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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원 교수의 영화와 정신분석 - PART II '진주만'과 '애너미 앳 더 게이트' 또는 스칼렛 콤플렉스
진주만, 에너미 앳 더 게이트 | 2001년 6월 26일 화요일 | 고원 이메일

애너미 앳 더 게이트 불사신의 신화는 미국 말고 러시아에도 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은 스탈린그라드에서 벌어진 대전투를 다룬 영화이다. 소련군은 독일군의 집중포화를 극복하며 피의 전투를 마침내 승리로 이끈다. 이 영화에서도 두 명의 남자가 한 명의 여자를 놓고 심리전을 벌이고 있다. 한 남자는 장교인 다닐로프(조셉 파인즈 분)이고 다른 남자는 사병인 바실리(쥬드 로 분)이다. 장교는 선동가이고 사병은 저격병이다. 마지막에 죽는 사람은 장교이다. 저격병은 행방불명이 되었던 여자를 찾고 영화는 행복하게 끝난다.

영화에서는 한 여자를 가운데 놓고 두 명의 남자가 움직일 뿐만 아니라, 또한 두 사람의 저격수가 나온다. 러시아의 저격수는 사병이지만 독일의 저격수는 장교, 코니그 소령(에드 해리스 분)이다. 그리고 이 장교 또한 죽는다. 죽는 사람은 이쪽이든 저쪽이든 장교들이다. 그리고 주인공은 저격수이고 사병이고 남자이다. 그는 다른 두 장교들이 부분적으로만 갖는 것을 모두 갖는다. 러시아군의 장교는 그저 장교에 불과하다. 그는 주인공 여자의 사랑을 얻지 못하기에 남자가 되지 못한다. 그러나 그는 마지막에 친구를 위해 희생하면서 인간이 된다. 독일군의 장교는 저격수이고 장교이다. 그러나 그는 어린아이를 죽이기에 인간은 되지 못한다. 그리고 주인공은 사병이지만 저격수이고 여자의 사랑을 얻기에 남자이며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고 있기에 인간이다. 그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무수하게 희생당하는 사병에 불과하다. 그런데도 그는 모든 것을 가지게 된다. 과연 무엇 때문일까?

그렇다면 저격수로서의 그의 자리에 잠시 주목해보자. 그가 저격수로서 부각되어 있기 때문이다. 저격수한테는 자리가 특히 문제된다. 매복 장소 말이다. 영화에서는 끊임없이 상대방의 자리를 추적한다. 문제는 저격수인데, 저격수의 문제는 자리이다. 생사가 걸려있는 그 자리는 과연 어떤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일까? 저격수 두 사람의 쫓고 쫓기는 관계가 영화의 긴장을 자아내는데 영화의 재미는 친구인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놓고 벌이는 관계에서 빚어진다. 그리고 저격수가 마침내 그 여자와 사랑의 정사를 벌이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그 자리는 어떤 자리인가?

그 자리는 두 사람만의 공간이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나누어 쓰는 잠자리이다. 두 사람은 정사를 벌이면서 누가 잠에서 깨어나 보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관객 또한 아무도 잠에서 깨어나 그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바란다. 그리고 그 두 남녀는 그들만의 육체적 사랑을 즐긴다. 그들의 사랑의 행위를 방해할 수도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들은 더 큰 쾌감을 느낄 것이다. 다행히 아무도 보지 못한다. 두 사람의 분위기가 고조될수록 관객의 엿보기는 더욱 만족스럽게 충족된다. 독일군 저격수가 집요하게 펼치는 맞수의 매복 장소에 대한 추적은 어린 러시아 소년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하다. 소년은 이동하는 매복장소와 연루되어 있다. 소년은 결국 살해당한다. 그러나 관객은 살해당하지 않고 소년과 같이 움직일 수 있다. 관객은 아예 소년의 자리로 옮겨갈 수도 있다. 만일 소년의 자리에 관객이 들어선다면, 그는 다시 어린아이로 되돌아가 부모의 정사장면을 엿보는 기회를 되찾은 셈이다.

[진주만]에서도 남녀 두 사람만의 정사장면이 펼쳐진다. 이미 주위의 사람들은 그들을 방해하지 않도록 자리를 비켜놓았다. 낙하산의 커다란 장막 속에서 진행되는 그들의 사랑은 환상적인 분위기마저 자아낸다. 대낮에 펼쳐지는 두 남녀의 사랑의 장면은 비밀스러운 성격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나중에 간호장교로서 눈부신 활약을 보이는 주인공이 이 중요한 장면에서는 피임문제에 전혀 개의치 않는다. 나중에 여자가 임신하게 되기에, 하얀 베일로 장식한 듯이 보이는 정사의 현장은 성스럽기까지 하다.

비밀스런 성격을 갖지 않는 정사는 제3자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친구가 살아 돌아오면서 죄의식을 갖게되는 대니는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지 않을 수 없다. 대니만 죄의식을 느끼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살아 돌아온 것은 레이프가 아니라 레이프의 죄의식이다. 한번 되돌아온 죄의식은 쉽게 사라지기 어렵다. 사라지는 것은 그 죄의식에 괴로워하는 인간이다. 불사신인 레이프가 죽지 않고 대니만 죽게 되는 결말은 이런 추측을 가능케 한다.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인은 세월이 흐르면서 히로시마의 참혹한 비극에 대해 죄의식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을 불사신과 동일시하는 미국인은 시간과 함께 되돌아온 죄의식을 대니에게 투사시키고 자신은 몰래 빠져나가고 있는 셈이다. 그렇다면 역사적인 문맥을 도외시하고 바라본 일본군의 '비열한' 기습작전은 되돌아온 죄의식에 쫓기는 인간의 교활한 자기방어 전략이기도 한 것일까? 일본에서 상영되는 [진주만]은 우리가 보는 [진주만]과는 다른 작품이다. 과연 무엇이 어떻게 다른지 궁금하다. 그것이 단순히 할리우드가 노리는 상업전략의 결과이든 또는 히로시마에서 저지른 죄악과 어떤 식으로든지 관계되고 있는 것이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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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jin4rang
정신을 분석하다   
2008-10-17 08:39
rudesunny
너무 너무 기대됩니다.   
2008-01-21 16:20
kangwondo77
고원 교수의 영화와 정신분석   
2007-04-27 1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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