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내가 없어질 것 같은 순간, 쩨쩨해진다 <쩨쩨한 로맨스> 이선균
쩨쩨한 로맨스 |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 정시우 기자 이메일


* 이 인터뷰는 언론시사 이전에 진행된 인터뷰임을 밝힙니다.


아까 아이폰으로 뭘 그리 열중했나?
단체 문자를 보내는 중이었다. 아기 돌잔치에 와 준 분들에게 고맙다고. 원래는 2주 후인데, 영화 홍보로 바빠서 저번 주에 앞당겨 했거든.

오랜만에 아빠로서의 역할을 한 셈인가. 워낙 바쁘잖나.
오랜만이라니~ 매일 하고 있는데.(웃음) 이게 지금 이 일을 누구를 위해 하는 건가. 다 먹고 살기 위해서지.(웃음)

자신 있게 말 하는데?(웃음) <쩨쩨한 로맨스>, 귀에 쏙 들어오는 제목이다. 그런데 당신은 이 제목을 마음에 안 들어 했다고 들었다.
‘쩨쩨한’이라는 단어의 어감은 좋았는데, ‘로맨스’가 들어가는 게 조금 싫었다. 이게 로맨틱 코미디로 너무 규정지어지는 것 같아서. 그래서 “바꾸면 안 되나요? 다른 거 없나요?” 했는데, 나만 그런 생각을 했더라.

혹시 전작들 제목 때문인가? <커피프린스 1호점>(이하 ‘<커프>’)의 ‘프린스’ <로맨틱 아일랜드>의 ‘로맨틱’ 등 달달한 제목이 많았다.
드라마 영향은 아니었고. <로맨틱 아일랜드>때 제목부터해서 마케팅을 너무 예쁘게 포장했다. 그런 느낌이 마음에 안 들어서, 초반에 다른 대안이 없을까 한 거지.

‘쩨쩨한’이 그 느낌을 중화시켜주니 걱정할 필요 없을 것 같다. 영화는 어떻게 만났나?
<파스타> 끝날 때쯤에 시나리오가 들어왔다. 감독님 입봉작이라 시나리오를 중심으로 봤는데, 재미있더라. 애니메이션이 중간에 나와서, 볼거리가 풍부한 영화가 되지 않을까도 싶었다. 또 <달콤한 나의 도시>를 함께 했던 (최)강희씨와 다시 한 번 작업 해보고 싶기도 했고, 최영환 촬영감독님하고도 해보고 싶었다. 그러니까 이게 한 가지 이유가 아니고 여러 가지가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장가가고 애 아빠가 되다 보니, 앞으로는 이런 장르의 영화가 많이 들어오지 않겠다 싶어서 출연한 것도 있다.(웃음)

애니메이션 얘기를 했는데 중간 중간 만화가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만화가라는 설정도 그렇고, <와니와 준하>의 성인버전이라는 생각도 들더라.
<와니와 준하>보다 훨씬 강하지. <와니와 준하>는 순정 만화 분위기잖나. 그런데 우리는 성인만화를 그리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림이 세고 야하다. 양도 훨씬 많고. 애니메이션이 너무 훌륭하다.

지금 등급이 정해졌나?
19금. 애니메이션이 약간 야하기도 하고, 체위 관련된 대사들이 있어서 19금이 됐다. 그런데, 굳이…, 19금을 예상하고 만들긴 했지만, 유해성이 있는 건 아니라 살짝 아쉽다. 이럴 땐, 17금정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싶다. 고등학생 친구들도 충분히 볼 수 있게 말이다.

19금이라도, 볼 친구들은 다 볼 거다.(웃음)
그렇겠지.(웃음)
이번 작품도 그렇고 입봉 감독님들과 인연이 많은 편이다. 초반에 출연한 작품을 보면, 대부분이 감독들의 입봉작이고. 그러다가 최근 박찬옥, 홍상수라는 유명 감독과 작업했다. 입봉감독들의 역량을 낮게 보는 게 아니라, 계속 입봉 감독 작품만 하는 것과, 박찬옥이나 홍상수 같은 감독을 만난 후 다시 입봉 감독과 작품을 하는 건, 또 다를 것 같다.
능력을 떠나서 입봉 감독님들은 본인들의 기량을 100% 발휘하기가 힘든 게 있다. 투자자나 제작사에게 간섭받는 환경적인 요소들이 몇 번 하신 분들보다 많다보니. 거기에서 내가 많이 힘이 돼 줘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서 죄송한 것도 있고. 그런데 홍상수, 박찬옥 감독님은 내가 워낙 좋아했던 분들이라, 비교대상은 아닌 것 같다. 장르 자체도 다르잖나.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영화를 찍는 분들이라, 그분들과 하면서 굉장히 많은 걸 배웠다. 드라마에서 채우지 못한 갈증들도 많이 풀어냈고. 그 두 가지를 병행하는 게, 나에겐 큰 도움이 된다. 그 분들의 호흡들을 느껴보고, 그걸 드라마에 접목시키는 과정이 재밌다.

어느 게 더 맞나? 디렉션을 확실하게 주는 감독과, 본인에게 많이 맡기는 감독 중에. 홍상수 감독님의 경우에는, 시나리오를 당일 날 써서 건네기로 유명하잖나.
홍감독님 영화 대사는 굉장히 현실적이다. 그 상황에서 나올법한 것들을 잘 잡아내시기 때문에 당일 날 대본이 나와도 굉장히 잘 외워진다. 인공적인 포장이 없는 거지. 또 홍감독님 작품은 ‘원 씬 원 테이크(one scene one take)’가 많다. 컷을 많이 나누다보면 배우가 자기 장면만 신경 쓰게 되는 경우가 있는데, 한 번에 쭉 찍으시니까, 멋 부리지 않고 연기를 하게 된다. 진실 되게 호흡 하는 게 너무 좋고, 그게 또 다음 작품 할 때 큰 도움이 된다. <쩨쩨한 로맨스>는 아무래도 로맨틱이기 때문에 캐릭터나 이야기가 약간 떠 있는 게 있다. 드라마의 경우에도 현실보다 훨씬 멋진 인물들이 많이 나오고. 그런 걸 현실에 붙게끔 만드는 게 배우가 해야 할 일이고, 나의 몫인 것 같다.

아닌 게 아니라, 당신은 로맨틱한 캐릭터를 많이 연기했지만, 이상하게도 그 인물들은 굉장히 현실적으로 보인다. 꿈에서나 볼 법한 백마 탄 왕자님들이, 이선균이라는 필터를 거치면서 이웃집 오빠같이 현실에 착지 한달까? 일상성을 획득하는 건, 당신만의 장점이라고 생각이 드는데, 말을 들어보니 노력을 많이 하는 것 같다.
많이 염두에 둔다. 뭐든 과하면 안 된다고 본다. 드라마 같은 경우에는 특히 극적으로 흘러가는 게 많잖나. 내가 뭘 안 해도 이미 만들어진 것들이 많은데, 굳이 나까지 달달하게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이런 애가 현실에 있다면, 어떨까?”, “나라면 이 상황에서 어떨까 할까” 고민하면서 현실과 붙게끔 하는 편이다.

그런 고민이 <커프>때 잘 보였던 것 같다. 재벌 집 아들임에도 불구하고 어슬렁어슬렁 한량처럼 다니는 게, 보통의 로맨틱 인물들과는 달랐다.
이윤정 감독님과 코드가 잘 맞아서 가능한 거였다.

<쩨쩨한 로맨스> 예고편을 보니까 일단 외모적으로 눈길이 간다. 더벅머리 헤어스타일에 후줄근한 모습. 원래 시나리오에서도 그랬나?
원래 정배라는 캐릭터는 굉장히 댄디하고 깔끔한 모델 같았다. 그래서 감독님에게 내 외모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으니, 그런 건 다 빼 달라고 부탁했다. 부담도 되고, 아닌 것 같다고. 일단 정배는 만화가니까 그림 그리는 냄새가 났으면 좋겠다 싶었다. 그때 딱 떠오른 게, 홍대에 있는 애들. 홍대 미대 나와서, 홍대 술집 다니는 그런 느낌을 내고 싶더라. 어떻게 할까 하다가, 결국 파파를 했다. 면도도 안하고, 동대문 돌아다니면서 고른 옷을 입고 스태프들 앞에 간 거지. 처음 반응은, 거지같다?(웃음) 그래도 나는 다른 작품보다 신경을 써서 그런지, 도움이 많이 됐다. 정배라는 캐릭터를 조금 더 명확하게 이해하게 됐지.
<파스타>와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라는 느낌도 살짝 든다. 캐릭터 상으로도 로맨틱함보다, 다시 한 번 까칠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 친구도 되게 까칠하지만 약간 다르다. <파스타>의 최현욱은 절대 마초다. 그에 비해 정배는 약간 쩨쩨한 마초? 그러니까 둘 다 자기 일에 프라이드가 있고, 자기 고집은 있는데 최현욱은 그걸 흔들림 없이 밀고 나간다. 반면 정배는 그림 그리는 일이 잘 안 풀리다 보니, 결국 혼자만의 작업을 포기하고 작가를 구한다. 거기에서 작가와 티격태격하다가 연애를 하게 되는 거고. 정배는 귀엽고 쩨쩨한 마초다.

<파스타>와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손이다. 쉐프의 손과 만화가의 손.
내가 디테일하지 못하다. 손재주가 없어.(웃음) 이번 만화는 석정현 작가가 너무 훌륭하게 잘 그려줬다. 내가 감히 한두 달 배운다고 할 부분은 아니었기 때문에, 내 목표는 그냥 그림을 전공한 아이처럼 보이는 거였다.

<커프>때 얻은 로맨틱한 이미지 때문인지, 최근 <파주>나 <파스타> 등을 놓고 당신이 이미지 변신을 했다는 말을 많이 하더라. 그런데 사실, 당신은 초반 <일단 뛰어> <연인들> <태릉선수촌> <인어공주> 등을 통해 다양한 연기를 보여줬던 배우다. 엄밀히 말해 이미지 변신은 아닌 건데, 그런 시선들은 어떤가.
나는 뭘 고집한 적은 없다. 단막극 때부터 다양하게 하려고 했었고, 실제로 여러 인물을 연기했다. 흥행한 작품이 별로 없다 보니, 잘 알려지지 않았을 뿐이지. 그러다가 <하얀거탑> <커프>로 갑자기 로맨틱 가이가 됐다. 그 이미지로 인기를 얻고, 광고도 찍고. 고마운 일이지. 하지만 그걸 고수하고 싶은 마음은 없다. 연기 변신에 대한 조바심도 없고. 다만, 그런 이미지가 강해지다 보니, 색안경을 끼고 보는 부분은 있더라. 연기 변신이라는 게 꼭 180도 변해야 하는 건 아닌데, 모 아니면 도로 양분해서 평가하는 거지. <파스타>때 기존 이미지가 지겨워서 선택한 거냐는 인터뷰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그런 건 없다. 그냥 그 상황에서 내가 하고 싶은 역할이 오면, 하는 거다. 웃긴 건, <파스타> 이후엔 까칠남의 대명사가 돼 있더라. 몇 달 전에는 로맨틱 가이라고 하더니.(웃음) 그런 게 재미있기도 하고, 배우의 업보라는 생각이 든다.

미디어라는 게 그런 것 같다. 한두 번 나오면 전의 이미지는 너무 빨리 까먹지.
그걸 부정하고 싶은 마음도, 긍정하고 싶은 마음도 없다. 받아들여야지. 지금은 그런 게 그냥 그 당시 드라마가 잘 됐기 때문에 오는 반응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그런 로맨틱 이미지에 있을 때 만난 게, <파주>였다.
그 때도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일단 박찬옥 감독님 영향이 컸다. 워낙 좋아하는 감독님이었기 때문에. 명필름 작업을 해보고 싶은 생각도 있었고. 또 드라마에서 극적인 판타지가 큰 역을 많이 했기 때문에, 사실적인 이야기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파주>는 서사적으로 무겁고 힘든 이야기였지만, 사실적인 접근이 가능한 역이어서 마음에 들었다.
<파주>를 보며 느낀 게, 이선균이라는 배우가 표정에 따라 느낌이 참 다르다는 거였다. 혹시 그런 소리 안 듣나? 무표정할 때와 웃고 있을 때 달라 보인다는 말.
듣는다. 무표정으로 있으면 차갑게 보이나 보다. 그런데 현장마다 조금씩 다르다. 예민해 지는 부분도 있고. 그러니까 예민해 진다는 게 까칠해진다는 게 아니라, 영화라는 게 나를 돌리는 작업이잖나. 육체도 그렇고 머리도 그렇고 감정도 그렇고. 평상시의 나는 풀어져서 “헤~”하고 있는데, 영화할 때는 능동적이 된다. 그러다 보니 예민해 지는 부분도 있는데, 그런 게 또 좋으니까 영화를 하는 게 아닌가 싶다.

이번 작품에선 어땠나? 통통 튀는 작품이라 작업도 재미있을 것 같은데.
초반에는 조금 예민했던 것 같다. 베드신 때문에. 예쁜 몸은 아니지만, 관리를 해야겠다 싶었거든. 사람이 먹고 싶은 거 못 먹으면 예민해 지잖나. 술도 못 마시고 하니까 욕구 불만이 생기더라. 그래서 초반엔 약간 예민했는데, 베드신 끝난 다음엔 너무 편해져서~(웃음)

베드신 수위가 도대체…?
아니, 그냥 상체만 나온다.(웃음)

<달콤한 나의 도시>의 영수나 <파주> 중식은 감정을 누르는 캐릭터였다면, 이번 작품이나 <파스타>는 발산하는 캐릭터다. 어느 게 조금 더 표현하는데 수월한가.
<커프>나 <달콤한 나의 도시> 경우는 수비형 캐릭터다. 웃음으로 리액션 한 번 해 주고. 뭐, 날로 먹는 캐릭터였지.(폭소) 키다리 아저씨 같은 느낌이랄까. 그에 비해 <파스타> 최현욱은 공격형 캐릭터인데, ‘쉽다, 어렵다’를 떠나서, 둘 다 재밌다. 사실 최현욱은 너무 공격적이다 보니까, 현실감이 없어 보였다. 내가 맡은 인물에 납득이 가야 하는데, 그게 안 되니까 초반에 많이 힘들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님이 ‘버럭 버럭!’을 원하셔서 일부러 더 푸시하고 더 오버한 부분이 있는데, 다행히 (공)효진이랑 호흡이 잘 맞아서 무리 없이 했던 것 같다. 또 <파스타> 초반에는 다들 나를 미더워하지 않아서, 빨리 믿음을 줘야겠다는 조바심 같은 게 있었다. 효진이는 공격적인 이미지고 나는 받아주는 이미지인데, 입장이 바뀌다보니까 우리 둘을 놓고 말이 많았다고 들었거든. 열에 아홉은 반대했다고 하더라. 감독님이 주위에서 너무 반대하니까, “열 받아서 그냥 너희 둘을 캐스팅 한 거야”라는 이야기도 있고.(웃음)

이런 생각이 든다. 누가 해도 상관없을 것 같은 캐릭터가 있고, 당신이 하니까 맛이 산 캐릭터가 있다는 생각. 그러니까 <커프>의 경우 키다리 아저씨고 하니까, 누가 해도 인기를 끌었을 것 같다. 그에 비해 <파스타>의 최현욱은 다른 배우가 했으면 과연 그런 맛이 나왔을까? 불가능 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 정말? 아니다. 다 잘 했을 거다.(웃음)

겸손인데.
그냥 그랬던 것 같다. <커프>의 한성에겐 너무 좋은 환경이 있잖나. 좋은 집과 여유로운 직업과 큰 개와 기타 등등. 거기에서 나까지 과하게 하면, 과부하가 걸릴 것 같아서 최대한 풀어져서 갔다. “감독님, 부잣집 아들이라고 해서 집에서 실크 가운 입고 있겠어요?” 그러면서. 이윤정 감독님이 그런 나를 믿어주셔서 편하게 만들어갔다. 그리고 말하다 보니까 드는 생각이, 어떻게 보면 그 역은 누가 해도 어울릴 것 같은 역이지만, 반대로 그런 부담 없는 부잣집 캐릭터는 오히려 내가 했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고 보니, 그렇네. 내가 잘못 생각했다.(웃음) 결혼한 다음에 로맨틱 작품을 하는 거랑 싱글일 때 하는 거랑, 차이가 있나?
연기할 때는 큰 차이가 없다. 다만, “내가 멜로나 로맨틱 코미디로 많은 사랑을 받았고, 그런 장르의 시나리오를 가장 많이 받았는데, 유부남이 된 앞으로도 그런 역이 주어질까” 하는 생각은 든다. 이게 마지막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지. 그런 마음가짐에서 조금 다른데, 앞으로는 다른 장르에 많이 도전하면서 더 열심히 해야지.

<커프>로 인기를 얻은 게 서른 셋이다. 그리고 주연배우로서 무게감을 가진 게 서른 여섯, 최근 <파스타>다. 혹시 배우로서 ‘조금 더 일찍 빛을 봤으면 좋았겠다’는 생각 안 하나?
오히려 내 예상보다 훨씬 잘 되고 있다고 느끼는 걸. 연기에 대한 욕심은 많지만, 일등에 대한 욕심은 별로 없다. 요새 느끼는 건데, 연기 잘 하는 배우가 왜 이리 많은 건가? 얼마 전에 <부당거래>를 보는데, 단역부터 해서 다들 너무 잘 하더라. 그런 배우들을 보다 보면, “연기를 만만히 보고 하면, 완전 아웃되겠구”나 하는 위기감이 든다. 내가 연기력을 타고 난 배우가 아니기 때문에,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고. 왜, 동물적으로 연기하는 친구들이 있잖나. 그런 친구들 보면, 되게 부럽다.

본인은 노력형이라고 생각하나?
완전한 노력형은 아닌 것 같고. 동물적인 감각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내가 느끼는 몇몇 배우들에 비하면 한참 모자르지. 그런데 그들도 굉장히 노력할 거다. 그리고 연기에 대한 고민은 모든 배우가 하지 않을까. (송)강호형도 아마 고민을 할 거다. 그러니까 발전이 있는 거고. 절대 안주하면 안 된다.

말한 대로, <부당거래>의 경우 배우들의 연기가 피 튀기는 작품이다. <하얀거탑>이 당신에게는 그런 작품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하얀거탑>에서 장준혁(김명민)과 술 마시며 마음을 드러내는 장면을 빼고는 만족하는 장면이 없다”고 말한 인터뷰가 기억난다. 원래 본인 연기에 박한가?
박하다기보다, 나를 객관적으로 보는 것 같다. 그리고 <하얀거탑> 때는 굉장히 자신감도 없고 힘들었다. “내가 계속 연기를 해도 될까?”싶을 정도로. 그 정도로 그 드라마가 나에게 너무 컸고, 그 역할도 컸다. 그래서 많이 기억에 남는데, 그만큼 아쉬움도 많이 남고, 고맙기도 하다.

그렇다면, 반대로 이 작품 때문에 내가 배우로서 자신감을 얻었다 하는 작품이 있을까.
<태릉선수촌>! 그러고 보면, 배우에게는 주기가 있는 것 같다. 업 될 때가 있고, 다운 될 때가 있고. 그게 왔다 갔다 하는 거지. <태릉선수촌>이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내가 나오는 드라마를 누군가에게 자신 있게 “진짜 재미있으니까, 봐!” 이렇게 얘기 한 게. 이번 <옥희의 영화>도 좋았다. 내가 나오는 거지만, 객관적으로 재밌더라고.(웃음) <쩨쩨한 로맨스>도 그렇게 됐으면 좋겠는데, 그게 어쩌면 목표인 것 같다. 인기도 좋지만, 스스로가 자신 있게 추천할 수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만나는 게. 그러면 정말 행복할 거다.
인기를 얻으면 좋은 것 중 하나가, 본인이 하고 싶은 작품 선택의 폭이 조금 더 넓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
배우가, 본인 연기 하는 모습을 남들에게 보여 주려고 작품을 하는 건 아니라고 본다. 좋은 작품을 보여주려고 하는 거지. 그 작품 안에는 배우도 있고, 감독도 있고, 스태프들도 있는데, 그 좋은 작품에서 내가 한 역할을 하면 너무나 좋은 거다.

연극 단막극 단역 조연 주연. 참 차근차근 밟아 온 연기 인생이다. 그 덕분에 이런 마인드가 형성된 건가.
학교 다닐 때도 마인드는 그랬던 것 같다. 인기 스타가 될 거야, 이런 마인드로 한 건 아니었으니까. 그런데 분명, 운도 따랐다. <하얀거탑>때, ‘오랜 무명끝에 빛을 본, 중고신인!’ 그런 기사들이 많이 나왔는데, 운이 좋았던 거라고 생각했다. 나는 학교 졸업 후, 일을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역할이 크든 작든 일이 계속 주어진다는 게, 너무 고마웠다. 그게 쉽지 않은 거거든. 그리고 그 역할들을 내가 100% 소화했냐! 그건 또 아니었다. 작은 역도 100% 못 채우는 내가 뭘 더 바랬겠나. 그냥 현재의 역할을 책임지고 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걸 잘 해 냈을 때 성취감을 느끼는 거고. 그런 경험들이 성장의 계기가 됐던 거지.

연극반 조명보조로 들어갔다가, <고도를 기다리며>에 출연하며 연기에 발을 들어놓은 걸로 알고 있다. 그런데, 연기의 재미를 느끼기에 그리 재미있는 연극은 아니다. 형이상학적인 연극이었는데, 뭐가 그리 재밌던가.
내가 뭘 알고 했겠나, 그 어린 나이에.(웃음) 어떤 메시지를 이야기 하는지도 잘 몰랐겠지. 그런데 남들 앞에서 뭔가를 표출 한다는 게, 굉장히 큰 희열이었다. 더군다나 내가 무대 위에 설 거라는 건, 꿈도 못 꿨던 때라 희열은 더 했다. 대사도 별로 없는 역이었다. 개처럼 끌려 다니다나 나중에 혼자 두 페이지 떠드는 거였는데, 그 역을 맡았던 형이 도망가면서 대타로 하게 된 거다.

그 때 형이 도망을 안 갔으면, 우리는 지금 당신을 못 만나는 거였나?
인생이라는 게 되게 웃긴 거지. 그걸 계기로, 연극을 해야겠다는 마음에 학교를 옮겼다.

옮긴 곳이, 한국예술종합학교(이하 ‘한예종’ ). 그 전에는 무슨 과였나?
영문과. 나, 영어 진짜 못하는데.(웃음)

(웃음)한예종 연극원 1기다. 요즘 영화판에 한예종 출신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현장에 동문들이 많아지는 걸 보면 기분이 남다르겠다.
반갑다. 그런데 한예종이 나이 먹고 들어 온 양반들이 워낙 많아서, 선후배 개념이 아니라 그냥 동문 느낌이다.(웃음) 학교 다닐 때 영상원 형들이랑 되게 친하게 지냈는데, 그 형들이 최근 입봉을 해서 현장에 많이 와 있다. 되게 축하할 일이고, 잘 돼야지. 연극원 후배들도 대학로에서 활동을 많이 하고 있고. 다만 한 가지 아쉬운 건, 신인배우들이 뭔가를 하기가 나 때보다 더 힘들어 졌다는 거다. 단막극들도 많이 사라졌잖나. 그래서 후배들이 “어떻게 해야 하냐”고 고민을 많이 털어놓는데, 거기에 딱히 해결책을 줄 만한 게 없다. “조바심 내지 말고, 지금 하는 거 능동적으로 하다 보면, 길이 뚫릴 거다. 포기하지 말아라” 그런 얘기 밖에는 할 수가 없는 거지.

그러고 보니, 요새 단막극들이 너무 없다.
그러니까. 그나마 내가 할 수 있는 건, 오디션 있을 때, 정보를 주는 정도다.

<고도를 기다리며>를 보면, ‘무엇’을 기다리느냐 못지않게, ‘어떻게’ 기다리느냐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에 비춰서 당신은 남은 배우인생을 ‘어떻게’ 그려나갈지 궁금하다.
아~ 심오한 질문은 어려운데.(웃음) 기다렸다기보다, 그냥 잘 흘러온 것 같다. 흘러가는 대로 나를 잘 맡겼던 것 같고, 흘러가는 대로 즐겼던 것 같고, 흘러가는 걸 거부하지 않았던 것 같다. 이 일은 나를 돌리게 하는 에너지다. 내가 원래는 되게 게으르거든. 노는 거 좋아하고, 술 마시는 것 좋아하고. 그런데 연기 할 때만큼은 능동적으로 되니까, 그게 너무 좋았던 거지. 연기를 해야겠다, 마음먹은 것도 스스로가 능동적이 되는 게 너무 행복해서였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물론, 결혼하고 애가 생기니까 불안은 하다. 언제까지 배우를 해야 하나, 하는 고민도 들고.
그런 고민도 하나? 아니, 왜?
지금까지는 연기를 하는 게 너무 행복하고 좋았다. 그게 내가 행복하려고 연기를 한 거였지, 연기를 하기 위해 내가 사는 건 아니었다. 그런데 배우라는 게, 선택 받는 직업이잖나. 그런 직업의 특성상, 뭔가를 잡고 있으면 힘들어질 경우가 생길 수 있는 거지. 이제 나에겐 책임져야 할 가정이 있으니까. 그런 것들 때문에 미래에 대한 걱정도 드는데, 지금까지 잘 굴러왔으니까, 앞으로도 잘 굴러간다고 믿어야지.(웃음)

작품을 쉰 적이 없다고 했는데, 배우라는 직업에 대해 흔들린 적은 없었나? 한 번쯤은 멈춰 서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했을 법 한데.
데뷔 초반이었을 거다. 2002년도 시트콤 할 때. 한예종이 좋은 학교이긴 한데, 우리가 1기다 보니까 뭔가 프라이드를 심어주기 위해 외부 활동을 못하게 한다거나, 여러 가지 보호하는 것들이 많았다. 그런 곳에 있다가 현장에 나오니까 너무 달랐던 거지. 선배도 없고, 불편하더라고. 20대 때 행복하게 연기공부를 했는데, 이러다가 끝나겠구나하는 막막한 마음이 들면서 고민이 많았다. 그때 단막극이 주어지고, 작은 역들이 하나씩 들어오면서 “그래, 너 해 봐. 저번보다는 낫잖니?”하는 위안을 하면서 버틴 것 같다. 아까 말했듯, 배우에겐 그 주기가 있는 것 같다. 아…, 연기라는 건 정말…, 배우라는 직업이 참 멋진 것 같다.

이분법 할 수는 없지만, 오랫동안 한 분야를 지켜 온 사람은,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과거에 얽매여 있는 사람, 혹은 과거에서 너무나 벗어나려고 하는 사람. 당신은 전자인가, 후자인가.
둘 다 아닌 것 같다. 나는 현실을 보려고 한다. 그게 맞는 것 같다. 신인 때 시트콤 한 걸, 부끄럽다고 생각 하지 않는다. 정말 좋은 기회였다. 물론 연기를 잘 하지 못 한건 아쉽지만, 그것도 결국은 나 아닌가. 반면, 미래에 대한 걱정이 있지만, 앞으로 가고 싶으니까 그런 고민도 하는 거라 본다. 가장 중요한 건, 지금 현실. 이 역을 해 가는 지금인 것 같다.

결혼도 연애의 연장이라면, 최근 아내에게 한, 가장 쩨쩨한 순간이 있을까.
있지. 결혼하면, 연애 할 때 보다 훨씬 더 쩨쩨해 진다. 함께 해야 할 게 많잖나. 가족도 중요하지만 나도 중요하니까. 내가 없어질 것 같은 순간, 쩨쩨해지고 티격태격하는 거지.

티격태격 한 다음에는 금방 푸나.
그게 우리 부부의 가장 큰 장점이다. 굉장히 많이 티격태격하는데, 아무렇지 않게 금방 풀린다는 거. ‘독한 짝궁’ 이랄까.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 글_정시우 기자(무비스트)
2010년 12월 2일 목요일 | 사진_권영탕 기자(무비스트)    

1 )
bebopgo
멋진 배우~ 어떠한 역이든 자기의 것으로 소화시키는 이선균 씨의 영원한 활동 기대합니다!   
2010-12-13 20:03
1

 

1 | 2 | 3 | 4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