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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람안내! 보기 드문 사유를 품은, 꽤나 흥미로운 재난 블록버스터
노잉 |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 박정환 객원기자 이메일


1959년 미국의 한 초등학교, 학생들이 꿈꾸는 미래상을 그린 그림을 타임캡슐에 넣고 땅 속에 넣는다. 50년 후, 학교는 타임캡슐을 열고 어린이들에게 옛 학생들이 그린 그림들을 나눠준다. 그 중에서 유독 캘럽(챈들러 캔터베리)이 받은 것은 그림이 아니라 의미를 알 수 없는 숫자로 가득찬 종이 한 조각. 캘럽의 아버지는 아내를 잃은 허탈감으로 밤마다 위스키를 끼고 사는 MIT 천체물리학 교수 존 코슬러(니콜라스 케이지). 처음엔 존도 아들이 갖고 온 숫자투성이 종이조각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지만, 이 숫자들이 지난 50여 년 동안 일어난 천재지변의 날짜와 사망자 수, 사건이 일어난 지점의 위도와 경도를 가리키는 것임을 알고 경악하게 된다. 문제는, 그 숫자들이 지난 50년간 발생한 재난 뿐 만 아니라 아직 일어나지 않은 세 건의 재앙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모스맨>(2002)과 일정 부분 맥락을 같이 하는 영화는, 우주의 생성 기원이 결정론에 기인하는가 아니면 무작위론에 기인하는가 하는 질문을 영화 초반 시퀀스인 MIT 강의실을 통해 던진다. 흘려버리기 쉬운 이 시퀀스는, 이후 지구에 불어 닥칠 대재앙을 고려함에 있어서 이 재난을 초래한 원인이 과연 존재하는지, 아니면 재난 역시 우연의 산물인가 하는 질문을 관객에게 던지기 위한 포석이다. 아내의 죽음으로 염세주의적 사고관을 가지고 있는 존은 강의실에선 무작위론이라는 자신의 견해를 피력한다. 하지만 존이 이후 겪는 일련의 사건들을 통해 지구가 겪을 총체적 대재앙은 운명론에 기인한다는 관점을 가지게 된다.

영화 속 세계관인 운명론에 대해 보다 깊이 들어가면, 이 운명론은 예정되어 있되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중간의 변수 또는 불확정적 요소의 개입으로 변경될 사안이 전혀 없이 100% 반드시 일어나는, 결정론(Determinism)에 입각한 운명론이다. 불확정적 요소라는 사고(思考)가 끼여들 여지가 영화에선 전혀 보이질 않는다. 존이 아직 일어나지 않은 두 번째 재난을 막아보기 위해 FBI에 제보도 해보고 백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종국에는 사고를 막을 수 없었던 것처럼, 영화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재난들은 사건이 일어날 줄 미리 알고 이를 미연에 방지코자 인간이 개입한다고 해도 전혀 손쓸 도리가 없는 운명이었음을 결정론적 시각으로 보여준다.

미래를 앎에도 불구하고 전혀 손쓸 방도가 없는 인간의 무력함을 결정론적 운명론과 대비로 제시하는 영상 화법은, 헐리우드가 기존의 재난영화에서 보여주는 통상적인 영상 문법, 즉 희망적인 대안 혹은 재난 극복과는 다소 거리가 멀기에 이채롭다. 이 영화 속에서 인간 존재는 전적으로 수동태일 뿐이지 능동태로 그려지진 않는다. 지구의 운명이라는 수레바퀴가 굴러감에 있어서 인간은, 숫자가 적힌 종이를 통해 미래를 예견할 수는 있되 운명의 수레바퀴를 비껴가거나 옮길 순 없는 전적으로 무기력한 수동태적 피조물일 따름이다. 이 영화를 관람함에 있어서 결정론적 운명론에 관한 시각으로 바라본다면, 기존의 재난영화나 SF 영화와는 차별화된 - 알렉스 프로야스 감독이 의도하고자 한 영화 속 사고관을 조망할 수 있을 것이다. 더불어 영화는 SF와 재난영화 둘을 동시에 아우른다. 재난영화의 팬이라면 세 종류의 각기 다른 재난이 보여주는 극적인 시퀀스, 특히 마지막 시퀀스를 통해서는 긴박감과 더불어 시각적 놀라움을 만끽할 수 있다. 임박한 재난에 대처하는 존의 가족을 통해서는 <딥 임팩트>(1998)와 <투모로우>(2004)에서처럼 가족애를 상기케 만들어준다.

결정론적 운명론을 영화가 함의함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인과관계를 관객들에게 명확하게 제시해 주진 않는다. 즉 무엇 때문에 전 인류가 유사 이래로 전례가 없는 대재앙을 겪어야 하는지, 숫자라는 재앙 예고 메시지를 받아적기 위한 전령으로 루신다와 캘럽이 왜 선택되었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명확한 인과관계는 제시되진 않는다. <클로버필드>(2008)에서도 맨허튼을 초토화하는 괴수의 기원이 밝혀지지 않은 것처럼, 영화는 관객의 궁금증을 증폭시키기 위해 위에서 상술한 전략을 택한다. 이는 전략이자 동시에 플롯의 맹점으로 바라볼 수 있다. 관객의 입장에서 가장 논란의 여지가 많을 부분은 운명론이라는 사고관과는 별개인, 영화 후반부에서야 드러나는 세계관이다. 종교적 코드와 종말론적 세계관이 혼재된 영화 속 세계관은, 인류에게는 처참한 디스토피아로 남을 것이다.

여하간, 보는 이의 취향에 따라 그 반응이 확연히 갈리겠지만 <노잉>이 보기 드문 사유를 품은, 꽤나 흥미롭고 근사한 블록버스터임을 부정하긴 힘들 듯하다.

2009년 4월 10일 금요일 | 글_박정환 객원기자(무비스트)




-재난영화 팬이라면 마지막 시퀀스는 장관이 될는지도 (장담은 못하지만)
-가급적 스피커 시설이 양호하거나 훌륭한 극장에서 관람하시길. 재난 발생 시퀀스에서의 사운드는 가히 압권이다
-사유가 가능한 재난 블록버스터를 원하는 관객. 머리를 비우고 관람 가능한 영화는 아니다
-장르가 짬뽕된 영화를 싫어하는 관객. 재난영화와 SF가 뒤섞인다
-내러티브 방식에 있어 유기적이고 긴밀한 인과관계를 원하는 관객
26 )
kisemo
잘 읽었습니다 ^^   
2010-04-04 14:16
iamjina2000
철저한 기독교적 세계관에 입각한 예정설과 휴거에 관한 조금 짜증나는 영화   
2010-01-18 22:40
nada356
흥미로운 재앙 영화.   
2009-12-05 22:47
inferior1004
마지막부분은 쫌...   
2009-08-07 22:37
mckkw
장르가 짬뽕된 영화를 싫어하는 관객. 재난영화와 SF가 뒤섞인다   
2009-06-25 23:28
bjmaximus
존의 가족 마지막 모습은 저도 <딥 임팩트>가 떠오르더라구요.   
2009-04-19 15:22
pink1770017
재난영화라~ 자연적인 현상만이 주 내용일 줄 알았는데..
sf등 여러 장르가 혼합되어 더욱 재미가 배가 된거 같아요~   
2009-04-17 10:52
mvgirl
다 좋은데 결론이 좀...   
2009-04-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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