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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리끼리 알아서, 영진위와 뜬금없이 나타난 두 단체
영진위 공모 선정 파행 | 2010년 2월 8일 월요일 | 김도형 기자 이메일


지난 2010년 1월 25일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는 홈페이지를 통해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로 (사)시민영상문화기구,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자로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를 선정한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번 발표에는 납득하기 어려운 문제들을 내포되어 있다. 영진위는 여러 심사위원들이 배석한 가운데 진행된 민주적인 방법이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외형적인 형태만 그럴 뿐, 내용과 방식을 따져보면 상식에 어긋난 파행적인 형태였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가장 큰 이슈는 선정된 단체에 대한 검증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영상미디어센터 사업자로 선정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는 2010년 1월 6일에 만들어진 단체로, 공모 접수가 15일부터 있었으니 만들어진지 채 열흘도 안 된 상태에서 공모 신청을 하고 선정까지 된 것이다. 마치 선정을 위해 만들어진 단체라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또한 (사)시민영상문화기구와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는 기존 독립영화계와의 네트워크는 커녕, 한 번도 연관된 사업을 진행한 적이 없는 완벽한 신규단체로, 객관적으로는 심사위원들에게 높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단체다.

그렇다고 신규단체의 선정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은 아니다. 자질과 능력이 된다면 신규단체도 사업을 추진할 수 있다. 하지만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 사업은 단순히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공문화기반시설에 대한 인식을 확산시켜 문화 전체에 대한 영향력을 넓히는 사업이다. 이 사업은 중심구성원이 시민, 독립영화관객, 독립영화창작자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유기적인 인력 네트워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단체가 사업을 주도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그런 이유로 그동안 독립영화계 혹은 영화 창작자들과의 소통이나 협력 관계가 전혀 없었던 신규단체가 갑작스럽게 이 사업의 공모자로 선정된 것은 그것 자체로 문제의 소지가 있는 셈이다.

지금까지 영진위가 추진하는 사업의 공모자로 선정되기 위해서 각 단체는 부단한 노력을 기울여 왔다. 2002년 5월 개관해 영상미디어센터를 맡았던 미디액트는 개관 이전에 ‘독립영화전용관 및 미디어센터 건립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하고 여러 차례의 공청회를 통해 능력을 검증받은 후에 개관해 활동을 시작했으며, 정권 교체 이후 갑작스럽게 단행된 감사에서도 별다른 트집을 잡히지 않은 투명한 경영을 자랑했다. 독립영화전용관 역시 여러 보고서와 여론 수렴작업을 거쳐 지금까지 효율적인 방법으로 사업을 이어오고 있다. 이후에도 실제 독립영화와 관객이 만날 수 있도록 공동체상영이라던가 퍼블릭엑세스 활동, 세미나와 토론회 등 다양한 활동을 통해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이름은 물론 구성원도 낯선 신규단체가 흔하디흔한 공청회 한 번 없이 사업을 맡아 진행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납득이 어렵다. 영진위가 이러한 신규단체에서 발견한 가능성이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공론화해서 모두가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절차는 반드시 필요하다.

사실 이번 일을 계기로 가장 분노한 것은 올해 1월까지 8년간 사업을 맡아왔던 미디액트다. 물론 이들은 이번에도 지금까지 해온 사업과 진행 중인 사업을 바탕으로 심사에 참여했지만 아쉽게 탈락했다. 퍼블릭엑세스의 법제화, 소외계층의 미디어접근권확대, 독립채널, 다양한 플랫폼의 확대, 문화다양성을 위한 다양한 상영회 및 공동체상영 등 다양한 활동에도 불구하고 떨어진 것이다. 이들의 분노는 비단 탈락 때문은 아니다. 선정된 단체가 객관적으로 납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거나 새로운 사업을 제시하려는 의지라도 가졌더라면 이렇게 억울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공모’라는 이름으로 밀실에서 진행되는 심사 과정이 투명하지 않았기에 결과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영진위는 모든 공모에서 참여한 개인과 단체를 1차적으로 공개하고, 모든 심사발표에 전반적인 심사평과 함께 해당단체의 선정사유를 명기했던 것과 달리, 이번 공모전에는 아무런 내용도 발표하지 않았다. 1차 공모전에서는 ‘적정단체 없음’이라는 발표 외에 어떠한 사유도 명기되지 않았고, 2차 공모에서는 참여한 단체의 선정사유만 간단하게 적시했을 뿐, 그 외 다른 언급은 일체 없었다. 또한 이번 사업의 영진위 담당 위원은 이미연 위원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업무와 관계없는 정초신 부위원장을 심사위원으로 참여시키고 이미연 위원을 선정 위원에서 제외시켰다. 또한 그 외의 심사위원들 역시 독립영화계나 영상미디어센터와 크게 관련이 없는 인물들로 구성됐을 뿐만 아니라, 심사위원 중 한 명은 “센터가 하는 일이 무엇이냐?”는 어이없는 질문을 할 정도로 적절한 자질도 갖추지 못 했다. 사실 영진위의 이러한 행태는 2009년 영화단체지원사업에서도 조짐이 보였다. 서울국제노동영화제, 인권영화제, 인디포럼 등이 높은 예심결과점수에도 불구하고 최종 탈락시키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벌어졌다. 사업을 사업으로 보지 않고 정치적 이념으로 세력을 나눠 판단하는 것 같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영진위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침을 받아 사업자 선정을 공모제로 전환하기 시작하면서 불안 요소는 싹텄다. 특정 단체에 특혜를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번에 사업자로 선정된 (사)시민영상문화기구를 이끌고 있는 홍익대학교 김종국 교수는 뉴라이트 계열인 한국문화미래포럼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는 독립영화감독인 최공재씨는 과거 스크린쿼터 축소 찬성과 <디 워> 옹호발언, 넥스트 플러스 영화제의 파행적 운행에 책임이 있는 인물이다. 물론 이러한 근거로 영진위의 선정 과정을 정치적인 이념으로 해석하려는 것은 아니다. 보수적인 성향이 강하던 진보적인 성향이 강하던, 중요한 것은 사업을 잘 운영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영진위의 선정 과정 자체도 미심쩍은 부분이 많다. 미디액트는 (사)시민영상문화기구에 총점 2점 차이로 1위를 내줬는데 그 이유는 과거의 경력이 심사에 반영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평가 기준에 ‘동종사업 운영실적’과 ‘지역미디어센터와의 네트워크 구축 가능성’이라는 항목이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과거 경력을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다. 또한 심사과정을 들어보자는 영진위 내부의 요구에 심사위원들은 난색을 표했고, 심사 당일 한 위원이 독립영화전용관을 없애야 한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할 정도로 몰상식한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하지만 문제의 중심에 있는 영진위는 영화계의 거센 반발에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영상미디어센터의 운영은 독립영화계는 물론, 영화제작에 관심이 있는 모든 시민에게 중요한 문제다. 독립영화의 제작을 도와주고 장비를 지원하는 사업의 선정 과정이 아무도 모르는 밀실에서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영진위는 선정 과정을 공개하고 명확한 이유를 설명해야 할 것이며, (사)시민영상문화기구와 (사)한국다양성영화발전협의회는 공청회를 열어 사업 추진에 대한 능력을 평가받아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러한 영화계 안팎의 주장으로 1월 29일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날 참석한 영화감독들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독립영화 감독들로, 영진위의 처사에 분노했다. 특히 “2001년 11월, 아무것도 없는 화장실 옆 작은 창고에서 시작했다.”며 말을 시작한 고영재 사무총장은 참담한 심정을 드러내며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 지금까지 미디액트는 독립영화 발전과 제작환경 개선에 많은 영향을 줬다. 다양한 방법으로 활동의 폭을 넓혔으며, 그런 성과는 <우리학교> <워낭소리>와 같은 작품으로 이어졌다. 미디액트는 갑자기 단행된 감사에도 별다른 문제가 없을 정도로 투명하게 운영되어 왔으며, 인력 인프라를 통해 회원들은 물론, 전국의 독립영화 네트워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날 참석한 감독들은 영진위의 비상식적인 태도에 직접적인 반기를 들었다. 하지만 감독들 사이에서도 대응 방식에 대한 의견은 분분했다. 반복되는 비상식적인 행동에 상식적인 대처만으로 일관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만큼 이 사태가 독립영화계와 영화창작자들에게 위기감을 준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초기 운영위원을 맡았던 임창재 감독은 “정권 교체 이후 달라진 공기를 느낀다. 검증 없는 졸속 행정이 국민들의 영상 창작 권리를 침해하는 행위”라며 비난했다. 정부가 국민을 얕봐서 이런 일이 생긴다며 서운한 감정도 드러냈다. 임순례 감독 역시 “미디액트만큼 실무자들의 능력이 검증된 곳이 없다.”며 퍼블릭액세스의 개념이 없던 시절부터 이와 관련된 일들을 시작한 미디액트에 강한 신뢰를 보냈다.

미디액트의 회원 출신으로 감독이 된 윤성호 감독은 공공미디어로서 초기의 고난을 감내하고 사업을 일구어 내 공공의 가치를 만들었다는 점에 의미를 두고, “단순한 수치 비교가 아니라 시민들의 의식의 폭을 넓힌 공로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송희일 감독 역시 철거민의 심정이라며 운을 뗀 후, “인디포럼 역시 촛불문화제 관련 인물을 인터뷰 했다는 지원이 끊겼다.”며 문화적인 가치에 정치적 이념을 대입하는 영진위에 불만을 드러냈다. 또 “이번 신생 단체의 성격이나 구성원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했다. 영진위는 유령 단체들이 모여 있는 곳 같다.”며 쓴 소리도 했다. 김조광수 감독 역시 “영진위가 30년 퇴보했는데, 우리는 계속 이 시대에 맞는 방법으로 맞서야 할 것인지, 같이 30년 퇴보한 방식으로 저항해야 하는 건지 고민스럽다.”며 대응 방식에 대한 지적도 했다.

<경계도시 2>의 극장 개봉을 앞둔 홍형숙 감독도 “감독뿐 아니라 영화에 대해 꿈을 키우는 공간”임을 강조하며 현실적인 노력과 전문성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펼쳤다. 김동원 감독 역시 “전문성 없는 이들이 심사하고 전문성 없는 이들이 선정되는 행태에 답답하다.”며 현 사태를 안타까워하며 영진위의 심사 과정과 내용 공개를 요구했다. 고영재 사무총장은 미디액트가 그 동안 바꿔놓은 독립영화 지형도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어떤 단체가 새롭게 일을 하더라도 납득이 갈 만한 능력을 지녀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특히 조희문 영진위 위원장이 심사위원들에게 “특정 단체가 오래 해서 경쟁 상대가 없다. 신생 단체라도 미래를 봐야 한다.”는 말을 했다는 점을 들며 공정한 심사가 아닌 밀실에서 만들어진 잘못된 미래에는 가능성이 없다는 점을 역설했다.

이번 사태는 단순히 미디액트가 사업자로 선정되지 않은 것에 대한 안타까움이 아니다. 정치적인 이념 문제도 아니다. 영진위가 진행한 공모에서 선정된 사업자는 어떤 단체가 됐던 전문적인 역량으로 충실히 사업을 이행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청회를 통해 신규단체의 능력을 검증해야 한다. 또한 만들어진지 채 열흘도 안 되는 단체가 공모에 나와 선정까지 된 과정 역시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 영진위의 공모는 아는 사람들끼리 모여서 대충 의견을 맞추는 수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영상미디어센터와 독립영화전용관은 영화 창작자는 물론 관객들 모두에게도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일이다. 졸속 행정으로 독립영화의 근간이 훼손되는 일은 결단코 없어야 한다.

2010년 2월 8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2010년 2월 8일 월요일 | 사진_박태근    

5 )
eunsung718
잘 보고가요~   
2010-09-08 14:24
kisemo
기대되네요   
2010-02-28 13:04
leena1004
잘 읽었습니다!   
2010-02-23 10:13
konan86
왜들이러시나   
2010-02-13 19:32
kwyok11
독립영화 중요하죠   
2010-02-12 10:04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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