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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마른 현실을 감싸 안는 연민 어린 시선 <제보자> 임순례 감독
2014년 9월 29일 월요일 | 최정인 기자 이메일

개봉을 앞둔 기분이 어떤가요?
시사회 반응은 나쁘지 않은 편이지만 일반적으로 영화제나 시사회 반응이 극장 반응보다 조금 후한 편이라 백퍼센트 안심되지는 않아요. 개봉까지 일주일 남았는데 그때까지는 지켜봐야죠.

완성된 결과는 만족스럽나요?
만족하는 것보다는 아쉬운 것 위주로 보여요. 아마 모든 감독들이 그럴 거예요(웃음). <제보자>는 7번째 장편이라 조금 여유가 생겼지만, 데뷔작 <세친구>나 <와이키키 브라더스> 때는 아쉬운 점이 너무 많아서 편집이 끝나고 나서는 작품을 보지도 못했어요(웃음).

<제보자>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데다 과학을 소재로 한 영화라 준비기간이 길었을 것 같아요.
원하는 만큼 준비하지는 못했어요. 사실 시나리오가 제일 중요하기 때문에 시간을 가지고 시나리오를 더 면밀하게 고치고 싶었어요. 하지만 박해일이 <제보자>보다 <나의 독재자>에 먼저 캐스팅이 돼서 <제보자> 촬영을 <나의 독재자> 촬영 전에 끝내줘야 했어요. 시간상 시나리오를 더 이상 손 볼 수 없었던 점이 제일 아쉬웠죠. 프리 프로덕션 같은 경우도 다른 영화만큼은 준비했지만 만족스러울 만큼 기간이 충분하지는 않았어요. 너무 쫓기는 느낌이 들어서 제작진과 박해일에게 <나의 독재자> 촬영을 끝내고 <제보자>를 시작하는 건 어떻겠냐고 물었는데 거의 1년이 미뤄지니까 제작자가 너무 싫어하더라고요(웃음). 그래서 부족하면 부족한대로 준비해서 진행했죠.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니까 조금 더 효율적으로 열심히 한 면도 있지만, 시간이 조금만 더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웃음).

무슨 일을 하든 시간은 항상 모자란 것 같아요(웃음).
(웃음) 맞아요. 항상 모자라요.
스케줄이 빠듯한 박해일을 반드시 캐스팅해야 됐던 이유가 있었나요?
캐스팅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시나리오 버전이 나왔을 때 박해일이 1순위로 떠올랐어요. 관객이 신뢰할 수 있고 집중력이 좋은 배우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나이 대를 생각하니 후보군이 많이 없더라고요. 박해일 이외의 배우는 생각 안 해 봤어요. 박해일이 의외로 답을 빨리 줘서 캐스팅할 수 있었죠.

박해일이 시나리오도 읽지 않고 출연을 결정했다면서요.
시나리오를 준 다음날 하겠다고 연락이 왔기에 밤에 부지런히 읽고 이야기 한 줄 알았어요. 알고 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웃음). 박해일 입장에서는 데뷔작을 함께 한 감독이 제의한 작품이기도 하고 언젠가 나와 함께 다시 작업해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있었나 봐요. 그런데 <제보자>처럼 민감할 수 있는 영화가 될 줄은 몰랐겠죠(웃음). 출연하겠다고 했는데 이제 와서 안한다고 할 수는 없으니까요(웃음). 어느 정도는 나에게 신뢰가 있어서 믿고 왔던 것 같아요.

<제보자>는 감독님의 다른 영화처럼 소수자나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아니라 연구원이나 PD처럼 전문직에 종사하는 주목 받는 사람들의 이야기에요. 인물들의 달라진 사회적 위치가 연출에 변화를 주지는 않았나요?
연출하는 사람들은 특정 직업군이 정해지면 그 직업 분야의 리얼리티를 확보하기 위해 조사나 취재를 많이 해요. 그래서 직업군이 달라져도 큰 부담은 없었어요. 하지만 박해일 같은 경우는 전문 직업인 역할을 많이 해보지 않아서 고민이 컸나 봐요. 나도 박해일이 윤민철 PD 역에 적격이라고 생각해 캐스팅했지만 어떤 PD의 모습을 보여줄지는 구체적으로 그리지 못했어요. 그런데 박해일이 준비를 많이 해서 지금 <제보자>에서 보이는 윤민철 PD의 모습을 만들어 온 거죠. 박해일이 걱정은 많이 했지만 제법 그럴 듯하게 연기했어요(웃음). PD나 기자들도 박해일은 앞으로 PD나 기자 전문 배우 해도 되겠다는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박해일 본인도 만족할 만한 모습이 나온 것 같아요(웃음).

<제보자>는 감독님의 이전 영화와 다르게 미스터리적인 요소가 많은데 연출하는데 있어 특별히 신경 쓴 부분이 있나요?
줄기세포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장점도 있지만 사실 상업영화로서는 굉장히 약점이 많은 이야기에요. 스포일러처럼 논문이 조작된 것이라는 결론을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또 줄기세포나 생명공학은 일반인들이 친숙하게 느끼는 상업적인 소재가 아니거든요. 관객이 소재 때문에 영화를 골치 아프다, 무겁다, 진지하다, 라고 느낄 것 같았어요. 상업영화니까 어떻게 재미를 줄 것인지를 많이 고민했죠. 진리를 따라가는 과정을 너무 평범하게 만들면 영화가 느슨해질 수 있기 때문에 미스터리까지는 아니어도 장르적 요소들을 조금 가미해서 시나리오를 쓰고 촬영을 했어요. 그래서 윤민철도 진지하기보다는 조연출을 구박하는 능글능글한 캐릭터로 만들었고, 윤민철 주변 인물들도 조금 더 유쾌하게 설정했어요. 음악도 평소 잘 안 썼던 사이키델릭 음악을 이용해서 장르적인 요소를 강화시켰고요. 편집이나 카메라 리듬, 호흡도 조금 빨리 가지고 가야겠다는 계산이 있었죠. 어렵고 복잡하다고 줄기세포를 차근차근 설명하면 이해는 잘 될지 몰라도 영화의 흐름은 처질 수 있잖아요. 그래서 속도감을 유지하면서 영화를 어렵지 않게 만드는 것을 목표로 연출했어요.
<제보자>를 제보자나 이장환 박사의 시선이 아닌 윤민철 PD의 입장에서 연출한 이유는 뭔가요?
10년 전에 이미 논문조작이 확실하다고 결론이 난 사건을 굳이 다시 영화로 만들어야 하는 이유를 생각해 봤어요. 줄기세포 자체가 진짜인지 가짜인지, 또는 제보자가 어떤 방식으로 제보를 했는지는 다시 이야기 할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 언론의 위상이 굉장히 추락해 있잖아요. 사람들이 ‘기레기’라면서 언론의 말을 못 믿고요. 그래서 10년 전 일이지만 자유를 지키기 위해 탄압에 맞서 국민들에게 진실을 제보했던 PD가 있었고, 그것을 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를 이야기하고 싶었어요. 관객에게 공감도 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고요. 처음부터 제작진에게 언론의 이야기로 풀어가자고 제안했죠. 만일 <제보자>가 생명공학이나 줄기세포에 관한 이야기였으면 연출 제안에 끝까지 동의 안했을 거예요. 하지만 언론의 역할에 대해서는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었고 관객도 공감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윤민철에 초점을 맞춘 거죠.

연출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언론의 역할을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인가요?
그런 점도 있고 동물에 대한 애정이 각별해서 생명 공학에도 관심이 많아요. 생명공학을 연구하기 위해 동물들을 의미 없이 희생시키고 생명을 소홀하게 다루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봐요. 생명이 산업의 범위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생명의 가치를 경시하는 부분은 다 함께 이야기해 볼 만하다고 생각했어요. 생명공학이라는 것은 최고의 검증이 필요한 학문 분야잖아요. <제보자>를 연출한 이유가 언론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 하나만은 아닌 것 같아요.

이장환 박사가 몰리를 쓰다듬어 주는 신은 잘못을 저지른 이장환 박사를 너무 감싸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어요.
이장환 박사 혼자만 비난 받을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장환 박사를 그렇게 몰고 가는 데는 언론, 이장환 박사의 동료, 그리고 국민들처럼 우리 사회의 다른 구성원들도 관여했다고 생각해요. 우리도 같은 공범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이장환 박사에게 여지를 주고 싶었어요. 또 이장환 박사는 주변사람에게조차 속을 털어놓지 못하는 굉장히 외로운 사람이에요. 겉으로는 모든 사람에게 칭송 받지만 그 명예가 거짓을 토대로 했기 때문에 굉장히 외로운 사람인 거죠. 속마음을 아무에게도 이야기할 수 없을 때 자신이 만들어낸 피조물 몰리를 찾아간 거예요. 개한테라도 자신의 속마음을 이야기하고 싶은 이장환 박사의 외로운 처지도 표현하고 싶었어요.
악인이라 할지라도 인물을 단편적으로 보지 않는 감독님의 시선을 매우 좋아해요. 하지만 관객의 가치관을 범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은 없었나요?
인간을 하나의 창으로만 볼 수는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영화 속에서 다른 악인을 그려도 그런 방식으로 그릴 거예요. 이장환 박사가 나쁘다는 것보다 우리 사회가 그를 그렇게 몰고 가는 측면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관객에게 전달하고 싶었어요. 이장환 박사에게 사람들의 욕망이 투사된 것이고, 이장환 박사는 그런 욕망을 충실하게 받아내 연기한 거예요. 관객의 가치관을 범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이장환 박사 한 개인을 비난해야 되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에 동의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을 크게 걱정하지 않았어요.

기억에 남는 장면 중 하나가 윤민철 PD가 팀장과 스튜디오에서 이야기하는 장면이에요. 조명으로 만든 무늬도 인상적이었고요. 그 장면은 어떤 이야기를 담고 싶어 그렇게 연출한 건가요?
그 신은 공간적으로 고민이 많았던 장면이에요. 동료들도 자기를 이해 못하는 상황이니 윤민철은 굉장히 외롭잖아요. 윤민철이 직장에서 외로우면 어떤 공간을 찾아갈지 생각해봤는데 본인만의 공간이 있을 것 같았어요. 흡연실, 옥상도 개인적인 공간일 수 있지만 일단 추웠어요(웃음). 상황은 갑갑하지만 시각적으로는 조금 넓은 공간이 필요했어요. 밀폐됐지만 흡연실처럼 답답하지는 않은 공간이요. 스튜디오는 PD들이 촬영하는 현장이잖아요. 실제로 PD들은 스튜디오를 자기 공간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미술적인 측면을 생각했을 때는 스튜디오가 가장 적합했어요(웃음). 그래서 윤민철이 스튜디오에 있다는 것을 아는 가까운 선배가 스튜디오로 윤민철을 찾아와 위로하고 서로의 비밀을 이야기 한 거예요. 조명감독이 인물들의 심리에 따라서 그 장면을 굉장히 잘 만들고 싶었나 봐요. 조명감독이 조명으로 힘을 주고 싶은 신이니 시간을 많이 달라고 해서 촬영진이 굉장히 많이 기다렸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 신을 언급하는 사람이 많더라고요(웃음).

넓은 공간이 주는 느낌 때문에 윤민철 PD가 진실을 위한 싸움에서 혼자라는 느낌이 더 강조됐어요.
조명감독한테 사람들이 그 장면 굉장히 좋게 봤다고 했더니 매우 좋아하더라고요(웃음).

사람들 보는 눈이 다 비슷한 것 같아요(웃음). 심민호가 딸을 가진 아빠인데도 불구하고 제보를 강행한다는 점은 공감하기 힘들었어요. 심민호의 부성애를 설명하는 것이 부족한 것 같은데 일부러 배제한 건가요?
심민호의 부성애를 많이 보여주지 않은 가장 큰 이유는 시나리오 상에서 할 다른 이야기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에요. 심민호한테 많은 신을 할애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에 시나리오 단계부터 심민호의 부성애 부분을 많이 쓰지 않았어요. 심민호가 도서관에서 딸에게 책을 읽어주는 신도 촬영하긴 했는데 시간 문제 때문에 편집했어요. 박해일 위주로 편집을 하다보니 심민호의 설명이 부족한 건 사실이에요. 단지 심민호를 과학자로서 기본적인 소양과 양심을 갖추고 여러 가지 정황에도 불구하고 제보를 하는 인물로 설정했죠. 선택의 문제였던 것 같아요. 여자 스탭들은 모니터 단계에서 심민호가 제보하는 것에 심정적인 공감을 못했어요. 심민호가 아빠로서 무책임하고 얄밉게 보인다고 하더라고요. 너 혼자만 힘드냐는 부인의 대사도 있잖아요(웃음). 개인적으로는 제보할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웃음). 딸을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상황이 중대한 거죠. 제보는 어쨌든 희생과 위험을 무릅쓰고 하는 건데 현실적인 상황에 갇히면 결국 제보를 할 수 없잖아요. 딸이 아프고, 취직이 어렵고, 돈이 없다는 것이 제보를 망설이게 하는 연유는 될 수 있지만 제보를 결정적으로 막을 수는 없는 거죠.
한국에서 꾸준히 작업하는 몇 안 되는 여성 감독인데 활동하는데 있어 어려운 점이나 반대로 유리한 점이 있다면요?
좋은 점은 없는 것 같아요(웃음). 예전만큼 여성이기 때문에 어려운 부분은 없어요. 하지만 불리한 부분이 있다면 네트워킹일 거예요. 어떤 분야든지 결국 인간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거잖아요. 기본적인 투자와 제작 라인들에 남성들이 훨씬 많아요. 그러다보니 네트워킹을 지속적으로 이어가려면 같이 술도 마시고 스포츠도 해야 되는데 여자는 그런 활동에 모두 참여하기가 힘들잖아요. 물론 사교적인 성격이면 도움이 되겠지만 남성들끼리 어울리는 문화가 있으니까요. 하지만 네트워킹이 본질은 아닌 것 같아요. 결국 제작자나 투자자도 그들이 원하는 영화를 감독이 만들어 줄 수 있는 재능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보기 때문에 예전에 비해 여성 감독이 특별히 불리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요즘 한국영화 시장에서는 백 억 이상 하는 블록버스터나 장르적인 영화가 주를 이루는데 여성 감독들은 사실 예산 규모가 큰 액션영화나 전쟁영화에 능숙한 사람이 거의 없잖아요. 영화 시장이 대형화돼서 블록버스터가 많아지다 보니 여성 감독이 잘 할 수 있는 저예산의 일상적인 영화는 시장에서 우대받지 못해요. 그런 부분은 조금 어려운 것 같아요.

<제보자>를 연출하는데 있어 특별한 경험이 도움 된 적 있나요?
영화에 동물이 나오는 장면을 연출할 때는 다양한 동물들을 찍어보면서 쌓인 노하우가 도움이 된 것 같아요. 사람들이 몰리가 연기를 제일 잘 했다고 그러더라고요(웃음). 아무래도 다른 감독님보다는 동물을 많이 다뤄 친숙하다 보니 원하는 그림을 잘 만들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하지만 다른 부분은 철저한 준비죠(웃음).

언론의 역할이 진실을 공정하게 알리는 것이라면 영화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영화의 역할은 방송의 역할보다 훨씬 더 다양한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영화는 오락적이고 감각적인 재미를 줄 수도 있고, 우리 사회에 필요한 메시지를 공유할 수도 있어요. 또 사람의 일반적인 감정이나 미학적인 욕구를 만족시켜 줄 수도 있고요. 영화는 그런 다양한 기능들에 충실하면 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지금은 영화의 사회적인 기능이나 예술적인 기능은 많이 축소된 반면, 상업적이고 산업적인 기능은 강화됐어요. 그래서 더 많은 영화가 쏟아져 나오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더 다양해지지 않는 것 같아요. 수익성이 좋은 재밌고 자극적인 영화는 많은데 80년대처럼 다양한 영화들이 제작되지는 않는 것 같아 아쉬워요. 구조적인 측면 때문에 그런 영화들은 만들어도 보여줄 기회가 없으니까요. 한쪽으로 편향된 영화만 보는 것은 오히려 관객들에게 손해인 것 같아요. 다양한 영화들을 볼 수 있다면 좋을 텐데 그런 점이 아쉽죠.

2014년 9월 29일 월요일 | 글_최정인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

1 )
hksksh
항상 영화 잘 보고있습니다!!   
2014-10-23 14: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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