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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겐 더 많은 정치영화가 필요하다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 허남웅 이메일

대선을 앞두고 소위 말하는 '정치영화'의 개봉이 활발하다. 조근현 감독의 <26년>(11/29 개봉)이 개봉 1주일 만에 백만 관객을 동원했고, 정지영 감독의 <남영동 1985>(11/22)은 개봉 3주차에 40만 관객을 돌파하며 손익분기점을 넘길 것이 확실시 되며, 이정황 감독의 <유신의 추억 : 다카키 마사오의 전성시대>(11/22, 이하 '<유신의 추억>')는 배급의 어려움을 딛고 전국 5개관에서 관객과 만나고 있다. 이뿐이 아니다. 이미 10월에는 현 정부의 수장인 이명박 대통령의 2007년 대선 후보 당시의 공약과 지금을 비교하는 <MB의 추억>(10/18)과 이명박 일가가 개입한 맥쿼리의 각종 민자 사업에서의 특혜를 파헤친 <맥코리아>(10/18)가 개봉하기도 했다.

이들 영화들의 목적은 확실하다. 대선 특수를 겨냥한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특수'는 단순히 흥행에만 있지 않다. 이들 영화들은 대개 특정한 정치적 목적을 가지고 내용을 다룸으로써 관객에게 어필한다. <26년>의 경우, 광주 민주화 항쟁의 학살 주범인 전(前)전두환 대통령을 겨냥해 청산되지 못한 역사로 인한 피해를 언급하고, <남영동 1985> 또한 고(故)김근태 의원에게 자행됐던 고문 현장을 재현하며 역사 청산의 필요성을 역설한다. 두 영화가 최근 한국사회의 화두인 역사 청산을 내세운다면 <유신의 추억>은 보다 직접적으로 새누리당의 박근혜 대선 후보를 겨냥한다. 그녀의 아버지 박정희가 주인공으로 등장하지만 한 핏줄인 까닭에 역사관이 뿌리부터 잘못되어 있다는 것을 강도 높게 비난하는 것이다.

그래서 언론들이 주목하는 지점은 과연 이들 영화들이 2012년 대선에 어떤 형태로 영향력을 미칠 것인가에 모아진다. 특히나 '조중동'으로 묶이는 보수언론 쪽에서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앞서 소개한 영화들은 하나 같이 새누리당(전신인 한나라당은 물론 민정당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과 박근혜 후보, 그리고 같은 당에서 배출된 MB정부를 겨냥하고 있는 까닭이다. 물론 보수 쪽에서도 그들의 입장을 대변하는 영화 제작을 예정하고 있기도 하다. 바로 박근혜 후보의 어머니 고(故)육영수 여사를 다룬 <퍼스트 레이디>라는 작품이지만 현재 여러 가지 문제로 인해 대선 전 개봉은 물 건너간 상태다.

혹자는 이런 상황을 두고 영화가 정치에 개입하는 것이 탐탁지 않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영화가 사회의 반영이고 자연스러운 표현 수단임을 상기할 때 이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미 미국에서는 잘 알려졌듯이 선동적인 다큐멘터리 감독 마이클 무어가 <화씨 911>(2004)을 통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의 재선을 노골적으로 반대한 적이 있다. 버락 오바마의 승리로 끝난 이번 대선에서도 할리우드는 오바마와 밋트 롬니 양 진영으로 갈라서 영화로 논쟁을 펼치기도 했다. 공화당 전당대회에 지지 연설자로 참석한 클린트 이스트우드가 오바마를 향한 '빈 의자' 발언으로 후에 논란에 휩싸인 것이야말로 이 경우가 아니겠는가.
 왼쪽위에서 시계방향 <MB의 추억> <26년> <남영동 1985> <유신의 추억>
왼쪽위에서 시계방향 <MB의 추억> <26년> <남영동 1985> <유신의 추억>
그렇다면 <26년> <남영동 1985> <유신의 추억> <MB의 추억> <맥코리아>는 이번 대선에 어떤 형태로든 영향을 미칠 수 있을 것인가. 개인적으로는 그들이 원한 목적을 이루기에는 다소 힘에 부칠 것으로 보인다. 여전히 국민 위의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전두환의 청산되지 않은 과거 전력을 광장으로 이끌어낸 <26년>의 의도는 좋았지만 그에 미치지 못하는 완성도로 사회적인 파장을 이끌어내지 못하고 있으며, <남영동 1985>는 개봉 전 대선 후보들을 초청하는 등 뜨겁게 조성됐던 이슈파이팅을 개봉 이후까지 끌고 가기에는 상영관이 턱없이 부족하다. (<유신의 추억> 역시 마찬가지!) <MB의 추억>과 <맥코리아>는 MB정권의 도덕적 해이라는 문제 제기를 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그에 걸맞은 전개와 취재력에서는 아쉬움을 남기는 것이다.

이는 한국영화계가 아직까지 정치영화를 어떻게 포지셔닝 해야 할지 잘 모르고 있다는 사실을 반증한다. 정치적인 내용을 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를 가지고 정치적인 쟁점을 이끌어낼 때야 비로소 정치영화가 되는 것이다. 장 뤽 고다르의 발언을 빌리자면, "정치영화란 정치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정치화하는 것"이다. 그의 말처럼 최근 개봉한 한국의 정치영화들은 영화 자체로 정치화하는 것에 성공하고 있는가. 오히려 겉으로 드러난 이들의 선한 의도와 달리 몇몇 영화들은 대선 정국에 맞춰 서둘러 개봉한 티가 역력하다. 그렇게 해서 우리에게 남는 건 영화가 비판을 제기하는 대상에 대한 분노와 지지하는 이념과 당에 따라 우리 진영과 상대 진영을 가르는 선긋기에 그치고 만다.

그렇다고 이들 영화들이 별다른 성과를 얻지 못했다는 얘기가 아니다. <남영동 1985>의 경우, 김근태 의원의 사건을 가져왔지만 특정인에게 몰입하기보다는 고문하는 자와 고문당하는 자라는 보다 일반적인 범위로 시각을 넓히면서 관객이 체험토록 하여 청산되지 않은 역사의 후유증이 얼마나 큰지 몸소 깨닫도록 한다. 더 많은 관객이 보지 않아 아쉬울 따름이다. 그럼 더 많은 이들이 볼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창작자의 입장에서는 지금보다 더 많은 정치영화의 제작이 절실하고, 관객들에게는 더 많은 정치영화를 보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아직까지 우리에게는 청산되지 않고 공개되지 않은 흑(黑)역사가 수두룩하다. 그런 까닭에 역사 교육을 교과서에만 머물게 할 것이 아니라 이렇게 정치영화의 형태로 끄집어내는 것은 영화라는 매체가 갖는 사회적 파급력으로 볼 때 무척이나 중요하다. 그럼으로써 활발해지는 정치영화의 제작은 그 과정에서 정치'영화'가 아니라 '정치'영화로 자연스럽게 그 틀을 갖춰나갈 것임은 명약관화한 것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한국의 정치영화는 지금 막 출발선에 섰다. 더 많은 정치(적인)영화를 기대한다.

2012년 12월 6일 목요일 | 글_허남웅(영화칼럼니스트)

2 )
mrmyungo
파리의 마지막 탱고가 정치영화 아닐까   
2012-12-12 01:10
onlyyeom
"정치영화란 정치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화를 정치화하는 것" 이란 말. 꼭 대한민국 영화가 이끌어 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없던 장르들이 조금씩 세상밖으로 나오는 것 같아서 관객으로써는 이마저도 기쁘네요 ;)   
2012-12-06 2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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