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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입된 믿음, 망각의 풍격 오블리비언
jetlim 2013-08-09 오후 4:24:56 1133   [0]

믿음은 세계다. 개인의 믿음은, 그대로 개인의 세계가 된다. 믿는 만큼 보이고(보려 하고), 믿는 대로 살게 된다(살아진다). 믿음이 강할수록 개인의 세계는 견고해진다. 자신이라는 세계에 둘러쳐진 어떤 장帳이 확장되는 것이다.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장, 그것은 날것 그대로의 자신을 포근하게 감싸준다. '내가 옳다'라는 포근함을, 믿음은 개인에게 약속하고 실제로도 내준다. 그 포근함이 세상을 살아내도록 하는, 자신을 존재하도록 하는 코어core인 것이다.
 
<오블리비언Oblivion>은 요컨대 '주입된 믿음'을 떨쳐내는 한 주인공의 이야기다. 때는 2077년. 스캐빈저scavenger라 불리는 외계인들과의 핵전쟁으로 폐허가 된 지구가 배경이다. 스캐빈저들은 먼저 달을 파괴했고, 그 다음 지구에 쳐들어왔다. 달이 없어지자 지구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한 혼돈Chaos에 휩싸였고, 핵이 터지자 곳곳이 방사능에 오염되어 대부분의 지역이 거주 불가능한uninhabitable 상태가 되고 말았다. 생존자들은 지구를 떠나야 했다. 그들이 찾아낸 '제2의 지구'는 토성Saturn의 위성인 타이탄Titan이었다. 그곳에 가기 위해, 테트(Tet ; Tetrahedron, 4면체)라는 임시 우주 기지를 만들어 지구 대기권 밖에 쏘아 올렸다. 사람들은 테트에 모여 타이탄으로 떠나는 각자의 순번을 기다리고, 차례가 오면 그곳으로 간다. 타이탄에서 생존하기 위한 에너지는 지구에서 끌어다 쓰기로 했다. 첨단의 수력 발전기hydro rig들을 바다에 건설해두었다. 이대로라면 제2의 지구 타이탄에서의 문명 건립이 순조롭겠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전쟁에서 살아남은 스캐빈저들이 여전히 지구에 숨어 인간들의 수력 발전기를 공격해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항하고자 인간들은 무인 정찰 로봇인 드론Drone을 만들었다. 이 드론들이 수력 발전기 주변에 얼씬거리는 스캐빈저들을 색출해 제거한다. 살아 있는 모든 것을 죽이도록 프로그램 되었다.Programmed to kill. 성지 타이탄으로 이민하기 전, 테트에 대기 중인 인간들은 교대로 지구에 파견되어 수력 발전기와 드론 들을 점검 및 관리하는 임무를 수행해야 한다. 파견지는 방사능 오염 수치가 비교적 낮은, 그러니까 외부 활동이 가능한 구역이다. 해당 파견지의 바운더리Boundaries를 넘어가면 즉시 방사능에 쐬어 사망할 것이다. 테트의 오퍼레이터는 파견 요원들과 실시간으로 교신하며 그들의 '경계 넘기'를 엄격히 규제한다. 주인공 잭 하퍼(톰 크루즈)와 연인 비카(안드레아 라이즈보로)도 현재 그 임무를 수행 중이다. 앞으로 2주 후면 테트로 귀환한다. 그리고, 타이탄으로 갈 것이다.
 
여기까지가 잭 하퍼의 '주입된 믿음'이다. 그와 비카는 사실 복제인간Clone이다. 두 사람이 믿고 있는 세계는, 그 둘에게 입력된 메모리에 기인하는 것이다. 모든 것의 시작은 2017년이었다. 잭과 비카, 그리고 잭의 아내인 줄리아(올가 쿠릴렌코)와 몇 명의 우주 비행사들은 타이탄 탐사의 임무를 띠고 정찰선에 올라탔다. 조종간은 잭과 비카가 잡았고, 줄리아를 비롯한 나머지 선원들은 델타수면delta-sleep 중이었다. 미지의 우주를 비행하던 그들의 정찰선은, 때마침 지구를 침략하기 위해 이동 중이던 4면체 모양의 미확인 비행물체와 조우하여 격추되었다. 위기의 상황에서, 잭과 비카는 델타수면 상태였던 아내 줄리아와 다른 선원들을 비상 탈출시킨 뒤에 목숨을 잃었다. 그렇게 두 사람의 원본original은 소멸되었으나, 테트는 둘의 기억과 추억, 즉 메모리를 카피하여 수천 명의 클론을 제작했다. 테트가 클론들을 관리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그들에게 카피된 오리지널의 메모리를 주기적으로 지우고wipe, 새로운 세계관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테트의 지구 침공에서 살아남은 인간들이 바로 스캐빈저였다. 테트는 지구의 각 구역마다 경계선을 설정해놓고, 수천의 클론과 드론 들을 파견하여 스캐빈저들을 제거해나갔다. 또한, 클론들이 정체성(오리지널의 메모리)을 의심하게 되는 일을 막기 위해, 클론들 각자에게 할당된 임무 구역을 벗어나 서로 마주치지 않도록 철저히 감시했다. 자신이 클론임을 깨닫게 되지 않도록, 자신이 믿어왔던 세계가 모조리 가짜였음을 간파해내지 못하도록 두터운 경계를 쳐놓은 것이다.
 
그러나 오리지널의 메모리는 쉽게 삭제되는 것이 아닌가 보다. 테트가 제아무리 주기적인 와이핑 작업을 한다 해도, 클론의 무의식 세계에까지 그 와이퍼가 닿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잭 하퍼는 꿈을 꾼다. 꿈속에서 그는, 자신의 원본이었던 잭 하퍼로 되살아나서 아내 줄리아와 행복한 한때를 보낸다. 물론 복제된 잭 하퍼는 꿈속의 여인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 다만, 낯선 그 여인이 몹시도 익숙할 뿐이다. 그녀와 손을 잡고, 함께 걷고, 입을 맞추는 순간들이 마치 실제의 기억처럼 생생하다. 소거되지 않은 오리지널의 메모리가 매일 밤 꿈으로 발현되는 것이다. 세계에 대한 잭의 '의심'은 바로 이 지점에서부터 비롯된다.
 
클론 잭 하퍼의 모습은 현실 속 우리와 다르지 않다. 우리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 고등학교 3년 동안의 정규교육 과정을 거치며 '학생' '신분'이라는 범주에 속하게 된다. 모두와 똑같은 과목을 배우고, 시험 문제에선 이미 제시된 정답만을 정답으로 적어야 하며, 교복이라는 공동의 유니폼으로 소속감을 확인하는 것에 익숙해진다. 대학교에서는 취업이 아닌 길은 정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듯, 취업률 저조한 인문학과와 예술학과 들이 속속 폐과되고 있다. '취업을 해야 안정된 삶을 살 수 있다'는 포근한 믿음이 대학생들에게 주입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이 회사원이 되면 이른바 인적자원human resource으로 분류된다. 소모되고 고갈되면, 대체된다. 자원은 많다. 미디어가 끊임없이 생성해내는 '취업난'이라는 거대한 4면체가 쉴 새 없이 자원(취준생)을 대량 생산하고 있다. 개인의 단독성이 함몰되는 이러한 시스템 하에서, 우리는 서서히 '오리지널의 메모리'를 잃어가게 된다. 즉, 모두가 클론이 되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모든 것을 의심하라. De omnibus dubitandum.'라는 좌우명을 가졌었다고 하는데, 잭 하퍼에게도 그런 기질이 있다. 그가 연인(이라고 믿도록 주입된) 비카와 내적으로 반목하는 이유는 영화 서두의 대사가 말해준다. "내가 품은 의문들이 그녀에게는 없고, 내가 궁금해하는 것들이 그녀에겐 그렇지 않다. The questions I ask, she doesn't. The things I wonder about, she won't." 잭 하퍼는 '의심하는 자'이다. 그는 (운 좋게도) 제거되지 않은 오리지널의 메모리로 말미암아, 자신이 보고 듣고 느끼는 세계를 의심하고 있다. 다만 그 의심을 해결해줄 만한 증거나 확신이 없을 뿐. 반면 비카는 오리지널의 메모리가 완전히 포맷된 상태이므로, 철석같이 이 세계의 완전성을 믿는다. 특히 그녀는 타이탄으로의 이주를 일종의 구원처럼 여기며 지구에서의 임무 완수를 학수고대한다. 그 구원을 약속하는 존재인 테트는, 그녀에겐 신과도 같다. 우주에 둥실둥실 떠서 지구를 내려다보는 4면체의 신.
 
우리가 사는 현실에도 '테트'는 많다. 타 종교에 극렬히 배타적인 일부 종교인, 정치인, 멘토 등이 대표적이다. 일신론의 세계에 함몰된 몇몇 종교인과 대다수 정치인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신도들에게, 시민들에게 믿음을 '주입'하려 한다는 것이다. 종교인의 경우엔 매우 단도직입적이다. 나를 따르라, 우리의 신을 믿으라, 묻지도 말고 따지지도 말고(신을 부정하지 말고) 일단 믿어보라, 세상에는 오직 우리의 신만이 있다. 이게 터프해지면 '불신지옥'이 되는 것이다. 이에 비하면 정치인은 정치라는 일종의 기교로써 퍽 완곡하게 보이려는 제스처를 취한다. 기교로서의, 즉 제스처로서의 정치의 핵심은 이른바 대의명분인데, 그래서 정치인들은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려 할 때 대의명분을 강조한다. 우리 당을 선택하면 진정한 민주주의를 실현하겠다, 국민 여러분의 일꾼이 되어 나라 살림을 잘 꾸려나가겠다.
 
이들 종교인과 정치인을 합치면, 소위 '멘토'라는 작위를 받고 활동하는 요즘의 유명인사들 같은 캐릭터가 되지 않을까. 그들은 저작물과 미디어를 통해, 그리고 강단에서 저마다의 기사도를 발휘한다. 자신들의 독자와 시청자와 수강생 들을 위하여 대신 싸워줄 것처럼 말이다. 멘토라 불리는 이들은 대개 글을 쓰고 말(강연)을 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내러티브에 능하다. 뛰어난 구성력과 스토리 텔링 노하우를 지니고 있고, '내가 옳다'라고 믿는 것들을 타인들에게 설득시키는 포섭의 기술이 매우 세련되다. '스펙터클의 사회'가 두 팔 벌려 반길 만한 총아들이다. 그리하여 스펙터클을 생산해내는 미디어는 그들에게 '멘토'라는 그럴 듯한 호칭을 하사했고, 멘토 기사들에겐 바스타드 소드Bastard Sword와도 같은 날선 권한이 주어졌다. 대중을 마음껏 '위로'해도 된다는 막강한 권한 말이다. 최근에 그들의 위로의 타깃은 '청춘'에 집중되고 있다. 위로란 무엇인가. 괜찮다, 다 괜찮다, 토닥이는 것이다. 멘토들은 청춘이라 불리는 이들의 '안 괜찮음'에 대하여 왜 안 괜찮은지를 묻는 것이 아니라, 그 안 괜찮음을 견디는 것이 성숙한 자세라고 가르치는 듯하다.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제언은 얼마나 힘 빠지는 말인가. 청춘은 원래 아픈 거야. 하지만 미래에 대한 비전을 포기하지 말고 잘 견뎌보렴. 토닥토닥.. 정치인들의 기교가 대의명분이라는 제스처라면, 멘토들의 기교는 바로 이러한 '힐링'이다. 괜찮지 않음에 대한 본질적인 질문을 생략한 채, '힐링스러운' 말과 글로써 '그대들은 괜찮다. 다 괜찮다. 앞으로도 괜찮을 거다'라는 믿음을 주입시키는 것이다. 청춘들은 괜찮아야만 한다. 안 괜찮으면 안 된다. 안 괜찮은 청춘들을 괜찮(다고 믿)게 하는 기술이 힐링이다. 일종의 최면 같은 것이다. 그러나 힐링은 반영구적인 보톡스와도 같기에, 지속적으로 시술을 받아줘야 한다. 힐링에 매료된 청춘들은, 결코 자신의 안 괜찮음과 맞닥뜨릴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본인에게 자가치유의 능력이 있다는 것을 망각하게 되고, 아마도 평생 멘토를 믿는 힐링 신도가 되지 않을까.
 
종교인과 정치인, 멘토 들 모두 정확히 알고 있다. '저들에게 무엇을 믿게 하느냐'야말로 모든 것의 열쇠라는 사실을. 신도들은 신을 믿으면서, 시민들은 정치인을(정당을) 신뢰하면서, 멘티들은 멘토에게 기대면서 '포근함'을 느끼게 된다. 믿음이 강해질수록 안심이다. '내가 옳다'라는 안도감이랄까. 문제는 이 포근함의 반작용이 대단히 거칠게 발현된다는 것이다. '내가 옳다'라는 갑옷이랄까. 그 갑옷에는 장창이 달려 있다. 자신의 믿음과 반(反)하는 것들을 일체의 에너미로 간주하고, 그것들이 근접해오기도 전에 장창을 휘둘러 몰아낸다. 점차 믿는 자들의 삶은, 믿지 않는 자들과의 전투가 되어간다. 그들이 타인들과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하나다. 그들에게 내가 믿는 것을 믿게 하는 것. 믿으면, 내 세계로 들여보내준다. 그러나 믿지 않으면, 너와 나는 계속 분단이다. 만약 투시경을 착용하고 이 세계를 바라본다면, 어쩌면 수많은 주입된 믿음들이 얽히고설켜 형성하고 있는 모눈Grid을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보이지 않는 모눈에 맞춰진 채로, 우리는 사는 게 아니라 살아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러한 모눈의 세계야말로 ‘망각의 풍경’이다. 오리지널의 메모리를 망각한 개인들은, 마치 윈도 바탕화면의 아이콘들처럼 ‘자동정렬’ 되어 시스템의 필요에 따라 ‘실행’되거나 ‘삭제’된다. 잭 하퍼 역시 그럴 처지였으나, 어떤 계기로 인하여 자신이 품어왔던 세계에 대한 ‘의심’의 코어 안으로 육박해 들어가게 된다. 그 계기란, 줄리아와의 만남이다. 2017년 잭의 우주선이 테트에게 격추당할 때, 그와 비카는 줄리아와 다른 선원들을 탈출시켜놓았었다. 델타수면 캡슐에 넣어진 상태로 생존한 선원들은 60년이라는 시간 동안 우주를 흘러 마침내 지구로 도착한다. 오리지널의 메모리를 가진 인간들이 지구에 도착한 것이다. 테트가 풀어놓은 드론들이 이 낯선 이방인들을 가만 놓아둘 리 없다. 선원들의 캡슐이 불시착하자마자, 차례로 파괴하여 그들을 지운다. 프로그램드 투 킬. 마지막 남은 캡슐 하나가 삭제되려는 찰나, 잭이 당도하여 드론의 공격을 저지한다. 캡슐을 열어보니, 매일 밤 잭의 꿈속에 등장했던 그녀가 있다. 줄리아다.
 
아내는 60년 전의 오리지널, 남편은 60년 후의 클론이다. 부부는 테트가 그어놓았던 임무 수행 구역의 경계를 넘어가는데, 그 경계 너머의 세계에서, 잭은 자신과 똑같이 생긴 존재와 직면한다. 그 존재가 바로 ‘진실’이었다. 자신이 클론이었음을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잭은 줄리아에게 말한다. “나는 ‘그 사람’이 아니에요. 이제 알 수 있어요.” 잭 하퍼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음에도, 자신은 잭 하퍼일 수 없음을, 그저 잭 하퍼의 카피일 뿐임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에 줄리아는 이렇게 답한다. “그 기억은 당신 거예요. 우리의 기억이기도 하죠. 그 기억이 바로 당신이에요.” 줄리아의 눈에, 지금 자기 앞에 서 있는 객체의 외형은 설령 남편의 카피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 안에 내제된 오리지널의 메모리는 그대로다. 따라서 이 남자를 남편으로 인정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SF영화 <오블리비언>의 세계관이다. 육체는 단지 그릇이므로, 얼마든지 재생산될 수 있다. 오리지널의 메모리만 잘 담아 보존할 수 있다면, 그 육체의 원본과 사본을 따질 필요는 없다.(불교의 윤회론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이 같은 세계관은 윤리적인 논쟁을 일으킬 만한 매우 과감한 발상이다. 일반 관객들에게서 막대한 제작비를 회수해야만 하는 블록버스터가 취하기에는 매우 급진적인 모험이다. 그러나 <오블리비언>의 세계관은 윤리의 차원으로 접근하기보다, 하나의 거대한 메타포로서 해석하는 편이 이 영화의 본심을 알아차리는 데에 도움이 될 것이다. ‘오리지널에의 회귀’. 이것이 <오블리비언>의 본심이 아니겠는가. 주입된 믿음으로 말미암아 남들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아왔던 카피의 삶을 그만 끝내고, 그 어떤 모눈에도 걸리지 않는 자기 본연의 모습, 오리지널을 되찾자는 메시지를 이 영화는 던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카피되지 않았다. 우리는 주인공이다. 저마다 단독성을 지닌 오리지널이다.
 
결국 잭 하퍼는, 스캐빈저 무리의 리더 말콤(모건 프리먼)과 함께 테트의 코어로 잠입하여 폭탄을 터뜨린다. 자폭이다. 테트의 마지막 유언은 이렇다. “내가 널 창조했다. 나는 너의 신이다.” 주입된 믿음의 근원이자, 모든 거짓의 시작이었던 이 신적인 4면체의 시스템이 마침내 소멸하는 순간이다. 테트의 붕괴와 동시에,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오리지널을 제거하도록 프로그램 되어 있던 드론들도 작동을 멈춘다. 테트도 없고, 구원의 세계인 타이탄도 없다. 남은 것은 오직 여기, 일체의 모눈과 경계가 사라진 ‘지구’라는 자유로운 세계뿐이다. 잭은 사라졌으나, 또 다른 클론 잭이 남아 줄리아와 재회한다. 물론, 그 역시 오리지널의 메모리를 잃지 않은 존재다. 만약 또 다른 형태의 테트가 등장한다면, 또다시 잭 하퍼는 그와 맞설 것이다. 이 잭이 없어지면, 다른 잭이 나타난다. 그러나 오리지널의 메모리는 불멸하다. 결코 망각되어서는 안 될 자기 본연의 모습도 그러하다. 나를 나답지 못하게 압제하는 모든 것을 의심하는 태도가,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에게도 필요하지는 않은지.

[追伸]

영화 속에 등장하는 두 명의 클론 잭 하퍼는 숫자로 구분된다. 테크Tech 49호와 52호. 할리우드 영화들이 결코 아무렇게나 숫자를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에 착안하여, 49와 52의 의미를 찾아보다가 성경의 창세기경을 펼쳤다. 우선 49의 의미부터. 4장 9절에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가 나온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인 뒤 신에게 “내가 내 형제의 파수꾼 노릇이나 하란 말입니까!”라며 대든다. 그는 신으로부터 벌을 받았으나, 후손들은 번창했다. 카인의 장남인 에녹은 제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다. 에녹의 자식들 역시 대장장이와 음악가 등이 되어 문명과 문화를 이룩하는 데 일조했다. 이에 근거하여, <오블리비언>에서 테트를 폭파한 클론이 49호라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자신을 창조한 테트에게 맞서고, 심지어 그것을 없애버리기까지 한 49호 잭의 모습이 창세기경의 카인과 닮았기 때문이다. 테트의 소멸 이후, 지구에 숨어 있던 인간들이 손을 맞잡고 양지로 나오는 장면 역시 카인의 후예를 떠올리게 한다.
그렇다면 52의 의미는 무엇일까. 창세기경 5장 2절에 이런 내용이 있다. “신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했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그들에게 복을 내리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했다.” 52라는 숫자는, 테트에 의해 창조된 클론 잭 하퍼를 상징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글: 나우어(NOWer) / http://jet_lim.blog.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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