을 담으며 취사 선택에 고민했을 것 같다.
한 10부작쯤 되는 드라마였다면 꼼꼼하게 담았을 텐데 영화다 보니 한계가 있었다. 찍으면 찍을수록 어렵게 느껴졌다. 결국 인물을 넣었다 빼는 방식, 즉 상대를 바꿔가며 ‘이두삼’이 모험(?)을 일삼고 결국에는 스스로 갇히는 거로 끌고 갔다. 상업적인 이야기 구조는 아닌데 ‘마약왕’의 이야기를 담기엔 적합하다고 생각했다.

후반부 ‘이두삼’이 자멸하는 모습에 감정 이입이 잘 안 된다는 지적도 있다. 관객이 공감하도록 하는 장치가 부족해 보이기도 한다.
‘이두삼’은 <내부자들>의 ‘안상구’(이병헌)처럼 쉽게 다가갈 수 없는 캐릭터로 자멸해가는 모습을 냉담하게 바라보고 싶었다. 좀 전에 말했듯 낯설고 익숙하지 않음에 싫어할 수도 있을 것이고 한편으론 이런 새로움을 선호하는 분도 계실 거다. 또, 송강호 선배의 미친 뽕 맞은 듯한 연기를 즐기는 등 관람 포인트가 다양할 거로 본다.

<내부자들>이 직접 발화를 통해 직선적으로 다가간다면 <마약왕>은 미장센을 비롯해 은유와 상징을 많이 활용해 음미할 여지를 만들었다. 영화의 상징을 읽는다면 흥미로울 지점이 꽤 있다. 자세히 밝히기는 그렇지만 마약왕 ‘이두삼’이 상징하는 것, 그가 만든 마약 이름이 ‘메이드 인 코리아’인 점, 결말의 비릿한 웃음 등등 다양한 해석이 가능하다.

<내부자들>(2015), <마약왕>에 이어 차기작 <남산의 부장들>까지 사회 정치적으로 어두운 이면을 선 굵게 다루고 있다. 뭔가 끌리는 게 있나 보다. (웃음)
맞다. 욕망을 좇는 사람들과 그들의 추락에 끌린다. 사실 <내부자들> 이후 ‘청불’(청소년 관람불가)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었다. ‘청불’로 가면 자극적인 요소가 들어갈 수밖에 없고 이 때문에 마치 감독의 취향이 그런 쪽인 양 공격받고 마음에 스크래치 나기도 한다.(웃음) 또 흥행 면에서 부담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내부자들> 끝낸 후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이야기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저 사진을 보게 됐다. <내부자들>이 성공한 직후였기에, 그 성공을 발판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원하는 방법으로 풀어봤다. 좀 전에 말했듯 일반 상업 영화의 문법을 따라가지 않고 있거든. 다음에는 기회가 없겠다 싶었지.(웃음)

영화 속 촌철살인의 대사가 돋보이더라. 가령 “뽕쟁이 될래, 빨갱이 될래” 등 시대상을 직관적으로 드러낸 대사가 많다. 대사를 쓰는 노하우가 있다면 풀어놔 달라. (웃음) 또, 개인적으로 마음에 드는 대사를 꼽는다면.
평소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 뉴스, 드라마를 들으며 기억에 남는 대사는 적어 놓고 스스로 한 번 흉내 내 본다. 그리고 마치 배우인 양 연습해 보는 데 그렇게 하다 보면 얻어걸리는 대사들이 있다.

음, 이번에 마음에 드는 건… 대사라기보다 후반부 ‘이두삼’이 그의 아내 ‘성숙경’(김소진)에게 전화하는 장면이다. 그 신을 쓰고 나서 이걸 송강호 선배가 어떻게 연기할지 궁금하고 보고 싶었다. 봤다시피 처음엔 울다가 갑자기 돌변하는데 촬영하면서 정말이지 전율을 느꼈었다.

송강호 배우 외에도 조정석, 배두나, 김대명, 조우진, 윤제문 등 많은 배우들이 참여해 그야말로 구멍 없는 연기를 보여주지 않았나 싶다.
김대명의 경우 이전부터 강력한 역할로 해보자고 얘기했던 참이라 ‘이두삼’의 오른팔 격인 사촌 동생에서 약쟁이로 변하는 인물을 맡겼고, 기대 이상으로 잘해줬다. 조우진은 <내부자들>에서 팔을 써는 걸 지시하는 실장이었는데 좀 더 세게 해보자고 해서 마약에 중독된 조직의 두목으로 전신문신을 감행해 봤다. 그에게 특별한 애정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게 <내부자들>을 통해 세상에 얼굴을 알렸는데, 그에 멈춘 게 아니라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으니 감독으로서 자부심과 보람을 느끼게 된다. 처음에는 그의 연기를 모니터링 해주곤 했는데 어느 순간 더 이상 모니터링이 필요 없어졌다.

배두나는 외국어가 능숙한 국제적인 배우로 자기만의 색을 지니고 있어 로비스트에 어울릴 거로 생각했다. 그 결과 화려한 자기만의 로비스트를 구현했다. 개인적으로 차 안에서 ‘이두삼’과 벌이는 싸움 신이 제일 인상적이었는데, 그 장면을 보고 이래서 송강호, 배두나 하는구나 싶었다. 윤제문의 경우 ‘이두삼’과 파트너십을 잘 표현했다고 본다.

<마약왕>의 제작 과정을 총평한다면.
<마약왕>은 내가 불씨를 던지면 영화가 자체로 발화하는 듯한 느낌으로 작업했다. 지금 촬영 중인 <남산의 부장들>의 경우 많은 부분 제어하며 작업하기에 피곤한 부분이 있는데 <마약왕>은 그렇지 않았다. 스스로 타올라 어디로 향할지 모를 상태로 촬영했는데 그 과정이 참 신났다. 물론 불씨를 여기저기 어디로 던질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다.

비슷한 맥락으로 <내부자들>이 내가 전적으로 시나리오를 맡았다면 <마약왕>의 경우 빈틈을 많이 남겨 놔 작가가 채우도록 했다. (잠깐 언급했듯) 10년이라는 세월을 다루기에 여백과 빈틈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대로 가져가 배우가 채우는 방향으로 진행했다. 그렇기에 사건보다는 인물 중심이 됐고, 이에 호불호를 타거나 혹은 사건이 없다고 느낄 수 있다고 본다.

전작이 사랑을 많이 받은 만큼 <마약왕>의 흥행에 대한 기대가 없을 수 없을 거다. 어느 정도인가.
일단 손익분기점만 넘기면 좋겠다. (기자 주 약 400만 명) 그리고 극 중 녹아 있는 여러 코드를 읽어 주셨으면 하는 바람이다.

지금까지 이야기를 종합해 보면 <내부자들>은 직관적이고 상업적, <마약왕>은 상징적이고 탈 장르적이라고 할 수 있다. 차기작인 <남산의 부장들>의 톤은 어떤가. 공개는 언제쯤인지.
음… <남산의 부장들>은 그 중간쯤 어딘가가 아닐까! (웃음) 아마도 2019년 후반기 겨울에 찾아뵐 것 같다.

개인적인 질문인데 감독 ‘우민호’가 지키고 싶은 가치 혹은 타협할 수 없는 가치는 뭘까.
사기 치지 않는 것, 또, 무언가 ‘척’하고 싶지 않다. 세련되면 좋겠지만 표현 방식이 투박하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그 과정이 가짜나 사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질문!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경험 혹은 당신을 웃게 만드는 게 있다면.
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한 마리를 더 키우게 됐다. 아내가 집에 오는데 새끼 고양이가 쫓아와서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문 앞에서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 나가 보니 바로 그 아깽이(새끼 고양이)였다고. 우리 집이 무려 10층이다! 문을 열자마자 다리를 타고 올라와 가슴에 안겼다고 하는데…. 거두기로 했다.(웃음)

말로만 듣던 집사 간택이다! 축하한다. (읏음)
그렇지? 우리 집에 찾아왔으니 잘 키우려고 생각 중이다. (웃음)


2019년 1월 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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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쇼박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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