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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부수는 나의 연기 <비밀은 없다> 손예진 인터뷰
2016년 6월 24일 금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지혜 기자]
<비밀은 없다>에서 손예진은 지금껏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을 보여준다. 표독스러운 눈동자, 울음에 찬 얼굴로 차가운 광기를 폭발시키는 손예진은 압도적이다. 본인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진 그 얼굴은 손예진에 대한 관객의 선입견은 물론, 그녀 자신의 매너리즘마저 부쉈다. 연기에 대한 완벽주의가 어쩌면 자신의 집착일 것이라며, 항상 새롭고 싶다는 손예진. 그러면서도 항상 멜로를 꿈꾼다는 그녀. 그녀가 꿈꾸는 멜로, 꿈꾸는 영화는 무엇인지 물었다.

*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데뷔 초와 지금, 가장 많이 달라진 게 뭔가?
조금 더 여유로워지고 연기적인 기술이 늘었다는 거(웃음)? 시야가 점점 넓어지더라. 예전엔 참 앞만 보고 달렸다. 주위가 안 보이더라. 어떤 스텝이 있었고 누가 뭘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시야가 너무 좁았다. 그렇지만 나는 별로 달라진 게 없는데 그냥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시야가 넓어지면서 어떤 게 눈에 들어오던가?
예전에는 몰라서 두려운 게 많았고, 순간순간 눈앞에 닥친 걸 해내는 데 급급했다. 연기를 잘 하기 위해서 모든 것들에 예민하게 반응했다. 주야장천 심각한 감정을 잡고 있다가 막상 촬영에 들어갔을 때 지치기도 했고. 그런데 지금은 조금씩 성숙해지는 지점에 접어든 것 같다. 연기와 나, 일과 사람, 그 사이에서의 관계들이 눈에 들어온다. 예민함과 덜 예민함을 섞어가며 에너지를 표출할 줄도 알게 됐다. 쉬는 시간이나 식사 시간에는 농담 따먹기도 할 수 있게 됐고(웃음). 어떤 사람이 무엇을 중시하는지도 파악되더라.

그때와 비교해 지금은 어떤 마음으로 작품에 임하나?
그때는 책임감이 많지 않았다. 그저 연기를 잘 하고 싶은데 내가 잘 못하고 있다는 게 힘들기만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촬영 다음에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게 되니까, 조금 더 책임감을 느낀다. ‘관객이 이 작품을 사랑해줘야 하는데, 내 이름 걸고 나온 작품이 누군가를 실망시키면 안 되는데’하는 걱정이 생겼다. 흥행에 책임감을 느끼는 거지.

시간의 문제라기보다 명성의 문제인 것 같다. 톱스타로 인지도가 높아질수록 손예진이라는 배우의 이름값에 무게감이 실리니까.
그런 부분이 있지(웃음). 운 좋게도 내가 출연한 영화가 외면당한 적이 별로 없다. 그러다 보니, 그만큼 또 해내야 한다는 부담감이 점점 더 무거워진다. 최소한 손익분기점은 넘겼으면 좋겠고. 이건 모든 연기자가 바라는 부분일걸(웃음).
시나리오를 고르는 기준은?
캐릭터가 비슷하든지, 다른 캐릭터라도 표현하는 감정이 비슷하다면 선뜻 손이 가지 않는다.

앞서 말한 책임감과 대비되는 것 같다. 흥행에 대한 책임감은 무거워지는데 새로운 도전을 해야 하니까.
그게 아이러니지. 안정성을 추구해야 할 때도 있는데 연기적으로 더 발전하고 싶어서 새로운 것을 도전하니까. 그런데 사실 안정성을 잘 모르겠다. 아무리 많은 작품을 해도, 이 작품이 흥행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누가 봐도 천만을 겨냥해서 만든, 막대한 예산의 영화는 좀 다른 얘기겠지만. 나는 어쨌든 내가 하고 싶은 얘기를 하게 되더라. 어느 시점에 이르니까 영화가 크든 작든 상관하지 않게 됐고. 큰 틀을 가지고 방향성 있게 영화를 선택하진 않는다. 그때 당시에 하고 싶은 시나리오를 선택할 뿐이다.

<비밀은 없다>를 택한 이유는?
왠지 특별하게 느껴졌다. 한 가족의 이야기, 그들의 비밀을 색다르게 풀어내잖나. 캐릭터 역시 나의 새로운 면을 끄집어낼 수 있어 보였고.

기존의 모성애 영화나 스릴러와의 차별점은 뭔가?
아이를 잃은 ‘연홍’의 모습이 기존의 영화와 사뭇 다르지 않나. 사건에 직접 뛰어들어 진실을 파헤치는 모습도 히스테릭하고. 대부분의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울면서 아이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일반적인 엄마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 연홍이 아이를 사랑하는 방식, 분노를 표현하는 방식이 기존의 영화와는 아주 많이 달랐다.

외적인 모습도 많이 다르던데. 처음에는 단정하다가 아이를 잃은 뒤 초췌해지는 식의 전형적인 엄마의 모습이 아니었다.
불안할 때 오히려 단정해지지. 이경미 감독의 스타일이 영화에 고스란히 투영된 거다. 감독의 머릿속에는 이미 연홍에 대한 그림이 꽉 잡혀 있었다. 머리는 단발이었으면 좋겠고, 점점 부스스 해지다가 갑자기 단정해져서 빨간 립스틱을 발랐으면 좋겠다는 식으로. 연홍의 심리상태와 외적인 모습이 대조되는 거다.
영화가 기묘하다. 시나리오는 이렇게까지 기묘하지 않았다더라.
영화 음악이 그런 느낌을 부각하는 것 같다. 시나리오에도 음악이 나온다는 설정이 쓰여 있긴 하지만 배우로서 어떤 음악인지까지는 상상할 수는 없었다. 그래서인지 어떤 분들은 영화가 오싹하기도 하고 기괴하거나 무섭다더라. 물론 감독이 연출을 하면서 영화가 점점 더 발전하니까 기묘한 느낌이 더 살아난 측면도 있겠지(웃음). 연홍도 어디로 튈지 모르는 캐릭터고.

빗으로 머리를 두드린다든지, 칠판 위로 발을 구른다든지, 같은 말을 중얼댄다든지 하는 연홍의 강박적인 행동도 영화의 분위기에 일조하더라. 이런 행동은 어떻게 만들었나?
감독과 상의해서 하나하나 만들어간 행동이다. 발을 구르는 장면도, 원래는 연홍이 칠판을 바닥에 깔아놓고 그 위에서 경찰관과 몸싸움을 벌이는 거였다. 이 장면을 편집하는 대신, 감독의 요청으로 칠판 위에 발을 구르기로 했다. 발을 구르는 속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서, 그 장면만 여러 번 촬영했다. 연홍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공포감을 주기 위한 거였다. 보통 다른 영화에서는 엄마가 경찰서로 쳐들어와 “내 딸 살려내!”하잖나. 그런데 이경미 감독은 기존의 영화 속 엄마와 연홍을 다르게 표현하고 싶어 했다.

기자간담회에서도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모성을 드러내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경미 감독이 전형적인 걸 아주 싫어하거든(웃음). 물론 전형적인 게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이미 알고 있는 만큼 익숙하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감독은 연홍의 모성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새로운 엄마의 모습이길 바랐다. 그래서 내가 떠올린 연홍의 이미지와 감독이 연홍에 접근하는 법이 완전히 달랐다. 보통 딸을 잃어버리면 초췌해지는데 연홍은 그렇지 않아서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지.

그랬나. 이경미 감독이 디렉션을 상당히 추상적으로 하는 편이라더라. 그런데 당신이 잘 소화 해내 무척 만족스러웠다고 했는데(웃음).
감독이 조금 어렵게 얘기하는 편이거든(웃음). 이경미 감독은 자기만의 세계가 확실한 사람이다. 그러니까 <비밀은 없다> 같은 영화도 만들 수 있는 것이겠지만. 그런 감독의 시선이 참 매력적이다. 그런데 막상 그 시선을 내 것으로 흡수해서 연기하기는 참 어렵더라. 내가 생각한 연홍과 감독이 생각한 연홍이 완전히 다르기도 했고. 처음에는 그 접점을 맞추느라 애를 먹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이 되니까, 감독이 생각한 연홍의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게 다 이해가 되더라. 감독도 나도 연홍이가 되어가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
<비밀은 없다>로 매너리즘을 탈피했다고 말했다.
이전까지 스스로가 좀 지루하게 느껴졌다. 아무리 다양한 역할을 해도, 어쩔 수 없이 내가 느껴졌다. 새로운 캐릭터를 만나도, 결국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접점을 찾고 표현을 하는 거잖나. 내 시선은 결국 세계를 바라보는 한 대의 카메라에 불과한데, 그 시선에 갇혀 있는 것 같았다. 답답하더라. 그런데 <비밀은 없다>로 그 매너리즘을 탈피했다. 다른 시점에서 세계를 보게 됐다. 이 때문에 <비밀은 없다>를 택한 것이기도 하고.

결말이 참 흥미로웠다. 남편을 죽일 줄 알았는데 연홍은 남편을 살려두더라.
살아서 더 큰 고통을 맛 보라는 거지. 그게 더 큰 복수가 아닐까.

이들이 이후에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아니. 행복하게 살지 못했을걸. 원래 시나리오에서는 연홍이 남편을 죽이는 것이었다. 아이가 아버지를 죽이는 결말도 있었다. 그런데 이건 너무 자극적이라서 뺐다. 결국 남편을 살려주되 고통을 주는 결말을 택했다. 연홍이 남편을 죽이든 살리든 어떤 것도 시원한 결말은 아니다.

죽였더라도 불행했을까?
죽였어도 연홍은 힘들었을 거다. 사실 사람이 사람을 죽인다는 게 참 어려운 일이다. 비록 영화에서지만 나도 사람을 죽이는 장면을 촬영할 때는 힘이 든다. 그런데 어떤 분은 지금 결말을 되게 시원하게 생각하더라고.

연홍의 복수가 너무나 자기파괴적으로 느껴져서 마음 아프더라.
연홍이 과연 이성적으로 판단하며 행동했을까? 아니다. 연홍은 이미 딸을 잃어버린 순간부터 조금씩 미쳐갔다. 그러다 딸이 죽었다는 걸 안 이후에는 차분해졌다. 차분히 선생님을 찾아가고 이메일을 조사한 시점에서, 이미 연홍에게는 그 어떤 것도 중요치 않게 된 거다. 내가 이해한 연홍은 큰 틀이나 방향성을 갖고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그때그때, 최고의 복수를 하기 위해 달렸을 뿐이다. 결말에서 어쩌면 남편을 죽이려고 했는데 잘 되지 않은 것일 수도 있다. 알 수 없는 연민도 느꼈을 테고…….
영화 초반에는 정치스릴러인 줄 알았다. 그런데 끝까지 보고 나니 모성애 스릴러더라. 본인은 모성애를 어떻게 생각하나?
그렇지(웃음). 다들 초반에는 정치스릴러 영화인 줄 안다. 난 모성애는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사람마다 다르겠지. 그러나 기본적으로 모성애는 모두 존재하되 그 정도 차가 있는 것 같다. 동물도 본능적으로 새끼를 돌보잖나. 과학이나 말로는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아닐까.

나중에 어떤 엄마가 될 것 같나?
난 아이를 되게 독립적으로 키울 거다! 그런데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다들 난 못할 거라더라(웃음). 우리나라의 사회 구조 상 아이를 독립적으로 키우기가 힘들지 않나. 또한 아이보다 더 많이 살아봤으니까 본인이 생각하기에 좋은 삶의 기준이 있을 거고. 그러다 보면 아이를 너무 사랑한 나머지, 내가 생각한 올바른 방향으로만 아이를 몰아갈 수도 있을 거다. 다른 사람으로서, 각자의 경험의 차이를 존중하면서 개인의 행복을 존중하기란 참 어려운 일이다.

영화를 보면서 연홍의 모성애에 세 가지 결이 있다고 느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엄마에서, 남편을 파괴하는 복수의 원동력, 딸의 연인을 이해하는 포용력으로까지 뻗어간다. 연홍의 모성애를 어떻게 이해했나?
난 연홍의 모성애를 애증으로 이해했다. 연홍은 민진이를 너무나 사랑하는데, 정작 민진이는 내가 모르는 자기만의 세계를 갖고 있었잖나. 사랑하는 사람이 자기가 모르는 세계를 갖고 있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과 질투에 휩싸였겠지. 사랑이 클수록 그 증오도 커진다. 연홍은 그 애증을 파괴적으로 풀었다. 민진이의 창고를 부쉈으니까. 딸에 대한 배신감도 컸을 거고, 자신이 딸의 상황을 몰라줬다는 것에 대한 자책도 심했을 거다. 모든 엄마가 애증의 감정을 다 파괴적으로 풀지는 않는다. 많은 엄마들이 어쩌면 창고를 소중하게 보존했을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따귀신을 빼놓고는 말할 수가 없지. 남편의 따귀를 연달아 때릴 때 관객석에서 “오~”하는 감탄사가 나오더라. 다들 시원해했는데(웃음).
따귀신에서 김주혁이 엄청 서운해했다. 김주혁은 때리는 노하우가 있어서 손 끝으로 날 때렸지만, 난 때리는 법을 잘 몰라서 온 힘을 다했거든. 연기하는 동안에는 너무 흥분해서 못 느꼈는데 그 신 촬영이 끝나고 나니 손바닥이 다 얼얼하더라. 그런데 스텝들이 전부 나한테만 괜찮냐고 물어봐서 김주혁이 꽤 서운해했지(웃음).

그 장면에서 목소리도 쫙 깔렸다.
목소리를 낮추려는 의도는 없었다. 무의식에서 나온 거다.
연홍처럼 무언가에 집착해 본 적 있나?
난 내게 집착적인 성격이 있는 줄 몰랐다. 그런데 주위 사람들은 내가 뭐 하나에 꽂혀서 몰입하는 성격이라고들 하더라. 열심히 연기하고 열심히 쉰다면서(웃음). 일종의 완벽주의인데, 완벽주의도 집착이라면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집착과 몰입이 어쩌면 한 끗 차이일 수도 있겠다(웃음). 이 둘의 차이점은 어쩌면 스트레스의 여부일 것 같은데, 스트레스를 잘 받나?
글쎄(웃음). 대강대강 생각하는 게 편하다. 항상 낙천적으로 사는 사람이 부럽다. 성격이 낙천적으로 바뀐 것 같은데 연기에는 집착적인 것 같다.

연기가 왜 그렇게 좋을까? 이경미 감독은 당신이 타고난 예술가라 했다. 감정을 훌륭하게 표현했다면서.
내가 살면서 누군가를 그런 표독스러운 표정으로 본 적이 없다. 극한의 상황에 내몰려 견디기 힘든 분노를 감당해 본 적도 없고. 그런데 영화 속 상황에 몰입하는 순간, 내가 살면서 쌓아 왔던 악이 표출되더라. 악도 드러낼수록 점점 더 생긴다. 악에 받친 감정을 토해내야 한다고 생각하면 그 감정이 내 안에 생기는 것 같다. 한 번도 본 적 없는 얼굴이라서, 모니터의 내 얼굴, 연홍의 눈빛이 낯설더라. 살면서 내가 느꼈던 많은 것들이 이 영화에서 표현됐나 보다(웃음). 그렇게 쌓아 온 감정을 표현하는 거니까, 20대 때 연홍을 연기하라 했다면 못했을 거다.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마지막 장면이 그냥 너무 슬프더라. “엄마는 좋다고 하디?”라는 물음이 연홍에게는 너무 아픈 상처겠지. 그 장면을 연기하면서 몇 개월 동안 치열하게 살았던 게 한꺼번에 밀려오며 감정이 북받치더라. 내가 내 영화를 보고 슬펐다고 하면 웃기지만 되게 슬펐다(웃음). 배우는 자기 영화를 객관적으로 못 보거든.

필모그래피를 보면 멜로장르가 가장 많다. 멜로에 강한 이유가 뭘까?
그러고 보니 최근에는 멜로영화를 거의 못했네(웃음). 아직까지 많은 분들이 내가 멜로와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주시는 것 같아서 감사하다. 사랑 이야기는 배우들이 항상 꿈꾸는 거다. 얘기를 아무리 해도 끝이 없는 게 남녀의 사랑이잖나. 모든 상황을 납득시킬 수 있는 강력한 이유가 되기도 하고. 얼마 전에 최민식도 멜로를 찍고 싶다 말했다. 나도 사랑 이야기가 제일 재밌다.

청순하고 예쁘다는 이미지가 버거웠던 적은?
없다. 절대 지겹지 않다(웃음). 오히려 너무 좋다. 항상 멜로의 이미지를 갖고 싶다. 다만 쑥스러울 뿐이지(웃음). 사실 데뷔 직후에는 줄곧 멜로영화를 찍었다. 그때 당시에는 여주인공이 죽는 게 유행했다. 그러다 보니 단골 질문이 왜 죽는 역할만 하느냐는 것이기도 했다(웃음).

여자들의 일탈을 그린 로드무비를 찍고 싶다 말했다. 시나리오가 없는 건가?
내가 보기에는 그렇다.

남성 중심 영화가 투자를 잘 받는 이유가 뭘까?
나도 그게 궁금하다. 항상 영화 투자자나 영화 관계자에게 묻곤 한다. 우리나라에는 여자관객이 훨씬 더 많은데 왜 남성 중심 영화만 나오느냐고. 혼자 추측하기에, 오히려 여자관객이라서 더 멋있는 남자배우를 원하는 게 아닐까.
스릴러 장르가 강세를 이루면서 그런 기조가 강해진 것 같다. 아무래도 물리적인 힘에서는 남자배우가 더 힘 있게 느껴지니까. 실제로 스릴러장르의 제작비가 비교적 저렴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런 식으로 흘러가는 건가.

그렇다면 장르 상관없이, 남녀 상관없이 맡아보고 싶은 역할이 있나?
콕 집어서 얘기하긴 어렵지만, 군인 역할을 해 보고 싶더라. <시카리오>도 참 재밌게 봤거든. 난 왜 이렇게 강한 역만 하고 싶은 거지(웃음). 안 해 봤던 역할이라 그런 걸까.

조금 마초적인 캐릭터에 끌리는 건가?
그렇다기 보다, 살아 있는 캐릭터를 탐내서 그런 거다. 캐릭터가 생동감 넘치려면 능동적이거야 하거든. 이야기를 담고 있는 캐릭터, 표현할 게 많은 캐릭터가 좋다. <비밀은 없다>에서 어쩌면 김주혁이 많이 힘들었을 거다. 연홍은 끊임없이 표출하는 캐릭터인 반면에 김주혁은 계속 감정을 억누르는 캐릭터거든. 이렇게 억누르는 연기가 더 힘들 때가 있다.

여성캐릭터가 능동적인 멜로영화를 꿈꾸는 건가. 본인이 찍고 싶은 멜로는 뭔가?
최루성 멜로(웃음)! ‘여명의 눈동자’ 같은. 멜로는 기본적으로 눈물이 담긴 장르잖나. ‘여명의 눈동자’처럼 눈물도 나면서 처절한 사랑 이야기를 촬영해 보고 싶다.

‘태양의 후예’에서 강모연 같은?
강모연은 발랄했잖나(웃음).

<태극기 휘날리며> 로맨스 버전을 말하는 건가(웃음)?
그럴 수도 있겠다(웃음). 총포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형제애 대신 군인과 간호사, 혹은 남자군인과 여군이 사랑을 하는 거지.
JTBC 뉴스룸에서의 발언이 화제가 되고 있다. 여배우의 시나리오 선택폭이 좁은 게 억압이라고 발언했는데.
정확히, 앵커가 내게 억압이라 생각하냐고 물어서 억압이라고 볼 수도 있다고 발언했다. 완전히 억압이라고 생각한 적은 없다(웃음). 여배우끼리 모여서 시나리오 얘기를 나누거나 내게 들어오는 시나리오를 보면 남자배우보다 선택의 폭이 상당히 좁다는 걸 알 수 있다. 더 많은 영화가 기획되면 우리가 보여줄 수 있는 게 더 많아질 텐데.

최근 할리우드에서는 여성영화가 부족하다는 것을 인식하고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나를 찾아줘>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영화다.
할리우드에서 여배우의 전성기는 40대부터 시작되는 것 같다. 여배우들의 멋지게 주름진 모습이 참 매력적이다.

롤모델이 있다면?
롤모델은 없는 것 같다. 난 누군가의 전체적인 모습보다는, 배우들의 단편적인 연기에서 느껴지는 강렬함이 더 오래 마음에 남더라고. ‘난 할 수 없는 대단한 연기다’라고 생각하곤 하지. 특히 <다우트>에서 메릴 스트립이 인상 깊었다. 메릴 스트립 특유의 독립적인 감성과 연기적인 기술이 절묘하게 조합돼 있어서 보는 내내 감탄했다. 정말 놀라운 배우다.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나?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배우를 보며 자극을 느끼지만, 가고 싶다고 갈 수 있는 게 아니잖나. 아직은 한국에서 보여 줄 게 더 많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말이 되고 언어가 된다면 도전해 보고 싶다. 모든 것을 도전해 보는 건 배우에게 좋은 경험이 될 테니까.

<덕혜옹주>가 하반기 기대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재밌을 것 같은데(웃음).
기대를 안 할수록 영화는 더 재밌어지는 법이다.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맛있는 거 먹을 때! 일이 있을 때는 식단관리를 하지만 놀 때는 마음껏 먹는다. 다 먹는다.

술도 잘 마시나.
잘 못 마신다.

원조 소주 여신이잖나!
아마 <내 머리 속의 지우개> 제작진은 내 말을 믿지 못할 거다. 당시에 와인을 배운 덕에 맨날 술을 마셨거든. 술도 마실수록 늘더라고(웃음). 난 주로 소맥을 마신다. 술 못 마시는 사람의 특징이지(웃음).

2016년 6월 24일 금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imovist.com)
사진_CJ엔터테인먼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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