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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린 속에서 묘한 매력을 덧입는 신예 <인간중독> 임지연
2014년 5월 20일 화요일 | 서정환 기자 이메일

인터뷰 많이 했죠? 힘들진 않아요?
체력적으로 힘든 건 있는데 재밌고 신기해요. 언제 제 얘기를 이렇게 해봤겠어요(웃음). 인터뷰가 처음이다 보니 즐겁게 했어요.

연기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네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 손을 잡고 연극, 뮤지컬, 영화를 많이 보러 다녔어요. 무대 위 배우를 보면서 나도 저들 사이에서 놀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면서 자랐어요. 그래서 당연히 배우를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해보지도 않았으면서 연기를 잘할 거라 생각했던 것 같아요(웃음). 예중, 예고를 가고 싶었는데 부모님이 반대를 하셨고, 인문계 학교에 들어가서 공부를 했어요. 그러다 내가 하고 싶은 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적극 밀어붙여서 부모님을 설득해 한국예술종합학교(한예종) 입시를 준비하고 입학하게 됐어요.

한예종에서 수업을 듣고 연극을 하며 어떤 것들을 경험하고 실력을 쌓아갔나요?
학교에서는 연극 연기 위주로 공부를 했어요. 영화에도 관심이 많아서 카메라 연기를 해봐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것도 모르잖아요. 영상원을 통해서 단편영화를 찍게 됐어요. 찍다보니 감독님들이 많은 기회를 주더라고요. 현장이 어떻게 진행되고, 어떻게 촬영하고, 내가 어떻게 카메라에 나오는지를 배우게 됐어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자유롭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내려놓고 즐길 수 있는 것, 그게 또 단편영화나 독립영화의 매력인 것 같고요. 많이 찍어보고,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말도 안 되는 캐릭터도 맡아보고요(웃음). 상상력도 좋아진 것 같아요.

어렸을 때 막연하게 배우가 될 거라는, 연기를 잘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경험해보니 어떻던가요. 생각처럼 잘 맞던 가요? 아니면 어려움도 많았나요?
개인적인 생각인데, 동기들과도 이야기하다보면 한예종은 정신력이 강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곳 같아요. 정말 많이 혼나요(웃음). 가끔 난 이 일이 맞지 않다는 생각도 하게 만들어요. 신을 준비해서 발표하면 그때그때 바로 코멘트를 받아요. 항상 친구들 앞에서 연기를 하는 게 수업이고, 학점을 받는 거니까요. 그런 식으로 수업이 진행되기 때문에 학년이 올라갈수록 난 연기에 소질이 없구나, 라는 생각을 하는 순간들이 많이 찾아와요(웃음). 끼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었고요. 한편으로는 뭔가 해냈을 때 만족감이나 보람을 느껴요. 친구들이 연기하는 것을 보며 발전하는 과정을 통해 느끼는 것도 많고요. 현대극부터 셰익스피어나 안톤 체호프 같은 고전까지 정말 다양한 작품을 만나 많은 것들을 배우게 된 것 같아요. 경험도 없고 이제 시작하는 신인이지만, 연기에 관심을 갖게 되고 연기가 아닌 다른 것들은 생각하지 않게 된 데는 한예종이 많은 도움이 됐어요.
<인간중독>에 출연하고 싶었던 이유는 무엇인가요?
시나리오를 읽었을 때 가슴 아픔과 희열의 순간을 지금까지 잊을 수 없어요. 그 마음 하나만으로 이 과정을 견뎌온 것도 있어요. 시나리오뿐만 아니라 책을 읽고 이렇게 가슴 아프게 와 닿았고 울었던 적이 오랜만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 뭉클했어요. 사랑에 대한 생각을 해본 적이 별로 없던 것 같은데, 이런 사랑을 해보고 싶었어요. 시나리오만으로 그런 순간을 맞이해서 오디션만 보러 다니는 배우 지망생이지만(웃음),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종가흔이 너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과연 임지연이 연기한다면 어떻게 그려질까 기대가 되더라고요.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만드는 시나리오였어요. 물론 감독님에 대한 신뢰도 있었어요. 감독님의 작품에 출연하고 싶었고, 전작들에서 여배우들을 환상처럼 그리는 모습을 동경했어요. 하고 싶다는 욕심이 부담보다 컸던 것 같아요. 저도 제가 그렇게 욕심이 많은지 몰랐어요(웃음).

종가흔 역은 신인을 염두에 두고 캐스팅할 거라는 정보가 있었나요?
정보가 전혀 없었어요.

그렇다면 김대우 감독 작품에 신인이 이런 큰 역할을 맡을 가능성은 없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어요?
상상도 못했어요. 미팅기회를 우연히 갖게 된 거예요. 물론 되면 너무 좋지만(웃음), 그런 게 있잖아요. 넘볼 수 없는(웃음). 설마 했고, 감독님 팬이라 뵙고 싶은 마음이 컸죠. 사실 시나리오 상의 종가흔이라는 인물 자체가 제 성격과 많이 달라요. 제가 그려보고 싶은 욕심이 생긴 거였지, 감독님이 어떤 이미지로 그릴지는 상상도 안됐어요. 역시나 감독님이 절 쳐다보지도 않더라고요. 관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질문도 하고 그럴 텐데(웃음), 질문도 안하시더라고요. 나와는 이미지가 안 맞는구나, 생각했는데 너무 좋게 봐주셔서 꿈만 같았죠. 미팅 끝나고 나오면서 소속사 대표님께 ‘안됐잖아요! 그럴 줄 알았어요. 안된다니까요!’라고 했던 기억이 나요(웃음).

종가흔 캐릭터 설정에 있어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요?
우선 그 시대에 27살이라는 나이의 여성은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잖아요. 아이도 있을법한 나이니까요. 다가가는데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받았고, 말할 수 없는 큰 아픔과 비밀이 있고, 그로 인해 변할 수밖에 없는, 살아온 환경이나 배경들을 이해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감독님과 굉장히 많은 이야기를 나눴어요. 스스로 부족한 게 많다고 느꼈고, 첫 작품이다 보니 그만큼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마음이 컸어요. 촬영 전에도, 촬영 중에도 감독님께 항상 여쭤봤어요. 가흔에 대해서 그리고 진평에 대해서 왜 이러는지, 어떻게 그려야하는지. 내적인 것뿐만 아니라 외적인 것도 섬세하게 도와주셨어요. 가흔의 드러나지 않는 관능적인 부분이 있다는 것, 그런 위치에 있는 남자가 모든 걸 내던지고 첫눈에 반할만한 매력이 있는 여자라는 것을요. 그런 여자는 어떤 여자일까 단순하게 생각하면서도 또 나름 입체적으로 그리고 싶었어요(웃음). 부족한 걸 알았기 때문에 절실했고 그만큼 가흔에 애정이 있었어요.
인물의 전사를 많이 생각했을 것 같아요. 유년 시절 부모님의 죽음을 마주했고, 그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경우진 집에 들어가 가정부처럼 성장했고, 원하지 않았지만 경우진과 결혼했고, 게다가 화교출신이고요. 전사 설정을 통해 그린 종가흔 캐릭터는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캐릭터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자라온 환경이 큰 영향을 미쳤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랑이 낯선 여자에요. 내가 이렇게 차분하고 냉정한 여자였나, 라는 생각이 자라온 환경 속에서 익숙해진 여자에요. 어떤 큰 일이 있어도 굉장히 담담한 여자에요. 주변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요. 그만큼 얼마나 큰 아픔을 겪었겠어요. 그 아픔을 견뎌낸 여자는 정말 강인하겠죠. 나약해질 때는 한 없이 나약해지지만 그게 또 드러나지 않아요. 드러내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여자에요. 그래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한다는 것 자체도 별거 아닌 여자고요. 주변의 여자들이 그런 가흔을 싫어하는 걸 스스로 알 수도, 모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전혀 의식하지 않아요. 가흔이 진평을 꼬셨다, 끼부렸다, 밀당의 고수다, 라고 보는 분들도 있는데, 가흔과 진평의 첫 만남부터 내 세상에 낯선 남자가 들어왔을 때 뭔가 모르는 정지된 순간이 있어요. 미묘한 끌림이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들었어요. 인생에서 처음 느껴보는, 자신도 모르는 미묘한 감정을 느꼈을 때 본능적으로 표현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리고 걷잡을 수 없이 커져버렸기 때문에 현실에 많이 부딪힌 거예요. 저는 그렇게 생각했어요. 잘 표현된 건지는 모르겠지만요(웃음).

김진평과 사랑에 빠지고 이별의 과정까지 종가흔의 감정의 흐름을 잡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정하기보다 흘러가는 대로 놔두고 싶었어요. 걷잡을 수 없잖아요. 사랑을 나누는 첫 장면도 처음 느껴보는 거라 그 순간 자체를 느껴보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진평도 어떻게 보면 가흔과 비슷한 부분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만인이 신뢰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남자이지만 굉장히 외로움을 느끼고 있다는 동질감에서 조금 더 끌렸을 것 같아요. 처음으로 감싸주고 싶은 남자, 그런 느낌이 들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사랑에 빠지거나 깊어지는 속도 같은 것들은요?
빠져드는 순간도 마찬가지지만 시간이 갈수록 당신이 내 우주라고 얘기하면서도 이건 아닌 것 같다고 하다가도 날 정말 사랑하는지 계속 물어봐요. 나중에는 그 정도 사랑은 아닌 것 같다고 단호하게 얘기하고요. 그 흐름 자체가 가흔이 흔들리고 빠지고 또 흔들리며 스스로 내면의 갈등을 겪는 과정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부분에서 힘들었던 건 사실이에요. 마음에 없는 이야기를 단호하게 하는 것일 수도 있고요. 가흔의 심리 상태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진평보다 가흔이 불쌍한 사람이죠. 표현을 하면 결과가 어떻든 후회가 덜 남는 것 같아요. 가흔은 주변의 여건이나 환경에 의해 마음에 없는 결론을 내려야하는 상황에 부딪히잖아요. 그래서 진평보다 가흔이 더 후회가 남을 것 같아요.
한편으로는 진평이 밉기도 했어요. 단순하게 생각하면 진평이 가만히 있었으면 이렇게까지는(웃음). 진평은 너무 순수하고 솔직하기 때문에 느껴지는 대로 표현한 거고, 그래서 진평에게는 직선적인 사랑일수도 있지만, 가흔 입장에서는 진평이 그렇게까지 하지 않았다면 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수도 있으니까요(웃음).

진평도 스스로 원해서 그런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아니잖아요.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있어 주저하고 서툰 인물이 감정을 주저 없이 표현하는 가흔을 만나고 본인도 용기를 내서 표현하게 된 거죠. 가흔이 표현하지 않았다면 진평도 그렇게 못했을 거예요.
힘든 과정도 있었지만 그래서 재밌었던 것 같아요. 진평의 생각도 가흔의 흐름을 잡아가는 과정에서 달라지니까요. 굴곡이 많았기 때문에 가흔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는데 있어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어요.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특정한 장면보다 흐름을 잡아가는데 있어 아쉬움이 많죠. 첫 장편인데 단편과의 가장 큰 차이와 어려움은 인물의 흐름을 잡아가는 것이었어요. 순차적으로 찍는 것도 아니었고요. 항상 대본을 보면서 생각했고, 학교 다니면서 익힌 저만의 방법 중 하나인데 가흔의 일기를 썼어요. 내가 가흔이라 생각하고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상상을 하면서 일기를 쓴다고 생각했어요. 정말 말도 안 되는 저만의 상상이라 지금 읽어보면 웃겨요(웃음). 큰 도움이 됐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쌓이고 쌓여서 나와는 전혀 다른 가흔을 이해하는데 있어 도움이 되지 않았나 생각이 들어요.

극중 가흔의 목소리는 실제 임지연의 목소리 톤보다 높아요. 김대우 감독의 요구라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가흔은 표정이나 행동으로 감정들이 적나라하게 드러나지 않는 정적인 캐릭터잖아요. 미묘한 차이나 결로 인해 감정을 전달하는 캐릭터인데 목소리 톤 때문에 그 부분이 부각되기 전에 묻힌 것 같아요. 신인들이 캐릭터 설정을 위해 과도하게 설정한 단점처럼 보일 수도 있고, 표정도 정적이라 미묘한 차이를 발견하기 전에 표정 연기도 경직됐다는 판단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대부분 후시로 녹음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 실제 목소리 톤도 그렇지 않다보니 더 아쉬움이 들더군요.
제 목소리는 중저음이고 보이시해요. 감독님과 대사 톤을 같이 잡아갔어요. 제 목소리에서 좀 더 여성적인 느낌을 주려고 톤 자체를 높였어요. 아쉬움도 남지만, 결국 제가 부족하기 때문이겠죠(웃음).
송승헌과의 호흡은 어땠나요?
방송에서 스스로 무뚝뚝하다고, 표현을 잘 못한다고 말씀하시는데 그 안에 부드러움과 자상함이 있어요. 처음 만난 순간부터 편하게 대해주셔서 불편함이 없었어요. 감독님은 악동기질이 있다고 표현하는데, 알게 모르게 유쾌하고 특이한 유머러스함이 있어요. 제가 웃음이 많은 편이라 저는 가끔 빵빵 터지면서 재밌게 촬영한 것 같아요(웃음). 재밌게 배우면서 촬영할 수 있어서 고맙게 생각해요.

의견이 분분한 엔딩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해요?
저라면 사랑을 선택할 것 같거든요. 진평을 따라갈 것 같아요. 감독님께서는 가흔이 그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는 건 너무 사랑해버렸기 때문에 진평을 따라가면 일상이 되어 버릴까봐, 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또 2년의 시간이 흘러 평범한 군인의 아내로 전과 같은 따분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는 가흔에게 자신과 너무 다르게 큰 변화를 겪고 죽음에 이른 진평의 사진을 보면서 이게 진짜 사랑이었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고통이라고 말씀을 하셨고요. 그 말에 공감해서 그렇게 표현하려고 노력했어요. 다르게 판단할 수 있어요. 그게 맞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저는 그런 감정으로 연기하려고 노력했어요. 그 장면이 마지막 촬영 날이었어요. 오만가지 감정이 들면서 굉장히 눈물이 났어요(웃음).

<인간중독>을 통해 어떤 것들을 느끼고 얻었나요?
너무 많은 것들이 힘들고 부담이기는 했어요. 하지만 실제 성격은 긍정적이라 최선을 다하면 된다고, 너무 좋은 기회니까 나태해지지 말고 열심히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어요. 부족하고 아무 것도 모르는 신인이 너무 많은 복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은 분들이 도움을 주셨어요. 3개월 반 동안 가흔으로 살 수 있었던 시간이 그래서 너무 행복했고, 이런 선물을 또 다시 받을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감사해서 후회는 없어요. 지금 정말 많은 이야기들을 듣고 하루하루를 다르게 살고 있거든요. 하루에도 기분이 정말 수도 없이 달라져요. 내가 이렇게 기분파였나, 싶을 정도로요(웃음). 호평이든 혹평이든 관심 자체가 너무 감사해요. 그래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에요.

어떤 연기를 하고 싶고, 어떤 배우가 되고 싶나요?
도전하는 것을 좋아해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할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배우로서 재미와 보람을 느끼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내가 모르던 나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때가 색다르고 매력 있더라고요. 앞으로 많은 경험을 하고 내공이 쌓이면 사람들이 봤을 때 정말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는, 무궁무진하다고 느껴지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웃음). 그래서 또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연기 잘하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2014년 5월 20일 화요일 | 글_서정환 기자(무비스트)
사진_김재윤 실장(studio 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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