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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례적이고 정직한, 뜻 깊은 출발 <반두비> 백진희
2009년 7월 2일 목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90년생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학교는 일찍 갔더군요.
제가 빠른 90년생이에요. 원래 지금 2학년이 됐어야 했는데 <반두비>를 찍느라 휴학을 해서 이제 2학기에 복학하려고요.

연극영상학 전공인데.
예. 연출 배우고 있어요.

연기가 아니라 연출 지망생인가요?
원래 연극영화과에 가고 싶었지만 아버지께서 반대하셔서요. “연기는 대학가서 학원이라도 다니면서 시작할 수 있는 길도 있다지만 만약 대학부터 그 길을 선택했다가 나중에 그 길이 너랑 맞지 않거나 여러 가지 일 때문에 그만 두게 됐을 땐 네가 할 게 없지 않냐. 여러 가능성을 열어놓고 해라.” 하셨죠. 그래도 관심 있는 분야가 이 쪽이다 보니까 연기가 안 된다면 연출 쪽으로라도 가자 싶어서 이렇게 됐어요.

연극영화과에 가는 건 반대하셨지만 연출 공부는 반대하지 않으셨나 보군요.
분야에 대한 반대는 아니셨어요. 공부를 하라는 거죠. 학생의 본분은 공부인데 공부를 벗어나서 다른 걸 하는 건 아니라고, 네가 아직까지 부모 밑에 있으면 부모님 말씀을 따르라고 하셨어요. 연기한답시고 괜히 애가 붕 떠서 이도 저도 아닌 채 시간만 낭비할까 봐 걱정되신 거 같아요. 그런데 연출과 간다고 하니까, 거긴 시나리오 쓰는 것도 배우고 그렇게 공부하는 바가 있으니까.

아무래도 기본적인 원칙을 중시하시는 편이신가 봅니다.
맞아요. 그런 걸 중요시 하세요. 저는 어릴 때 아빠의 그런 면들이 이해가 안 됐어요. 청소년 때나 사춘기 때. 이런 말 하면 안될 거 같은데, 아빠가 너무 틀에 박히신 게 아닌가라고 생각할 때가 있었죠. 그런데 제가 이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교를 다니다가 연기라는 사회생활을 하는 셈이잖아요. 부모님이 제어해주실 수 있는 부분이 하나도 없고 제가 스스로 알아서 해야 되는 사회 생활을 하는 건데, 그러다 보니 아빠가 하신 말씀이나 저를 키우신 방식이 옳았다는 걸 새삼 깨닫게 되는 거 같아요.

어머니께서도 반대하신 건가요? 그리고 영화에 출연한다니 아버지 반응은 어땠나요?
엄마는 전적으로 해주시려고 하거든요. 원래 고등학교 때부터 하고 싶었던 건데 대학교 와서 영화도 찍고, 그렇게 조금씩 하니까 좋아하세요. 그래도 아빠는 이제 학교 돌아가면 학업에 열중하라고 하시죠. 엄마는 그냥 신기해하고 좋아하시는 거 같아요. 친구분들 만나면 가끔씩 얘기한다고 하시더라고요. 우리 딸 영화 나오고, CF도 어디어디 나왔다고. (웃음)

부모님께서 혹시 <반두비>를 보셨나요?
부모님은 아직 못 보셨어요. 제가 장난으로 엄마한테, “보고 싶어?” 그랬더니, “아니, 별로.” 그러셔서, “보고 싶으면 돈 주고 사서 봐.” 그러니까 됐다고, 안 보겠다고 그러시는 거에요. 아무래도 표를 드려야 보실 거 같아요. (웃음)

조금이라도 연출 공부를 한 셈인데 그 덕분에 생겼다고 할만한 변화는 없을까요?
연출 쪽을 공부하다 보니까 스태프 분들의 고생을 조금이나마 알 거 같아요. 제가 1학기 때 조명을 배웠는데 그 무거운 걸 나르고, 수업 다 끝났지만 조명이 다 식을 때까지 기다려야 하고, 되게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영화 찍을 때 스태프 분들에게 조금 더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됐어요. 다만 아직 깊게 배운 게 없어서 영화에 대한 전반적인 시선이 달라졌다거나 이런 말을 할 수 있는 아닌데 작게나마 스태프 분들의 노력에 대해 느낄 수 있는 거 같아요.
오디션을 통해서 <반두비>에 출연하셨죠. 오디션에 참가하게 된 경위가 궁금합니다.
제가 맨 처음에 출연한 <사람을 찾습니다>의 이서 감독님이 신동일 감독님과 친하세요. 그래서 이서 감독님이 저를 추천해주셔서 그렇게 처음 뵙고 시나리오를 본 다음에 <반두비> 오디션을 본 거에요.

신동일 감독님은 조금 섬세한 편이시죠.
사람 눈을 안 쳐다보시잖아요. 그죠? (웃음) 감독님과 처음 미팅을 했을 때, 감독님께서 제 눈을 안 쳐다보시는 거에요. ‘내 얼굴에 뭐가 묻었나?’ 생각했어요. (웃음) 그렇게 사적으로 만나면 그러시지만 현장에서는 영화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해주셨어요. 그래서 오히려 민서 캐릭터를 편하게 연기할 수 있었죠.

그럼에도 신동일 감독님의 영화는 상당히 놀랍게도 세죠. 꽤나 직설적인 발언들도 등장하고요.
그 직설적이라는 걸 누구는 나쁘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저는 그게 좋다고 생각해요. 모든 영화들이 밝은 사회만 그리는 건 사실 이 세상에 희망이 없기 때문에 가상으로나마 영화 속에서 희망을 보여주려고 하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거든요. 그런데 <반두비>란 영화는 아닌 거죠. 정말 있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직설적으로 말을 내뱉고 행동하잖아요. 그런데 감독님 혼자서 글을 쓰신다거나 저 혼자서 그에 관한 글을 인터넷에 올린다면 전혀 힘을 낼 수 없잖아요. 그 말에 담긴 메시지가 전달되기 힘든데 이렇게 매체를 통해서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는 건 효과적이라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가려운 부분도 긁어줄 수 있고, 현실에 없는 희망을 가식적으로 보여주는 게 아니라 진실된 희망을 주잖아요.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일단 보면서 웃을 수 있는 영화이기도 하고요.

편차는 있지만 신동일 감독님의 두 전작이 공통적으로 무거운 정치적 메시지를 던지는 영화란 점은 명확하죠. 그만큼 <반두비>도 무거운 작품이 되지 않을까 걱정되진 않았나요?
<방문자> 상영할 때 감독님께서 시사회 표를 주셔서 보러 갔던 적이 있어요. 생각 없이 가서 봤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렇지만 약간 무겁다는 생각이 들긴 했어요. 그래서 <반두비>가 청소년에게 많이 보여지길 원하는 영화이니만큼 <방문자>처럼 무겁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영화를 찍게 됐죠. 그런데 <반두비>는 아무래도 여고생이 주인공이라서 그런 건지 몰라도 정말 앞의 두 작품과는 달리 정말 유쾌하고 밝은 영화잖아요. 그래서 감독님께 두 작품에 못지 않게 좋은 성과를 거두신 거 같다고 축하 드렸어요. (웃음)

올 해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반두비>가 2개 부문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사정이 있어서 전주에 못 갔는데 폐막 전날이었나, 검색어에 막 오르는 거에요. 그래서 깜짝 놀랐어요. 신기했죠.

그전에 이미 백진희 씨에겐 <반두비>가 첫 주연작이라는 점에서 이미 의미가 분명한 작품이었겠죠.
아무래도 첫 (개봉)영화에서 첫 주연까지 맡아서 뜻 깊은 작품이죠. 사실 기대하지 않고 오디션을 봤거든요. 그런데 주인공이 되니까 막상 부담감도 밀려오더라고요. 찍는 중간중간에 고민을 많이 했어요.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 건가. 나중에 완성본을 보고 나서 내가 나한테 부끄럽지 않을까 의심을 많이 했죠. 잘하고 있는 건지, 아닌지.

스스로 그런 의심을 극복하는 게 중요했을 것 같네요.
그런 의심이 많이 드니까 집중을 못하겠던데요. 하나를 하더라도 내가 진짜 잘 하는 게 맞나 싶고. ‘진짜 민서라면 이렇게 행동했을까’, 의심이 드니까 정말 작은 문제도 더 크게 보이는 거에요. 그래서 감독님께도 많이 여쭤봤죠. “감독님, 민서는 왜 이걸 이렇게 해요? 이렇게 하면 아니지 않아요? 보통 아이들이 이렇게 할까요?” 그러니까 감독님이 민서는 특별한 아이니까 이렇게 한다고 하시는 거에요. 초반에 많이 의심했는데 점점 연기를 하면 할수록 민서라는 캐릭터에 제가 동화돼서 그런 의심이 잦아들었어요.

‘동화’됐다는 말이 마치 캐릭터에 빙의됐다는 말과 비슷하게 들리는군요. 자신도 모르게 때론 민서로서 행동하고 말하게 됐다는 의미겠죠.
그런 게 연기의 매력이고 자꾸 하고 싶게 만드는 거 같아요. 처음 시작했을 땐 의문으로 시작하거든요. ‘민서는 왜 이렇게 행동하지? 왜 얘는 이 상황에서 이렇게밖에 못할까. 나 같은 보통 아이나 아무리 튀는 아이들도 이렇게 하지 않을 텐데’ 이러다가 점점 시간이 지나고 촬영이 계속되면서 그냥 제가 민서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런 행동이 나오는 거에요. 처음에 돌 던지는 장면도 저는 좀 그랬거든요. 부잣집에 돌 던지고 뒷감당을 할 수 있는 집안 배경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떻게 그런 행동을 할까 싶었는데 막상 그 순간이 되니까 정말 초인종 벨을 누르고 반대편에서 그런 반응을 보이니까 정말 욱해서 돌을 던지게 되는 거에요. (웃음)
<반두비>에서 민서란 아이와 백진희 씨의 거리가 얼마나 될지 궁금하더군요. 영화만 보고 이야기하자면 마치 민서가 백진희 씨 같더군요. 지금도 조금 걱정됩니다. 화나면 영화처럼 손에 쥐고 있는 거 아무데나 던져버릴까 싶어서. (웃음)
아니에요. 영화만 그럴 뿐이에요. (웃음) 일단 저는 민서처럼 극단적이지 않아요. 학교를 그만둔다던가, 카림같이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고 애정 표현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사람도 아니고, 그런 면을 빼고 보면 성격적으로 약간 비슷한 면이 있을지도 몰라요. 민서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고 쉽게 욱하는 다혈질 소녀잖아요. 그런 면이 비슷한 거 같아요. 저도 울분을 못 견디거든요. (웃음) 그런 성격이 비슷해서 연기가 수월했던 거 같아요.

민서가 등장할 때, 촛불소녀 부채를 들고 있는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과외비를 이야기하며 민서 주변에 서 있던 소녀들과 명확히 대비를 이루는 이미지입니다. 민서가 또래들과 차별화된 사회적 의식을 명확하게 보여주는 지점이랄까요.
저도 시사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시사프로를 즐겨봤기 때문에 민서가 낯설진 않았어요. 민서는 세상에 무관심하듯 무대포인 소녀잖아요. 그런데 민서의 무대포식 행동이 결국 올바른 행동이죠. 요즘 너무 사교육 열풍이 심해서 애들 모두 영어학원에 다니는데 민서가 이를 부정하는 건 형편이 안 돼서 그럴 수도 있지만 그에 저항하고자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네들이나 잘해’라는 대사에 그런 의미가 담겨있잖아요. 물론 제가 그런 부분에 대해서 저항할만한 학생은 아니었지만 관심은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나중엔 집까지 쳐들어갔고요. (웃음) 민서는 상당히 터프한 다혈질 소녀에요. 본인은 화가 나면 어떤 편인 것 같아요?
화가 나면 말을 안 해요. 화가 풀릴 때까지 상대한테도 절대 말하지도 않거든요. 집에 들어와서 부모님이 말 시켜도 말을 안 하죠. 화 푸는 방법은 딱히 생각이 나지 않지만 너무 화가 나서 눈물이 나면 울면서 화를 풀 때도 있어요. 막 심하게 분출하는 스타일은 못돼요. 화를 내면 더 커질 걸 알기 때문에. 욱하는 게 심해서 제어가 안될 때가 있거든요. (웃음)

부모님께서도 상대배우를 아실 수 밖에 없었을 텐데 반응이 어떠셨나요?
아셨죠. 막 인터넷도 검색해보시고 그러시는데. (웃음) 처음엔 영화 찍는다고 좋아했는데 상대배우가 하얀 사람도 아니고, 까만 사람이라니 어떻게 연기할 수 있겠냐고, 솔직히 부모님께선 걱정하셨죠. 그렇다고 말씀을 많이 하신 건 아니고 결국 너한테 주어진 거니까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열심히 하라고 하셨어요. 그 분도 자기 역할 주어진 데에서 열심히 할 테니까 너도 그 분이 다르다고 생각하지 말고 네 맡은 바를 열심히 하면 된다고 말씀해주셨죠.

<반두비>는 어쩌면 백진희 씨에게 외국인 연기자와 호흡을 맞췄다는 점에서도 두고두고 특별하고 생소한 경험으로 기억될지 모르겠습니다.
제 인생에 있어서 외국인과 이렇게 많은 시간을 보낼 일은 두 번 다시 오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저도 제 자신에 대해서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고 믿고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냥 길에서 마주치는 똑 같은 사람이지, 이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계속 마주치고 밥도 같이 먹고, 연기도 하고, 그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니까 부담이 되더라고요. 그런데 저희가 영화 찍기 두 달 전부터 준비를 들어가서 그 동안 얘기를 많이 할 수 있었어요. 그런데 마붑 씨가 한국말을 잘해요. 얘기하다 보니까 다를 게 없다는 걸 느꼈죠. 저도 모르게 제 안에 편견이 있었던 거 같아요. 처음엔 좀 멀리하려고 그랬을 거에요. 그런데 같이 지내다 보니까 어느 새 저도 모르게 그냥 가까워져 있고, 그래서 정말 피부색만 다르지 똑 같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됐죠.

한국말을 잘 하는 외국사람을 보면 신기할 때가 있죠.
한국말을 너무 잘 해서 신기했어요. 겉보기엔 딱 외국인인데 한국말을 너무 유창하게 하시니까 점점 익숙해지고, 그냥 알고 있는 사람 중에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된 거 같아요.

서로 다른 생김새를 보고 느끼는 이질감만큼이나 문화적 차이도 개인의 잠재적인 편견을 만들 수 밖에 없겠죠.
그게 어려운 거 같아요. 아무래도 다른 문화권에서 살다 만났기 때문에 생각이나 언어도 같지 않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른 사람에 대한 편견을 갖고 있지 않을까요. 그런 걸 깨는 게 상당히 힘들 거란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시간을 갖고 차츰차츰 시도해야죠. 처음부터 너무 강하게 마음을 열려고 노력하는 게 아니라 시간을 두고 물 흘러가듯이 계속 얘기하고, 그렇게 1분 볼 거 10분 보고, 10분 볼 거 30분 보게 되면, 시간이 저절로 해결해주는 거 같아요.
당사자만큼이나 감상자들도 독특하다 느낄만한 캐릭터의 어울림이죠.
어떻게 보면 남들과 다른 시작점일 수도 있는데 오히려 이게 이슈가 됐으면 좋겠어요. (웃음) 물론 이슈가 되긴 됐어요. <반두비>에 대한 안 좋은 글들이 벌써부터 너무 많아서요. (마붑 알엄이) 협박 전화도 받으셨다고 인터뷰에 말씀하신 것도 봤는데 그래서 너무 속상해요. 물론 이주노동자 분들 가운데 나쁜 사람도 있겠죠. 한국사람이라고 다 착하고 좋은 건 아니잖아요. 그런데 일부분만 보고 모든 사람들을 평가한다는 건 아니지 않나요. 영화를 보시고 나서 생각을 해보셔도 늦지 않을 텐데 미리 단정짓고 나쁜 글들만 써버리면 다른 사람에겐 상처가 될 수 있는 거죠. 분명히 내용이 뭔지도 자세히 모르면서 아무 생각 없이 그러는 거 같아요.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말이 많죠.
보지도 않으시고, 그냥 지레짐작으로 저럴 거다 하시나 봐요.

어쩌면 본인도 <반두비>를 통해 직접적인 경험을 거친 덕분에 얻은 좀 더 명확하게 세상을 보는 관점을 얻게 된 것일지도 모르죠.
아무래도 제가 <반두비>를 찍지 못했다면 이주노동자가 일하는 현장을 갈 일도 없었을 거고, 그분들이 일하는 모습을 직접 보지 못하고 그냥 듣기만 했다면 지금만큼 심각하게 느끼지 못했을 거에요. 막상 가서 보니까 정말 작업환경이 열악해서 깜짝 놀랐어요. 일하다가 쉬는 장소가 있는데 거기 벗어놓은 신발에 바퀴벌레가 가득 들어가있는 거에요. 냄새도 심해서 머리가 아플 정도고요. 그 분들이 이런 곳에서 일하는 거죠. 저는 그 분들이 그렇게 일해주기 때문에 저희 사회가 돌아가는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요즘 보통 대한민국 청년들은 3D업종에 종사하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 분들이 와서 낮은 임금을 받으면서도 그 업종에 종사해서 대한민국이 돌아가는 거죠. 물론 그 중에 나쁜 분들도 계시겠죠. 사람이 살면서 나쁜 마음을 먹을 수도 있고. 그렇다고 그 사람들을 다 나쁜 사람이라고 폄하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반두비>가 청소년 불가 판정을 받아서 본인도 속상하겠어요.
사람들이 <반두비> 검색해보고 19세라는 것만 봐서 그런지 이상한 쪽으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더라고요. 너무 속상해요. 그런 내용 전혀 아닌데, 노출이 있는 것도 아니고 선정성이 있는 영화라고 생각하지도 않거든요. 그런데 19세 받았다는 이유만으로 그렇게 생각을 박아버리시는 분이 있더라고요. 몰랐는데 오늘도 그런 분을 만났어요. 덜컥했죠. 그런 게 아닌데. 그런 연기를 하지도 않았고 감독님도 그런 의도가 아니었는데.

배우, 혹은 연예인으로 살다 보면 이상한 구설수에 휘말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루머에 휩쓸리는 경우도 있고요.
제가 얼마 전에 그런 책을 읽었어요. 제목이 <루머의 루머의 루머>인데 여자주인공이 루머에 휩싸여서 결국 자살을 하거든요. 그런데 자살하기 직전에 테이프를 녹음해요. 자살에 동기부여를 한 사람들한테 다 한마디씩 남겨서 그걸 돌린다는 내용이죠. 그걸 읽고 나니까 무서운 거에요. ‘무슨 이런 걸로 죽을 생각을 해’ 싶을 정도로 사소한 이유가 모이고 쌓이다 보면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저도 정신 똑바로 차려서 흔들리지 않고 내 중심을 제대로 갖고 있으면 덜하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만큼 더 강해져야 하는 거 같아요.

아직 사회적 경험이 많은 편은 아니지만 여자로서 느끼는 불합리를 경험해본 적이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반두비>에서 민서를 연기하면서 어떤 쾌감을 느낄 수도 있었을 것 같고요.
아무래도 여자는 약자라서 보호받기도 하지만 아직까지 대한민국에서 여자이기 때문에 차별 당하고 무시 받는 경우가 많다고 들었어요. 그런데 <반두비>에서는 교복 입은 16살짜리 어린 꼬맹이가 세상을 진두 지휘한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아빠보다도 나이 많으신 분 따귀를 때리고, 그 집에서 행패도 부리고, 자기보다 나이가 많은 카림이라는 청년을 휘어잡기도 하죠. 항상 여자는 약자고, 뒤에서 보호받아야 되고, 눈치도 많이 보잖아요. 일단 남자가 우선이라는 가부장적인 생각들이 많기도 하고. 그래서 희열을 느꼈어요.
<반두비>보다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에 먼저 출연했죠. 그 작품에 출연하게 된 경위도 궁금하군요.
CF를 통해서 얼굴이 조금 알려졌는지 ‘애니콜 시보소녀’를 찾던 매니저 분이 있었어요. 그 분을 만나게 되면서 저도 회사랑 계약을 했죠. 그분이 ‘너 나랑 일해볼까’ 하신 뒤에 그 분과 처음 미팅을 간 자리가 <사람을 찾습니다>라는 영화 오디션이었는데 딱 된 거에요. 너무 신기하다 싶은 마음으로 촬영을 했죠.

CF를 통해서 카메라를 먼저 접했지만 아무래도 영화는 또 다른 느낌이었을 거에요.
전혀 다르죠. CF는 솔직히 대사보단 표정 위주니까요. 그리고 대사를 하는데 있어서도 동기 부여가 다르잖아요. 얘가 이런 말을 할 땐 이유가 있는 거죠. 그 땐 그런 걸 이해하지 못했나 봐요. 지금 보면 되게 웃기거든요. (웃음) 물론 하면 할수록 어렵다는 걸 느끼는 거 같아요. 제가 아닌 다른 사람이 돼서 그 사람처럼 반응하고 행동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어요.

아무래도 캐릭터와의 거리감을 이해해야 하는 측면의 어려움도 있었겠죠.
민서가 갖고 있는 상처와 외로움을 이해하기 힘들었어요. 아무래도 저와 정반대의 성장배경을 갖고 있으니까요. 저는 부모님이 두분 다 계시지만 민서는 어머니 밖에 없고, 민서는 외동딸이지만 저는 여동생이 두 명이나 있는 큰 언니거든요. 그리고 저희 집은 큰소리 한번 난 적 없을 정도로 단란하기 때문에 저에게 민서는 가족의 화목함을 모르고 자란 소녀처럼 불우해 보였어요. 제가 연기하면서 과연 그런 상처를 이해하고 제가 그런 면을 보여줄 수 있을지 불안했어요. 그런 상처 때문에 민서가 이런 말과 행동을 하는 건데, 내가 그런 걸 이해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죠. 어쨌든 민서란 캐릭터가 저에게 주어진 이상 그만큼 생각을 많이 해야 했어요. 케이크 하나를 먹더라도 정말 민서가 이 케이크를 먹을지, 집에 싸가서 엄마를 줄지, 그 외로움에 대해서 자꾸 생각하다 보니까 민서를 100% 이해하진 못했다 해도 반은 이해할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해요.

CF에 출연한 경위도 궁금합니다.
운 좋게도 길거리 캐스팅이었죠. 그리고 일단 사진심사가 먼저 올라간 다음에 감독님과 미팅을 해요. 카메라를 두고, ‘그 자리에서 해봐라’ 이런 식으로 간단하게 촬영한 자료를 감독님과 광고주들이 같이 보시고 회의를 한 뒤에, ‘얘로 가자’ 이렇게 되는 거죠. 그리고 그 자료가 남아서 어쩌다 보니까 이를 통해 계속 하게 되더라고요.

아무래도 그런 과정이 그 당시 본인에겐 상당히 놀랄만한 변화의 연속이었을 텐데요.
신기했어요. 그냥 맨날 공부만 하다가, ‘미팅 있습니다. 오세요.’ 그래서 갔다 오면 일주일 안에 연락이 와서, ‘촬영합니다.’ 그럼 공부하다가 촬영장 가서 촬영하고 오고. 그 순간엔 꿈을 꾸고 있는 거 같죠. 사실 고등학교 시절에 입시 공부하느라 힘들잖아요. 저는 공부를 별로 안 했지만. (웃음) 어쨌든 누구나 힘든데 그렇게 하루 이틀 정도 CF를 찍는 게 저한테 주어진 상이라고 생각했어요. 하늘에서 주어진 상. 정말 특별한 취미생활이 있는 것도 아니라서 그걸 하면서 스트레스가 풀린다는 느낌을 받았거든요. 카메라 앞에 있으면 행복하고, 그래서 관심이나 호기심이 다 이쪽으로 쏠리게 된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 이전에 꿈은 없었나요?
음, 꿈이 없었어요. 아마 요즘 청소년 대부분이 그럴 거에요. 고등학교에 가서 꿈이 뭐냐 그러면, ‘꿈 없는데요. 그냥 대학교 가서 졸업 잘해서 공무원 시험이나 봐서 공무원이나 돼야죠.’ 대부분 이럴 걸요. 저도 평범한 학생이었고 특별한 꿈은 없었어요. 그냥 공부하라 그래서 공부했고, 시간 나면 친구들이랑 놀았고, 맨날 무의미하게 살았던 거 같아요.

하긴 요즘 초등학생에게 꿈을 물어봐도 서울대 진학이라고 답한다 하더군요. (웃음) 아무래도 어른들이 꿈꾸는 법을 가르쳐주지 못한 탓이죠.
맞아요. 초등학교 때는 꿈이 많았는데 점점 현실이라는 걸 알아가면서 꿈이 사라지는 거 같아요. 그런데 제 동생이 저와 10살 차이 나는데 또 다르더라고요. 동생한테 꿈이 뭐냐고 했더니 없대요. “네 친구들도 그래?” 그랬더니 대부분 그렇다고. ‘또 다르구나’ 생각했죠.
저 어릴 때만 해도 꿈들이 거창했죠.
대통령? (웃음)

박사, 의사, 이런 것도 많았어요. (웃음) 사실 어릴 때 꿈은 어른의 눈높이에 맞춰지는 경우가 많죠. 그러다 어느 정도 나이가 들면 자기가 하고 싶은 구체적인 꿈을 좇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현실성을 파악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만큼 지금은 세상이 각박하니까 중고등학생조차도 사회에 나가서 먹고 사는 길을 먼저 생각하는 건가 보죠. 그만큼 학교 교육이나 사회적 환경이 학생들의 꿈을 억압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어요.
학교라는 공간이 그 시기에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사회에서 도태된다는 생각을 갖게 만드는 거 같아요. 공부가 정말 열심히 하고 싶어서 해야 하는 게 아니라 강압적으로 해야만 하는 게 돼버렸으니까. 또 우리나라 현실상 공부가 아니라 예체능처럼 다른 분야는 집안이 빵빵하지 않고선 할 수 없기도 하고요. 하고 싶은 건 대학가서 해라, 이런 식이니까 우리나라 학생들은 공부에 너무 얽매여 살 수 밖에 없다고 해야 하나.

주변에서 이렇게 CF도 찍고, 영화도 찍었다 그러면 부러워하는 친구는 없나요?
아니요. 여자애들이 샘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는데, (웃음) 그런 말은 안 하더라고요. 제 친구들은 하나같이 직설적이에요. “너는 그냥 볼 땐 괜찮은데 TV에서 보면 얼굴이 왜 그렇게 크게 보이냐”고 그런 말이나 하지 부러워하진 않더라고요. (웃음) 각자 자기만의 꿈이 있고 거기에 대해서 열심히 하니까 그럴 지도 모르죠. 겉으로 내색하는 친구는 없어서 속마음까진 모르겠어요.

반대로 시기하는 친구는 없었나요?
있었어요! 제가 예전에 공익광고 찍어서 학교에 사진이 붙어있었는데 거기다 낙서를 엄청 많이 한 거에요. (웃음) 어린 마음에 새벽에 지우러 갈 수도 없고. (웃음)

CF로 카메라 앞에 서게 됐고, 그 다음은 연기에 도전한 셈이죠. 진지하게 연기에 대해서 생각해보게 된 계기가 또 궁금해지는군요.
처음엔 호기심이었죠. CF로 먼저 시작하면서 조금씩 카메라 앞에 서는 시간이 생기고, 그러다 보니 얼마나 신기해요. 공부만 하던 학생이 CF찍고, TV에 나오고, 돈도 벌고. (웃음) 그렇게 조금씩 호기심이 커져서 관심이 되고, 점점 연기를 하면 어떨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아마 고2, 고3때부터 강한 계기가 생겼던 거 같아요. 제가 고3때 ‘애니콜 시보소녀’ CF를 하면서 해외촬영을 했는데 연기를 못한다고 감독님한테 혼났거든요. 그게 컸던 거 같아요. ‘내가 연기를 하면 어떨까. 잘 할 수 있을까?’ 이런 생각이 들면서 오히려 연기가 해보고 싶은 거에요.

주눅이 들어서 일찍 단념할 수도 있지만 반대로 하고 싶다고 생각한 것 보면 민서만큼이나 오기가 만만찮은 성격인가 보군요.
그런 점이 민서와 비슷한 거 같아요. 욱해서 오기가 발동하니까, ‘나도 잘 할 수 있는데’라고 생각하는 거죠. 그리고 거기서 포기하면 어떡해요. 아직 어린데. (웃음) 세상에 쉬운 일은 없잖아요. 다 힘들고 어려워도 그걸 겪으면서 견뎌내고, 지나고 나면 아무 것도 아닌 거니까. 그렇게 결국 잘 되면 얼마나 좋아요.

처음으로 스크린에 뜬 자신의 얼굴을 봤을 텐데 기분이 어땠나요?
실망스럽죠. (웃음) 그냥 <반두비>를 보면서 의문이 들었어요. 오디션장에 예쁜 친구들도 많이 왔을 텐데 감독님은 왜 나를 썼을까. 전 예쁜 얼굴은 아니잖아요. 오디션장 가면 예쁜 친구들 정말 많거든요. 촬영하면서 한동안 잊어버렸는데 큰 스크린으로 제 얼굴을 보니까 다시 한번 그 생각이 나더라고요. 고치고 싶다고 생각되는 부분도 한 두 군데가 아니고. (웃음)

아무래도 얼굴 예쁜 사람 순서대로 배우를 시킨다면 지금 현재 훌륭하게 인정받는 배우 가운데서도 그만 두셔야 할 분이 많을 걸요. (웃음) 아무래도 백진희 씨가 신동일 감독님이 찾는 캐릭터에 어울리는 사람이었겠죠. 전 영화를 보면서 민서의 심드렁한 표정이 인상적이었는데 백진희 씨가 아니었다면 그런 얼굴이 아니었겠죠. (웃음) 어쩌면 자신도 스크린을 통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평소에 알지 못했던 버릇이라도 찾아내지 않았을까 궁금한데요.
있죠. ‘나한테 저런 얼굴이 있었나?’ 싶기도 하고, ‘내가 저렇게 연기했구나’ 깨닫기도 하고.스크린으로 보여지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그런 게 많이 느껴져요. 민서가 아니라 백진희가 보였던 장면도 있어요. 노래방에 카림이랑 같이 가서, “엄마, 특실 비었지? 2시간만 넣어줘.” 이 때, (테이블을 두들기면서) 이렇게 딱딱 치고 가더라고요. 저도 모르게 그냥 한 거에요.

계산하고 의도한 행동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행위들이 그냥 감지된다는 거죠.
저도 모르게 나와요. 그 말을 하고 나면 이런 행동이 이어지고, 그게 되게 신기했어요.
아직 경험적으로 백지상태에 가깝기 때문에 경험적인 자극의 강도도 크게 느껴질 수 있겠죠.
그 하나하나를 잘 기억해두는 게 중요할 거 같아요. 배우가 되려면 모든 반응에 대해서 기억하고 있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이 반응에 대해서 기억해두면 다음에 이와 비슷한 반응이 왔을 때 그 반응과 비교할 수 있겠죠. 살짝 차이는 있겠지만 사람이기 때문에 공통점도 있을 거란 말이에요. 그런 걸 항상 기억하고 염두에 두는 게 중요한 거 같아요.

본인은 사실 적은 경험이라고 느끼고 있는 반면 주변에 자신의 경력을 인식하는 사람들은 본인이 CF를 찍고, 영화에 출연했다는 사실만으로 특별한 시선을 둘 가능성도 있을 겁니다. 스스로 그런 시선을 느낀 적은 없었나요?
대학교 가서 처음 친구들 사귈 때 특히 그랬어요. 제가 이런 일을 한다는 게 알려지니까 친구들이 다르게 보는 거에요. 처음에 그걸 견디기 힘들었죠. 왜 그럴까, 나는 아직 이름도 안 알려졌는데, 버스타도 알아보는 사람도 없는데 왜 저럴까, 생각했죠. 인터뷰는 제 속에 있는 깊은 생각까지 다 얘기할 수 있어서 좋은 거 같아요. 아무래도 친구들과 얘기할 땐 이런 대화를 할 수 없거든요.

유사 성매매 업소에서 아르바이트하는 장면을 연기하는 건 좀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일단 시나리오 받고 놀랐어요. 성매매하는 곳은 있다는 걸 알았지만 그런 장소가 있는지는 몰랐거든요. 그래서, “이게 뭐에요?” 물어보고 이런 저런 설명을 듣다가 굉장히 놀랐고, 걱정도 많이 됐어요. 그런데 너무 그 부분에 염두를 두다 보니까 영화 전체가 안 보이고 그 장면만 보이게 되더라고요. 감독님께 그 부분에 대해서 걱정된다고 말씀드리고 대화도 많이 나눴고요. 그런데 감독님이나 스태프들이 아무리 신경 써준다 해도 해내는 건 제 몫이더라고요. 그래서 좀 힘들었죠. 하고 나서도 좀 그랬고. (웃음)

남자들이 징그럽진 않던가요?
아니요. 다행히 그 정도는. (웃음)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얼마나 됐나요?
이제 1년 넘었으니까 2년째죠.

약 1년 만에 다시 교복을 입게 된 셈인데.
저는 고등학교 때 사복을 입어서 교복은 정말 오랜만이었어요.

아, 그럼 중학교 이후로 교복을 처음 입는 건가요?
4년 만에 입는 거죠. 그래서 교복 입는 거 좋아요.

본인 나이보다 어린 여고생 역할을 연기한다는 건 어떤가요? 아직 그 당시로부터 많이 지난 나이가 아니라서 그리 어색하진 않았을 것 같은데.
저는 아직까진 교복 입고 학생역할 하는 게 잘 맞는 거 같아요. 외적으로도, 내적으로도 성숙된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아무래도 나이 대가 있는 역할을 지금 하기엔 버겁지 않을까 싶어요. 아직 학생처럼 생각하고, 행동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부분은 이해할 수 있지만 20대 여대생 같은 경우도 아직은 무리가 아닐까 싶어요. 솔직히 대학교도 한 학기만 다녀봤기 때문에 여대생에 대해서도 잘 모르겠죠. 외적으로도 성숙해져야겠지만 동시에 내적으로도 커야 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은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겠죠. 도전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괜히 섣부르게 못하는 걸 할 순 없잖아요. 아직은 자신도 없고, 지금 잘할 수 있는 걸 하는 게 맞겠죠.

독서 좋아하세요?
예. 책 읽는 거 좋아해요.

책을 많이 읽는 사람이 말을 잘할 가능성이 많더군요.
아, 저 말 잘 못하는데. (웃음)

자기 주장이나 주관이 뚜렷한 거 같아요. 사실 요즘 학생들 여건상 독서가 쉬운 취미는 아닐 텐데요.
요즘 학생들은 책 많이 못 읽을 걸요. 문제집 보는 시간이 많지, 책 읽는 시간은 적을 거에요. 저는 최근에 <반두비>때문에 휴학을 해서 남는 시간도 대부분 책 읽는 시간으로 보냈거든요. 어릴 때와 다르게 느끼는 것도 많아진 거 같아요. 간접적으로 많은 걸 상상하고 경험할 수 있으니까.

배우로서도 간접경험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독서는 개인적인 범위 내에서 가능한 취미죠. 그만큼 개인적인 활동이나 사적인 공간을 중시하는 성격이 아닐까 예상할 수 있을 것 같고요.
저는 동적인 사람이 아니라 정적인 사람 같아요. 개인적인 활동을 주로 하거든요. 생각해보면 뭔가 좋아서 환호한 적도 얼마 없거든요. 남들과 소란스럽게 어울리는 걸 별로 좋아하지도 않아요. 어쩌다 친구를 많이 만나도 4~5명 정도 모여 앉아서 수다나 떨고, 그게 다에요. 책 읽고 혼자 생각할 때가 많아요.

자신의 캐릭터나 작품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했을 것 같군요.
작품을 하나 하면 얻는 게 많은 거 같아요. 한 작품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게 되거든요. 얘는 이런 가정 환경에서 살았지만 얘는 어땠을까, 이렇게 사람에 대한 분석을 많이 하기도 하고, 또 아무래도 감독님과 대화하려면 너무 애 같아선 안될 거 같단 생각도 들었어요. 제 자신에 대해서 저도 모르게 점점 생각을 깊게 하게 됐죠. 그러다 보니까 생긴 것과 달리 속이 깊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어요. (웃음)
연기가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변화시키고 있다고 느껴지는 지점은 없나요?
사실 제가 낯을 많이 가리거든요. 처음 본 사람하곤 거의 말을 못해요. 대화를 이어가지도 못하고요. 그런데 이 일을 하면서 그런 게 조금 없어진 거 같아요. 물론 아직도 그런 면이 많이 남아있죠. 잘 모르시는 분들은 화났냐고 묻는 분들도 있어요. 뚱한 표정으로 있으니까. (웃음) 사람 대하는 게 어려워요. 게다가 다들 저보다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니까 말 한마디 잘못했다가 괜히 낭패 볼 수 있기 때문에 더 조용해지는 건지도 모르겠어요. 그래서 혼자 있을 땐 더 정적인 거 같아요. 사람들 대하느라 힘들었던 시간을 혼자 있는 시간으로 보상받겠다는 생각이랄까?

어쩌면 더 변할지도 모르죠.
잘 모르겠어요. 그냥 책 읽고 생각하는 시간이 좋아서 계속 이런 식으로 갈 거 같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요즘은 사람을 안 만나도 대화할 수 있는 창이 너무 많아요. (웃음)

대화라기 보단 말하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닐까 싶네요. 자기가 가진 생각을 털어놓을 수 있을 때 말의 재미를 느끼는 게 아닌가 싶어요.
만약 이렇게 인터뷰로 만나지 않고 사적으로 만났다면 주제를 갖고 만난 게 아니기 때문에 대화를 나누기가 힘들 거에요. 그런데 이렇게 인터뷰는 기자님이 물어보시면 저는 답하고, 또 물어보고, 이런 식의 대화가 편하고 좋아요.

<반두비>에서 민서가 주유소 사장님에게 가불을 요청하면서 거짓말로 쌍꺼풀 수술 때문이라고 대답하기도 하죠. 아까 장난처럼 성형 이야기를 했는데 혹시 정말 고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부분이 있나요?
저도 조금 하고 싶긴 하죠. (웃음) 그런데 눈은 정말 고치고 싶지 않아요. 사실 요즘 다들 쌍꺼풀 있는 눈들이잖아요. 물론 안 그런 분들도 계시지만 대부분 그래서 다 비슷비슷해 보이는 거 같아요. 그런 얼굴이 되기 보단 저만의 개성을 확실한 매력으로 둔 얼굴을 갖고 싶거든요. 그리고 그런 개성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게 눈이 아닐까 싶어요. <마더>에서 김혜자 선생님께서 눈 하나로 살아온 세월이나 지금 하려는 이야기를 다 표현하시잖아요. 정말 그런 눈을 닮고 싶어요. 전 외꺼풀이라 깊은 눈매는 아니지만 그래도 외꺼풀만의 매력이 있기 때문에 저는 눈만은 절대 고치고 싶은 생각이 없어요.

<반두비>를 통해 배우로서 시작점을 출발한 셈입니다. 어쩌면 지금이야말로 어떤 꿈이라도 꿀 수 있는 지점일지도 모르고요.
깊이 있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대사 한마디를 던지더라도, 의미? 깊은 의미를 던질 수 있는 그런 것. 김혜자 선생님의 눈빛 반만 따라가도 성공한 게 아닐까 생각해요.

혹시 롤모델이라고 말할 만한 배우가 있나요? 방금 말한 김혜자 선생님?
롤모델은 김미숙 선생님. 눈빛에서 카리스마가 느껴지잖아요. 여자로서도 닮고 싶고, 피부도 너무 좋으시고. (웃음)

관록 있는 분들을 동경하시는군요. 만족하려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겠어요. (웃음)
그 정도 나이에 그 정도 에너지를 낼 수 있다는 게 너무 부러워요. 아무래도 연기적인 부분이 많이 보이나 봐요.

직접 연기를 해봤기 때문에 좀 더 실감나는 건지도 모르죠.
사실 예전엔 나도 할 수 있겠다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란 걸 새삼 깨닫게 된 거죠. 일단 저런 감정이 쉽게 나올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걸 하나씩 깨우쳐 갈 수 있었던 과정인 거 같아요.

민서처럼 고등학생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 비해 지금의 자신이 얼마나 변했다고 생각하나요?
학교에선 틀에 갇힌 주입식 입시교육 위주로 학생들을 다스리잖아요. 그러니까 다른 학생들처럼 주어진 것에만 반응해야 했죠. 1번부터 5번 보기 중에 1번이 답이라면 1번 보기처럼 반응하고 살았는데 이제 학교라는 틀에서 벗어나면서 약간 달라졌다고 생각해요. 보는 시각도, 하는 행동도, 드는 생각도.

그렇다면 <반두비>는 백진희 씨에게 무엇을 남겼다 말할 수 있는 영화일까요?
다른 문화권의 다른 인종, 그것도 한국인이 경멸하는 이주노동자를 친구로 받아들인다는 영화 내용이 신선하다면 신선하다고 할 순 있겠지만 저한텐 둘이 친구가 된다는 게 되게 충격적이었어요. 친군지 로맨스인지 약간 애매하긴 하지만. (웃음) 그런 부분을 깊게 생각하다 보니까 이렇게도 친구가 될 수 있구나 싶더라고요. 생각하는 게 많이 변했어요. 이제 막 싹을 틔운 느낌이랄까. 그전까진 모든 일에 있어서 세상에 회의적이고 부정적인 사람이었는데 그런 것도 많이 없어졌고 사람에 대한 배려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됐죠.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배려하려고 노력하게 된 거 같아요. <반두비>를 하면서 친분이 쌓인 스태프분들 한 분 한 분이 소중하다는 감정을 느꼈어요. 저한테 주어진 모든 것들, 저한테 주어진 제 주변의 사람들, 저한테 주어졌던 일들, 저한테 주어지는 일들, 그 모든 것에 감사하는 마음이 생겼어요. 민서도 카림이라는 진정한 친구, 반두비를 만나면서 느끼는 게 많아지고 세상을 보는 눈이 달라지면서 숙녀로 성장하잖아요. 나중에 영화 시작할 때와 끝날 때 모습이 정말 다르거든요. 인생에 있어서 한번의 전환점이 된 거죠. 민서에게 카림이 그런 존재인 것처럼 어쩌면 <반두비>가 저에게 그런 존재가 된 건지도 모르죠.
2009년 7월 2일 목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2009년 7월 2일 목요일 | 사진: 권영탕 기자(무비스트)

30 )
kisemo
잘 읽었습니다 ^^   
2010-03-31 16:37
again0224
잘 읽었습니다   
2010-03-23 01:17
loop1434
멋진배우네요   
2010-02-17 10:04
ninetwob
잘보고갑니다   
2010-01-21 20:37
yiyouna
이쁘다   
2009-09-27 11:11
cyddream
반두비를 봤지만... 그닥 연기력이라 하기엔... 하지만 꼭 나중엔 좋은 배우가 됐으면 좋겠어요... 아자아자   
2009-08-29 08:15
river12424
우왕~   
2009-08-15 22:58
dongyop
국민여동생~   
2009-07-22 0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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