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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맛, 사람의 맛, 영화의 맛 <대호> 최민식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 이지혜 기자 이메일

* 이 인터뷰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 재미있게 잘 봤다.
정말인가? 농담 아니고(웃음)? 다행이다.

영화를 처음 본 소감은?
기자, 관객들도 보고 놀랐다는데 나는 어땠겠나. 사실 <대호>를 보기 전엔 정말 불안했다. <명량>의 후속작인만큼 흥행에 대한 부담도 있었다. 기본은 해야 면이 살지 않겠나. 한두 푼 들어가는 작업도 아닌데. <대호>를 어린이 대공원에서 틀어주는 애니메이션처럼 만들어서도 안 되고 말이다. 그런데 언론 시사회 때 김대호(최민식은 영화 속 호랑이를 ‘김대호’라 불렀다) 씨를 처음 보는 순간, 안도가 되면서 행복감이 밀려들더라. 메시지 같은 건 제쳐두고, 일단 김대호 씨가 연기를 잘 했다. 만일 이 영화가 잘 된다면 최민식 덕도, 정만식이나 성유빈 덕도 아닌 김대호 씨 덕분이다. 우리는 그저 김대호 씨가 연기하는 데에서 맞고 구르며 도와줬을 뿐이다. 우리가 제 아무리 잘 해봐야 김대호 씨가 연기를 못하면 말짱 꽝 아닌가. 이 모든 것이 CG팀과 김대호 씨 덕택이다. 그런데 싸가지가 없어서 그런지, 촬영장에도, 기자 간담회에도 안 나오고 영화에 한 번 나오고 말더라(웃음).
김대호 씨에 대한 애정이 큰 것 같다(웃음).
호랑이가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가? ‘호랑이가 담배 피우던 시절’로 전래동화를 시작할 만큼 우리와 친근한 존재이자 공포의 대상 아닌가. 호환마마라고 해서 실제 호랑이가 인간을 물어가기도 했고. 우리 영화는 호랑이에 대한 한국적 정서를 담아내는 영화다. 이를 위해 각색도 많이 했다. 그러나 메시지가 훌륭하다 해도 김대호 씨가 연기를 못하면 말짱 공염불이다. 김대호 씨를 잘 만들기 위해서는 컴퓨터 작업에 많은 투자가 이뤄져야 하는데, 이게 다 시간과 돈이다. 그렇다고 컴퓨터 작업에만 시간과 자본을 무한정 투자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모든 게 제한적인 상황에서 수준 높은 작품을 만들기 위한 고민이 무척 컸다. 최선을 다한다고 결과가 항상 좋은 것도 아니니까.

다행히 김대호 씨에 대한 평가도 좋은 편이다. 의외였던 건 <대호>에 항일 정신보다는 한국적인 정서가 더 많이 깔려있었다는 점이다.
그렇게 느껴졌다면 다행이다(웃음). ‘천만덕’은 항일 투사가 아니다. ‘구경’이나 ‘칠구’ 역시 각자의 욕망에 따라 범을 잡을 뿐이다. 어느 누구도 ‘왜놈들 일에 동조해선 안 된다’고 어깃장 놓지 않는다. <대호>가 좋았던 이유가 바로 그거다. 일제강점기라고 해서 ‘천만덕’이 대놓고 총질하지 않는다. 산군은 잡는 게 아니라는 가치관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그럼에도 그것이 ‘마에조노’의 탐욕을 끊어버린다. 항일투쟁을 목표로 하진 않았으나 결과적으로 항일이 되는 거다. 우리의 가치관 자체로 침략 야욕을 좌절시킨다는 메시지가 좋았다. 심지어 ‘류’는 일제에 가담한 조선인이다. 영화에서는 빠졌지만 사실 ‘류’의 아버지는 ‘천만덕’과 ‘구경’, ‘칠구’와 함께 포수대를 했었다. ‘류’는 산 속에 파묻혀 가난하게 사는 게 싫어서 뛰쳐나온 인물로, 왜놈에 가담해 성공하겠다고 벼르는 캐릭터다. <대호>는 이런 식의 인물관계나 설정들이 촘촘히 얽혀 있는 영화다. 그런데 마의 두 시간 때문에 상당 부분이 편집됐다.

시간 상 편집된 부분에 아쉬움이 큰 것 같다.
사실 나는 러닝타임에 대한 압박이 답답하다. 물론 한 회라도 더 상영해야 한다는 상업논리를 이해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때때로 명화는 러닝타임의 압박에서 벗어나야 탄생한다. 예컨대 <원스 어폰 어 타임>도 세 시간이 넘는다. 어릴 적에는 졸면서 봤기에 ‘이게 뭐하는 영화인가’ 싶기도 했지만, 50살이 넘은 지금 보니 참 새롭더라. 세월이 흐를수록 새롭게 느껴지는 영화, 씹으면 씹을수록 음미되는 영화란 게 있지 않나. 배우의 입장에선 하고 싶은 이야기를 다 하는 영화를 만들어보고 싶다. 이제 그런 여유를 가질 때도 된 게 아닐까. 네가 돈 내 봐라 그런 말이 나오나, 하면 할 말은 없지만(웃음). 사실 우리나라에서 제작비 200억 원 안팎의 영화가 만들어진다는 것도 감지덕지 하다. 그렇지만 드라마의 구조에 충실한, 메시지와 감독의 의도가 분명한, 문학적인 냄새가 흠뻑 묻어나는 영화가 나왔으면 좋겠다. 우리도 <닥터 지바고> <해바라기>같은 명작이 넘쳐날 수 있는 토양을 갖고 있다. 우리 역사가 그렇잖나.
앞서 일제를 저지한 건 조선 특유의 가치관이나 세계관이라 말했다. 영화 속 ‘천만덕’의 세계관에 대해 더 말해 달라.
우리 할머니나 할아버지는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당신을 만났단 말이요, 내 탓이요, 내 팔자요’ 한다. 우리의 토속 신앙이나 불교는 전생, 업, 윤회를 믿는다. 내 현재의 모습은 전생의 결과라 하지 않나. 후생에 잘 태어나고 싶다면 지금 업장소멸을 해야 한다고도 말하고. 이에 따라 대호나 ‘천만덕’도 그 어떤 절망적인 상황이 닥쳐도 남을 탓하지 않는다. 또한 할머니들은 손주를 군대 보내고 나면 장독대에 물 떠 놓고 빌고, 서낭당 나무에 가서 산신님께 빈다. 현대의 관점에서 어리석은 일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이게 바로 지금은 잃어버린 우리의 정서다. 대호를 영험한 산군으로 모시고 기도하는 ‘천만덕’의 마음 역시 종교가 아닐까.

흥미롭다.
어릴 때 나는 정릉에 살았다. 당시만 해도 산고사가 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십시일반 음식을 모으고 통장, 반장이 다 모여 산고사를 지냈다. 그곳에서 떡 한 덩이 받아왔던 것도 기억난다. 요즘에야 산신, 칠성 같은 것을 무속이라 부르지만 원래는 ‘무교’로서 우리의 민속종교였다. 무당이 굿을 하는 것을 천하게 여기지만 사실 원래 우리가 그렇게 살았던 거다. 이처럼 우리는 자연을 믿으며 살던 민족으로 <대호>에는 그런 민족정신이 깔려 있다. 그러니까 ‘천만덕’이 ‘산군은 건드리는 게 아니여’라고 말하는 거다.

<대호>의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첫 느낌은 어땠나?
<대호>를 보면서 <미션>이라는 영화가 생각나더라. <미션>은 종교적 색채가 강한 영화다. 어찌 보면 전혀 상관없는 영화인데도 <대호>와 궤를 같이 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특히 가브리엘 신부가 이과수 폭포에서 원주민들과 만났을 때의 장면이 떠올랐다. 보통 영화들은 신부라 하면 어떤 고난이 닥쳐도 꿋꿋한 사람으로 묘사하잖나. 그런데 가브리엘 신부는 자신에게 독침과 활을 겨누는 원주민들 틈에서 두려움에 벌벌 떨며 오보에를 분다. 이때 원주민은 비록 인간이지만 문명과 대비되는 자연을 의미한다. 마치 ‘천만덕’과 ‘대호’같은 관계인 거다. 그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후에 스페인 군대가 들어와 원주민들의 씨를 말린다. 영화는 그 폭력에 저항하는 두 가지 인간상을 제시한다. 가브리엘 신부는 비폭력 주의를 고집하며 기도하는 반면, 로버트 드 니로는 총을 잡는다. <미션>의 감독은 두 부류의 인간을 나란히 놓고 제시할 뿐, 누가 옳고 그른지 판단하길 강요하지 않는다. 결말에서 모두 죽고 어린아이들만 남아 카누를 타고 사라질 때 희망에 대한 암시를 느꼈다.

<대호>는 두 아버지의 이야기다. 지리산 호랑이와 ‘천만덕’ 모두 품 안의 자식을 위해 살아간다. 아버지 캐릭터를 어떻게 받아들였나?
부성애는 본능이다. ‘천만덕’이 과거에 대호의 어미를 쏴 죽이잖나. 원래 어미와 새끼는 죽이면 안 된다. 잡더라도 숫호랑이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생태계가 파괴되지 않는다. 이건 산사람, 포수들의 규칙이다. 그러지만 ‘구경’과 ‘칠구’는 새끼도 잡으려 한다. 너무나 먹을 게 없고 궁핍해서 식솔들이 배를 곯고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천만덕’은 그들을 제지하고 새끼였던 대호를 동굴에 놔 준다. 왜 그랬겠나? 만약 ‘천만덕’에게 ‘석이’가 없었더라도 그랬을까? 자기도 ‘석이’라는 새끼가 있으니까 어미 호랑이의 마음을 이해해서 새끼를 풀어준 거다. 비록 내 새끼는 인간이고 저들은 호랑이라도 말이다. 실제로 강아지나 고양이 새끼만 봐도 성견을 봤을 때와는 다른 애틋함이 있잖나. 냉혹한 포수라도 그 새끼들을 배려하는 거다.
‘석이’로 나온 성유빈의 연기가 좋았다. 대선배인 최민식 앞에서도 주눅들지 않더라.
애니까 그런 거다. 애들이 대선배가 어딨나.

기자 간담회에서는 ‘선생님’이라고 하던데.
그건 그냥 위하는 척 하는 거고(웃음). 내가 (성)유빈이 앞에서 가오를 잡아서 뭐 하겠나. 내가 중삐리가 돼서 같이 놀면 된다. 재밌다. 예를 들어, ‘너 여자 친구 있어? 솔직히 얘기해봐. 저긴 엄마 계시니까 이리 와서 말해봐봐. 이뻐? 사진 좀 보자’ 이런 식으로 하면 이 늙은이가 왜 이러나 하면서도 친해진다. 내가 (성)유빈이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데 어른 노릇을 하면 (성)유빈이도 나도 재미가 없어진다.

성유빈을 많이 귀여워했던 것 같다.
우리가 항상 ‘어르신’이라고 불렀다. 중학교 3학년 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캐릭터가 독특하다. 말하는 거나 움직이는 게 70대 노인 같다. 밥도 얼마나 천천히 먹는지(웃음). 우리는 5분이면 다 먹는데 (성)유빈이는 소가 되새김질 하듯 느릿느릿 먹는다. 우리가 밥을 다 먹고 (정)만식과 (김)상호랑 쳐다보고 있으면 자기도 눈치가 보이는지 ‘먼저들 일어나세유’ 한다. 빨리 먹으라 그러면 체하고. 진짜 웃긴 놈이다(웃음). 연기하는 것도 똑같다. 어린데도 여유가 있다. 감독이 지시를 하면 순발력 있게 변화를 주며 받아치는 사람이 있는데, (성)유빈은 자기 것이 되어야 비로소 움직인다. 겉으로만 변화를 주며 빨리 반응한다고 다 좋은 연기는 아니다. (성)유빈 같은 사람들은 기다려줘야 한다. 재촉하면 할수록 멘붕에 빠져드니까. 기다려주면 결국 해낸다.

보는 사람 입장에서도 성유빈과 최민식, 두 사람이 붙는 재미가 있었다.
다른 재밌는 신도 많았는데 편집됐다.

하나만 말해준다면?
‘천만덕’이 아내의 악몽을 꾸는 장면이 있었다. 죽은 아내가 대나무 숲속에서 ‘천만덕’을 부르는 섬뜩한 신이었다. ‘석이’가 아버지를 깨우면 ‘천만덕’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일어난다. 그런데 얼마나 쪽팔리겠나, 어른인데 울었으니까. ‘석이’가 ‘아부지, 울었시유? 무슨 으른이’하며 약 올리는 장면이었다.
박훈정 감독의 <신세계>에 이어 <대호>까지 두 번째 작품을 함께했다. 박훈정 감독은 어떤가?
난 박훈정 감독의 이야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타고난 이야기꾼이다. 곶감 빼 먹듯이 숨겨둔 이야기 보따리를 하나씩 풀어내는 느낌이다. 그 이야기들이 지금도 훌륭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더 발전할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대호>도 그렇게 해서 나온 작품이다. 위험부담이 큰 영화인 줄 알면서도 <대호>가 완성됐을 때의 쾌감 하나만 보고 출연했다. 우리가 주류에 있을 때가 아니면 만들 수 없는 작품이다. <대호>를 기획했을 때, 감독도 나도 순수했다. 위험부담이 큰 영화에 투자해준 NEW 측도 고맙고.

영화를 선택하는 기준이 있다면?
내 마음 가는 대로 선택한다. 영화도 인연이다. 내가 바보가 아닌 이상 왜 작품성이나 흥행성같은 요소가 마음에 걸리지 않겠나. 그럼에도 마음 가는대로 영화를 선택하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어떤 세상에서 이런 인물이 되어서 소통하고 싶다, 하는 욕망인 것 같다. 대중의 상업적인 평가도 사실 <명량> 이전에는 썩 좋은 편도 아니었다. 영화가 잘 되면 좋은 거고 안 되더라도 누굴 탓할 수도 없다. <파이란> 같은 영화도 지금은 없어진, 작은 극장인, 씨네코아 극장이 메인관이었고 심지어 추풍낙엽처럼 떨어지고 말았다. 그때 영화가 배급전쟁이란 걸 뼈저리게 느꼈다. 그렇지만 후회는 없다. 비록 이기적일지라도, 난 열 명이 본다 해도, 작품을 만들면서 어떤 메시지를 공유하고 느꼈다고 생각한다면 그저 좋다. 그때 보람을 느낀다. <파이란> 때 1년에 한 번 극장에 올까 말까 하는 아저씨가 영화 잘 봤다 하더라. 그것도 화장실 소변기에서 오줌 누면서. 화장실 밖에서라도 인사하지, 민망하게(웃음).

영화에서 바다도 갔고 산도 갔다. 이젠 어디로 갈 건가(웃음)?
하늘로 가라고? 다음에는 바다도 산도 안 간다(웃음).
작년 <루시>로 해외 반응도 있었다. <올드보이>는 지금도 외국 팬들 사이에 회자된다. 해외 팬들에게 본인의 작품 3편을 추천한다면?
알아서들 다 챙겨 보던데(웃음)? 해외에서 많이 본 게 <올드보이>다. 그리고 의외로 <악마를 보았다>도 좋아한다고 들었다. 시사회 때 관객들이 박수 치고 난리 났다더라. 특히 간호사에게 벗으라며 쌍욕하고 컵 집어 던지던 장면. 외국 관객들은 그 장면을 보며 ‘벗어라, 벗어라’ 외치고 박수쳤다고 한다. 변태들인 건가(웃음). 확실히 대중문화를 소비하는 관객들의 자세가 우리와는 다르다. <안티 크라이스트>라는 영화 상영 때도 한 쪽에서는 박수치고 한 쪽은 보다 나갔다. 이런 현상들이 재밌었다. 외국에서는 자기의 느낌을 거침없이 드러내고 행동으로 옮기며, 좋으면 휘파람 불고 박수친다. 영화를 다 보고 나서는 맥주 한 잔 마시며 왜 이 영화가 좋은지 서로들 싸우고. 나로서는 ‘멘붕’이었지만.

아직 한 편 남았다. 대호는 어떤가?
그렇다, 이젠 <대호>를 추천해주고 싶다. <대호>가 해외에 선판매 됐다고 들었다. 12월 24일에 북미쪽에서 개봉하고 내년에는 다른 곳에서 개봉한다더라. <대호>의 한국적이고 사상적인 이미지가 외국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궁금하다. 아마 그들은 ‘업’의 개념으로 받아들이기 보단 애니메이션같이 받아들일 것 같다. 만일 이 감성을 한국사람처럼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다면 막걸리 한 사발 사주고 싶다(웃음).

한 편의 동화같이도 느낄 것도 같다.
그렇다.

최근에 가장 즐거웠던 일은 뭔가?
김대호 씨를 만난 거다(웃음). 그것만큼 즐겁고 행복한 일이 어딨겠나. 정말 김대호 씨와 연말에 망년회 한 번 해야 하는데(웃음). <대호>를 위해 사전작업했던 기간까지 합하면 벌써 2년이다. 2년 동안 골머리 썩혀 가며 고생했던 게 김대호 씨한테 달려 있었다. 김대호 씨를 만났을 때의 안도감은 이루 말로 다 할 수 없다(웃음).

2015년 12월 17일 목요일 | 글_이지혜 기자 (wisdom@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사진_이종훈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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