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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에너지가 찰랑찰랑 <챔피언> 권율
2018년 5월 2일 수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권율, 하면 기자에게 떠오르는 필모그래피는 좀 의외의 작품이다. 데뷔작인 <비스티 보이즈>(2008)도 아니고,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한 <명량>(2014)도 아니다.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낸 <최악의 하루>(2015)나 <잉투기>(2013) 혹은 <박열>(2017)도 아니다. 바로 애니메이션 <달빛궁궐>(2016)이다. 권율은 그 작품에서 주인공을 지키는 호위무사 ‘원’ 역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기자간담회 당일, 으레 그렇듯 적당히 딱딱한 분위기를 유지하는 취재진 앞에서 그는 시키지도 않은 개인기를 펼쳤다. 호위무사의 기합소리가 이렇게 다양한 줄 처음 알았다며 합! 찹! 하는 소리를 입으로 내는데, 그때 처음 느꼈다. 이 배우, 즐거운 에너지와 긍정의 힘이 넘쳐흐르는 사람이라는 걸. 마동석과 함께한 팔씨름 드라마 <챔피언> 인터뷰로 만난 그에게서 다시 한번 기분 좋은 힘을 받는다.

<챔피언>은 팔씨름이라는 흔치 않은 소재를 다룬 작품이다.
팔씨름이라는 스포츠가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자세히 배우게 된 건 처음이다. 단순히 힘겨루기 정도로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텐데 생각보다 훨씬 기술적인 부분을 필요로 하는 스포츠다. 자료 조사를 하다가 본 경기 영상에서는 상대적으로 체구가 작은 팔씨름 여자 선수가 자기보다 덩치 큰 일반인 남자를 이기기도 하더라. 실제 선수를 만나 보니 얼마나 힘들게 훈련하는지 알겠더라. 물론 실제 경기 장면을 촬영한 건 마동석 선배라서, 그가 고생한 부분이 훨씬 많다.(웃음)

당신은 극 중 ‘마크’(마동석)를 팔씨름 세계 챔피언으로 만들려는 에이전트 ‘진기’ 역을 맡았다.
‘진기’는 허세스럽고 돈에 대한 열망도 가득한 캐릭터다. 빈 수레가 요란하다는 말이 어울린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버지와의 관계처럼 숨겨진 사연이 있다. 인물에 대한 설명이 많이 생략됐지만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집안의 몰락 이후 트라우마로 가득 찬 인물이다. 등장인물 중 감정의 진폭이 가장 크고 인물의 성장 과정도 또렷해 두말할 나위 없이 마음에 들었다.

어쩐 일인지 ‘진기’는 불법 스폰서를 찾아 헤맨다.
팔씨름 선수 중 정식적인 후원을 받는 건 랭킹이 높은 몇 명에 불과하다. 프로팀이나 실업팀이 있을 정도로 규모가 큰 스포츠도 아니라 선수들이 월급을 받을 수도 없다. 대부분 투잡을 뛰어야 한다. 극 중에서 ‘진기’가 불법 스폰서라도 찾아내려는 것도 그런 현실을 반영한 거다. 물론 그 돈으로 자기 생활도 좀 유지해보려는 꼼수가 있긴 하지만.(웃음)

허세가 가득해 왕왕 찌질해 보이기도 한다.(웃음) 한예리와 함께한 <최악의 하루>에서도 그런 찌질한 매력을 보여준 거로 기억한다.
안 그래도 김용완 감독님이 <최악의 하루>를 잘 봤다고 하시더라.(웃음)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조금은 있을 것이다. 그걸 분출하거나, 반대로 절제해가면서 하나의 캐릭터를 만들어가는 것 같다.

실제 성격은 흥이 많은 것 같다. 애니메이션 <달빛궁궐>에서 무사 역으로 목소리 출연했을 당시 기자회견에서 인상적인 기억이 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목소리 연기할 때 냈던 다양한 기합 소리를 들려주더라. 합! 찹! 하면서.(웃음)
기자간담회나 제작보고회에서는 좀 더 붙임성 있게 보이려고 한다. 우리 영화를 좋게 봐줬으면 하는 바람이 크기 때문이다. 본래 성격도 장난치기를 좋아하는 편이다. 그런 게 드러나는 것 같다. 중학생 때도 나서기 좋아하고 설치는 캐릭터였다. 수학여행 가면 꼭 공연을 하는…(웃음)

어린 시절부터 배우를 꿈꿨는지.
자아가 생긴 뒤로는 쭉 그랬다. 그런데 부모님에게 배우가 하고 싶다고 말씀드리면 뜬구름 잡는 소리 한다고 하실 것 같아 일단 신방과를 가겠다고 했다. 피디 겸 배우가 되겠다고.(웃음)

피디와 배우, 완전히 다른 역할이다.(웃음)
업계 시스템을 전혀 모를 때였기 때문에 가능했던 생각이다.(웃음) 대학에 진학 후에는 내 성격을 장점으로 활용하면서도 일에서 만큼은 좀 더 진지한 마음으로 접근하려고 했다.

이야기를 듣다 보니 <챔피언>에서 맡은 이번 캐릭터와 성격이 꽤 잘 맞는 듯하다.
나도 그래서 잘 연기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연기는 하나의 캐릭터를 만드는 과정이라 내 본연의 모습과 다르게 보여줘야 할 부분이 분명히 있다. 코미디 연기도 어렵고… 좀 더 맛깔스럽게 살릴 수 있던 장면도 있는 것 같은데 아쉬운 게 많다. 마동석 선배가 워낙 코미디에 일가견 있고 내공도 풍부한 분이니 “형 이건 어때요” 하면서 꼬치꼬치 묻기도 많이 물었다. 늘 내 생각대로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지만, 그래도 한 번만 봐달라면서 귀찮게 해드렸다. 그 노력을 예쁘게 봐주셔서 다행이다.

그래도 이거 하나는 잘 했다 싶은 지점도 있을 텐데.
잘 했다기보다는… 동석이 형이 팔씨름 경기를 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는 정말 진심으로 응원했다. 지금 다시 돌아간다면 그 감정을 또 느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연기지만 가슴이 떨리고 찡하더라.

마동석의 팔씨름 실력은 실제 선수급이던가.(웃음)
전설처럼 들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김지운 감독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2008) 촬영장에서 배우, 무술팀 스태프, 우락부락한 중국 보조출연자까지 100여 명 정도의 남자끼리 팔씨름 대회를 열었는데 마동석 선배가 우승했다고 한다.(웃음) 어릴 때부터 운동을 하셔서 그런지 힘의 원천이 남들과 다른 것 같은 느낌이다.

<비스티 보이즈>로 영화 데뷔했고 국내 최고 흥행 기록을 보유한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의 아들 역으로 출연했다. 앞서 언급한 <최악의 하루>는 물론 <잉투기> <박열>처럼 평단의 호평을 받은 작품에도 함께했다.
하나하나 전부 소중한 작품이다. <명량>은 내게 큰 자신감을 준 작품이다. 가장 많은 대중이 봐준 작품이기도 하지만, 일을 하고 싶어도 의지대로 할 수 없는 상황에서 얻은 기회라 감사한 마음이 컸다. <명량> 출연 전에는 오디션을 보거나 감독을 만났을 때 나에 대해 많은 설명을 해야 했다면 이제는 <명량>의 이순신 장군 아들이라고 설명하면 어느 정도 알아봐 주시는 정도가 됐다.

작품을 선택하는 기준은.
작품 완성도나 캐릭터의 매력이 중요하다. 나에게 큰 의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을 주로 선택하려고 한다. <명량>은 전시 상황을 조망하고 아버지 마음을 이해하려는 ‘이회’ 캐릭터의 느낌이 좋았다. <잉투기>는 늘 우리 주변에 있을 것 같은 평범한 삶의 애환을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점이 재미있었다. <최악의 하루>는 내가 좋아하는 우디 앨런 영화처럼, 하루 동안 벌어지는 일을 그려낸 톤이 참 좋았다.

데뷔한 지 10년이 됐다. 연기하면서 여전히 어려운 점이 있다면.
과거 작품을 다시 볼 때, 특히 악역 연기를 돌이켜 볼 때 많은 생각이 든다. 드라마 <귓속말>(2017)을 마치고 나서 그랬다. 당시에는 그저 몰아치는 연기만 했는데 오히려 버릴 표현은 좀 버리고 딱 한 번만 소리치는 게 더 무섭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말하자면 패전투수가 되지 않기 위해 150km의 날카로운 직구만 던지려고 한 거다. 사실은 90km의 커브 하나만 잘 던져도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주변에서 좋은 조언을 해주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가족이나, 동종업계 선배들이라든지…
감독, 선배, 소속사 대표, 함께하는 스태프까지 정말 감사할 정도로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그걸 내가 잘 이해하지 못한 거다. 어떨 때는 ‘난 지금 최선을 다 하고 있는데 왜 그러지?’ 싶은 마음을 품은 적도 있다. 시간이 지나고 나중에야 그들 얘기가 무슨 뜻이었는지 알겠더라. 나는 100을 표현하려면 1부터 100을 보여주는 방법만 있다고 생각했다. -50부터 50까지 표현하는 것도 또 하나의 방법이라는 걸 몰랐다. 나를 덜 보여주는 연기를 조금 두려워했던 것 같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은가.
돈 내고 콘텐츠를 소비하는 대중 입장에서 봤을 때 부족하게 느껴지지 않는 작품을 하고 싶다. 그들에게 위로가 되고 희열을 주는 게 배우로서 내 의무이자 책임이라고 생각한다. 맡은 캐릭터에 잘 스며들고 싶다.

최근 재미있게 본 영화가 있다면.
<쓰리 빌보드>가 기억에 남는다.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전부 응원하게 되는 작품이다.

등장인물 중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있다면.
화상 입은 경찰관 캐릭터가 가장 욕심난다. 어울릴 지는 모르겠지만.(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요즘 예능 <고등래퍼2>를 재미있게 본다. (김)하온이가 그러더라. 행복은 찾는 게 아니라 그냥 주변에 있는 거라고.(웃음) 그게 맞는 말이라고 본다. 행복을 마치 특별한 것처럼 생각하고 찾으려 들면 나에겐 왜 행복이 없지? 싶은 마음 때문에 끝없이 불행해진다. 하지만 행복이 그냥 옆을 둘러봤을 때 있는 거라고 생각한다면, 정말 많다. 요즘에는 아침에 일어나서 운동을 하고, 내가 좋아하는 NBA 플레이 오프를 보고, 오후에는 챔피언스리그 4강을 볼 수 있어 좋다. 오늘은 사무실까지 한번 걸어서 가보자든지, 옆 동네 떡볶이가 맛있다던데 한 번 먹어봐야지 싶을 때도 행복하다.(웃음)

2018년 5월 2일 수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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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워너브러더스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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