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웨스턴에 침입한 SF (오락성 6 작품성 6)
카우보이 & 에이리언 |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 민용준 이메일

소스라치게 놀라듯 깨어난 남자는 자신이 사막 어딘가에 있음을 알게 된다. 곧 고통을 느낀 그는 복부의 깊은 상처를 발견했다. 그리고 왼손 팔목에 정체 모를 금속 팔찌가 채워져 있다는 것도 알았다. 벗겨내려 해도 소용이 없다. 깡그리 지워진 것처럼, 이름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그 와중에 말을 탄 세 남자가 그에게 접근해온다. 수작을 거는 꼴이나 행색을 보아하니 예감이 좋진 않다. 그 중 하나가 남자에게 총부리를 겨누고 다가온다. 하지만 그 세 사람을 차례로 쓰러뜨린 남자는 옷과 신발을 챙겨 입고 길을 떠난다. 그리고 곧 한 마을에 당도하게 된다.

웨스턴과 SF의 이종교배,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그 제목만으로도 흥미롭다. 웨스턴이 과거형의 장르라면 SF는 미래형의 장르다. 일단 이 영화는 말 달리는 카우보이들이 즐비한 웨스턴의 풍경 안에 그들을 사냥하는 외계인들을 삽입해 넣으며 두 장르의 이종교배를 성사시킨다. 일단 그 괴상한 풍경의 목격만으로도 흥미가 배가된다. 동시에 기억을 잃은 채 반시대적인 파괴력을 지닌 무기를 장착한 제이크(다니엘 크레이그)의 정체에 관한 호기심과 그 주변을 둘러싼 인물들이 이루는 관계의 양상도 흥미를 자극한다.

사실 <카우보이 & 에이리언>은 웨스턴 세계에 침입한 외계인들을 몰아내는 카우보이들의 활극에 가깝다. SF는 얹혀졌을 뿐, 기본 바탕을 이루는 건 웨스턴의 세계관이다. 황야를 전전하며 외계인을 추적해 나가는 인물들의 여정 속의 황량한 풍경에는 웨스턴의 풍미가 서려있다. 특히 외계인과의 대결을 그리는 대단원은 일종의 웨스턴식 난장에 가깝다. 외계인에게 맞서는 카우보이들의 무리에 인디언들까지 합세해서 벌이는 마지막 전투 신은 SF적인 요소를 빌린 웨스턴 스타일의 패러디적인 재현처럼 보이기도 한다. 선악의 구분이 불분명한 수정주의 웨스턴 양식의 캐릭터들이 이루는 갈등과 화합의 여정은 의외의 경로로 이탈하기도 하지만 감정적으로 큰 무리수 없이 자신의 종착역을 향해 나아간다. 다만 기본적인 이야기 구조의 설계 안에서 안이하다 싶은 측면이 발견된다.

영화는 관객과 대국을 벌여나가듯 진전된다. 몇 가지 의문을 포석으로 배치하고 그에 관한 흥미를 집처럼 지어나가며 감상을 붙잡아두는 것. 이와 같은 대국의 형세에서 중요한 건 결국 자신이 깔아둔 포석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해내느냐의 문제다. 스스로도 자신의 정체를 잊어버린 사내와 인간을 습격하고 납치해가는 외계인들의 의도, 그리고 그들을 찾아 떠나가는 이들의 여정까지, <카우보이 & 에이리언>에는 그 끝을 목격하고 싶게 만드는 떡밥들의 가능성과 이를 부추기는 요소들이 마련돼 있다. 하지만 종종 그 의문의 해소를 위한 결정적인 순간들, 즉 스토리의 중요한 전환점이 될만한 결정적 단서들이 무성의하다는 인상을 부여한다. 가장 명확해져야 할 순간에 되레 불명확해진다. 다리를 이루려는 이야기의 이음새들이 헐거워서 끝내 덜컹거린다.

카우보이들과 외계인들의 비행선이, 그리고 외계인들이 맞서는 대결 장면들은 그 자체로 이례적인 볼거리다. 버디 무비를 연상시키는 다니엘 크레이그와 해리슨 포드의 캐릭터 조합도 근사하다. 다만 자신이 마련한 의문의 포석들을, 이를 테면 초현실적인 근거에 기대어 모든 상황을 설명해버리는 이야기 방식은 이 영화가 품은 가능성의 일부를 해제시켜 버린다. 그럼에도 낭만을 머금고 있는 결말은 고전적인 웨스턴의 향수가 깃들어있다. 기대감을 충족시키기에는 불충분한, 그럼에도 흥미로운, 이종교배 블록버스터의 성취와 한계가 느껴진다.

2011년 8월 11일 목요일 | 글_민용준 beyond 기자(무비스트)    




-웨스턴과 SF의 이종교배 혹은 웨스턴에 침입한 SF. 그 이미지만으로도 흥미진진한.
-남녀노소 불문하고 웨스턴 핏이 사는 배우들의 호연.
-무심하듯 시크한 간지남 다니엘 크레이그. 레이첼 와이즈를 사로잡은 남자란 이런 것인가.
-스토리의 결정적인 이음새가 될만한 대목에서 종종 논리를 포기한다.
-언제나 첨단 기기를 지닌 외계인들은 왜 항상 수준이 떨어지는 지구까지 와서 얻어터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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