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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주의 지난주 영화 <비밀애> 그들이 섹스하기까지
2010년 4월 9일 금요일 | 신기주 저널리스트 이메일


<비밀애>에서 유지태와 윤진서의 첫 번째 정사 장면이 나오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한 시간 정도다. <비밀애>의 상영 시간은 두 시간이 조금 못 된다. 딱 중간쯤이다. <비밀애>는 시동생과 형수의 불륜 이야기다. 사랑해선 안 될 자들이 사랑하는 이야기는 말초적으로든 예술적으로든 흥미진진하다. 금기라서 다. 그 금기를 갖고 형부와 처제의 에로물로 만들지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예술 영화로 만들진 만드는 사람 맘 데로다. 물론 <비밀애>는 유지태와 윤진서라는 인기 배우가 나온 만큼 에로물 따윈 아니다. 하지만 <비밀애>가 아무리 금기의 철학을 말하고자 해도 피해갈 수 없는 굴레가 있다. 입장료 8천원을 낸 관객이 어두운 극장에 앉아 금기의 쾌락을 탐욕스럽게 기다린다는 질척한 현실 말이다. 도대체 언제 유지태와 윤진서가 같이 자는가. 도대체 언제 윤진서의 가슴을 볼 수 있는가. 도대체 언제 유지태의 벗은 엉덩이가 나오는가. 도대체 언제.

<비밀애>는 첫 섹스가 끝난 뒤에야 비로소 하고 싶은 얘기를 중얼거리기 시작한다. 요약하면 이렇다. 똑같이 생긴 쌍둥이 형제가 있다. 한 여자가 어느 한쪽을 사랑한다. 그녀가 어느 한쪽을 사랑한 게 외모 때문이라면 다른 한쪽도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 둘의 외모는 똑같으니까. 똑같이 생긴 두 남자는 의심하기 시작한다. 여자가 사랑한 게 정말 나일까. 아니면 나처럼 생긴 저 녀석일까. 급기야 <비밀애>는 비장하게 묻는다. 우리가 누군가를 사랑한다고 말할 때, 우린 정말 누구를 무엇을 사랑하고 있는지 알기나 하는 걸까. 후반부엔 읊조림이 극에 달한다. 두 명의 유지태가 엉켜 싸우다가 누가 누군지 헷갈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리곤 마지막에 윤진서한테 나직하게 묻는다. “당신이 사랑한 사람은 누구인가요?” “당신이요.”

여기서 윤진서가 아쉽다. <비밀애>에서 가장 역동적이어야 할 인물은 윤진서가 연기한 연이다. 전반부 한 시간 동안엔 시들어가는 꽃이다. 후반부 한 시간 동안엔 자신의 욕망에 눈을 뜬 여성이다. 똑 같이 생긴 두 남자 사이에서 분명하게 누군가를 향하면서도 관객이 그녀가 누구를 사랑하는지 헷갈리게 만들어야 하는 중책이다. 하지만 윤진서의 인물 해석은 그런 무게 중심 역할을 하기엔 역부족이다. 윤진서가 그린 연이는 시종일관 갈팡질팡할 뿐이다. 동생에 대한 욕망을 강하게 드러내지도 못하고 형에 대한 미련을 슬프게 표현하지도 못한다. 그저 두 남자가 지닌 욕망의 피사체일 뿐이다. <비밀애>는 우리가 사랑하는 건 누구인가를 묻고 싶어한다. 그 질문은 윤진서가 사랑한 건 누구인가로 집약된다. 그래서 마지막 질문은 회심에서 나와야 한다. 윤진서가 당신이라고 애매하게 답해버리면 관객들은 자리를 뜨면서 도대체 당신이 누군지 한번쯤 궁금해해야 한다. 하지만, 자리를 뜨면서 묻게 되는 건 아쉬운 윤진서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을 만들면서 아예 처음부터 괴물을 딱 까고 시작해버렸다. <고질라>처럼 발만 보여주고 꼬리만 보여주면서 관객이 괴물 그 자체를 궁금해하게 만드는 게 안전한 길이었다. 봉준호 감독은 <괴물>이 괴물 영화이길 원하지 않았다. 관객들은 괴물을 보러 왔을지 모르지만 나갈 땐 다른 걸 보고 가길 바랬다. 봉준호 감독은 이런 얘길 한 적이 있다. “영화 감독은 버스 운전사다. 관객들이 일단 버스에 타도록 만들어야 한다. 하지만 일단 버스에 태우기만 하면 마음껏 운전하면 된다.” <비밀애>가 관객들한테 버스표를 파는 상술은 시동생과 형수의 불륜이다. 현대 사회에서 불륜만큼 누구나 공감할 만한 일상의 금기도 없다. 누구나 불륜을 저지르고 모두가 불륜을 꿈꾸고 누구는 불륜을 눈감는다. 하지만 <비밀애>는 버스표를 갖고 너무 오래 궁리를 한다. 윤진서가 병든 남편 대신 건장한 시동생과 섹스를 할 수 밖에 없었다는 피할 수 없고, 숙명적이며, 저항할 수도 없는, 안 해보려고 안 해보려고 무진장 애를 쓰고, 기를 쓰고, 또 썼는데, 결국 같이 잤다는 얘기를 하느라 한 시간이나 낭비해버린다. 나머지 한 시간으론 무슨 얘기를 하기에도 모자랄 뿐이다. 차라리 섹스부터 하는 게 나았다. 어차피 잘 거.

2010년 4월 9일 금요일 | 글_ 신기주(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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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1racer
음... 좋은 글입니다.   
2010-06-07 15:44
ggang003
연기가 딸린 영화   
2010-05-17 09:36
hushdmz
너무 터무니 없는 이야기 였던 듯 !!   
2010-04-21 14:58
hrqueen1
제목이 무척이나 도발적이네요...
근데 신기주씨는 남자분 맞죠? 역시나 발상이....   
2010-04-18 15:36
seon2000
잘봤어요   
2010-04-15 01:29
again0224
잘봤습니다   
2010-04-14 12:34
kkmkyr
파국으로 가는길   
2010-04-13 10:47
fkcpffldk
왠지 보고싶지 않았던................   
2010-04-12 2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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