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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을 찾고 싶다” <브이아이피> 이종석
2017년 8월 25일 금요일 | 김수진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김수진 기자]
”평범한 일상을 찾고 있는 중이다”

서른을 앞둔 배우 이종석이 브라운관과 스크린을 오가며 쉼 없이 달려온 8년의 연기 인생을 돌아보며 한 말이다. 그는 친구들과 수영장에 놀러 가고, 스쿠터로 가평까지 달려보고, 가로수길 카페에서 커피를 마신 순간들이 너무나 행복했다고 말한다. 이 같은 인간 이종석의 변화는 배우 이종석의 변화와 맞물린다. 그가 <브이아이피> 속에서 맡은 ‘광일’은 북한 고위층 자제로 여성 대상 연쇄범죄를 해맑게 일삼는 희대의 살인마다. 배우 인생 최초로 악역에 도전한 것이다. 변화의 계기가 무엇인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본인이 먼저 ‘광일’ 역할에 욕심을 냈다고 들었다.
대본을 보고 먼저 찾아간 건 이번 영화가 처음이다. ‘광일’은 사이코패스에 살인마다. 남자배우라면 누구나 하고 싶은 역할이지 않을까 싶다. 평소 남성 영화에 대한 동경이 컸었다. 그러나 기회가 있어도 캐릭터에 나의 이미지를 대입하면 어울리지 않아 주저하게 됐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 속 ‘광일’은 달랐다. 어울릴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악역을 처음으로 맡았다.
악역계에서 주목 받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갈망으로 인한 선택이지 않을까 싶다. 이종석은 ‘연기 욕심 있는 배우’라는 생각을 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그런데 그동안 악역을 맡지 않았던 이유는, 시기상조라는 생각이 컸었기 때문이다.
연기 변신에 대한 욕망이 커졌다고 해석해도 될까.
사실 그동안 맡아 온 캐릭터를 하나하나 따지면 모두 달랐다. 그러나 보는 시각에 따라서 비슷한 캐릭터만 맡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더라. 이번 영화에서 유독 파격적인 역할을 맡았다고 느낄 수도 있는 노릇이다. 난 이런 모습, 저런 모습 모두 보여주고 싶었다. ‘광일’은 악역인데다가 사투리를 구사하는 역할이라서 더 드라마틱하게 보일 것 같았다. 전작과 대비해보면 확실하게 캐릭터의 색깔이 강하니 더 도전해보고 싶더라.

사이코패스 캐릭터의 종류도 다양한데 어떤 식으로 연구했나.
관객 입장에서 생각했다. 살인을 통해 쾌감이나 희열을 느끼는 모습보다는 아이같이 해맑은 모습을 보여준다면 한층 새롭게 보이지 않을까 싶더라. 그래서 내 하얀 피부를 부각시키기도 했고 말이다.

살해 장면이 생각보다 잔인했다.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힘들었을 것 같은데.
어려웠다. 심지어 첫 촬영이 그 신이었다. 긴장을 많이 했던 터라 피를 보니 정말 정신이 이상해 지더라. 속도 안 좋아지고 머리가 띵해서 찍고 나서 한동안 멍하니 있었다. 그 장면은 ‘광일’이라는 캐릭터를 설명하는 데 있어서 빠져서는 안 되는 장면이다. 초반에 배치해 관객들이 ‘광일’에게 충분히 분노의 감정을 가질 수 있도록 의도했다. 그 신을 찍고 김명민 선배님에게 감상을 물어 본 적이 있다. 내가 ‘너무 약해 보이지 않았냐’고 물으니 ‘괜찮았다’고 말씀해주셔서 나름 안도했던 기억이 난다.

앞서 피부 표현 이야기도 했는데 극중 외모적으로 변화를 준 부분이 또 있다면.
감독님이 헤어 펌을 하면 좋을 것 같다고 해서 했었다. 다른 작품에서는 피부 톤이 너무 밝아서 한톤 어둡게 메이크업을 하는 편이었는데, 이번 영화에서는 내 피부색 있는 그대로 살렸다. 또 의상의 경우 거의 단벌로 나왔는데, 마지막 신 의상만 특별히 신경 썼었다.
장동건, 김명민, 박희순 등 선배들의 조언도 많이 들었겠다.
이번 작품을 통해 좋은 선배님들과 인연을 맺게 돼 너무나 감사했다. 선배님들에게 질문을 하면 언제나 최선을 다해서 구체적으로 알려주시곤 했다. 신기하게도 모든 선배님들이 헌신적으로 도와주셔서 큰 도움이 됐다.

가장 막내라서 부담스럽진 않았는지.
김명민, 장동건 선배님의 역할이 워낙 컸었기에 내가 맡은 ‘광일’은 일종의 장치라고만 생각했다. 또 평소 역할의 크기를 따지지 않는 편이라서 큰 역할은 아니지만 참여하자 마음 먹었는데, 이상하게 작업이 진행될수록 비중이 커지는 것 같아 놀랐다. 좋은 선배님들과 함께 작업하는 것 자체는 부담스럽지 않다. 선배님들과 작업할 기회를 항상 기다려왔기에 오히려 영광스럽다. 연기뿐만 아니라 인생 전반에 대해 배울 기회가 많기 때문이다.

장동건에게 얼굴을 밟히는 신을 찍을 때 벌어진 특별한 에피소드는 없었는지.
내가 선배님에게 더 세게 밟아 달라고 했던 기억이 난다. 그래야 기괴한 소리가 자연스럽게 새어나오니까. 김명민 선배님에게 목을 졸리는 신에서도 선배님의 손을 직접 잡고 스스로 더 졸랐다. 그래야 캐릭터와 상황에 이입할 수 있겠더라.

선배들이 미안해 하진 않았는지.
장동건 선배님의 경우에는 본인이 더 아파했다. 처음 만나자마자 찍었던 신이라서 더욱 그랬다. 그 마음에 감동했다. 정말이지 사람 자체가 멋있는 분인 것 같다. 입덕할 정도다.(웃음) 김명민 선배님의 경우는 감독님이 초반에 겁을 주셨다. 장동건과는 다를 거라고. 그런데 예상외로 김명민 선배님과는 연기 호흡이 너무나 좋았다.

본인은 후배들에게 어떤 선배인지 궁금하다.
신재하라는 친구가 있다. 드라마에 함께 출연한 친구다. 요즘에는 그 친구와 자주 교류를 한다. 연기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다. 나도 어느 정도 연기 경력이 쌓였기에 할 수 있는 말들이 꽤 생기더라. 새로웠다. 정해인이라는 배우와도 사는 이야기 등등 많은 대화를 나눈다. 이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내가 그동안 평범하게 사는 법을 잊고 지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쉼 없이 작품 활동을 해오면서 평범한 경험들을 놓치며 살았던 게 후회되더라.
예를 들면 어떤 경험을 말하는 건가.
친구들과 가는 여행 같은 것 말이다. 여행을 제대로 가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스케줄 때문에 겸사겸사 갔을 뿐이지. 일 때문에 가서 하루 이틀 쉬는 건, 당최 쉬는 것 같지 않다. 또 스쿠터도 재작년에 샀었는데, 구입해놓고 기회가 없어 타지도 못했다. 최근에야 스쿠터를 타고 가평에 다녀왔다.

변한 이유가 있다면.
어느 순간부터 연기를 잘하고 싶다는 욕심이 점점 커지니까 괴로워지더라. 연기가 나의 삶 자체가 되어 버린 느낌이 들기 시작한 거다. 그동안 하루 24시간 중 촬영하는 시간이 대부분이었고, 생일도 촬영장에서 맞이하곤 했다. 그게 아니면 보통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연기에만 매달려 있는 지금, 과연 내가 배우가 되지 않았다면 어떻게 살고 있을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이 바로 평범한 일상을 지내보자는 것이었다. 며칠 전에도 가로수길 카페에 가서 커피를 마셔보기도 했다. 정말 너무 좋더라.(웃음)

극장에 영화도 보러 다니고 그러나.
얼마 전에 극장 가서 <택시운전사>도 봤다.(웃음)

그러고 보니 <관상>(2013)에서 송강호와 호흡을 맞췄다.
송강호 선배님 자체가 배우들의 바이블이나 다름없다. <관상> 때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때는 내가 지금보다 더 어리고 신인이었던 터라 선배님이 아버지 역할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쉽게 다가가지 못했다. 그렇지만 항상 감사한 마음은 있었다. 드라마 <닥터 이방인> 할 때 잠시 슬럼프가 왔었는데 7,8회 촬영을 이어나갈 때쯤 송강호 선배님이 간만에 문자를 보내셨다. ‘드라마 잘 보고 있다. 그래 그렇게 해나가는 거야. 연기 아주 좋아, 잘하고 있어’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아직도 잊혀지지가 않는다. <관상> 촬영이 끝나고 시간이 꽤 흘러서 기억도 못하실 줄 알았는데 챙겨주셔서 너무나 큰 감동이었다.
<닥터 이방인> 때 슬럼프가 왔었는지 몰랐다.
연기 경력이 벌써 8년이나 됐다. 직장인들도 3년에 한 번씩 슬럼프가 온다는 말을 들었다. 배우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그래서 선배님들과 작업을 하면 더욱더 좋다. 왜냐하면 선배님들은 이미 그런 시기를 지나왔으니까 조언을 해줄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저 요즘 이런 것 때문에 힘듭니다’ 라고 이야기를 하면, 비록 본인의 상황과 다르더라도 이전에 겪었던 것들을 떠올리며 하나같이 좋은 이야기를 해주신다.

구체적으로 어떤 딜레마에 빠졌나.
<닥터 이방인>을 촬영하는 중간에 문득 인지된 부분이 있었다. 예를 들어 내가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성향과 극중 캐릭터의 방향성이 상충할 때 괴로웠다. 심하게는 무섭고 두렵기도 했다. 연기가 참 쉽지 않은 거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때문에 재작년에 공백기를 가지기도 했는데, 그러다 해결책으로 찾은 게 바로 <브이아이피> ‘광일’ 역이었다. 나와 미묘하게 다른 캐릭터 말고 오히려 180도 다른 캐릭터에 도전 해보면 어떨까 싶더라. 일반적인 캐릭터처럼 특별한 전사가 있는 인물도 아니고, 공감할 필요도 전혀 없는 사이코패스 캐릭터라서 더 마음이 움직였다.

<브이아이피>에서 함께 연기한 선배들이 그런 부분에 있어서 도움을 주기도 했는지.
일단 나 스스로가 적극적으로 배우려고 했다. 물론 <관상> 때도 배우고자 하는 의지는 상당했지만, 당시는 신인이라서 선배님들이 같은 공간에 있어도 나와는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들처럼 느껴졌다. 그때는 어깨너머로 배웠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선배님들을 보고 배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서 좋았다.

결과적으로 이번 작업을 마치고 연기지론이 바뀌었을 것도 같은데.
평소 연기를 하면서 가졌던 편견들을 이번 영화를 통해 깰 수 있었다. 특정한 지문을 두고 그간 비슷하게 표현해왔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려고 노력했다.
‘광일’을 연기하면서 가장 힘들었던 부분은 무엇이고, 어떻게 이겨냈는지.
캐릭터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박훈정 감독님은 '척'하는 걸 싫어하고 완벽한 걸 추구하셔서 더 많은 연구가 뒤따라야 했다. 감독님이 츤데레 스타일이라 칭찬도 잘 해주시지 않았다.(웃음) 또 모니터를 못하게 해서 따로 캠코더를 들고 다니면서 내 연기를 확인해야 할 정도였다. 그럼에도 영화를 보기 전까지 어떻게 비춰질지 몰라서 무척 불안했다. 연출적인 부분에 대한 걱정이 아니라 내 연기가 이상하면 어쩌지 라는 생각에 두려움이 밀려오더라. 그런데 지난 언론시사회에서 결과물을 확인하니 속이 후련해졌다. 잘 나왔더라.

박훈정 감독의 디렉션 중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광일’은 주변 인물들을 모두 자신의 발 밑에 있는 존재로 여긴다. 오로지 자신과 동등한 입장에 있는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대사도 짧고 대부분 미소만 지을 뿐이다. 감독님이 <아메리칸 사이코>(2000)와 <세븐>(2016)을 참고하라고 해서 영화를 보며 캐릭터에 대한 감을 잡았다.

대사가 적고 또 북한 사투리도 써야 해서 더 까다로웠을 듯싶은데.
그래서 표현하기 어려웠다. 공기 반 소리 반 속에서 대사를 뱉었다. 북한 사투리는 전작에서 두 번이나 도전한 적이 있어서 나름 자신 있었다. 그래서 대본 리딩 때도 자신 있게 연기를 펼쳤다. 그런데 감독님이 ‘광일’은 해외에서 오래 산 인물이니, 서울말도 북한말도 아닌 애매한 말투를 써야 한다고 말씀하시더라. 어렵다고 말했더니 감독님이 박희순 선배님처럼 하면 된다고 해서 희순 선배를 적극 벤치마킹 했다.(웃음)

달리 아쉬운 점은 없었는지.
영어 대사가 아쉽더라. 몇 천 번을 연습했다. ‘광일’은 오랫동안 유학을 했던 친구이기 때문에 영어 실력이 거의 원어민 수준이어야 했다. 영어 대사 녹음파일을 수 없이 들었는데 원하는 만큼 표현되지 않았다. 발음이나 톤이 아쉬웠다.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 가장 마음에 든다. 감독님이 관여하지 않고 마음대로 연기하라고 한 장면인데, 폭발하는 감정을 보여준 유일한 신이다. 그래서 더 애착이 간다.

청소년관람불가라서 더 많은 관객에게 선보이지 못한 점이 안타깝지는 않나.
물론 흥행을 노렸다면 적당히 수위를 조절해서 15세이상 관람가로 맞출 수도 있었지만, 감독님은 처음부터 우리 영화는 청소년관람불가라고 기준을 박아 놓고 시작했다. 확실히 본인이 하고 싶은 일은 끝까지 밀어 부치는 분이다. 그 뜻을 난 존중한다.

앞으로 악역을 연기할 기회가 생긴다면 또 도전할 것인가.
생각보다 내 나이대의 배우들이 맡을 수 있는 악역이 많지 않다. 그래서 쉽진 않을 듯싶다.

이번 악역 연기를 통해 듣고 싶은 평이 있다면.
언론시사회 이후 평이 너무 좋아서 행복했다. <악마를 보았다>(2010) 최민식 선배님과 비교하는 글도 봤는데, 너무 황송하더라. 어떤 분은 새로운 느낌의 악역이라고 표현해줘서 뿌듯했다. 다만 전반적으로 호불호가 강한 작품이라 좋은 평가만 있을 거라고 예상하진 않는다.

영화 개봉 이후에 바로 드라마 <당신이 잠든 사이에>가 방영을 하는데 걱정되는 부분이 있다면.
걱정이 많다. 똑같은 미소를 지어도 <브이아이피>를 본 분들은 ‘광일’의 섬뜩한 미소를 먼저 떠올릴 것 같으니 말이다.(웃음)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행복했던 순간이 있다면 언제인지.
학창시절 동창, 스무 살 때 알게 된 친구들 몇 명과 수영장에 갔었다. 내가 술을 전혀 먹지 못하는데 놀러간 김에 술을 마시게 됐다. 무척이나 색다르더라. 물론 곧 피가 날 것처럼 얼굴이 새빨개지긴 했지만.(웃음) 역시 이렇게 사는 게 행복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 순간이었다.

2017년 8월 25일 금요일 | 글_김수진 기자(Sujin.kim@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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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_YG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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