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마가렛 대처에 대한 모호한 시선 (오락성 6 작품성 6)
철의 여인 |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 민용준 이메일

마가렛 대처는 영국 최초로 여성으로서 국회의원이 됐고, 영국뿐만 아니라 서구 사회 최초의 여성 총리로 꼽힌다. 보수당에 몸담고 있던 그녀는 성장 중심의 정책을 우선시하는 등 보수당의 신념에 철저하게 복무한 인물이다. 10년이 넘도록, 영국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총리직을 지킨 그녀의 정치적 역정은 파란만장 그 자체였다.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의 기치를 내걸며 총리직에 당선된 그녀는 영국의 경제적 위기와 실업률 증가 속에서 갖은 비난을 들었지만 영국령인 대서양의 포클랜드를 침공한 아르헨티나 군에게 전면전을 지시하고 끝내 전쟁에서 승리하며 대단한 인기를 얻었으며 이에 고무된 영국의 경제성장을 이룬 인물이다. 테러리스트와 결코 대화를 하지 않는다는 등 강경한 원칙을 내세우며 ‘철의 여인’이라 불리기도 했던 그녀는 임기 말년에 독선적인 태도로 고립됐고, 갖은 테러리즘에 시달리다가 끝내 정치적 편력에 밀려서 총리직을 사임했다.

엘리자베스 여왕이나 빅토리아 여왕들을 통해서 ‘해가 지지 않는 나라’의 영광을 맞본 바 있는 영국에서 여성 총리가 탄생했다는 것은 결코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철의 여인>은 바로 그 영국 최초의 여성 총리 마가렛 대처에 관한 전기 영화다. 하지만 <철의 여인>은 대처를 위한 영화라기 보단 대처를 연기하는 메릴 스트립을 위한 영화 같다. 영화에서 대처의 정치적 일대기는 자연인 대처의 일상 위로 오버랩되어 나열된다. 총리 사임 이후, 자연인으로서 뒷방 늙은이처럼 살아가는 대처의 일상 속에서 발견되는 과거의 흔적을 통해서 그녀의 성장을 짧게 비추고, 정치인으로서의 생을 파편처럼 차례대로 나열한다. 영화는 권력의 첨탑에서 내려온 늙은 대처의 후일담 같은 생을 밑그림 삼아서 그녀의 영광스러운 나날을 채색해나가는 것이다.

영화는 대처의 정치적 행보에 대해서 어떠한 견해를 내놓거나 가치 평가를 드러내지 않는다. 늙어가는 대처의 지난 파란만장했던 정치적 행보를 플래시백하는 방식으로서 주요한 행간을 구성해내는데 그 행간이 무엇을 이루고 있는지 알 길이 없다는 점에서 영화의 의도가 막막하다. 그러니까 단지 영국 최초의 여자 수상의 행적을 나열하고 싶었던 것이라면 그 의도에 걸맞은 결과물이라 할 수 있겠지만 대처라는 문제적인 정치인을 고작 바이오그래피적으로 설명하고 마는 영화라면 딱히 성공적인 결과물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중도라기 보단 회피 같고, 공정하기 보단 모호해 보인다. 정치적인 결연함을 지녔으나 독선적인 오만까지 지녔던 세계적인 인물의 삶에서 얻어낼 수 있는 이야기의 결과물치고는 심심하고 평이하다. 무엇보다도 ‘인간 복사기’라고 불러도 좋을 듯한 메릴 스트립의 명연기는 이 불투명한 영화에 소름 끼칠 만큼 확실한 인장을 남긴다. 불명확한 영화의 태도와 대비되는 선명한 연기는 <철의 여인>을 아이러니한 작품으로 기억하게 만들만한 것이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정치에 관한 고민 정도는 던져주는데, 이를 테면 ‘무언가를 하려고 하는’ 정치인과 ‘무언가가 되려고 하는’ 정치인 사이의 간극이다. 독선적이지만 강경하게 자기 원칙을 밀어붙인 대처의 행보는 성공과 실패 사이에서 명확한 결과를 남긴다는 점에서 보다 발전적인 차후의 방향을 모색하게 만든다. 이는 정치적 생명을 연명하기 위해서 ‘갈지 자’ 행보로 인기에 영합하며 공약을 남발하는 정치인들 보다 훌륭한 정치적 선례가 된다. <철의 여인>은 대처에 대한 선명한 논평을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점에서 미흡한 전기물이지만 정치인 대처의 강단만큼은 뚜렷하게 묘사하며 그녀가 정치인으로서 존중 받을 만한 인물이란 사실 정도는 인지하게 만든다.

2012년 2월 20일 월요일 | 글_민용준 ELLE KOREA 피처 에디터(무비스트)    




-‘인간 복사기’라고 불려도 좋을, 메릴 스트립의 소름 끼치는 연기
-최초의 여성 수상이 등장했던 영국 근대사의 하이라이트를 볼 수 있다는 것.
-정치인과 자연인 사이에서, 마가렛 대처에 대한 명확한 시선을 남기지 못한다.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