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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소문의 주인공! <방자전>, 변학도 그리고 송새벽
2010년 7월 5일 월요일 | 백건영 영화평론가 이메일


지금이야 바쁘다는 핑계로 대학로와 소원해졌지만, 10여 년 전만해도 일주일에 한 두 번은 대학로에 나가 연극을 보는 것이 일과였다. 특히 극단 차이무와 연우무대, 신화, 목화의 공연은 놓칠세라 부산을 떨었는데, 그 중에서도 차이무와 연우무대의 공연을 보는 일은 빌리 와일더의 영화를 보는 것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여겼더랬다. 최덕문과 이대연과 박원상을 배출한 극단 차이무와 문성근, 강신일, 권해효, 정은표, 유선이 활약했던 연우무대의 레퍼토리는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알려진 대로 영화 <살인의 추억>의 원작은 김광림 연출의 연우무대 대표작 <날 보러와요>다. 대학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1996년의 일이다. 이 연극에서 나를 매료시킨 인물은, 형사 역의 권해효도, 형사반장을 맡은 강신일도, 경찰서출입기자 역의 유선도, 아닌 광기와 이성 사이에서 좀체 종잡을 수 없는 살인용의자를 연기한 류태호였다. 그는 <살인의 추억>에서 제철공장 노동자로 등장해 작업장 내에서 체포되는 변태성욕자 역할을 맡기도 했는데, 단역에 가까운 영화와는 달리 연극에서의 그의 위치는 극의 후반을 통째로 책임질 정도로 막중했다. 때론 어눌한 말투와 어수룩해 보이는 표정과 유연한 몸동작을 보이다가 돌연 표정을 바꾸고는 희대의 연쇄살인마의 이미지를 드러내기도 하면서 웃음과 전율을 객석에 선보였으니, 그해 모든 연극연기자상이 그의 독차지인 건 당연한 결과였다. 이처럼 워낙 출중하고 인상 깊은 연기였기에 그의 이름을 잊을 수 없었다.

김대우 감독의 <방자전>에서 변학도를 맡은 배우 송새벽에 대한 이야기가 장안의 화제다. <마더>에서 원빈에 입에 사과를 물리고 화려한 발차기를 선보인 형사를 연기한 바로 그 배우다. 그 역시 연우무대 출신 연기자이다. 2007년 <해무>의 공연을 본 봉준호는 송새벽을 <마더>에 캐스팅한다.ㅡ박해일 역시 <청춘예찬>을 본 봉준호가 <살인의 추억>으로 불러들인 케이스다ㅡ이 때 깊은 인상을 남기더니 <방자전>의 변태 변학도 역으로 입소문의 주인공이 된 것이다.

송새벽이 연기하는 변학도는 “인생 목표가 뚜렷한, 그러니까 보다 많은 여자와 자고 싶어 과거에 응시하여 남원 현감에 부임한” 황당한 목표를 가진 인간이다. 그는 자신을 거부하는 춘향을 옥에 가두거나, 끈으로 묶은 후 엉덩이를 때리며 흐뭇한 표정을 내보임으로써, 주지육림에 빠져 백성의 고통을 즐기는 탐관오리와 변태성욕자가 다를 게 없음을 보여주고 있다. 고전을 재해석한 영화에서 변학도는 송새벽의 연기를 통해 또 하나의 새로움을 추구한다. 전무후무한 캐릭터의 탄생이다.

영화에서 송새벽은 심각한 듯 야릇한 표정에 어눌한 전라도 사투리를 얹어 관객을 폭소로 몰아넣는다. 그러나 그의 연기가 진가를 발휘하는 건 코믹한 장면이 아니다. 세상물정에 어두워 아전들에게 휘둘리는 기방 시퀀스에서 느닷없이 호방과 춘향의 뺨을 갈기고 방자의 머리를 놋쇠그릇을 내려치며 급작스런 전율을 만들어낼 때이다. 이를테면 <마더>의 세팍타크로 형사를 즉각적으로 상기시키면서 변학도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순간이다.

그렇다고 변학도의 행위가 연공서열이 분명한 공무원집단에 부임한 나이어린 상사가 지휘체계를 잡기 위해서 휘두를 수밖에 없는 채찍은 아닐 것이다. 단지 특이한 여인네를 품고 싶은 호색한의 마음과 이를 막아 세우는 모든 것에 대한 막연한 분노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지 않을까. 그의 말대로 “큰 거 바라는 것도 아니고, 술 한 잔 따르라고” 했을 뿐이니까. 우리가 고전에서 익힌 변학도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모습에서 적이 당황스럽기도 하지만, 송새벽 특유의 사투리와 음폭의 떨림이 있었기에 새로운 캐릭터 창조가 가능하지 않았을까 한다.

연우무대로 돌아가서, 1996년 <날 보러와요>에서 나를 사로잡았던 류태호는 적지 않은 영화에 등장했음에도, 안타깝게도 단역에 머물렀고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이제 그의 까마득한 후배 (2009년 <날 보러와요>에서 형사 역을 연기한) 송새벽이 영화판에 발을 드밀고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지방연극무대에서 시작해 중앙으로 진출하여 세인의 관심사가 된 배우 송새벽의 미래가 어떤 모습일지 가늠하기엔 아직 이르다. 나는 <방자전>에서 얻은 박수와 성과가 그의 연기세계를 규정짓는 족쇄가 되지 않기를 바란다. 그가 연기한 순진한 듯 독기를 품은 이상성격자로서의 변학도 캐릭터가 어필할 수 있었던 건 송새벽의 뛰어난 인물 해석도 한 몫 했겠지만, 세인의 고정관념 즉, 평범한 외모와 악의 없는 미소와 고지식하고 순수해 보이는 얼굴에 안도하며, 그것을 선함의 기준으로 삼아온 규준이 한 순간에 무너질 때 엄습한 공포가 에로틱한 멜로드라마에 끼어들면서 극적 긴장감을 가중시켰기 때문일 것이다.

배우는 자신의 연기가 칭찬받은 배경을 정확하게 인식할 때 성장한다. 송새벽은 연극무대에서 넘어온 유사한 신인연기자들이 넘어온 알린 특정 캐릭터에 함몰되어 너무 쉽게 무너져버린 전례를 기억해야 한다. 힘겹게 첫 발을 뗀 그의 차기작은 류승완의 <부당거래>와 김현석의 <시라노; 연애조작단>이다. 오랜 만에 만난 될성부른 연기자 송새벽이 김대우와는 사뭇 다른 감독들의 영화에서 어떤 연기를 펼쳐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글_백건영 영화평론가(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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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ki12312
기대할게요 화이팅!!   
2010-09-09 14:12
cyddream
송새벽... 인상에 오래 남아 있는 연기를 보인듯... 앞으로 더욱 기대할께요..^^   
2010-08-24 17:15
fa1422
잘봤어요   
2010-08-17 19:24
pa2ge
각색을 잘한 영화   
2010-08-17 08:28
dsimon
즐거운 화요일 보내세요.^^   
2010-08-10 00:46
iamjo
글쿤요   
2010-07-20 09:05
kooshu
감사합니다   
2010-07-18 19:03
ggang003
송새벽이라는 배우의 발견   
2010-07-16 1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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