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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축, 아시아 3개국 감독들의 만남
쓰리 | 2003년 4월 19일 토요일 | 유령 이메일

많은 사람들이 10여 년 전 KBS를 통해 방영되었던 <환상특급> 시리즈를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환상특급> 시리즈는 공포와 판타지의 영역을 넘나들며 새롭고 다채로운 상상력을 펼쳐 보였다. <스필버그의 어메이징 스토리>나 공중파로 방영되지 않은 <크리프스 스토리> 같은 시리즈도 있지만 아직까지 우리에겐 <환상특급>이다. <환상특급>시리즈 출몰 십 수 년 만에 '아시아 3개국, 대표감독 3인의 무섭고 이상한 이야기'라는 모토를 들고 나타난 <쓰리>엔 약간 의아한 데가 있다. <쓰리>에 실린 세 편의 영화는 별로 비슷하지 않으며, 그것은 왜 이 세 편의 영화가 한데 묶여야 했는지 의문을 남긴다. <환상특급> 역시 일관된 내용의 시리즈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환상특급>하면 떠올릴 수 있는 분위기는 있지 않은가. 단 세 편에 불과한 <쓰리>에서 그것을 찾기는 좀 힘들다. 아시아 영화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기 위해 공동작업에 합의한 3국이 흥행성과 작품성 양면에서 검증된 감독들을 내세워 아시아의 공포 3편을 세계에 내놓기로 했다는 제작 의도와 <쓰리>가 태국과 홍콩에서 박스오피스 1, 2위를 차지하며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에서 고개가 끄덕여지지만, 아쉽게도 <쓰리>는 우리 나라에서 성공하지 못했다. 영화로 들어가 보자.

<쓰리>의 두 번째 에피소드인 논지 니미부트르 감독의 <휠>은 정말 아쉬운 작품이었다. 자신의 인형이 저주받았다고 믿는 꼭두각시 인형극의 장인이 인형을 물에 버리려다 죽음을 당하고, 친척인 무용극 공연자가 그의 인형을 훔쳐오지만 역시 인형의 저주로 끔찍한 일을 당한다는 얘기인데, 인형이 갖는 주술적인 힘에 대한 보편적인 믿음은 이전부터 여러 영화의 좋은 소재였지만 솔직히 이 영화에서는 그다지 효과적으로 사용된 것 같지 않다. 무용극 공연자의 탐욕은 별로 탐욕스럽게 보이지 않고, 나오는 인물들의 캐릭터는 부재하다. 저주의 정체는 무엇인지, 얼마나 되는 힘을 갖고 있는지, 여러 가지가 설명되지 않은 채로 사람들은 피식 피식 쓰러져간다. 몽롱하기만 한 영화. 우리의 호프 김지운 감독의 <메모리즈>. 많이 모호한 영화지만 한가지는 기억에 남는다. 바로 김혜수의 큰 눈동자. 그 큰 눈을 궁글리는 김혜수의 섬뜩한 모습을 보며, 그녀가 다른 길을 선택했더라면 지금의 하지원을 능가하는 호러퀸을 만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 정도였다. 그러나 이 영화의 진정한 주인공은 아직 공사가 덜 끝난 황량한 신도시. 정보석과 김혜수라는 두 훌륭한 배우가 별로 하는 일이 없지만 그래도 양해가 된다. 또한 손가락으로 머리를 파내고 뇌수가 흘러내리는 강력한 장면을 보는 재미도... 물론 취향 나름이지만.

그러나 무엇보다도 지금 이 자리에서 이 글을 쓸 수 있는 것은 진가신 감독의 <고잉홈>이 있기 때문이다. 신종 전염병 사스(SARS)가 만연하는, 많이 초라해진 지금의 홍콩을 상징하는 듯한 철거 직전의 아파트. 그곳에 중년의 경찰 웨이가 어린 아들을 데리고 이사를 온다. 아들은 첫날부터 아파트가 맘에 들지 않았다. 자신을 빤히 쳐다보는 이웃집 여자아이, 그 아이가 다가와 같이 놀자고 말한다. 웨이는 사라진 아들을 찾아 이웃집 페이를 찾아가는데, 페이는 자신의 아내가 3일 후면 살아날 거라며 현장을 목격한 웨이를 가둔다. 죽은 아내를 정성스럽게 씻기고, 얘기하고, 옷을 입히고 매니큐어까지 칠해주는 페이의 모습은 <그녀에게>의 베니그노를 떠올리게 하고, 그녀는 되살아나지 않을 거라며 페이를 괴롭히는 웨이의 모습은 <지구를 지켜라>의 강사장을 떠올리게 했다. 다른 영화들을 떠올리는 소소한 재미에다 슬픈 결말이 무엇보다도 감동적이었던 이 영화의 주제는 바로 기적이다. 이 영화는 기적에 대해 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광기로 몰린 간절한 선의의 안타까움을 말하고 있기도 하다. 여명과 증지위라는 진짜 배우들의 힘을 다시 새겨볼 수 있는 기회였다. 물론 <고잉홈>은 공포보다는 멜로영화에 더 가깝다는 점에서 공포영화를 기대했던 팬이라면 불만스러울 수도 있다. 어쨌든.

아시아 3개국의 명감독들이 모여 자신들의 포부와 재기를 펼치고자 했던 프로젝트 <쓰리>. 명감독이라고 반드시 걸작만 남기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 논지 니미부트르에게는 위안이 되었을 듯 한데, 어쨌든 <고잉홈> 하나만으로도 <쓰리>는 가치가 있다. 아시아 영화의 나아갈 길에 대해 고민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이겠지만 그것이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의 몫은 아니라고 생각하며 <고잉홈>에 뿌듯해하는 중이다. 덧붙이자면, <고잉홈>을 보고 기적의 가치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는 것도 꼭 말해두고 싶다. 함부로 바랄 수는 없지만, 어느 순간 그것이 절실히 필요하다는 걸 느낀다. 장국영을 잃어버린 홍콩 영화계, 좋은 일은 잘 일어나지 않는 이 세상에 작은 기적을 베풀어주세요.

1 )
ejin4rang
별로인듯   
2008-10-16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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