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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정도, 체력도, 암기력도 짱짱 <덕구> 이순재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연기 경력 62년, 긴 시간이라고 막연하게 생각될 뿐 그리 실감 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순재가 정치의 길로 잠시 외도 후 연기로 행복하게 복귀한 때가 그의 나이 거의 예순이었다. 이후 <허준>(1999)의 학문적·정신적 스승인 ‘유의태’로 심금을 울리고, 시트콤 <거침없이 하이킥>(2006)의 ‘야동 순재’로 웃음을 전달하고, 예능 ‘꽃보다 할배’(2013)의 ‘꽃할배’로 친근하게 우리 곁을 지켰다. 이번 그의 선택은 ‘덕구할배’다. 시골에 사는 가난하고 병들었지만, 손주 사랑만은 극진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만나봄 직한 인물이다. 주로 재벌 회장님이었던 그간의 캐릭터와는 확연하게 다르기에 좋았고, 사람 중심 이야기이기에 기꺼이 대가 없이 <덕구>에 참여했다. 무엇보다 좋았던 건 “내가 주인공이잖아? 얼마나 신나는 일이야!”라고 말씀하시는 순재 선생님. 열정도, 체력도, 암기력도 젊은이 뺨치게 짱짱하시다.

요즘 바쁘시죠?
주연 배우 중 어른이 나밖에 없으니 <덕구> 홍보에 바쁘지. 꼬맹이 ‘덕구’(정지훈)와 ‘덕희’(박지윤)가 홍보에 나설 수도 없으니 말이야. (웃음)

얼마 전 인터뷰에서 하신 센 발언이 화제가 됐는데요.
그게 참, 예전과 달리 요즘은 무슨 말 하면 바로 기사화되는데 그 모습을 보고 매체 환경이 많이 변했다고 느꼈어. 또, 얘기한 것 중 일부만 기사화되니 내가 언급한 당사자 (배용준, 송중기)가 오해할 수도 있겠더군. 그냥 그(배용준)가 연기를 안 하는 아쉬움에서 한 말인데 말이지.

기사 클릭수를 늘려야 하니 일부러 자극적으로 제목을 뽑고, 논란이 될 부분만 기사화하는 등 개선해야 할 문제라고 봅니다. <덕구> 촬영하면서 영화에서는 마지막 주연이 될 거라고 하셨는데요.
솔직히 드라마와 영화에서 누가 또 (나를) 주인공 시켜주겠나. 얼마 전 공연했던 치매를 소재로 한 연극을 비롯해서 1년에 한두 편씩 꾸준히 연극을 하고 있어. 연극은 그래도 드라마나 영화에 비하면 나 같은 늙은이가 설 자리가 있고 관객의 반응도 나름 괜찮은 편이야. 하지만 영화나 드라마는 환경이 다르다 보니 늙은이가 주연할 기회가 많지 않아. 아직 연기에 대한 욕구는 있는데 수요가 없으니 그렇게 얘기한 거지.

이번 <덕구>를 아무 대가 없이, 노개런티로 출연하셨어요. 어떤 점에 끌리셨나요.
일단 내가 주인공이잖아. 얼마나 멋진 일이야! 무엇보다 시나리오가 매력 있더라고. 진솔하고 억지가 없었어. 평소 생활하는 것처럼 연기하면 되겠다 싶었지. 사실 방수인 감독이 그렇게 젊은, 미혼 여성인 것도 몰랐었어. 방 감독이 시나리오도 직접 썼는데, 작가로도 참 재능있는 거 같아.


작년에 나문희 배우가 <아이 캔 스피크>로 청룡상 여우주연상을 받으셨는데, 동료 배우로서 아주 반가우셨을 듯합니다.
그럼, 꼭 상을 타서가 아니라 여러 면에서 고무적인 거지. 늙은이에게도 기회가 오면 대충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는 격려라고 할까. 늙으면 용돈이나 벌려고 혹은 그냥 시켜주니 타성에 젖어서 연기하는 경우도 꽤 있거든. 물론 나문희를 비롯해 남다른 열정을 지닌 배우들도 많지만 말이야.

이번엔 선생님께서 <덕구>로.... 어떨까요?
누가 대종상 타는 거 아니냐고 바람 잡는데, 나는 워낙에 그간 상하고 거리가 멀었었어. 지금까지 영화를 100여 편 찍었는데도 인연이 없었으니. 예전에 내가 조연상을 타는 게 유력시된 적이 있었는데 글쎄, 주연이 내려와 타 가더라고. 그래서 당시 선배한테 따졌지! “아, 주연이 조연상 타 가면 어쩌냐고” 그랬더니 씩 웃더군.

오, 그런 슬픈(?) 사연이 있었군요! 주연인데 조연상을 타 간 선배가 누군지요?
최무룡 선배. 참 내가 좋아했던 선배야. 목소리가 좋고 연기도 기가 막혔지. 배우로서 가장 좋아하고 존경했고 개인적으로도 아주 친했었어.

62년간 연기하다 보면 주연에서 조연으로 역할의 변화가 있을 수밖에 없는데요, 그 부침의 시간을 어떻게 다스리셨나요.
어떤 사회조직에 속하든 부침이란 당연한 거지. 정점을 찍는다는 건 더는 올라갈 데가 없다는 거잖아. 그러니 이후엔 내려와야지. 한데 배우는 그런 면에서 좀 자유로워. 역할의 변화가 꼭 후배한테 밀려서라고 볼 수 없거든. 또, 나이 먹을수록 연기의 폭이 넓어지잖아.

긴 연기 생활을 돌아볼 때, 기억에 남는 작품 혹은 내 인생의 황금기를 꼽는다면요.
뭐, 어느 한순간을 딱 꼽기는 힘들지. 영화든 드라마든 내가 열심히 해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잘 된 작품이 성취감도 느끼고 기억에 남아. 지금 떠오르는 건 <풍운>(1982)의 흥선대원군, <허준>(1999)의 ‘유의태’, <이산>(2007)의 영조 등이야.

같은 인물도 작품에 따라 긍정적으로 혹은 부정적으로 여러 측면에서 조명되곤 하잖아. 병풍 같은 조연이면 어쩔 수 없이 평면적으로 연기할 수밖에 없지만, 위의 작품들은 내가 주연이라 다각적인 모습을 보일 수 있었거든. 특히 <이산>의 경우 처음 30회 정도는 내가 끌고 가야 했어. 영조에 관해 조사해 보니 상당히 복잡한 양반이더라고. 출신 콤플렉스에 비정한 아버지 그러면서도 학문적으로 성취가 높았어. 그의 복잡 다양한 면모를 다 녹아내 보자 했지. 그 인물이 지닌 다양성을 표현하는 것이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어. <풍원>의 흥선대원군도 아주 드라마틱했지. 당시 흥선대원군을 연기한 배우들이 대부분 체격이 좋았거든. 하지만 실제 흥선대원군은 5척 단신에 아주 비쩍 말랐던 분이란 말이지. 고증을 통해 잘 표현해서 아주 만족스러웠던 기억이 나.



62년 연기 인생에서 정치의 길로 잠시 외도를 하셨었어요.(기자 주: 이순재는 1988년 13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정당 후보로 출마하여 근소한 표 차이로 낙선, 그 후 1992년 14대 국회의원 선거에 민자당 후보로 중량갑에 출마하여 당선됨)
그게 사연이 길어. 신군부가 들어섰던 11대 국회로 거슬러 올라가. 당시 연기자협회 회장이 이낙훈이었거든. 비례대표로 제안이 왔는데 굉장히 획기적이었던 거지. 누가 딴따라를 국회의원을 시켜줘, 직능 대표로는 최초였어. 그 친구가(이낙훈) 문화 예술계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많다고, 도와줄 테니 열심히 대변해보자고 하면서 당에 들어갈 것을 권유했어. 그렇게 정치에 입문했어. 후에 국회의원 선거에 나가야 되는데 내가 평소 봐둔 곳 없다 하니 당에 좀 찍혔던 거 같아. 그래서인지 최고로 취약한 지역인 중량갑에 나가라고 하더군. 당시 이상수랑 붙었는데 700표 차이로 졌지. 후에 당에 다음 선거 때는 (중량갑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지역이 아니니 꼭 돈 있는 사람, 그리고 현역을 내보내라고 주문했었어. 왜냐하면, 지역에 할 일이 많았거든. 근데 3당 합당하고 나갈 만한 사람이 마땅하지 않았던 모양이야. 나보고 한 번 더 나가 보라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그랬지, 그간 관리는 정말 열심히 했지만 난 돈은 없다고. 결국, 3800표 차이로 당선되고 이후 4년 동안 동네를 샅샅이 다니며 일을 했어. 재래시장 가서 인사하잖아? 딱 보면 누구 편인지 알아.

어떻게요?
훗, 고등어 자르다가 바로 손 내밀 면 다른 편이야. 장갑 벗어서 악수하면 내 편이고. 당시 하천 사업, 도로 사업 등등 정말 열심히 했어. 나중에 한번 더하라고 하더군. 그래서 ‘이제 난 60살이다, 빨리 내 자리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지. 정치하면서 한 번도 행복한 적 없다고 말이야.

돌아오니 행복하셨어요?
당연하지. 연기는 고통이 없어. 정치는 지역 관리해야 하고 표를 호소해야 하잖아. 그리고 일을 열심히 하려면 가족을 희생해야 해. 또, 정치인에게 주는 뭐 하나도 공짜가 아니야. 공짜인 돈은 없어. 내가 자부하는 게 국회의원으로 일하면서 청렴하단 소리는 들었어. 판공비를 단 100원도 안 받았었어. 지역에 봉사하려면 네 돈으로 해라 그랬지. 이후 대학적십자사 친선대사, 국민연금공단 홍보대사 등등 할 수 있는 건 나름 열심히 했어.


이후 돌아오셔서 연기 외에 시트콤, 예능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하셨어요. <거침 없이 하이킥>의 ‘야동 순재’로 예능 대상까지 받으셨는데요.
아까 말했 듯 내가 경력에 비해 진짜 받은 상이 없어. 연극에서는 공동 수상이 한 번 있었을 뿐이고, TBC 시절에는 대상을 타긴 탔었군. 80년대 이후엔 준다 준다 하더니 공로상 주더라고. ‘대발이 아빠’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 ‘흥선대원군’ 으로도 대상을 못 타봤는데 시트콤으로 처음 대상을 탔다니까! 당시 ‘무한도전’에 주지 왜 나한테 주느냐고 물었더니 동시 수상이라고 하더군. 시추에이션 코미디(시트콤)는 드라마의 연장이라고 봐. 코미디는 페이소스를 줘야 해. 그건 곧 연민을 일으켜야 한다는 거야. 진정한 코미디는 얼굴은 웃으면서 동시에 콧날은 시큰해야 한다는 말이 있어. 품격있는 코미디란 그런 거지. <거침 없이 하이킥>은 그런 부분이 상당히 잘 표현됐던 거 같아.

예능 ‘꽃보다 할배’에서는 동물들을 아주 예뻐하시고 특히, 새들과 친하셨어요. 그리고 정말 지치지 않고 잘 걸으시던걸요?
가만히 숙소에만 있을 거면 왜 가겠어. 할 수 있는 한 많은 걸 봐야지. 유럽 여행지에 호수가 있었는데 백조를 비롯한 새라는 새는 다 모여 있었어. 빵 조각 하나 주면 그 새들이 다 내 주위로 모이는 거야. 재미있는 게 그중 제일 빨리 오는 게 참새더군. 나중에는 어미 새가 새끼 새를 데리고 다시 오던걸. 내가 자연과 친화력이 좋은 편이야. 하나의 생명이기에 관심이 가거든. 대만에 갔을 때는 큰 개가 있는데 이 놈은 먹을 걸 줘도 본체만체 하더라고. 그래서 무례한 놈이라고 우리끼리 웃었던 기억이 나.

‘꽃할배’에 다시 도전하실 의향은요. 만약 간다면 어디가 좋을까요.
기회가 되면 하고 싶어. 그런데 박근형과 신구 등 친구들과 일정이 맞아야지. 만일 간다면 이번엔 동유럽에 갔으면 해. 헝가리나 체코 루마니아 등등 문화 예술적으로 유서 깊은 곳이거든.

평소 체력 관리는 어떻게 하는지요.
규칙적으로 운동할 여건은 안되기에 늦게 배운 골프를 시간 맞으면 가끔 치곤 해. 먹는 거야 뭐 주는 대로 먹는 편이고, 안 가려. (웃음) 저번에도 얘기한 거 같은데 어머니가 장수하셨었어. 모계 체질을 이어받은 거 같고, 금연과 금주가 도움 됐겠지. 그런데 무엇보다도 할 일, 즉 주어진 과제가 있으니까 건강을 유지하는 거 같아. 일하는 게 재미있거든. 일만 하면 의욕이 솟구쳐.

차려 주는 대로 드신다니....참으로 바람직(?)하십니다!(웃음) 애처가이신가 봐요. 가정생활은 어떠셨나요.
일반 직장인은 가족 중심이지만 아무래도 우린 그런 직종이 아니잖아. 신혼 초에는 한 달에 열흘쯤 집에 들어갔던 거 같아. 그 정도로 뛰어야 경제적으로 유지됐었어. 우리 아이들이 아버지와 함께했던 기억이 없다고, 지금도 가끔 불평하곤 해. 당시엔 촬영 잡히면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 했으니 말 다 했지. 그렇게 버텨서 지금이 있는 거야. 우리 때는 경제적으로 궁핍하던 시절이라 아내들이 다 고생 많이 했어. 나도 TV 방송 시작하고 영화 찍으면서, 그러니까 연기 시작한 지 10여 년만에 처음 25평 집을 마련했었어. 아내가 돈 벌어 보겠다고 잠깐 만둣가게를 했던 적도 있어.

체력도 체력이지만 그 많은 대사는 어떻게 다 외우시나요. 대단하십니다.
대사 외우는 건 배우에게 가장 중요한 거야. 배우는 암기력이 떨어지면 끝이야. 드라마 촬영하다 매번 틀리면 후배들한테도 미안하고 체면이 안 서지. 영화야 뭐 하루 몇 장면밖에 촬영하지 않으니까 크게 부담이 되지 않아.

암기력을 높이는 특별한 비법이 있으신가요.
연극을 하는 게 도움이 많이 돼. 스스로 테스트하기도 하고, 평상시 재미 삼아 암기 연습도 하지. 예를 들면 미국 역대 대통령 보면서 이름이랑 업적이랑 외워보기도 하고. 아주 재미있어.


흔히 마음은 청춘이라고 하는데요, 앞으로의 바람이나 목표가 있다면요.
바란다고 되진 않겠지만, 내 나름으론 아직 암기력과 체력 등 연기할 여력이 남아있거든. 할 수 있는 데까지 기회가 왔으면 싶지. 배우라는 건 백지상태에서 새로운 색을 칠해야 하는데 연기하다 보면 내 고유의 색이 묻어 나올 수밖에 없어. 매너리즘에 빠지기도 하지. 그러지 않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계속하고 싶은 거야. 그런 면에서 <덕구>가 반가운 작품이었어.

<덕구>가 반가운 이유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하신다면요.
근래 안 했던 캐릭터였어. 농촌에 사는 정말 가진 것 없는데다 병약한 영감이잖아. 꾸밈없이 한번 제대로 해보고 싶더군.

<덕구> 메인 포스터는 보고만 있어도 참 눈물 짠한데요. 당시 촬영할 때 어떠셨어요.
그 장면이 덕구를 떠나 보내는 장면이잖아. 애는 펑펑 우는데 나는 꾹 참는단 말이지. 그냥 내 모습 그대로라고 보면 돼. 특히 이날은 분장도 거의 안 했었어. 화장품 아끼려고 그랬는지 잘 안 해주더라고. (웃음) 머리카락 엉성한 것도 평소 우리 마누라가 보기 싫다고 질색하곤 하는 내 머리 그대로야.

촬영하면서 실제 손주들의 어릴 때 생각도 많이 났을 것 같아요.
그렇지, 외손주들이 벌써 고등학생과 대학생이 됐어. <덕구>보고 우리 딸이 많이 울었다더군. 내가 지금 손주들 뒷바라지하고 있거든.(웃음) 그래서 열심히 돈 벌어야 해.


후배연기자에게 조언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선천적 끼도 중요하지만, 연기는 대부분 노력으로 완성되거든. 아역 출신이 성인 연기자로 성공하기 어려운 것도 그 때문이야. 배우로서 대성하는 데 필요한 건 오로지 노력이야. 물론 그 전에 자기 분석과 자기 확신이 필요해. 예를 들면 예전에 선천적 울렁증이 있었던 후배가 있었어. 아래 기수들이 치고 올라오니 결국 관두고 다른 길을 갔는데, 새롭게 시작한 일이 정말 잘 됐어. 적성이 따로 있었던 거지.

최근 행복했던 일이 있다면요.
드라마 <돈꽃>이 좋은 평가를 받고, 시청률도 잘 나와서 아주 기뻤어. 그리고 요즘 <덕구>에 관심을 기울여줘서 고마워. 사회 고발적인 영화도 필요하지만 사람 중심, 가족 중심인 이야기가 많아지고, 저예산 영화부터 블록버스터까지 한국 영화가 다양해지면 좋겠어. 그러면 그만큼 관객의 선택 폭도 넓어지겠지. 그런 면에서 <덕구>가 잘 됐으면 해.


2018년 4월 10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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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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