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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미와 친구’ 어떤 70세의 삶을 살고 싶은가 <작은정원> 이마리오 감독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강릉 명주동, 지금은 아기자기하고 옛 정취 가득한 공간으로 재생했지만, 예전에는 생기 없고 쇠락한 구도심 중 하나였다. 이웃모임 ‘작은정원’ 언니들은 예나 지금이나 명주동의 든든한 지킴이들이다. 스마트폰 사진 촬영 수업을 받은 지 3년, 언니들은 단편 영화를 찍기로 마음먹는다. 이마리오 감독은 이러한 언니들의 도전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한다. 다큐멘터리 <작은정원>의 시작이다. 강릉에 정착한 후 처음으로 강릉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 들은 이마리오 감독. 그간 다뤄온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와는 다른 범위와 결의 작품에 대해 ‘힘을 뺀 편안한 작업’ 이었다고 떠올린다. 영화를 본 관객들이 ‘70세에 어떤 삶을 살고 싶은 지 한번 고민해봤으면 좋겠다”고 희망한다.

다큐멘터리 <작은정원>의 시작은.

2009년 강릉에 내려왔고, 명주동이라는 동네를 알고 오가게 된 건 2012년경부터다. 2016년 ‘작은정원’ 분들이 사진 찍는 법을 배우고 싶다고 우리한테 연락을 주셨다. 그래서 16년부터 3년 동안 스마트폰으로 사진 찍는 법을 수업했다. 나는 기획 역할이나 진행을 맡았고, 최승철 감독이 수업을 진행했다. 그러던 중 마침 언니들이 영화를 찍겠다고 해서, 3년 동안 수업하니 좀 지겹고 무언가 변화가 필요한 시기라, 그럼 언니들이 단편영화를 만들고 우린 그 순간부터 다큐로 담아보자고 했다.

‘언니’라는 호칭에서 친밀감이 느껴진다. 언니들은 당신을 뭐라고 부르나. (웃음) 또 ‘작은정원’은 일종의 동호회 같은 건가.

동호회라기보다는 마을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2013년도에 전국적으로 마을 모임이 만들어졌고, 작은정원도 마찬가지다. 언니들은 나를 감독님 혹은 선생님이라고도 부르고, 이제는 교장 선생님이라고도 한다. 사실 사진 수업 초반, 호칭에 관해 고민이 좀 있었다. ‘어르신’은 언니들이 너무 싫어했고,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언니’라고 불렀는데 너무 좋아하시는 거다. 지금은 의미가 달라졌지만, 옛날에는 남녀 구분없이 손윗사람을 ‘언니’라고 불렀다고 한다. 연세 많은 분들을 언니라 하는 게 처음에는 이상하고 어색했는데 어느 순간부터 편해지고 익숙해졌다.

‘작은정원’ 모임에 남성 구성원이 없는 점이 특이하던데.

나도 처음에 신기하게 생각했던 부분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강릉만이 아니라 한국 사회 전체가 그런 것 같다. 연배가 있는 분들의 모임을 보면 여성분들은 굉장히 적극적인 반면 남성들, 특히 할아버지 세대는 무언가를 같이 하는 걸 어렵게 느끼시는 것 같다.

관객 입장에서 보면 정보가 다소 부족한 인상이다. 보통 자막이나 내레이션을 통해 등장인물과 배경을 설명해 주곤 하는데 <작은정원>은 전혀 그렇지 않다. 이러한 연출 의도는.

언니들 말이 명확하지 않고 사투리를 사용해서 전달력이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한글 자막을 했으면 더 좋지 않았겠냐는 이야기가 있었는데 이와 비슷한 의문인 것 같다. 어떤 정보를 조금 더 준다면 이해하는 데 훨씬 도움이 되고 오히려 영화를 더 깊게 바라볼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에 일부는 동의한다. 그런데 친절하게 다 알려주기보다 좀 더 궁금증이 생겼으면 좋겠더라. 다큐멘터리는 특히 정보를 알고 보면 이해도가 높아지는 부분이 분명 있지만, 역으로 보면 그렇기 때문에 영화를 다 보고 나면 궁금증이 모두 해소되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작은정원>을 다 본 후 강릉이나 명주동, 그리고 ‘작은정원’에 대한 관심이 조금 더 생기기를 바랐다. 인터넷을 찾아보거나 강릉에 놀러 왔을 때 명주동을 찾는다든지 그 관심이 이어지면 좋겠다는 생각에 어느 정도 친절함을 거둬낸 것도 있다.

카페 ‘봉봉방앗간’을 유난히 자주 비춘다. 사적으로 몇 번 방문한 적이 있는 공간이라 반가웠는데, ‘작원정원’에 있어서 어떤 특별한 의미가 있는 곳인가.

명주동이 구도심에 있다 보니 이전에는 생기가 하나도 느껴지지 않는 골목길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2012년에 봉봉방앗간이 들어서면서 이후로 공연장이나 다른 카페들이 연달아 생기고 동네 자체가 지금 같은 무언가 아기자기하고 옛 골목의 정서가 살아있는 공간으로 변모했다. 이러한 변화의 시작점이라는 점에서 중요한 공간이고, 거기서 수업을 진행하기도 했고, 언니들을 만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기도 하다. 봉봉방앗간은 지역에서 미디어 활동 혹은 영화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공간이라 자주 갔었고, 거기서 언니들을 개인적으로 만나기도 했거든. 더불어 그림상 아주 예뻐서 자주 활용한 부분도 있다.

언니들이 단편영화 <우리동네 우체부>를 찍는 과정을 담은 초반부를 지나 점차 언니들의 대화, 모임, 상영회 등 사적인 면을 담았다. 연출적으로 개입한 부분이 있을까.

개입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원래 2019년과 20년 이렇게 2년 정도 촬영하려 했는데 2020년에 코로나가 터지면서 촬영이 1년 이상 연기됐다. 이 과정에서 개입을 최소화하고 사실 개입할 여지도 딱히 없고 (웃음) 언니들의 수업 모습을 담는 한편 명주동의 변화, 즉 계절의 변화를 쭉 (촬영팀이) 기록해 나갔다. 원래 최초 버전은 언니들이 찍은 스마트폰 영상을 삽입하지 않았는데 보니까 영화적인 재미가 떨어지고 생동감도 부족해서 그간 언니들이 촬영한 영상 소스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자고 방향을 바꿔서 현재의 버전을 완성했다.

후반부쯤 언니들이 함께 만든 영상을 보며 마음에 담았던 응어리라고 할지, 기쁘고 아픈 추억을 하나씩 꺼내 놓는 시간을 갖는다. 단순히 말로 털어내고 끝나는 게 아닌 영상을 통해 자신을 대면한다는 건 평소 경험하기 힘든 값진 시간이었을 것 같다. 옆에서 지켜본 언니들의 반응이나 개인적인 소회는 어떤가.

여러 생각이 들었는데 그중 하나가 미디어를 활용한 장기 교육의 큰 강점이라는 거였다. 영화, 사진, 오디오 등 여러 형태의 미디어 활용 교육을 진행하지만, 이렇게 6~ 7년 동안 쭉 수업을 끌고 가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게다가 30~40년 이상 한 동네에서 함께 산, 서로에 관한 이해도가 굉장히 높은 상태에서 미디어라는 매체가 들어온 거라 어느 순간부터는 그 앞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스스럼없이 꺼내기 시작하더라. 이렇게 찍은 영상을 같이 보며 웃고 울고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면서 굉장히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이게 미디어 교육이다 싶었다. 처음부터 수업을 진행해 온 최승철 감독은 물론 지역의 젊은 청년 그룹들까지 모두 맞닿아지면서 이런 결과물이 나온 것 같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우리 카메라가 그 순간에 있어서 담을 수 있었다. 어떤 분은 후속편 계획은 없냐고 묻는데 ‘가장 빛나는 순간을 충분히 찍었다’는 생각이다.

마지막에 보면 언니들이 졸업하던데, 후배 모집이라고 할지 ‘작은정원’ 2기 계획은 없는 건가.

그게 언니들의 가장 큰 고민이다. 본인들은 나이가 드니 점점 활동이나 움직이기 힘들어지는 상황에서 새로운 분들이 들어왔으면 좋겠는데 젊은 사람은 다 일을 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떻게 하면 ‘작은정원’이 유지되고 새롭게 변화될 수 있을지 다들 고민하며 이런저런 방법들을 내놓곤 하신다.

강릉에는 독립극장 ‘신영’과 미디어센터, 정동진독립영화제 등이 있어 영화적 토대가 어느 정도 다져진 지역이 아닌가 한다. 좀 전에 지역 청년 집단을 언급했는데, 이들과의 협업을 좀 더 소개한다면.

단편 <우리동네 우체부>를 찍을 때는 지역 젊은 영화인들이 스탭으로 모두 참여해서 같이 작업했다. 시나리오나 편집 단계에서는 영화 <나는 보리>(2018)를 연출한 김진유 감독이 큰 역할을 해줬다. 보이지 않는 곳의 백업 역할을 지역 영화인이 해 왔고, 이는 그간 미디어센터와 인디하우스(영화인들이 만든 사회적 협동조합)에서 미디어 교육을 꾸준히 해온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우린 완성된 영화는 꼭 신영극장을 대관해서 시사회를 하는데 지역에 이렇게 제대로 된 시설을 갖춘 극장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매우 큰 힘이 되고 지지가 된다. 그간에 뿌려진 영화(미디어)의 씨앗이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싹이 트고 하나로 잘 맞닿게 됐다는 생각이다. 이번에 삼척 도계읍 폐광지역에 미디어센터가 만들어졌고, 인디하우스가 위탁 운영하게 됐다. 그래서 지금 삼척으로 출퇴근하며 개소 준비 중인데 모쪼록 영화와 미디어의 토대를 잘 마련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반부에 언니들이 자식들에게 전화해 ‘어떤 엄마였냐’고 묻자, 자식들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지켜보며 무언가 쑥스럽고 간지럽기도 한 감정이 올라오던데, 어떤 배경에서 이런 질문이 나왔는지 궁금하더라.

2020년 언니들이 스마트폰으로 촬영한 일상이나 사진을 모아서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수업 중에, 수업이기에 가능한 질문을 생각해 본 거였다. 사실 대놓고 (자식에게) 어떤 엄마였냐고 묻기는 좀 그렇지 않나! 그 답변을 취합하는데 한달 가까이 걸렸다. 연결이 안되기도 하고, 통화할 때 녹화를 못하기고 하고, 대답을 안 하기도 하는 등 시간이 걸렸지만, 우리가 예상하거나 기대하지 않은 이야기들이 나와서 깜짝 놀랐고 한편으로는 감동이었다. 그 질문은 비단 언니에게만이 아니라 찍고 있는 우리에게도 해당하는 이야기라서 단순히 ‘좋았다’는 감정을 넘어서 영화에서도 굉장히 중요한 포인트가 되겠구나 예상했다.

<작은정원>은 당신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 작품인가.

지금까지 작업해왔던 이야기와는 다른 범위 혹은 다른 결의 작업이었고, 강릉에 이주하고 나서 처음으로 다룬 강릉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아무래도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이슈를 다루다 보면 몸에 힘이 들어가게 되는데 <작은정원>은 아주 편하게 작업했다. 촬영과 편집 등 전 과정이 그랬다. 개봉을 앞둔 지금도 마음이 편하다. 몸의 힘을 빼서 작업한 좋은 경험이었다.

다큐멘터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내외적으로 시선을 열어 둬야 할 텐데 지금 집중하고 있는 관심사가 있다면.

지역인 것 같다. 어떤 사회적인 이슈라기보다 내가 살고 있는 지역의 삶 혹은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지역에서 무언가를 해보려고 하는 사람들과 그 움직임에 관심있다. 어떤 이야기일지 구체적으로 잡히지는 않았지만, 이 지역에 사는 영화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지역에 관한 이야기를 해 보고 싶다.

<작은정원>이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는지.

관객마다 다르게 느끼겠지만, 개인적인 바람은 본인의 나이가 70세가 됐을 때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관한 고민을 한번 해봤으면 좋겠다. 왜냐하면 미디어에서는 노후 자금으로 몇억이 필요하다고 떠들지만, 사실 돈이 행복을 담보하는 건 아니지 않나. 언니들을 보면서 내가 저 나이 때 저렇게 적극적으로 뭔가를 배우며 살 수 있을지 부러웠고 그다음으로는 저렇게 주변에 생각이 맞는 사람들과 근처에 살면서 같이 뭔가를 하는 언니들은 진짜 축복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면에서 ‘나는 어떻게 살고 싶은가’를 한 번쯤 생각하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행복한 노후의 필수는 ‘취미와 친구’라는데! 5060세대가 공감할 듯하다. 강릉에 정착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을까.

강릉 미디어센터 설립을 준비하는 팀들과 합류하면서 자연스럽게 정착하게 됐다. 무엇보다 내가 대도시에는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이었던 거지. 10년 넘게 서울에 살면서 어떤 안정감을 느낀 적이 없었던 것 같다. 바쁘고 재미있고 할 건 많은데 만족감과 안정감보다는 어딘가 계속 쫓기고 불안한 감정이 앞섰고 이런 느낌들이 너무 싫었다. 어떻게 하면 대도시를 벗어날 수 있을지 기회를 엿보던 중 마침 강릉에 미디어센터가 만들어지고, 시네마테크에서 나를 원한다고 해서 굉장히 그럴듯한 명분으로 당당하게 내려오게 된 거지. (웃음) 강릉도 그렇지만, 사실 모든 지역에 ‘사람’이 없는 것 같다. 어떤 경험치를 가지고 무언가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적다 보니 서울보다 훨씬 더 기회가 많은 면도 있다. 물론 지역은 (서울에 비해) 기회가 적지만, 사람은 더 적으니! 개인적으로 가장 좋은 건 내 삶이나 내 시간을 남이 아닌 내가 주도해서 결정하고 살 수 있다는 점이다.

마지막 질문이다. 이마리오는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나.

글쎄…다큐 작업할 때는 나 자신에 관해 여러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데 딱히 스스로 규정하기는 어렵다. 지금은 다큐멘터리 영화를 만드는 사람 플러스 미디어 관련 활동가라는 두 가지가 내 정체성을 규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일 것 같다. 좀 더 단순화시켜 보면 예전에 어느 언론에서 사용한 ‘동네 변호사’라는 표현을 접하고, 나도 ‘동네 영화감독’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다. 거창한 무언가가 아니라 주변에 늘 가깝게 있으면서 자기 일(영화와 미디어)을 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사진제공. ㈜ 시네마달

2023년 7월 14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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