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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이런 남자였어? <돈의 맛> 김강우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VIP 시사회 끝나고 술자리를 가졌다고 들었다. 영화에 대해 나온 이야기 중에 어떤 의견이 가장 인상 깊던가?
임상수 감독님의 전작에 나왔던 인물들 중에 개성 있는 캐릭터들을 모아 놓은 종합선물세트 같은 영화라는 의견이 있었다. 그 말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렇다면, 당신이 연기한 주영작은 전작의 누구와 닮았을까?
글쎄. 영작은 기존에 없었던 느낌이라고 하던데.(참고로 <그때 그사람들> <바람난 가족>의 남자 주인공 이름도 주영작이다.)

<하녀>의 은이(전도연)가 있지 않나? 영작은 은이와 다른듯하면서도 닮았다. 타인의 힘에 순응하다가 끝내 폭발하지.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밀고 나가는 강단도 비슷하고.
사실 나는 은이라는 캐릭터가 잘 이해가 안 갔다. 은이의 불행은 어쩔 수 없는 핍박에 의해서라기보다, 자의에 의해서가 컸다고 보거든. 영작과는 접근방법이 다르다고 봤다.

영화 속에는 영작의 과거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당신이 다른 매체와 인터뷰한 걸 보니 영작은 유학파에 엘리트였다고 하더라. 대본에는 있었는데, 최종편집에서 빠진 건가?
그건 아니다. 감독님과 상상으로만 설정한 거다. 재벌가 비자금까지 관리하는 사람이면 소위 말하는 스펙도 좋고, 초고속 승진을 했을 거라는 설정인 거지. 연봉도 몇 억은 될 테고 말이다. 부족함이 없지만 윤회장(백윤식)을 롤 모델로 보고 더 나아가려는 인물이라 생각했다. 윤회장은 샐러리맨들의 최종 목표일 테니까.

영작의 과거를 영화에서 보여줬으면 좋지 않았을까란 생각이 든다. 그 사실을 관객이 아느냐 모르느냐에 따라서 영작이라는 캐릭터의 결이 굉장히 달라 보일 수 있으니까. 왜, 보통의 영화들을 보면 가진 것 없이 밑바닥에서 어렵게 올라온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는 경우가 많잖나. 그에 비해 영작은 가난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자란 인물이다.
기자님 말이 맞다. 그래도 대중들에게 영작의 스펙이 이 정도라고 보여주지 않아도 되는 게, 이 영화는 영작의 이야기가 아니라 관계에 대한 이야기니까. 캐릭터들이 워낙 세기도 하고. 관객이 판단하기 나름인 것 같다. 아쉬움은 없다.
완성된 영화를 보기 전에 기대한 게 있었을 텐데, 실제로 본 영화는 어떻던가.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감독님이 말하고자 하는 색깔도 분명하고. 처음 볼 때는 영작의 시선으로 관객들이 따라가는 영화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시 보면서 느낀 게 영작 뿐 아니라 백여사(윤여정)나 윤회장의 시선으로도 볼 수 있는 영화더라. 백여사 입장에서, 그러니까 중년 여성의 시선으로 보면 영화가 또 다르게 보이는 거지. 여러 시선들이 공존하는 영화다.

노골적인 대사가 굉장히 많이 등장한다. 노골적으로 얘기하는 게 세련되지 못한 방법이라는 인식이 있는데, <돈이 맛>은 그걸 오히려 역이용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나라 대화법이나 관습에서는 자기 욕구를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걸 상스럽다고 여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자기가 느끼는 걸 가감 없이 얘기한다. 백윤식․윤여정 선생님은 감독님의 전작을 해보셔서 그 어법이 익숙하셨겠지만, 나나 효진씨 같은 경우는 조금 당황스러운 부분이 있었다. 감독님의 어법을 이해하는 게 첫 관건이었지. 초반에는 갸우뚱 하는 부분이 있었는데, 주어진 자극에 자연스럽게 반응하며 따라가다 보니 적응이 되더라. 당혹스러우면 그 당혹스러움 그대로를 표현하려 했다. 계산하는 순간 더 촌스러워지니까.

노골적인 대사만큼 은유도 가득하다. 영작이 구타당하는 장면에선 뒤쪽 스크린으로 김기영 감독의 <하녀>가 상영되는데, 그건 어떤 의도로 이해했나?
숨겨둔 장치다. 감독님의 익살일 수도 있고. 그런데 그게 원작 <하녀>(1960년)라는 걸 모르는 분도 많을 거라 생각한다. 백씨 일가가 <하녀>(2010년)를 감상하는 장면도 그렇고. 감독님 전작을 봤던 사람이라면 재미있을 거다. <하녀>에서의 어린 소녀가 성장해서 나미(김효진)가 됐다고 해석할 수도 있을 테고 말이다. 사실 촬영할 때 어떤 장면을 넣어야 하는지, 다들 고민을 많이 했다. 전도연 선배 얼굴이 나오는 게 맞느냐 아니냐를 두고도 고민했고. 그런 걸 찾는 숨은 재미가 있지만, 큰 의미는 없다.

<돈의 맛>이 <하녀>의 속편이라는 얘기가 있다.
글쎄. <돈의 맛>은 관계에 대한 영화다. 모욕에 관한 영화고. 많은 분들이 <하녀> 속편이라고 생각하시는데, 그렇게 다가가면 재미없을 것 같다.

아, 그렇게 생각하나?
영화 속에 숨은 비슷한 장치는 있겠지만, 다른 얘기라고 생각한다. <하녀>가 집안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다뤘다면, <돈의 맛>은 그 범위가 조금 더 커졌다. 영화에 등장하는 외국 브로커만 봐도 그렇다. 그들이 우리나라에서 벌어가는 돈이 어마어마하잖나. 어제 신문을 보니까, 외국인들이 작년에 주식으로만 256조를 벌어갔다고 하더라. 그러니까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착취를 당하고 있는 거다. 영화에는 또 필리핀 하녀가 등장하는데, 필리핀이 전 세계 하녀 수출국이잖나.
음. 고백하자면 필리핀이 하녀 수출국이라는 사실은 몰랐다.
가정부가 가장 많이 수출되는 나라라고 하더라. 필리핀 하녀를 등장함으로서 나라 사이에도 이상한 관계가 형성된다. 계층이 생기는 거지. 그런 식으로 <돈의 맛>은 <하녀>보다 조금 더 넓은 관계를 다룬다.

임상수 감독님은 배우들에게 독특한 디렉션을 주시는 분이다. 당신에게 내린 디렉션 중에 기억에 남는 게 있다면?
베드신?(웃음) 윤여정 선생님과의 베드신에서 독특한 디렉션 들이 있었지. 다리를 하늘 높이 치켜 올린다든지 하는 것들. 감독님 본인이 직접 연기 시범도 보여주고 하신다.

감독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시범을 보여주면, 배우입장에서 연기하기 편할 것 같다.
아무래도. 간혹 당혹스럽긴 하지만.(웃음)

가까이에서 본 임상수 감독님은?
재미있는 분이다. 강단도 있으시고. 많은 공격 속에서도 자기 색깔로 일곱 작품을 꿋꿋하게 만들기가 어디 쉽나. 나라면 귀찮아서라도 못한다. 그런데 그걸 즐기신다. 청년 같다니까.

<돈의 맛>이 홍상수 감독님의 <다른나라에서>와 함께 칸에 초정됐다. 홍상수 감독님과는 <하하하>에서 작업을 했었는데, ‘홍상수 영화의 인간형’과 ‘임상수 영화의 인간형’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같으면서도 약간 다른데.
두 인간형 모두 솔직하다. 자기 욕구에 대한 표현도 직접적이고. 우리는 안에 엄청난 꿍꿍이를 가지고 있으면서 아닌 척 하잖나. 그걸 가감 없이 끄집어낸다. 결국 표현 방식은 다르지만 두 분이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비슷하다고 본다. 그걸 고급스럽게 하느냐(홍상수), 날것 같이 포장을 더 하느냐(임상수)에서 차이가 나는거지.

영작에겐 ‘홍상수스러운’ 찌질함도 엿보이던데. 어떤 인물형을 연기할 때 더 재미있나.
다 재미있다. 두 감독님 모두 독특하고 악동 같으시다. 홍상수 감독님의 가장 큰 칭찬은 “(목소리 변조하며) 아~ 귀여워~”다.(웃음) 그게 잘했다는 의미다. “귀여웠다, 이번에.”이러는 게.

귀엽다는 말, 많이 들었나?
많이 들었던 것 같은데.(웃음) 반면 임상수 감독님의 칭찬법은 “나쁘지 않아요.” 두 분의 성향차이다.
<돈의 맛>에서 영작은 상대 캐릭터에 따라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인물이다. ‘백금옥 대 주영작’, ‘윤회장 대 주영작’, ‘나미 대 주영작’. 어떤 캐릭터와 붙을 때 흥미롭던가?
아무래도 백여사다. 긴장감이 넘치니까.

백여사를 보면서는 당신이 연기한 <남자 이야기>의 채도우가 생각나더라. 둘 인물 모두 자신이 나쁜 사람인 걸 모른다. 선천적으로 남을 밟고 일어서는 걸 당연시 하고.
맞다. 다른 게 있다면, <남자 이야기>의 채도우는 감정이 없다. 백여사는 감성이 없을 뿐 감정은 있는 사람이고. 이 여자는 자신의 감정을 안다. 솔직하고. 다만 자라면서 따뜻한 체온이 없어져 버린 거다. 반면 채도우는 정신적 결함으로 인해 감정마저 없다. 그래서 더 무섭다.

감성을 잃어버린 백여사의 감정들은 이해가 되던가.
그럼. 두 번째로 영화를 볼 때는 백여사와 윤회장이 너무 불쌍했다. 맡은 자리와 돈 때문에 결국 불행해졌으니까. 물론 재벌 중엔 행복한 사람도 있다. 그걸로 유추해 봤을 때, 자기가 큰돈을 품을 수 있는 그릇이 되면 행복한 거고 아니면 불행해 지는 거다. 나? 나는 품지 못할 것 같다. 하기 싫은 일을 많이 해야 하잖아. 행사도 가야하고, 대중 앞에서 책임도 져야 하고, 못된 짓도 하면 안 되고. 물론 실제로는 못된 짓들을 많이 하지만.

배우라는 직업도 그런 면에서 비슷하지 않나?
비슷하다. 우리나라에서 배우는 성인군자가 돼야 한다. 그런데 그러긴 힘들다. 보통사람들보다 감정기복이 심하니까 배우를 할 수 밖에 없는 건데, 그리고 감정을 계속 써먹어야 하는 게 배우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나는 사람들 많은 곳에 가는 걸 싫어한다. 백화점만 가도 어지럽다. 그리고 ‘남에게 도움은 못줄말정 피해는 주지 말자’는 생각을 항상 한다. 그게 쉽게 생각하면 아무것도 아니지만, 넓은 범위에서 보면 큰 거거든. 예를 들어 내가 친구랑 술이 너무 마시고 싶어. 그런데 내일이 촬영이야. 되게 중요한 씬이 있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술을 마셨어. 나를 위해. 내 재미를 위해. 그러면 분명 다음날 촬영에 피해를 주게 되거든. 흥행은 이후의 일이고 내 부주의 하나로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입는 건데, 당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짜증나겠나.

혹시 그런 비슷한 피해를 준 경험이 있었던 거 아닌가?
없다.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았다는 확신은 있다. 흥행에 도움은 못줬을지 모르지만, 적어도 ‘저 새끼 때문에 망했어’는 없었다고 믿는다.

영화라는 게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작업이다 보니, 피해를 당하는 경우가 많을 거다. 내가 피해를 안준다고 해도 말이다.
많다. 그래서 피해를 주는 사람을 되게 싫어한다. 그런 사람은 배우를 안했으면 좋겠다.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게, 자기 꿈을 위해서 남에게 피해 주는 사람이다. 싫다. 정말 싫다. 예를 들어 내 꿈이 셰프야. 그런데 실력이 없어. 뭣 모르고 내 음식 먹은 사람들은 “에이~ 젠장!” 이렇게 되는 거잖나. 결국 피해를 주는 거다. 그런 게 모든 직업에 통용된다고 생각한다.
미국으로 유학 준비를 하던 1997년에 IMF로 인해 유학의 꿈이 좌절됐다고 들었다. 그때 돈의 맛을 몸으로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당시엔 부모님에게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았다. 내 꿈을 위해 형제들이 희생당하는 것도 싫었고. 그런데 그게 운명인 것 같다. 유학을 안 감으로 해서 배우를 하게 됐으니까.

계획했던 게 어그러졌는데, 방황은 안 했나.
화가 났다. 나라가 갑자기 망한 건, 내가 계획했던 게 아니었으니. 괜히 이상한 사람 뽑아서 내 꿈을 방해했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고. 내가 그때 선거권이 없어서 남에게 화를 돌린 거지.

윤회장은 돈 때문에 모든 걸 누리고 살았지만 돈 때문에 ‘모욕’을 당했다고 말한다. 당신도 돈 앞에 모욕을 당한 경험이 있을까.
많지. 신인 때 특히 많이 당했다. “너는 배우하려고 하는 애니, 안하려고 하는 애니” 부터 해서 많았다. 그런데 어리바리할 때는 누구나 다 당하는 것 같다. 조금 더 나은 위치에 있기 때문에 가하는 모욕들을 말이다. 물론 내 부주의로 인한 모욕은 순응한다. 이유 없이 가해지는 모욕이 문제일 뿐이다. 만약 내 성향이 조금 덜 까칠하고 화합을 잘하는 편이었다면, 쉬운 길을 갈 수 있었던 상황이 많았을 거다.

본인 스스로 까칠하다고 생각하나?
그렇다. 까칠하다.

까칠하다는 얘기도 듣고?
얘기도 듣고.(웃음) 그런데 까칠하고 예민한 것들이 없으면 배우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게 상대를 공격하려는 게 아니라, 보통 사람보다 날이 조금 더 서 있는 것뿐이니까. 그렇다고 나를 이해해 달라는 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많은 자리에는 안 간다. 피해를 안주려고. 친한 친구들을 만났을 때도, 그들이 영화나 연예계 관련 얘기를 하면 “갈게!” 하고 그냥 계산하고 나와 버린다.

아니, 왜? 영화 얘기인데.
친한 친구들하고까지 그런 얘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내가 친구들에게 “너, 지금 매출이 얼마야?”라고 안 물어보는 것과 같다. 그런 것들이 왜 궁금한지 모르겠다. 다 똑같다고 생각하거든. 배우라는 게, 직업일 뿐인 거지. 우리 와이프도 나에게 일적인 건 안 물어본다.
영화하는 사람들과 모이면. 그때는 영화 얘기 많이 하고?
아우~ 뜨겁게 한다. 밤새서 뜨겁게. 그건 관심사가 같고, 서로 먹고 살려고 하는 사람들끼리니까. 단순한 호기심으로 물어보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거다. 나는 인터넷을 안 본다. 보면 머리가 아프다. 소심하기 때문에 아픈 거다. 대범하지 않으니까. 왜 그렇게 남의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지, 솔직히 나는 잘 모르겠다. “왜 애 안 낳아요?”, “왜 결혼 안 해요?” 그런 질문은 정말 실례라고 본다.

맞다. 우리는 그런 걸 너무나 당연하게 묻지.
그러면서도 나는 되게 한국 사람이다. 누가 지켜야 할 거 안 지키면 속상해 하고, 그런다.

함께 뜨겁게 영화 얘기를 나누는 사람은 누구인가?
배우들과는 안 친하다. 대신 제작하시는 분들이나 함께 작업했던 감독님들. 그 분들과 가깝게 지내면서 얘기도 하고 자문도 구한다.

그들의 의견은 수렴하는 편인가.
100% 수렴한다. 내가 까칠하긴 해도, 귀는 열려 있다. 귀가 얇기도 하고. 하하하.

하하. 의외인데. 어떤 부분에서 귀가 얇은가? 혹시 작품선택에서도?
작품 선택에는 안 그런데, 잘 했다고 하면 되게 좋아한다. 못했다고 하면 굉장히 심각해지고.

작품 선택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타이밍. 그리고 전작과 다른 느낌의 캐릭터. 전작과 비슷하면 개런티를 더 준다고 해도 하지 않는다, 나는.

그래서일까. 당신은 이미지가 고착화돼 있지 않다. <식객> <마린보이> <무적자> 같은 장르영화에도 출연했지만, <경의선> <하하하> 등의 작가주의 영화에도 많이 나왔다. 특히 작가주의 영화에서는 상도 받고 반응이 좋았다. 그에 비해 장르영화에서는 성과가 내 기억으로는 기대만큼은 아니었던 걸로 안다.
맞다. 이제부터 해야지. 20-30년 연기하신 분들이 들으면 웃으시겠지만, 나에게 10년은 굉장히 중요한 시간이었다. 연기 시작할 때, 10년은 해야 영화배우라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디 가서 영화배우라는 얘기를 안했다. 청국장 맛을 제대로 내려면 10년은 해봐야 한다고 본다. 그림쟁이도 10년은 해야 진정한 그림쟁이라고 할 수 있고.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 중 하나가 취미를 특기라고 얘기하는 거다.
공감한다. 대부분이 두 가지를 혼동하지.
그런 면에서 나는 취미가 없다. 연기 하나 하기도 너무 빠듯하거든. 그런데도 이 정도다. 내 그릇이 이런데 어쩌겠나, 싶다. 취미가 없으니까 여행을 자주 간다. 계획 없이 그냥 떠나는 여행. 영화하면서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생활이 너무 나태해진 것 같다 싶으면 여행을 가서 많이 걷고 많이 본다.

여행을 가서는 비우고 오는 편인가 담아서 오는 편인가?
비우려고 가는데 결국은 담아서 온다.

이상적인 여행이네.
결과적으로 나를 보는 거다. 배우는 자기를 객관적으로 보는 게 필요하다. 남들이 얘기 하는 것의 20%만 믿으면 딱 나의 현실이다. 누가 연기 너무 좋았어, 라고 하면 그 칭찬의 20%만 믿는다.

굉장히 객관적이다.
객관적이다. 어떻게든 객관적으로만 살면, 지속성은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배우들이 잘 가는 시사회 장이나, 행사 같은 곳에 안 가는 거고.

그러고 보니 영화 밖에서의 당신을 본 기억이 거의 없다.
사람은 보고 느낀 대로 표현할 수밖에 없다. 배우는 가장 보편적인 삶을 보여줘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런데 배우는 특별해야 한다? 글쎄. 내가 결혼할 때 주위에서 그러더라. “왜 결혼하냐”고. 정말 웃겼다. 아니, 남이 결혼한다는데 왜 자기들이 뭐라 그래. 오랫동안 사랑해서 만난 사람과 시기가 돼서 결혼을 한다는데, 배우가 뭐 특별하다고. 사람 사는 건 다 똑같다. 재벌이라고 다를 것 같나. 똑같다. 그리고 아까도 말했지만, 나는 다른 사람이 어떻게 사는지 정말 안 궁금하다. 그래서 결혼식을 비공식으로 했는데, 그때도 “왜 비공식으로 해요?” 이러더라. 마음 같아서는 “와서 뭐하시게요. 저랑 안 친하지 않아요?”라고 말하고 싶었다.(웃음) 얼마 전 돌잔치 때는 딱 50명만 불렀다. 그 중에 가족이 35명, 나머지는 친한 친구들, 회사 동료들. 배우는 한 명도 안 불렀다.

함께 작업하는 배우들이 섭섭해 하지 않던가.
섭섭해 하긴 했는데, 부담 주는 게 싫다. 괜히 20만원이라도 가지고 오실 텐데, 부담이잖나.

그럼 함께 작업한 동료들 경조사 때는 어떻게 하나?
사실 되게 못됐지만, 돈만 내고 안 갈 때가 많다.

아예 모르는 척 하는 건 아니니, 못된 건 아니다.
괴팍한 거지.
아까 자신을 배우라고 소개하는 게 부끄러웠다고 했는데, 그럼 배우라고 말해도 괜찮겠다 느낀 건 언제인가?
시간 타이밍으로 잡으면 올해인 것 같다. 10년은 했으니까. 어떤 직업이라도 10년을 하면 인정 한다. 데뷔 6년차 때였나? 그때 신인이라고 했다가 욕을 엄청 먹었다. 댓글에서. “네가 무슨 신인이냐?” 내 마음은 그게 아니었는데.

‘돈의 맛’과 밀접한 얘기를 해 볼까, 돈에 대한 경제관념이 생긴 건 언제인가?
내가 또 간은 작아서 큰돈은 못쓴다.(웃음) 돈을 팍팍 쓰지도, 잘 불리지도 못하고. 그래도 관심은 많다. 신문 같은 거 많이 본다. 세상 돌아가는 걸 알아야 하니까. 남들이 아는 만큼은 아는 것 같다.

지출 중에 본인을 위해 가장 많이 쓰는 건?
자동차 같은 것에는 욕심이 없다. 그나마 여행가는 거? 아이가 생긴 후에는 아이에게 많이 쓴다. 그런데 와이프하고 가장 많이 싸우는 게, 내가 아이에게 다 해 주지 말라고 그러거든. 그러면 나중에 진짜 소중한 걸 모를 것 같아서. 아이 옷도 얻어 입히라고 한다. 남 쓰던 장난감도 부끄러워 말라고 하고. 그게 왜 부끄러워. 나중에 우리가 산 것도 다른 아이를 위해 주면 되지.

엄마의 마음은 그게 아니라 들었다.
그런 것 같다. 몰래 자기 돈으로 사고 그러더라. 아무래도 첫째니까.(웃음)

만약 로또 1등에 당첨되면 어떻게 할 텐가.
외국으로 도망갈 거다. 가서 2년 정도 쉬다 올 거다. 그 정도면 돈이 다 떨어질 것 같거든. 돌아와서는? 다시 배우 해야지.(웃음)

처음 당신 손으로 돈을 벌었을 때, 기억나나?
기억난다. 고등학교 때 호프집 아르바이트를 해서 처음 돈을 벌었다.

그때의 돈은 맛은 어땠나?
아~ 달콤했다. 그 돈이 가장 맛있었다.
노동의 대가는 어떻던가. 아쉽게도 노동의 대가만큼 지급되지 않는 게 현실이잖나.
맞다. 있는 사람이 계속 벌 수 밖에 없는 구조지. 그런데 그걸 한탄해 봤자 소용없다. 자기가 가진 것으로 행복을 느끼려고 해야 한다.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 부탄은 국민 소득이 우리의 몇 백분의 1도 안 된다. 그건 뭐냐면 모르기 때문에 행복한 거다. 가진 것 안에서 만족하니까 행복한 거다.

한때 연출을 꿈꾼 걸로 알고 있다. 배우 입장에서 좋은 연출가란.
배우와 소통을 잘 하는 사람. 어떨 때는 솔직해야 하고, 어떨 때는 여우같아야 하고, 어떨 때는 고집이 있어야 한다. 우리들은 감정에 따라가는 사람들이라 감독에 대한 믿음이 중요하다. 물론 기본적으로 갖춰진 게 있어야겠지. 얕은 지식으로 얘기하면 신뢰가 안 가니까. 한마디로 연출가는 말 잘 하고 똑똑하면 될 것 같다. 생활이 개판이더라도. 연출가가 성인군자일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럼 배우가 보는 좋은 배우란?
사람 냄새 나는 배우. 인간미가 넘치는. 착하지 않아도 된다. 나에게 까칠해도 된다. 왜 그런 거 있잖아. 가슴이 살아 있는 사람. 꽃을 보고 예쁘다고 얘기할 수 있는 사람. 기분 나쁘면 나쁘다고 표현하고 기분 좋으면 좋다고 표현할 수 있는. 그게 사람이다. 그런 가식 없는 사람이 좋은 배우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질문이다. 영화에서 말하는 ‘돈의 맛’은 ‘섹스의 맛’ ‘권력의 맛’으로도 치환가능하다. 당신이 요즘 느끼는 인생의 참 맛은 뭔가?
내가 버는 돈으로 참새 같은 아이가 입을 벌렸을 때 뭐 하나 넣어 줄 수 있는 맛? 그게 나에게는 돈의 맛이다.

오~ 너무 마음에 드는 답변이다.
요즘 들어서 그런 생각을 자주 한다. 이젠 돈의 의미가 생겼다. 나에게도.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2년 5월 24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3 )
freegod13
김강우씨 너무 몸이 좋던데요??연기도 많이 느신것같고 이영화는 김강우씨와 김효진씨 보는 맛으로 봤습니다 앞으로도 신인처럼 임해주시길!!   
2012-06-07 00:23
killer8919
예전에 무적자에서 냉철한 형사로 기억되는데 요번엔 돈 맛을 알아가는 비서역을 맡아 십분 자기 매력을 발산 하신것 같습니다. 남성미가 물씬 풍기고 섹시함까지 있어 또 다른 김강우를 찾은 것 같습니다. 이젠 카멜레온같이 어떤 역활이든 하든 잘 해내실것 같습니다. 김강우 화이팅!!!   
2012-05-28 04:40
kgs301
마린보이때 박시연씨랑 나왔던게 기억이 나네요. 돈의 맛 아직 영화로 보진 않았지만 기대가 커요.
흥행대작 생기셨으면 좋겠네요.   
2012-05-28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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