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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부팅 완료, 본드 아이덴티티 (오락성 8 작품성 9)
007 스카이폴 |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지난 7월 런던올림픽 개막식. ‘여왕 수행 미션’을 하달 받은 제임스 본드(다니엘 크레이그)가 엘리자베스 여왕과 함께 ‘하늘에서 낙하’(skyfall)하는 세레모니를 선보였다. 영국이 낳은 세계적인 히트상품이라 할 만 했다. 올해로 50주년을 맞은 007 시리즈가 영국의 자부심으로 성장했음을 의심할 필요가 없었다. 거두절미하고, <007스카이폴>은 50주년 기념작이라는 사실에 누를 끼치지 않는, 심지어 품격까지 갖춘 근사한 영화다. 작전명으로 표현하자면, ‘온고지신’쯤 될까. 복고로의 회귀를 선택한 샘 멘데스는 그 속에서 미래로 가는 해답을 찾는다. 007 시리즈는 샘 멘데스로부터 다시 쓰여질지 모른다.

My name's Bond, James Bond. 자신을 소개하는 제임스 본드의 영국식 발음은 여전히 섹시하다. 매력적인 여자라면 일단 침대에 쓰러뜨리고야 마는 플레이보이 기질도 살아있다.(엄밀히 말하면 첫사랑 베스퍼(에바 그린)로 인해 순정남이 됐던 본드의 바람기가 되살아났다.)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본드의 한쪽 가슴에 총알을 명중시키며 그를 폭포 아래로 추락시키지만, 주인공은 절체절명의 순간 “짠” 하고 나타나기 마련이다. 아니나 다를까. MI6 본부가 ‘MI6 출신 악당’ 라울 실바(하비에르 바르뎀)에 의해 파괴되고, 수장 M(주디 덴치)이 사퇴 압력을 받자 본드가 돌아온다. He's back!

<스카이폴>이 언론에 공개된 후 가장 많이 듣는 단어가 ‘부활’이다. 하지만 부활이라는 단어를 <스카이폴>에만 한정짓는 건 온당치 못하다. 부활의 전조는 다니엘 크레이그가 더블오(00) 살인면허를 부여받은 <카지노 로얄>(2006년)부터 시작됐으니 말이다. 다니엘 크레이그는 선배 ‘007’ 피어스 브로스넌이 만들어놓은 슈퍼히어로적 007 이미지를 부수고 본드 캐릭터에 리얼리티를 입혔다. 조롱과 패러디의 대상으로 전락해가던 본드가 고독하면서도 강인한 남자의 상징으로 재평가 받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다. 그러니 <스카이폴>의 부활은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2008년)의 기반 밑에서 이룩됐다고 보는 편이 맞다. <스카이폴>이 트릴로지(3부작)의 완성처럼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작 <스카이폴>의 흥미로운 점은 자기검증에 있다. 자기검증은 <카지노 로얄>과 <퀀텀 오브 솔러스>뿐 아니라, 오늘날의 수많은 첩보영화들이 보여주지 못한 부분이다. 냉전 이후 첩보영화들은 주적을 잃었다. 국경 없는 테러리스트들을 적으로 삼으며 스스로의 행동을 정당화 하려 했지만, 요원들이 싸워야 할 명분은 냉전 시대에 비해 한없이 빈약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첩보영화들은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지에 몰두했다. ‘왜’ 계속 싸워야 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답은 내놓지 못한 채. 국가로부터 외면 받는 스파이(<미션 임파서블> 시리즈의 이단 헌트, <본> 시리즈의 제이슨 본 등)들이 늘어난 것 역시, 변화하는 국제정세에서 스파이가 필요한 이유를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카이폴>은 스스로 묻는다. “우리가 지금 필요한가!” 샘 멘데스는 알프레드 테니슨의 시 ‘율리시스’를 인용해 논란을 정면 돌파한다. 007 시리즈가 왜 지속돼야 하는지, 007이 무엇을 지키려 하는지. 영화는 자기 자신을 반성하는 동시에 스스로의 가치를 영리하게 증명해낸다.

<스카이폴>에 대한 호불호가 나뉜다면, 가장 큰 원인은 영화가 액션을 운용하는 방법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스카이폴>의 액션은 기존 시리즈보다 상대적으로 적은데, 본드 특유의 유머까지 거세된 덕에 무겁거나 지루하게 느껴질 수 있다. 위기일발의 상황에서도 넥타이 고쳐 매는 본드의 여유는 더 이상 찾아 볼 수 없다. 고된 일정에 피로한 노동자가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당신이 원하는 본드가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카이폴>은 단순 오락 영화 이상의 야심을 지닌 밀도 높은 작품이라 생각한다. 영화는 적어진 액션의 빈자리를 심리전으로 빼곡히 채운다. 자신을 버린 M을 향한 복수가 간절한 실바와 M에게 버림 아닌 버림을 받았던 본드, 그런 두 사람 사이에서 냉정을 잃지 않으려 애쓰는 M. 이들 사이에 형성된 아슬아슬한 삼각관계는 웬만한 치정보다 애잔한 구석이 있다. 본드의 고향 스코틀랜드 저택에서 벌어지는 마지막 결전 시퀀스에서는 고전 영화의 향취마저 느껴진다. 본드의 트라우마가 형성된 장소에서의 대결이라는 점에서, 상징하는바 역시 각별하다.

본드 걸에 대한 기대는 애당초 접는 게 정신건강에 이롭다. 본드 걸을 맡은 배우 스스로도 민망해 할 만큼 분량과 존재감이 없다. 사실 <스카이폴>의 진정한 본드 걸은 M역의 주디 덴치로 봐야 마땅하다. 7번째 007 시리즈 출연인 그녀는 사건의 주체이자, 관찰자인 동시에 다음 세대로 가는 가교로서의 역할을 톡톡히 한다. 올드팬들을 위해 준비된 선물은 Q와 머니 페이의 컴백, 그리고 <골드핑거>에 쓰였던 본드카 ‘애스턴 마틴 DB5’의 등장이다.(이들이 어떤 방식으로 돌아오는지 눈여겨보라.) <스카이폴>을 논하는데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건, 오프닝 크레딧이다. 아델의 ‘skyfall’에 맞춰 흐르는 영상은 CD로 구워 소장하고 싶을 만큼 매혹적이다. 한마디로 ‘죽여준다.’ 오프닝 크레딧 하나가 영화의 품격 향상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는가를 보여주는 귀한 사례로 남을게다.

2012년 10월 29일 월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Q와 머니 페이의 화려한 부활! M의 거부할 수 없는 존재감!
-아델의 노래와 함께 하는 오프닝 크레딧 시퀀스는 그것 하나로 ‘걍’ 예술!
-톰 포드의 핸드메이드 수트를 입은 본드는 섹시하기 그지없구나.
-샘 멘데스식 품격 있는 액션 영화
-본드 걸, 왜 나왔니!
-내가 원한 건 호방한 제임스 본드지, 엄숙한 제임스 본드가 아니라면
6 )
chorok57
극장에서 봤을 때의 감흥이 아직까지 남아있을정도. 최고다.   
2014-03-02 02:25
dillita
50주년을 맞아 과거의 거추장스러웠던 짐을 완전 덜어내고, 새로 옷을 갈아입었다고 볼 수 있었습니다. 사실 크리스토퍼 놀란이 감독했더라면 더욱 치밀한 심리전과 트릭을 볼 수 있었을테지만 샘 멘데스식 인간 '제임스 본드'도 절제속에 훌륭히 꽃을 피웠군요. 또한, 과거에 좋았던 기억을 되뇌이는 것만큼 우리 인간을 즐겁게 만드는것도 몇 없죠. 사실 전 007시리즈를 정말 싫어해서 극장가서 볼 생각을 아예 한적이 없는데 이번작만 특별히 봤습니다만 좋았습니다. 결국 영화도 마찬가지로 사람이 중심입니다.   
2012-11-25 16:00
who8449
007은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던것같아요 아주 재미있게 봤어요   
2012-11-14 23:48
movistar0802
007시리즈 물중 내용이나 액션이 제일 떨어지는 작품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상영시간도 길고 내용도 그렇고 좀 지루했고 심지어 잠까지 오는 불상사까지 생겼습니다. 좀 더 디테일하게 작품을 구성했다면 더더욱 좋았을꺼라 생각됩니다.   
2012-11-01 22:17
director86
현존하는 가장 세련되고 지적인 액션 영화가 아닐까 생각이 듭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비현실적인 기존의 본드보다 보다 인간적인 지금의 본드가 더 멋있어 보이네요.
배우들의 연기 보는 맛도 상당했습니다.   
2012-10-29 11:37
ddreag
정말이지 근사한 작품이었다는..특히 초반부 바이클 추격신 압도적이었습니다. 물론 본드걸의 존재감이 미미한 건 좀 아쉬웠지만. 새롭게 시작하는 007 작품으로서는 더할 나위 없는 품격 높은 작품이었다 판단됩니다. 나쁜놈으로 등장한 하비에르 바뎀의 존재감 증명도 좋았고요   
2012-10-29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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