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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이란, 복잡하고 담백한 이야기의 향연 (오락성 8 작품성 8)
환상의 그대 |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 김도형 기자 이메일

우디 앨런 감독의 신작이 나왔다. 근래에 내놓은 <내 남자의 아내도 좋아> <스쿠프> 등에서 예전 같지 않다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그런 평을 비웃기라도 하듯 <환상의 그대>는 환상이었다.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한 인생에서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희망을 얘기하는 영화는, 삶과 인간을 바라보는 특유의 시선을 가득 담고 있다. 게다가 끊이지 않고 연결되는 이야기의 향연은 영화를 보는 동안 잠깐의 딴 생각도 허락하지 않는다. 집중력이 있으면서도 엄청나게 웃기고 감동적인데다가 인생의 아이러니까지 맛보게 한다.

알피(안소니 홉킨스)는 40년을 함께 한 부인 헬레나(젬마 존스)와 갑작스럽게 이혼을 하고 새로운 삶을 찾겠다고 선언한다. 이에 상처를 받은 헬레나는 정신과치료 대신 점쟁이를 만나 마음의 위안을 얻는다. 헬레나의 딸 샐리(나오미 왓츠)는 첫 소설 성공 이후 반 백수 생활을 하는 남편 로이(조쉬 브롤린) 때문에 힘들다. 그런 와중에 로이는 건너편에 사는 붉은 옷의 여인(프리다 핀토)에게 반하고, 샐리는 직장 상사인 그렉(안토니오 반데라스)에게 호감을 느낀다. 이런 와중에 알피는 20대 삼류 배우인 샤메인(루시 펀치)과 결혼을 발표하고, 로이는 혼수상태에 빠진 친구의 소설을 훔쳐 인생 역전을 노린다.

인물들의 상황과 캐릭터만 놓고 보자면 잘 만들어진 <사랑과 전쟁>이 떠오르기도 한다. 젊게 살겠다며 갑작스럽게 이혼한 황혼의 남편은 콜걸 출신의 20대 여자와 결혼해 돈을 쏟아 붓는다. 이혼 당한 아내는 마음을 잡을 길이 없어 힘들어하다가 점쟁이를 만나 안식을 얻는다. 딸에게 사업 자금을 빌려주기로 해놓고도 점쟁이가 돈거래를 하지 말라고 했다며 주지 않을 정도로 철저하게 의지한다. 딸은 소설가로서 가능성 있는 남편과 결혼했지만, 첫 소설 이후 연이은 실패로 생계가 어렵고, 그런 와중에 남편은 바람까지 피운다. 부인 역시 남편과 비교되는 직장 상사에 호감을 느끼지만, 직장 상사는 그 여자의 친구와 눈이 맞아 버린다. 여자는 먼저 고백하지 못한 자신을 탓한다. 우디 앨런 감독은 이렇게 다양한 연애 상황으로 인생을 풀어내며 사람들 각자의 입장과 삶의 타이밍, 위안과 안식, 불안과 혼돈을 얘기한다.

<환상의 그대>가 훌륭한 건, 눈을 뗄 수 없이 전개되는 방대한 이야기가 절묘하게 잘 흘러가기 때문이다. 여러 인물의 이야기를 동시에 진행시키면서도 감독은 긴장감과 흥미를 느슨하게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가 빤히 보이는 설정을 지녔다고 해도 대사나 상황, 캐릭터에 따라서 각기 다른 감정이나 웃음을 만들어낸다. 엄청나게 풀어진 이야기가 넘실넘실 넘쳐나지만 모든 이야기가 각자의 위치에서 역할을 다 한다. 인물들 역시 이리저리 얽혀 있지만 애매한 구석 없이 명쾌한 모습을 보인다. 캐릭터 소화와 캐릭터 안배 모두가 적절하다.

이번 영화에도 여러 배우들이 우디 앨런과 함께 했다. 모든 이야기에 직간접적으로 관여하며 영화 전체를 이끄는 나오미 왓츠는 절제된 감정으로 긴장감을 유지하고, 어울릴 것 같지 않았던 조쉬 브롤린은 능글맞게 캐릭터를 소화해낸다. 안소니 홉킨스와 젬마 존스의 노익장은 영화에 무게감을 실어주고, 안토니오 반데라스와 프리다 핀토, 루시 펀치는 임팩트 있게 역할을 소화한다. 기존의 우리 앨런의 작품에 자주 등장하는 배우들이 아닌 새로운 얼굴들이 많이 보이지만, 우디 앨런과 자주 했던 것처럼 자연스럽게 녹아든다.

<환상의 그대>는 유쾌하다. 어떤 특정한 사건을 놓고 인생을 정의하는 심각한 시선보다 보통 사람들이 살아가는 일상 속에서 특별함을 찾아내는 달관의 시선이 스며있다. 특히 사람들이 서로 부대끼며 살아가는 과정 속에서 남자가 여자를 만나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연애 감정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는 게 현실적이다. 인생이 헛소리와 분노로 가득하다는 말로 영화는 시작되지만, 모든 헛소리와 분노 속에 우리의 인생이 있다.

2011년 1월 24일 월요일 | 글_김도형 기자(무비스트)    




-우디 앨런의 팬이라면 망설일 이유도, 시간도 없다.
-쏟아지는 이야기들, 하지만 모든 이야기가 다 재미있고 흥미롭다.
-배우들의 열연. 우디 앨런의 힘? 배우들의 힘?
-설정 자체는 <사랑과 전쟁>이다. 풀어가는 방식과 내놓는 결론은 다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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