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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평가! 다양한 삶의 이유 속에도 책임은 존재한다.
마이클 클레이튼 | 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 민용준 기자 이메일


‘본’ 시리즈를 성장시킨 것은 폴 그린그래스의 감각적 연출이었지만 매력적인 시리즈를 잉태한 건 분명 토니 길로이였다.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정체성을 되묻는 본의 여정에 지도를 그려준 장본인이자 그를 잉태한 아버지였다. 그가 자신의 자식에게 요구한 건 끊임없는 고민, 즉 자아를 향한 끊임없는 물음이었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토니 길로이의 자궁이 잉태한 또 다른 자식이며 이번에도 그는 어떤 물음표를 새로운 자식에게 끈질기게 요구한다.

<본 얼티메이텀>을 비롯한 ‘본’ 시리즈가 스스로에게 던지는 물음이었다면 <마이클 클레이튼>은 상대방에 대한 물음이다. 물론 ‘본’ 시리즈와 <마이클 클레이튼>을 단순히 비교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액션 시퀀스가 완벽히 부재하며 이는 작품 자체가 부여하는 쾌감의 속성 자체로 ‘본’시리즈와 비교한다면 피부적으로 와 닿는 강도 자체가 다름을 의미한다. 하지만 두 작품은 양적으로 다를 뿐, 질적인 모토가 비슷하다. 생김새가 다르지만 혈통이 같은 두 작품은 어떤 음모를 향한 개인의 저항 혹은 자리 찾기를 그린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하는 면이 존재한다.

단적으로 <마이클 클레이튼>과 ‘본’ 시리즈의 차이는 물음표의 방향에서 기인한다. 나는 누구인가(who am I?)에서 너는 누구인가(who are you?)로. 물음표의 방향은 각각 내면과 외면으로 방향을 달리한다. 그 과정에서 거대 권력은 국가에서 기업으로 변모했고, 자아를 각성하는 본은 마이클 클레이튼으로 대체된다. 다만 ‘본’ 시리즈와 달리 <마이클 클레이튼>은 각성의 전이가 발견된다. 또한 각성의 지향점 또한 다르다. 본은 철저한 개인주의 영웅이며 사회적 정의를 복원하기 위해 자아를 구현하는 존재가 아니다. 궁극적으로 그가 자신이 잃었던 기억의 조각들을 수집하며 도달한 여정의 최종 목적지는 음모의 폭로가 아닌 음모 속에 방치된 자아를 색출하고 그 죄책감을 삭제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에 음모의 도시로부터 유유히 사라진다.

<마이클 클레이튼>의 목적지는 그 각성의 또 다른 출발지점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조지 클루니)에게 정체성의 물음은 필요없다. 그래서 <마이클 클레이튼>은 ‘본’시리즈와 달리 여정의 주체가 영화 내부의 인물이 아닌 영화 외부의 관객이 된다. 시간 구조의 배열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도 그 때문이다. <마이클 클레이튼>이 관객에게 보여주고 싶은 건 그의 인지가 아닌 결심이기 때문이다. 어떤 음모에 대한 진실에 직면했을 때의 결정권. 그것은 <매트릭스>의 네오(키아누 리브스)가 겪어야 했던 어떤 결정-빨간 약과 파란 약-과도 비슷하다. 8만 달러의 보너스와 진실의 폭로 사이에서 그의 고민이 거세된 건 인생의 안위에 비해 버거운 진실의 무게감 덕분이기도 하다.

‘내가 본 것이 사실임이 아닌 것을 알아도 때를 기다려야 해. 그런데 그것이 오늘이야.’ 극 초반 암전된 배경을 바탕으로 들려지는 아서(톰 월킨스)의 목소리는 <마이클 클레이튼>의 궁극적인 돌파구를 암시한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결과만 놓고 보자면 대기업의 거대한 비리에 맞서는 개인의 저항이자 집단적 횡포에 눈을 뜨는 자의식 확립이다. 하지만 그 방식은 영화적 전형성과 거리를 두고 있다. 선과 악의 양립적 이미지 구축, 그리고 정의를 구현하는 영웅적 면모는 <마이클 클레이튼>과 거리가 멀다. 사실 마이클은 먹고 사는 문제에 대한 서민적 고민을 명분적 정의보다 중시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다. 동시에 그는 자본적 고용 관계에 놓인 피고용인, 그의 표현대로 말하자면 고용주의 찌꺼기를 쓸어 담는 청소부에 불과하다. 옳고 그름의 문제보다 이기고 지는 문제를 중시하는 로펌의 계약직 해결사일 뿐이다. 그는 진실을 외면하기 보단 현실을 직시한다. 영웅이 되기엔 삶이 만만치 않다는 것을 먼저 잘 알고 있다. 도시의 물질 본능이 억누르는 소시민의 양심적 이성은 <마이클 클레이튼>의 솔직한 단면이자 탁월한 접근이다.

또한 <마이클 클레이튼>은 양심적 각성에 대응하는 그림자적 행동 방식을 묘사하는 것도 탁월하다. 청부업자들의 작업은 무자비한 총탄 세례보다도 강력하고 세밀한 두려움을 심어준다. 완벽한 범죄를 이루면서도 신속하고 정확하게 이뤄지는 은밀한 작업의 형태는 소시민의 영웅 놀이가 만만치 않음을 잘 알려준다. 이는 결과적으로 마이클의 어떤 망설임과 맞붙는 영화의 설득력으로 느껴진다. 동시에 지시에 따른다는 청부업자들과 로펌의 행위가 다를 바 없다는 점에서 선과 악의 구분은 모호해진다. 고용인과 피고용인의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은폐와 살인은 자본주의에 잠식당한 사회의 그림자적 이면이며 그런 음모로 가득 찬 표정들을 담담하면서도 냉혹하게 묘사한다.

스피디한 전개와 시종일관 치고 빠지는 스릴러적 전개를 상상했다면 다소 느긋한 영화적 호흡에 당황하게 될 가능성을 배제할 순 없다. 어쩌면 이는 사회적 음모에 맞서는 개인을 소재로 한 할리우드 영화들의 영향력, 진실의 무게감을 상쇄시키기 위해 위기 구조를 장치하고 그로부터 빠져나가는 상황이 발생시킨 오락적 쾌감에 길들여진 덕분일지도 모른다. 동시에 <마이클 클레이튼>이 그런 친절함에 어떤 거리감을 두고 있는 까닭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어떤 기대감을 품고 영화의 호흡을 주시한 이들에게 통쾌하면서도 놀랍도록 명확한 결말 앞에서 환호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인물들을 위한 배려야말로 <마이클 클레이튼>의 훌륭한 미덕일 것이다. 극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모두 다 자신의 삶을 위해서 부단히 노력하며 자신의 일상적 고뇌를 안고 사는 평범한 면모를 갖춘 사람들이다. 결과적으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저마다 삶의 이유를 지니고 있다. 선과 악의 단순한 구조로 설명할 수 없는 인간의 다양성. 회사의 법무 팀장으로서 비리를 감싸야 하는 카렌(틸타 스윈튼)이 자신의 의상과 거울 속 표정까지 꼼꼼히 다스리고 연습을 거듭하며 고뇌하는 모습에서, 45세의 나이에 빈털터리에 불과한 자신의 처지를 개탄하면서도 아들 앞에 아버지의 소임을 다하는 마이클의 표정에서, 각자의 삶에 대한 연민이 발견되며 그들의 선택을 수긍하게 한다. 하지만 다양한 삶의 이유에도 그에 따른 책임은 존재한다. <마이클 클레이튼>은 그 책임을 묻는 진지한 물음표이자 설득력 있는 양심이다. 동시에 최근 삼성의 비자금 사태를 떠올리자면 그 양심에 대한 물음표는 이 땅에서 벌어지고 있을 어떤 암투를 상상하게 한다. 그래서인지 모든 것을 해결한 마이클 클레이튼의 표정을 길게 보여주는 엔딩의 여운은 폐부를 찌르는 절실함을 느끼게 한다. 정의를 심판하는 영웅보단 양심을 깨닫는 소시민의 군상이야말로 바람직한 현실의 이상향일 것이다.

2007년 11월 16일 금요일 | 글: 민용준 기자(무비스트)




-제이슨 본을 낳은 토니 길로이, 준비된 감독의 입봉작은 단연 돋보인다.
-조지 클루니, 항상 품격을 유지하면서도 탁월한 선구안을 뽐낸다. 그의 영화는 맹신할만하다.
-톰 윌킨스, 시드니 폴락, 틸타 스윈튼, 평범과 비범을 넘나드는 배우들의 면모는 가공할만하다.
-지적 구조의 마이클 아이덴티티, 결말은 가히 얼티메이텀 급이다.
-삶의 다양성은 선악 구조를 붕괴시킨다. 하지만 결국 삶에는 책임이 따른다.
-급박한 상황의 반전과 빠른 두뇌 회전의 묘미를 원했다면 한템포 쉬어가는 흐름에 드러누울지도.
-당신의 길들여진 말초신경성 본능에 이 영화는 너무 많은 이성을 요구하고 있는지 모른다.
-세상의 음모 따윈 영화적 소재일 뿐이라고? 신문을 봐! 대체 왜 그들의 작업이 은폐되고 있지?
24 )
ldk209
김용철 변호사를 생각하며....   
2008-07-17 22:48
callyoungsin
매력적인 배우들 잘만든 영화   
2008-05-09 16:18
kyikyiyi
잘만든 인상적인 영화예요   
2008-05-08 11:06
svandang
추천받고 개봉 때 보고싶었는데 못 보고 뒤늦게 봤는데 역시 좋네요...   
2008-04-25 17:46
rudesunny
기대됩니다.   
2008-01-14 13:36
js7keien
스릴러 문법에 충실한,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인 영화   
2008-01-04 13:08
lee su in
헐리우드의 지성이자 양심인 조지 클루니는 이 영화로 아마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할 수 있지 않을까 예상됩니다.   
2007-12-09 00:51
ranalinjin
돈이 별로 아깝지 않았죠   
2007-12-06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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