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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민’ 삼순이는 가라! 루루‘공주’가 납시나니~
2005년 8월 10일 수요일 | 이지선 이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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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님이 돌아왔다. 왕조시대도 아니고 ‘신데렐라 콤플렉스’니 뭐니 해서 다소 전형적인 이야기만 등장해도 여성단체의 ‘포격’에 가까운 비난을 받은 21세기에, ‘진짜 공주’가 돌아왔다. 물론 지금은 시대가 바뀌었고, 이 나라 대한민국은 영국처럼 입헌군주제를 가진 것도 아니니, ‘진짜 공주’라고 한다 해도 왕족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은 다들 아실 터. 최근 안방극장을 찾아오고 있는 드라마 <루루공주>의 공주마마는 처음부터 귀하게 태어나 곱게 자라난, 그리하여 왕자(같은 남자)와 결혼하는, 재벌가의 영양이시다.

누가 봐도 어딘가 ‘시대착오적’이라 할 것이 틀림없을 만한 이야기에 도전하고 있는 용감무쌍한 방송국은 전통의 SBS. <파리의 연인>, <봄날> 등 화려한 전적을 가진 제작진들이 대거 투입됐다. 이들은 한 겹 둘러진 방탄유리 안에서 세상을 바라봐야 하는 공주마마의 고민과 사랑을 그리겠다며 호기롭게 시청자들을 공략하는 중이다. 물론 그 호기로운 자신감의 근저에는, 전국 4백만이라는 ‘영광’을 창조했던 김정은, 정준호 커플이 있다.

▶ 공주, 돌아오다!

그리하여, 우리의 공주님은 지난달 27일 안방의 관객들과 첫 조우를 했다. 제작진이 밝힌대로, 그녀는 아름답고, 착하고, 교양이 넘쳤으며, 심지어 대책 없는 ‘사랑의 도피행각’에 조력자가 돼 줄 만큼 순수하기까지 했다. 세상 물정 따위는 전혀 모르고, 매일 동양화에, 요리를 배우며 조신한 안주인이 되기 위한 연습에 바쁜 이 처자. 동정심과 오지랖의 폭도 넓어서 고아원 벽에 그래피티를 그리거나, 신세를 갚기 위해 온몸을 던지면서도 불평 한 마디 안 하는, 그야말로 잘 자란 부잣집 딸이다.

물론 그녀에게도 성장과정 상의 아픔, 가족관계에서 오는 고단함이 있지만, 주변에서 ‘아가씨’ 소리를 들으며 귀애받는 그녀의 팔자가 꽤 호사스러워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파리의 연인>에서 가난한 (듯 보이나 명품백을 들고 다녔던) 고학생으로 출연한 바 있는 김정은은, 대거 신분상승하여 바로 이 ‘공주님’ 고희수를 열연 중이다.

곧 그녀와 티격태격을 넘어 알콩달콩 사랑을 나눌 ‘왕자님’은 정준호가 연기한다. 매끈한 얼굴, 반듯한 매너, 명석한 머리, 그리고 든든한 재력을 가진 이 남자에게 흠이 있다면, 천하의 바람둥이라는 사실. ‘곳곳에 사귄 여인이 수십 명이요, 낳은 아이가 백여 명을 넘길 것’이라는 소문이 횡행해도 신경쓰지 않는, 널찍한 간크기마저 갖춘 남자다. 이만하면 현대적 왕자의 풍모를 충분히 갖췄다고 할 수 있겠다.

곱게 자란 ‘공주님’이나 대범한 ‘왕자님’이나 지나치게 ‘스테레오 타입’이라는 점이 매우 거슬리지만, 애초에 이 드라마, 바로 그 ‘대놓고 뻔뻔한 이야기’를 하자고 기획된 것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이건 단점도 아닌 게다.

▶ 난무하는 비판 속에도 시청률은 쾌속상승!

이 대단한 남녀가 만났으니, 일상적 왕자와 공주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러브로망판타지’까지는 아니어도 ‘러브 로망’이 완성되는 것은 그야말로 시간문제다.

4회가 방송된 현재, 이들은 ‘도망치는 신부’와 ‘신랑친구’라는 외양으로 만나 거듭 오해를 쌓고, 유치한 말장난으로 서로를 ‘갈구’면서 티격태격의 단계를 거치는 중이다. 그 와중에 떡볶이 노점에서 카드를 내미는 공주님의 어이없는 행각이나, 일회용 캐디 노릇 중인 공주마마를 향해, “오늘 밤 어떠냐, 니가 비싸다며?” 등의 대사가 오가는 넋 나간 상황이 등장하면서 대중의 욕도 무진 먹고 있다. 또 이미 여러차례 상업방송의 위용을 과시한 바 있는 SBS의 드라마답게, 이번에도 여지없이 노골적 PPL논란까지 따라 붙었다.

협찬 기업 웅진이 지나치게 자주 노출되면서 ‘비데 공주’라는 별칭까지 듣고 있는 마당이다. 지나치게 착해서 수동적이기까지 한 여주인공의 설정은 <내 이름은 김삼순>이 그려냈던 적극적이고 현대적인 여성상을 10년 뒤로 퇴보시켰다는 평가마저 받았다. 시대착오는 예상되었으나 해도 너무한다는 이야기다.

그러나 당초 그 전형화된 설정만으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시나리오 아닌가. 시도 자체가 위험지수 100%였다. 드라마 안과 밖 모두, 어느 것 하나 새롭지 않다.

그나마 새로운 것이 있다면, 왕자의 상대가 허름한 신데렐라가 아닌 천사 뺨칠 성품의 공주라는 설정, 그리고 시청률이다. ‘진부하다’, ‘스테레오타입이다’, ‘생각없다’ 등등 수많은 비판이 쏟아져 나오고 있으나, <루루공주>는 건재하다. <루루공주>의 설정과 만듦새를 비판하는 사람들에게, 이 꾸준한 시청률의 오름세는 미스터리겠지만, <내 이름은 김삼순> 이후 무주공산이던 수목드라마 판도는 이미 일거에 정리되었다. 김정은-정준호 커플의 파워인지, 논쟁이 낳은 효과인지 정확하게 알 수는 없으나, 4회 방송 현재 <루루공주>가 ‘따낸’ 시청률은 수도권 25.8%, 전국 22.5%. 상당수의 시청자가 그 같은 비판과 비난에 아랑곳 않고(?) <루루공주>를 선택했다는 이야기다.

같은 날 시작된 MBC의 <이별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가 10%대의 시청률로 고전 중인 것에 비하면 압승이라 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더구나 ‘캐디 묘사 논란’ 이후 사과공지까지 내는 수세(?)에 몰렸던 것을 상기한다면, 이 같은 시청률의 꾸준한 상승은 제작진에게 쾌재거리가 아닐 수 없다. 4회 방송 당시 수도권 시청률이 <내 이름은 김삼순>과 함께 MBC의 효자드라마로 꼽히던 <굳세어라 금순아>를 제쳤다니 희색이 만면할 만도 하다.

▶ 패턴은 유행과 같다.

드라마의 품질을 가리는 정격기준은 아니나, 시청률은 드라마의 시장성을 판단하는 최고의 잣대로 통용된지 이미 오래다. 옳고 그름, 좋고 나쁨은 논외다. 시청률은 이제 ‘뜨거운 감자’의 단계를 벗어나 모두의 ‘기준’이 됐다. 초반 시청률에 따라서 광고가 달라지고, 안정적인 제작환경이 보장된다. 높은 시청률의 드라마는 자연스럽게 잦은 언론의 조명 속에 서게 되며, 그에 따라 ‘남들이 보니 나도 보는’ 상황이 연출되면서 지속적 상승세를 유지한다. 패턴이다. 논란과 논쟁이 따라붙으면 금상첨화다. ‘대체 뭘 어쨌길래 그러나’하는 호기심이 안방 대중을 건드려 줄 것이며, ‘인터넷이 있냐’고 물어보면 폐가 되는 훌륭한 기반 위에서 대중은 언제든 평론가로 변신할 수 있다.

‘모두가 평론가’인데 논쟁이 발생하지 않을 리 없고, 싸움구경 만큼 흥미로운 것도 없다. 논쟁 속의 드라마들은 그래서 대부분 히트를 기록했다. 신데렐라 콤플렉스의 진수이자 한국드라마 특유의 설정-삼각관계, 출생의 비밀, 신분상승 등- 모두를 녹여낸 용광로 <파리의 연인>은 대표적인 사례다. 심지어 대한민국 30대 여성의 열광적 지지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던 <내 이름은 김삼순> 조차 이 같은 패턴 안에 있었음은 부인할 수 없다.

<루루공주>는, 바로 이 패턴을 답습 중이다. 공주가 세상을 모를수록, 왕자가 좀 더 뻔뻔할수록 드라마는 논쟁의 중심에 설 것이다. 아슬아슬한 PPL, 수위를 넘나드는 묘사, 진부하기 짝이 없는 삼각관계, 키치를 넘어 유치를 향해 달리는 로맨스. 이 모두는 수많은 찬반을 낳으며 향후 <루루공주>의 시청률에 안정적으로 복무할 것이 틀림없다. 국내 드라마시리즈의 특성상 결말이 뻔히 예상되는-김정은의 짝은 당연히 정준호가 아니겠나!- 스토리의 단순함은 언제 어느 때든 올라탈 수 있는 편의로 작용할 것이기에, KBS의 <부활>처럼 탄탄한 만듦새에도 상황에 밀려 시청자의 폭넓은 지지를 얻지 못하는 불운도 쉬이 피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장점(!)이 수두룩하니 ‘시대착오적’이라는 비판이 아무리 거센들, 그 비판이 무서워 드라마의 방향을 제고할 연출자는 단연코 어디에도 없는 것이다. <루루공주>는 계속 그러할 것이며, 차후에도 제 2, 제 3의 ‘루루공주’들은 계속 등장할 것이다.

패턴은 유행과 같다. 10년 비슷한 설정, 유사한 디자인이 재탕, 삼탕이 된다고 해도 문제될 것은 없다. 아주 약간의 차별성-<루루공주>의 경우 왕자의 짝으로 신데렐라가 아닌 공주를 앉혀 놓았다-과 볼거리만으로도 패턴의 유효성은 쉽게 획득되기 때문이다.

▶‘무플’이 악플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나는 앞으로 <루루공주>를 보지 않을 생각이다. 4회까지 방송된 <루루공주>는 비판 그대로 진부하고 시대착오적이었으며 유치했다. ‘비데공주’ 소리가 당연시될 만한 화면이 여러차례 등장했고, 대놓고 뻔뻔하기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남자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은 <사랑을 그대 품 안에> 시절 그대로였고, 위험스러운 대사가 난무했다. 비판의 모든 지점은 사실이었다.

그러나 내가 ‘더 이상 못 보겠다’고 결정한 이유는 그러한 것들에 있지 않다. 앞서도 이야기했듯이 익숙함은 편의고, 피곤한 일상에 지친 대중들에게 판타지는 여전히 유효한 즐거움이다. 상류사회의 일상과 사랑을 들여다보는 드라마 <루루공주>는 서민들에게 일종의 판타지러브로망일 수 있다.

대중들은 바보가 아니다. 현실과 판타지 사이의 간극 정도는 익히 알고 있다. 그 간극의 위화감을 대체할 즐거움이 있다면, 허구의 대명사인 드라마가 현실에 반 발짝이라도 발을 걸치고만 있다면, <내 이름은 김삼순>과 <파리의 연인>은 동시대에 공존할 수 있다.

하지만 불행히도 나는 그러한 즐거움을 <루루공주>에서 느낄 수 없었다. 에피소드는 전체의 개연성이 아니라 말초적 재미와 웃음을 위해서만 기능하는 경우가 많았고, 무엇보다 우리의 여주인공 ‘공주마마’께서 전혀 일관성 없는 성격을 가진 지라, 당췌 감정이입을 시도할 수 없었다. 지극히 순진하고 순수해서 세상 물정 하나 모르는 그녀는 정규교육과정을 거치기만 한다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들조차 모르는 경우가 허다했다.

노점이 없는 곳에서 살다온 사람이 아니라면 5천원어치 먹고 카드를 내미는 경우란 있을 수 없다. 인형과 대화를 나누는 정도야 그럴 수 있다지만, “인공호흡은 키스가 아니에요”라며 고개를 흔드는 모습에야 혀를 내두를 밖에. 피아노도 잘 치고, 그림도 잘 그리는 디자인 전공자이면서 영어, 불어, 독어까지 못하는 외국어가 거의 없는 우리의 공주님은 근두운이라도 타고다니는 걸까. 아니면 평생의 교육과정이 다 홈스쿨이었나? 현실의 어느 한 구석에도 발이 닿지 않은 듯 보이는 공주님을 지켜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나마 왕자님이라도 만나서 현실성을 좀 찾는가 싶은 기대에 참아볼까 했지만, 시도 때도 없이 남의 일에 참견하고 불필요한 개입을 정의감으로 포장하는 모습만은 견디기 어려웠다. 수습도 제대로 못하면서 오지랖만 넓은 동정심은 민폐인 게다.

그러니 굳이 고행하는 심정으로 드라마를 지켜본 뒤에 시청률 올리는 논쟁에 동참할 이유가 무에 있는가. 자고로, ‘무플이 악플’이라지 않던가.

4 )
qsay11tem
시청률은 아쉬움이 ..   
2007-11-25 14:49
kpop20
드라마 기사는 그만   
2007-05-17 12:13
zhvkro
그렇게 재밌나? 시청률은 높다고 들었는데..   
2005-08-18 14:47
ksalje99
ㅎㅎ 완전 동감이요..강추하오이다!!!!!!   
2005-08-11 09: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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