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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돋움하는 마이너, 스무살 고양이들의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
evelen 2001-10-13 오후 9:44:03 1460   [16]
신비로운 音과 色이 뿜어내는 스무살 아이들의 이야기


"고양이를 부탁해"라는 제목의 영화.
"마술피리"라는 제작사.
신비로운 색감의, 마치 마법을 걸듯,
무언가를 찾아낸 듯한 세 명의 아이들이 둘러앉아 있는 독특한 포스터.

"고양이를 부탁해"는 개봉 전부터 나를 설레게 한 영화였다.
과연 그 속에 어떤 이야기가 담겨있을 것인지.
나는 그녀들의 일기장을 몰래 들여다보듯,
개봉 첫 날, 첫 관객이 되어 극장 속으로 들어갔다.

시작은 고등학교 시절의 모습..
아이들은 똑같은 교복을 입고 환하게 웃음짓고 있다.
뽀얗고 가느다란 다리를 움직이며 놀이하며 함께 사진을 찍는다.
미래에 대한 아무 걱정도 없는 맑은 얼굴로.

그리고 펼쳐지는 각각의 이야기..

태희
혜주
지영
비류와 온조.

이 영화를 소개할 때면 언제나 이 순서이다.
인지도가 높은 배우, 배두나와 이요원, 그리고 옥지영, 쌍둥이인 이은실과 이은주의 순서.

그런데 나는 여기서 우선 지영이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진다.

지영이는 영화의 중점에 서 있는 고양이다.
스러져 가는 슬레이트 지붕 아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그리고 어느 구석에서 만나게 된 어린 고양이 티티와 함께
지영이는 뜻모를 문양을 새기며 지낸다.
미로같은 그림 속에 지영의 마음을 담고.
지영이의 웃지 않는 홑꺼풀 눈은 슬픔이다.
메마른 목소리는 세상에 대한 아픔이다.
그런 지영에게는 네 명의 여상 동창 친구들이 있다.
가장 친했던 친구 혜주의 생일 파티,
지영은 열심히 그려넣은 그림 박스에 티티를 넣어 선물한다.

카메라는 혜주의 손을 주시한다.
혜주는 전혀 아무 거리낌없이 박스를 북 찢어 고양이를 꺼내든다.
미야옹거리는 작은 고양이의 눈망울에 웃음을 짓는 혜주.

혜주는 예쁘다..
그리고 매우 사실적인 아이다.
받은 고양이를 곧 돌려주고 마는,
그러면서 지영의 존재에 대해 아무 거리낌없이 행동해버리는 아이다.
스무 살 아이들 중에서 가장 현실에 대해 민감하고
전혀 상처입지 않는 듯이 보이는 아이...
다른 이에게 상처주고도 그것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만 같은 아이...
그런 혜주는 "저부가가치 인간"이지 않기를 꿈꾸지만,
가느다란 다리로 아슬아슬하게 몸을 지탱하고 서 있는 그녀 주위로
그녀가 있든 없든 상관없다는 듯이,
바쁘게만 돌아가는 회사원들의 모습은
그녀를, 그리고 우리를 슬프게 한다.
모두들 떠나버린 늦은 저녁,
혼자서 복사기 앞에 앉아 친구들의 전화번호가 입력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한숨짓는 혜주는,
가슴 속에 응어리진 상처를 지닌 인물이다.

그녀는 다른 친구들처럼 자신의 아픈 곳을 내비치지 않는다.
물론 다른 아이들 또한 나 너무 힘들다고, 나 너무 아프다고
칭얼대거나 기대려 하지는 않는다.
그렇지만 혜주처럼 닫혀있지는 않다.
혜주는 선뜻 마음을 내어주지 않는 도도한 고양이다.

그 사이에 커다란 눈을 반짝거리며
호기심을 잔뜩 지닌 표정을 한 태희가 비춰진다.
뇌성마비 시인을 사랑하고,
배를 타고 온 세상을 누비고 싶어하는 아이, 날고 싶은. 아이..
물론 아이에게도 아픔이 있다.
태희는 레스토랑에서 메뉴판을 교양있게 볼 줄 모르는 아빠가 부끄럽고,
자기 자신의 공간을 인정해주려 하지 않는 가정이 불만스럽다.
무보수로 그저 맥반석 사우나방을 지키고 앉았는 태희의 존재는
봉사 활동으로 만나게 된 뇌성마비 시인 앞에서는 빛이 된다.
태희는 동그란 눈으로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발을 내딛는 어린 고양이다.

그리고 두 명의 쌍둥이 화교 여형제 비류와 온조.
그녀들은 이 스무살 아이들 중에서 가장 안정적이다.
둘은 함께 거리에서 머리핀 장사를 하며 지낸다.

영화는 이들이 각각 외따로 있는 모습들을 클로즈업하면서
그들의 마음을 들추어 보인다.
그러한 속에서 우리는 그들의 일기장을 본다는 생각으로 영화관에 앉아있지만,
결국 그 모습은 우리들 자신의 모습이 된다.

영화가 빛을 발하는 순간들이 몇 부분 있다.
그것은 바로 이 다섯 아이들이 모두 함께 어울려 있는 부분들이다.
혜주의 생일 파티,
마녀들의 모의 회담같은 옥상에서의 장면,
인천 월미도 바닷가,
동대문 패션몰에서의 아이들...

함께 하던 아이들은 패션몰에서 옷 구경을 하다가 제각각의 개성대로 하나씩 흩어져간다.
그건 마치 "우린 함께 있는 친구지만, 우리 각자에겐 자신들만의 길이 있다"는 의미를 지닌 것이 아닐까.
그리고 함께 모여드는 아이들.
참을 수 없는 그 곳의 공기에 빠져나가버리는 지영.
지영이 그렇게 가도록 내버려 둘 수만은 없다고 생각하는 태희.

레미..레.미.레.미레미..
레미..레.미.레.미레미..

스타카토식으로 천천히, 그리고 낮게 깔려드는 배경음악은
그대로 고양이같은 스무살 아이들의 이야기를 잘 이끌어내준다.
그 음이 도와 레로 이어지는 아주 낮은 중저음이 아닌,
그렇다고 해서 파와 솔 이상으로 연결되는 고음이 아닌..
낮은 듯 낮지 않으며, 높아지려 높아지려 발돋움하는 듯한 소리로
아이들의 꿈이 그래도 허망하지 않음을 암시해주는 듯 하다.


난 밤새 춤을 췄어
난 영혼을 팔았어
난 노래를 불렀어
난 모두를 죽였어
난 우주를 날았어
난 사랑을 버렸어
난 비단뱀을 샀어
난 눈물을 감췄어


♬ BGM - 진정한 후렌치 후라이의 시대는 갔는가 중에서


이 영화가 아니었다면 불리어지지 않았을 아이들의 소외되고 평범한 이름들처럼
오늘을 살고 있는 "평범한 우리 스무살의 이야기"가 중점에 서 있는 영화...

흥행률 높은 B급 영화들이 커다란 영화관을 모두 차지해버린 슬픈 어느 가을날,
조그마한 영화관에서 지금 나의 스무살을 돌이켜보다
그래도 슬픔보다는 잔잔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해 준 영화.

일기같은 영화 한 편이 내 나이 스무살 즈음에
나를, 그리고 나와 같은 많은 이들의 가슴에 남겨질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 기뻐한다..


* 고양이 티티에 대해서

티티가 매번 아이들 사이를 오고갈 때마다
원래의 주인에게서 떨어지지 않으려는 발길질을 할 때..
그 앞발의 움직임이 마치 아이들의 모습같았다.
정을 떼고 싶지 않지만, 세상은 우리를 그대로 놔두지는 않는다.
순수 그대로 세상을 살고 싶다고 꿈꾸는 것은
어쩌면 이제 너무 꿈 속을 헤매는 듯한 생각인지도 모른다..

영화 속 지영의 할머니의 대사에서처럼
"고양이는 영물"이라 치부되는,
우리나라의 메이저를 지배하고 있는 "개" 문화에서
"고양이"의 설 자리는 어디일까.

완전한 어린아이도, 미성년자도 아닌.
그렇다고 완연히 성숙한 어른이지도 않은.
그 과도기의 마지막 자리에 선 스무살 영혼들은
어둠과 빛의 그 사이에 서서
아직은 완전히 열리지 않은 동공으로 하늘을 꿈꾸며
새로운 여행을 시작하려 하는지도 모르겠다..

마지막 장면 태희라는 고양이와 지영이라는 고양이가 가고자 하는 그 어느 곳, 그 어느 하늘 아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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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를 부탁해(2001, Take Care of My Cat)
제작사 : 마술피리 / 배급사 : (주)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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