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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연애행각] 나의 성실한 폰섹스 파트너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 앨리스 이메일


<나의 PS 파트너>에서 잘못 걸려온 전화를 시작으로 투닥거리던 현승(지성)과 윤정(김아중)은 다소 오바가 아닌가 싶을 만큼 으르렁거리다, 일순간 감정의 소강상태를 갖고 급속도로 가까워진다. 그렇게 서로의 폰스토리인지 폰섹스인지 파트너가 되어가는 지점에서... .



편의상 그를 y라고 하자. 나는 y에게 끌렸고, 따라서 y의 일부라 여겨지는 그의 블로그 포스팅들, 트위터, 페이스북, 모든 것에 흥미를 느꼈다. 하룻밤을 통째로 날리며 그의 블로그를 역주행하고 몇 날 며칠 동안 y의 SNS계정을 탐독하며 혼자 웃고 떠들고 맞장구를 치고 고개를 끄덕이느라 노래방용 새우깡 한 봉지를 다 비우도록 모니터 앞을 떠나지 못한 것이다. 그러면서 댓글을 남기고, 슬쩍 비밀 댓글을 남기고, 내 댓글에 덧글이 달리고, 자연스레 이메일을 주고 받다가, 바로 그렇지, 실시간 대화에 대한 목마름으로 메신저를 트고.

그래도 우리가 하두리웹캠으로 별풍선을 빵빵 날리는 요즘 애들과는 거리가 있는 세대인지라 침착하고 소심하게 각자의 얼굴 사진 정도만 교환했다. y도 나도 자신의 얼굴을 보낸 것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길에서 마주쳤을 때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실사에 가까운 사진인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 하지만 뭐 어때. 확신할 순 없지만 그래도 일단은 보기에 좋으니까 의심하고 싶지 않은 y의 얼굴, 그리고 나직한 목소리, 나는 y가 점점 더 좋아졌다.

우리가 하는 짓은 분명 연애는 아니었지만 연애와 닮아 있었다. 현승과 윤정이 그랬던 것처럼 틈만 나면 전화기를 붙잡고서 일상을 공유했다. 바쁜 아침을 보낸 뒤 점심식사를 하고 나서 달달한 카라멜 마끼야또라도 쪽쪽 빨며 한숨 돌리고 싶은 휴식 시간이면 어김 없이 걸려오는 그의 짤막한 안부 전화, 그리고 하루를 마감하고 잠자리에 들기 전 노곤노곤한 몸과 마음으로 침대에 누워 다정하게 속삭이는 잡다한 이야기들. 귀가 뜨거워 전화기를 왼쪽 오른쪽 번갈아 대면서도, 10분만 있다 끊을까? 아니 5분만? 해가며 서로의 목소리를 놓고 싶지 않아하던 밤들이 점점 늘어날수록 하루 중 y를 생각하는 시간은 점점 더 많아지고 한편으론 분명치 않은 우리의 관계의 끝이 어딜지 막막해지기도 했던 것이다.

그렇게 마법사 초딩소녀가 노래했듯이 만날 수 없어 만나고 싶지만 그런 슬픈 기분이 드는 그 즈음, y와 나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수위 높은 대화의 문을 트고야 만 것이다. 아마도 그 시작은 SNS에 유출된 여가수의 시시한 가슴 사진이었던가 그렇다. 젖꼭지를 포토샵으로 지웠네 어쨌네 하는 시덥잖은 대화를 하다가, 대체 그런 사진을 왜 찍지?라는 나의 1차원적인 질문에 대하여 y가 대답 대신 넌 한번도 안찍어본 거야?라는 질문을 되돌려 보내고 만 것이다. 아니 그게 사실 난, 안찍어 본 것은 아니지만, 아 뭐 그러니까, 연인끼리 좀 야한 사진 서로 찍어서 보여줄 수 있는 거 아냐? 아니 내가 게다가 가슴이 끝내주는데 당연히 찍어봤지~ 남자들 죽지 죽어~ 근데 뭐 찍으면 찍는거지 왜 인터넷에 올리고 난리야? 내 장광설이 늘어지는 동안 y는 타이밍을 놓치지 않았다. 그래? 그럼 나도 보여줘.

세상엔 이런 말이 있다. 아예 안해본 사람은 있어도 한번만 해본 사람은 없다. 가슴 사진은 가슴 사진에서 끝이 났을까. 이건 여러분도 알고 나도 안다. 가슴사진은 입술 사진을 부르고 입술사진은 다리사진을 부른다는 것을 말이다. 드래곤볼도 아니건만 모아지면 하나의 완벽한 여신이 탄생할 만큼의 사진을 찍어대는 나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게다가 작가이자 모델이 된 이상, 관람하는 사람으로부터의 성심과 성의를 담은 사진에 대한 찬사의 메시지는, 그러니까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듯이 나의 앵글을 점점 더 과감하게 만든 것이다. 너 정말 예뻐. 정말 꼴린다.

그날부터 우리의 전화 통화에는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매일 밤 자기 전에 전화를 하는 것은 달라지지 않았지만, 우리는 낮에 뭘 먹었고 어디를 갔는데 누군가 열받게 했다는 둥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더이상 하지 않게 되었다. 통화의 절반 이상이 의성어와 감탄사, 그리고 약간의 욕설로 이루어지고 침대는 뜨거워지고 온몸이 축축해지는 그런 원초적인 통화만이 남게 된 것이다. 사실 폰섹스에 탐닉하면 할수록 우리는 점점 더 만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것조차 흥분되는 지경이었다. 어짜피 만날수 없는데 끝까지 가보자는 심정? 그러다 보니 ‘너를 입에 넣고 싶다’는 단순 문장에서 벗어나 ‘너의 어디를 나의 이곳으로 어떻게 한 뒤 저렇게 해버리는 동안 못견뎌 하는 너의 표정에 대고 나의 무엇을 그렇게 해버리고 싶어 미치겠다’는 화려체를 서로가 뽐내며 매일 밤 온 몸으로 아라비안나이트를 써재끼게 된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에서 권장하는 주간 자위 횟수란게 있지는 않겠지만 사실 좀 지나치다 싶을 정도였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고 싶은 것이 있다. 자신의 몸에 성적인 자극을 집중적으로 주어 스스로 오르가즘에 도달하는 자위라는 행위는, 남성시청자를 대상으로 연출된 포르노영상에서 보여주는 여성들의 자위 행위와는 큰 차이가 있다. 과장된 몸짓이나 신음소리, 야릇한 표정과 혀놀림 이딴 건 솔직히 하나도 필요 없는 것들이다. 으, 아, 오, 흡, 아무리 좋게 봐 줘도 이 네 마디의 짧은 숨 소리 이외에 장황한 설명은 필요치 않은 행위인데, 그러니 폰섹스라는 것, 두 신체가 화학적 반응을 일으키는 몸짓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면서 말로 설명해야하는 것은 생각보다 소모적이고 힘든 일이었다.

처음에야 물론 서로의 야릇한 숨소리와 몇 마디 말로도 쉽게 흥분이 되었지만 그것도 하루 이틀 아니겠나. 수화기 너머의 여자가 자위하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흥분했던 남자는 좀 더 구체적인 자극을 원하게 되고,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다른 한 손으로 분주하게(?) 스스로의 몸을 더듬으면서 끊임없이 다양한 멘트를 주고 받아야 하는 행위는 사실 둘이 함께 절정의 타이밍에 이르기에는 쉽지 않은 작업이었던 것이다. 나의 만족감 보다는 상대방을 흥분시키겠다는 일념에 의한 행위에 가까웠다는 게 내 솔직한 심정이다. 그러다보니 침대에 놓인 소설책을 책상 위로 옮기면서도 온 몸을 꼬며 아~ 오빠 정말 × 거 같아~하는 농염한 멘트가 가능하게 된 것이다. 대체 이것은 누구를 위한 섹스란 말입니까?!

나는 고민했다. 오늘 밤은 안하고 싶지만, 갑자기 안하겠다고 하면 뭔가 애정이 식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겠지? 사실 이불 속에 누워 수화기 너머 y의 달콤한 목소리를 듣다 보면 희한하게 또 내 목소리도 촉촉하게 젖어들기도 하고, 아 어쩌나…이렇게 만난 적도 없는 남자와 요상한 신혼 증세를 앓게 된 즈음, 다행히도 이 폰섹스에 대한 과도한 탐닉의 고리를 끊어줄 사건이 일어나게 된다.

회식 자리에서 얼큰하게 취한 y가 평소보다 늦은 새벽 전화를 걸어왔고 다짜고짜 '내 팬티 속이 궁금'하다며 손을 넣어보라고 했다. 알콜이 좀 들어간 날이면 불쑥 치밀어 오르는 성욕을 느낄 때가 있으니 오늘은 최선을 다해 y를 흥분시켜 주리라, 나는 가슴과 다리 사이를 더듬으며 콧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런데 피드백이 좋던 평소와 다르게 수화기 너머의 y가 잠잠한 것이 아닌가. 여보세요. 여보세요? 오빠, 오빠 자요? 여보세요? 장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는 나직히 들려오는 코고는 소리. 그렇다. 간신히 팬티를 내릴 힘만 남아있던 y는 그대로 잠이 들고 만 것이다. 나는 가만히 팬티를 올려 입고 편안하게 잠을 청했다. 이날 이후 우리는 더 이상 폰섹스를 하지 않아도 되었다.

어떤 책에서 읽은 바로, 찻집에 마주 앉은 수많은 남녀들 사이의 성기의 거리는 고작 1m미만인데 데이트라는 것이 결국엔 그 둘의 거리를 점점 좁히기 위한 행위라고 생각하면 세상이 재미있어 진다고 했다. 한데, 살다보니 그 순서가 바뀌는 경우도 있다. 만나기도 전에 이미 서로의 몸을 구석구석 탐구하던 y와 나는 첫데이트에서 손부터 잡는 것으로 다시 시작했다.(그렇다, 우리는 결국 만났다) 그리고 나서 밥을 먹고 거리를 걷고 그렇게 천천히… 영화 속 현승과 윤정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2012년 12월 18일 화요일 |
글_앨리스(무비스트)
2 )
syjjang18
우리나라가 얼마나 개방화에 앞서가고 있는지를 제대로 보여주더라구요~ 친구들과 빵터지면서 제대로 재밌게 즐기고 왔는데 어머님은 쉽게 받아들이기 힘든 영화였다고 하더군요~ㅋㅋㅋ   
2012-12-21 17:12
who8449
넘 웃기고 핫하고 감동적이었어요   
2012-12-21 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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