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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브리 스튜디오, 더 나은 미래를 꿈꾸다
마루 밑 아리에티 | 2010년 9월 29일 수요일 | 김한규 기자 이메일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지만, 매번 비슷한 형식과 이야기는 식상함을 주고 있다. 오늘날 3D 입체 애니메이션이 나오고 있음에도 2D 애니메이션을 고집하는 지브리 스튜디오는 그들만의 역사와 전통을 자랑한다. 그러나 빠르게 변하는 관객의 성향을 따라가지 못하고,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 위주의 애니메이션만 양산된다는 것은 단점으로 지적된다. 그동안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특히 극장 개봉한 다수의 장편 애니메이션은 미야자키 하야오가 연출을 맡았다. 이로 인해 지브리 애니메이션은 한쪽으로 치우친 스타일의 작품들이 많았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계속해서 변화를 시도해왔고, 지금도 변화하고 있다.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

지브리 스튜디오는 곧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그의 영향력은 크다. 경영학도였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애니메이터로 활동하기 시작한 건 1963년 도에이에 입사하면서부터다.(이때 그는 애니메이션 동지인 다카하타 이사오를 만났다.) 그에게 명성을 가져다 준 작품은 1976년에 만든 TV 애니메이션 <미래소년 코난>. 이 애니메이션은 국내에도 방영되면서 많은 사랑을 받았다. 3년 뒤인 1979년 그는 <루팡 3세: 카리오스트로성의 비밀>을 통해 장편 애니메이션 감독으로 입지를 다진다. 이후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바람계곡의 나우시카>를 만들며 지브리 스튜디오를 세운 후 <천공의 성 라퓨타> <이웃집 토토로> <마녀 배달부 키키> <붉은 돼지>를 잇달아 내놓으며 자신만의 애니메이션 스타일을 구축한다. 1997년 <모노노케 히메>를 통해서는 일본을 넘어 전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그리고 이 영화를 기점으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벼랑 위의 포뇨>까지 1,000만 관객을 불러 모으며,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의 거장으로 군림하고 있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천공의 성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왼쪽부터 시계방향) <천공의 성 라퓨타> <모노노케 히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
언제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자신의 작품에 자연, 신화, 역사 등을 재조명했다. 초기작인 <바람계곡의 나우시카>와 <천공의 성 라퓨타>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황폐화된 지구를 배경으로 자연의 소중함을 일깨웠다. <모노노케 히메>는 자연과 신, 인간이 공존하는 세계를 그렸고, <붉은 돼지>와 <하울의 움직이는 성>은 세계 2차 대전을 소재로 전쟁의 상흔을 드러냈다.

아무리 뛰어난 감독과 스탭, 노하우가 있다하더라도 계속 똑같은 것만 생산한다면 관객은 등을 돌리기 쉽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이런 위험에 많이 노출되어 있었고, 스스로도 알고 있었기에 조금씩 변화의 조짐을 보여왔다. 오로지 2D 애니메이션만 고집하는 지브리 스튜디오는 수작업으로 만든 아날로그 이미지가 주를 이룬다. 그러나 점점 발전하는 애니메이션 기술력에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CG를 도입했다. CG는 1994년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연출한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부터 썼고, 지브리 스튜디오는 1년 뒤 아예 CG부서가 생겼다. 이후 <모노노케 히메>와 <이웃집 야마다군>에서 아날로그 이미지와 CG의 조합으로 애니메이션을 완성했다. 그러나 <벼랑 위의 포뇨>에서 다시 기존의 전통적인 2D 애니메이션 기법만을 사용했고, 자연스럽게 CG부서는 자취를 감췄다.
 (왼쪽부터 시계방향) <바다가 들린다> <귀를 기울이면> <고양이의 보은>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왼쪽부터 시계방향) <바다가 들린다> <귀를 기울이면> <고양이의 보은> <게드전기 : 어스시의 전설>
지브리 스튜디오가 시도한 또 다른 변화는 감독의 세대교체다. 그동안 미야자키 하야오는 자신을 대체할 재능 있는 감독들에게 연출 기회를 줬다. 1993년도 작품인 TV 애니메이션 <바다가 들린다>는 지브리 스튜디오의 첫 번째 시도였다. 남녀의 연애 감정을 잘 표현한 <바다가 들린다>는 유달리 멜로 감성을 잘 그려냈던 모치즈키 토모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이 작품은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의 손을 거치지 않은 첫 번째 작품이다. 두 번째 시도는 1995년도 작품인 <귀를 기울이면>이다. 이 작품의 연출을 맡은 콘도 요시후미는 1970년대부터 미야자키 하야오와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의 작품에 많은 도움을 주었던 지브리 스튜디오의 인재였다. <귀를 기울이면>은 콘도 요시후미 감독이 지브리를 이끌어나갈 차세대 주자로 인식할 만큼 좋은 평가받았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심한 간섭으로 인해 둘은 자주 언쟁을 벌였고, 몸이 약했던 콘도 요시후미 감독은 2년 뒤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2002년 모리타 히로유키 감독의 <고양이의 보은>은 지브리 스튜디오가 세 번째로 시도한 영화다. 모리타 히로유키는 프리랜서로 <마녀 배달부 키키> <퍼펙트 블루> 등 다수의 원화를 그렸던 이력이 있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후 그의 작품은 나오지 않고 있다. 그 다음 시도는 2006년에 있었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아들인 미야자키 고로 감독의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이다. 미야자키 하야오의 아들이 감독을 맡았다고 해서 이슈화 되었지만 평단과 관객의 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지브리의 미래?

1985년도에 설립된 지브리 스튜디오는 애니메이션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뽑아 꾸준히 키웠다. 그러나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그들의 작업 완성도를 믿지 못해 그림 콘티부터 작화, 수정까지 모든 일을 총괄했다. 그러다보니 꿈 많던 지브리의 사원들은 감독의 수족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지금까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바통을 받을 제대로 된 제자가 나오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런 와중에 지브리의 미래를 점쳐볼 수 있는 <마루 밑 아리에티>가 개봉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개봉 첫 주 일본 박스오피스 1위를 차지하고, 3주 만에 전국 관객 300만 명을 기록했다. 그러나 이 기록들보다 중요한 건 이번 영화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연출을 하지 않은 작품이라는 것이다. 영화는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원화와 작화를 담당했던 요네바야시 히로마사가 연출을 맡았다. 이번 작품이 첫 연출작인 요네바야시 히로마사는 1996년 지브리 스튜디오에 입사해 그동안 <모노노케 히메> <게드전기: 어스시의 전설>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벼랑 위의 포뇨> 등의 많은 작품에서 원화와 작화를 맡았다. 그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치히로 아버지가 돼지로 변화는 장면,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서는 소피와 하울이 하늘 위를 걷는 장면을 그려 자신의 능력을 드러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신예 감독이 연출을 맡으면서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각본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담당했지만, 그 이외의 일에는 일체 간섭하지 않았다. 제작기간에도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을 만난 적이 없었다. <마루 밑 아리에티>는 이전 지브리 애니메이션보다는 제작지간이 길었지만 지브리 특유의 캐릭터 묘사와 2D의 따뜻한 색감, 그리고 신비로운 이야기를 잘 혼합했다. 소인 소녀와 인간 소년의 우정을 그린 작품은 특히 소인들의 생활방식을 표현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 각설탕 한 개와 티슈 한 장으로 한 달을 살고, 시침핀을 무기로 쓰는가 하면 인간들의 방과 식탁이 거대하게 표현되는 소인들의 눈높이에 맞는 묘사가 탁월했다는 평가다. 음악도 변신을 꾀해 그동안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음악감독을 맡았던 히사이시 조가 아닌 프랑스 출신 하프 연주자 세실 코벨이 담당했다.
이런 지브리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마루 밑 아리에티>는 기존 지브리 애니메이션과 비교했을 때 다소 부족한 면을 드러낸다. 영화는 자연의 아름다움이나 소인들의 모습을 세심하게 표현하지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이 추구했던 새로운 세계의 신비함과 경이로움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진다. 또한 극적 긴박감이나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을 인상 깊은 장면이 많지 않다. 결과적으로 영화는 지브리라는 상표를 붙이고 나온 애니메이션으로는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물론 <마루 밑 아리에티>가 요네바야시 히로마사 감독의 첫 연출 작품이고, 이제까지 원화와 작화를 맡은 스탭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부담감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이전 영화들과 달리 소품 같은 평범한 이야기를 지닌 애니메이션 한 편으로 지브리 스튜디오의 미래를 낙관하기는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더불어 미야자키 하야오의 뒤를 이을 차세대 주자로서 합격점을 주기에도 만족스럽지 못하다. 그동안 지브리 스튜디오는 변화를 시도해왔지만, 미야자키 하야오를 중심으로 펼쳐나가는 작업방식을 탈피하지 않는다면 흐르지 않는 고인 물이 될 것이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꾸준히 세대교체를 시도하고 있다. 비록 <마루 밑 아리에티>가 세대교체의 시기를 앞당기는 데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하야오의 아이들은 여전히 지브리의 새로운 시대를 열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미야자키 하야오와 비교된다는 부담을 넘어서야 한다. 그것이 지브리 세대교체의 시작이 될 것이다.

2010년 9월 29일 수요일 | 글_김한규 기자(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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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dew82
지브리 스튜디오의 과거부터 미래까지 잘 읽었습니다. 몰랐던 부분도 많았고, 공감가는 부분도 많았어요. 앞으로 지브리가 열어갈 새로운 시대가 기대됩니다 :)   
2010-10-06 17:35
bjmaximus
미야자키 하야오의 그늘과 입김이 상당하구나   
2010-09-30 1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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