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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함과 겸손함 <스즈메의 문단속> 신카이 마코토 감독
2023년 5월 8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한국 관객은 참 다정하다고 느낍니다. 퀼리티도 아직 부족하고 불완전한 제 영화를 좋게 봐주고 공감해 주시니까요.” 신카이 마코토 감독이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 300만 돌파 시 재방문 약속을 지키기 위해 다시 한국을 찾았다. 인터뷰를 통해 느낀 그는 상냥한 겸손가이다. 상냥한 성정으로 재해 피해자들을 위한 배려를 영화 내외적으로 곳곳에 심어 놓았고, 불완전을 수용하는 겸손함은 매 작품 성장을 거듭하는 밑거름이 됐다. 500만 관객을 넘은 영화의 흥행에 신기하고 감격스럽다는 감독에게 ‘스즈메의 여정’에 대해 들었다.

# 이야기 자체에 공감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흥행 열기가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이어진 부분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또 재해를 입고 상처를 가진 소녀가 회복해 나간다는 이야기에 공감한 것 같아요.”

외국 애니메이션을 이토록 사랑해 줘서 신기하고 감격스럽다는 신카이 마코토 감독, 자신도 확실하게는 모르겠다면서도 <더 퍼스트 슬램덩크>의 히트와 이야기 자체에 공감한 부분을 성공 요인으로 꼽는다.

지난 3월 8일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단숨에 300만 관객을 돌파했고, 3일(수) 기준 누적 관객 518만 명을 기록했다. 국내 개봉한 역대 일본 영화 중 최고 성적이다. 일본에서 이러한 흥행 소식을 들은 감독은 어떤 생각이 들었을까.

“일단 한국 관객은 정말 다정하다고 느낍니다. <기생충> 등 봉준호 감독님 작품에 비하면 제 작품은 불완전해요, 퀄리티도 아직은 부족한데 이렇게 영화를 좋게 봐주고 공감해 주니까요. 한국 관객은 정말 소박하고 다정한 것 같습니다.”

국내에서도 크게 히트 친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 그리고 이번 <스즈메의 문단속>으로 일본에서 연속 천만 관객을 달성, ‘트리플 천만’이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운 그는 현재 일본을 대표하는 동시에 제일 잘 나가는 애니메이션 감독임이 틀림없다. 특히 <스즈메의 문단속>은 지난 2월 열린 제73회 베니스국제영화제 경쟁 부문에 초청되는 쾌거를 이루며, 작품성과 상업성을 모두 인정받았다. 그럼에도 ‘부족하고 불완전하다’고 겸손함을 드러내는 감독이다.

‘다이진’과 ‘사다이진’ 등 다소 불친절한 서사라는 시선이 있다고 묻자 “그뿐만 아니라 <스즈메의 문단속>에는 반성할 점이 많아요.”라는 뜻밖의 대답이 돌아온다. 이유인즉슨 <너의 이름은.>과 <날씨의 아이>도 설명이 부족하다는 이야기를 꽤 많이 들었다는 것이다.

<초속 5센티미터>(2007) 등을 선보인 초창기에는 ‘부족한 서사를 떠받치는 빼어난 스타일과 감수성’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너의 이름은.>이 공전의 히트를 친 후 이러한 평가는 사실상 많이 줄어들었다.

“매번 비슷한 평가를 받아서 개선하려고 하지만, 만들고 보면 또 비슷한 이야기를 듣곤 합니다. (웃음) 두 시간이라는 러닝타임 안에 얼마나 많은 설명을 넣어야 할지 고민이 많아요.” 모든 걸 넣기에는 시간이 부족하고, 한편으로는 관객이 생각하고 느끼도록 의도적으로 열어 놓는 부분도 있다는 감독이다. “이번엔 특히 ‘다이진’에 대해 많이 이야기하지 말자고 생각하긴 했지만, 다음 작품에는 저의 부족한 면을 보완하려고 합니다.”

일명 재난 3부작인 <너의 이름은.>, <날씨의 아이>, <스즈메의 문단속>은 모두 여고생이 주인공이다. 세상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는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가 서사를 주도한다.

“젊은 세대를 주인공으로 하는 이유는 애니메이션은 기본적으로 젊은 세대를 대상으로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10대는 학교도 집도 아닌 무언가 다른 세계를 추구하고 있고, 소설과 애니메이션 같은 픽션의 세계가 그들이 찾는 제3 세계가 아닐까 해요.”

여고생이 주로 등장하는 점을 좋게 보는 분도, 비판적으로 보는 분도 있다고 덧붙이는 감독. 특히 작가(감독) 역시 더불어 성숙해야 하지 않냐는 비판도 꽤 있다면서 웃는다.

큐슈에서 도호쿠까지 스즈메의 여정

스즈메는 재난의 문을 여는 다이진을 쫓아 의자로 변한 ‘쇼타’와 함께 큐슈에서 도호쿠까지 다시 말해 서쪽 끝에서 동쪽을 향해 일본 횡단 여행길에 나선다.

“동일본대지진은 일본 동쪽에서 발생했지만, 일본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때 서쪽으로 이주해 간 사람도 많아요.” 일본의 끝이라 할 수 있는 큐슈부터 지진이 난 도후쿠 지역까지 스즈메가 전국을 여행하게 된 배경이다. 이때 스즈메가 들리는 동네들도 의미가 있는 지역들이다.

“에히메는 큰 홍수, 고베는 대지진, 도쿄 역시 대지진이 일어난 곳입니다. 큰 재해를 겪은 지역을 스즈메가 들리도록 배치했어요.”

반면 스즈메와 쇼타가 처음 만나는 오프닝의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길의 멋진 풍광은 실재가 아닌 가상의 공간이다.

“영화가 개봉하면 일명 ‘성지 순례’처럼 영화의 배경이 된 곳을 찾아가는 분들이 많은데요. 긍정적인 면도 있지만, 현지 주민들에게 민폐가 되기도 하더군요. 관광객이 느는 걸 반드시 환영하지는 않는다는 걸 경험을 통해 알았습니다.” 전작들의 경험을 토대로, ‘스즈메 마을’을 큐슈 지역의 어딘가로 하되 특정 동네를 본 따지 않은 이유다.

동일본대지진은 2011년 3월에 발생했다. 올해로 발생 12년째인데 “재해를 엔터테인먼트적으로 기억하려면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시점이 딱 좋은 타이밍이라고 생각했어요. 만약 4~5년밖에 안 된 시기라면 너무 생생해서 만들기 어려웠을 거로 생각합니다.”

“인간은 아주 오래전부터 그러니까 애니메이션이나 영화 등의 매체가 존재하기 전부터 그림을 그려서 이야기를 전해왔어요.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한 사람으로서 재해를 엔터테인먼트적으로 이야기하고 기억하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죠.”실제 일어난 재해를 소재로 하되 신화 혹은 옛날이야기 같은 느낌, 감독이 처음부터 잡고 들어간 영화의 방향성이다.

긴 시간이 지났나 해도 재해의 피해 당사자라면 그 상흔이 온전하게 지워지지는 않을 터. 감독 역시 이점을 간과하지 않았다.

“12년이나 지났지만 여전히 생생한 기억에 고통받고 있고, 아직도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분도 많습니다.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갈지 고민한 끝에 쓰나미가 덮치는 모습 등 동일본대지진 당시 상황을 직접적으로 묘사하지 않기로 했어요.”

더불어 재해로 인해 사망한 사람과 살아남은 사람의 재회 또한 그리지 않기로 했다. 가령 스즈메와 그의 엄마가 만나는 이야기는 애니메이션 세계에서는 충분히 가능하지만,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 배제했다는 설명이다.

작품 외적으로도 피해자들을 위한 작은 장치를 고민했다. 일본 영화관의 경우 ‘지진 경보가 울리고, 지진에 대해 그린 영화’라는 안내 문구를 마련해서 미리 안내했다. 혹시라도 트라우마를 지닌 사람이 사전 정보 없이 영화를 관람했다가 놀랄 수 있어서다. 감독의 상냥한 배려심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일본 애니메이션은 확산 중

일본 애니메이션의 현주소를 파악하는 데 있어 두 가지 시선이 교차한다. 지브리 스튜디오와 미야자키 하야오로 대표되었던 재패니메이션은 현재 내리막길이라는 주장과 유럽과 북미에서 대히트 중인 닌텐도 게임을 원작으로 한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 와 같은 원천 IP 보유국으로서 그 영향력이 한층 커졌다는 주장이다.

차세대 주자를 넘어 거장으로 자리매김 중인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견해는 어떨까.

“일본 애니메이션을 대표하는 입장이 아니라 정확한 팩트는 아닐 수 있지만, 개인적으로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재패니메이션이 널리 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리막길이 아니라 오히려 성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년 챔프’ 같은 만화잡지를 출간하는 출판사,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제작사, 한국의 ㈜미디어캐슬(기자 주: <스즈메의 문단속> 수입/배급사) 같은 해외 수입·배급사 등의 십 수년간에 걸친 노력이 서서히 결실을 보고 있고 코로나 이후 더욱더 확산됐다고 생각합니다.”

만화 원작 애니메이션이 굉장히 널리 퍼지며 힘을 얻고 있다고 전한 감독은 일본 애니메이션의 확산에 자기 작품이 히트 친 영향은 미미하다고 또 한 번 겸손함을 드러낸다.

“물론 좋은 측면만 있는 건 아니에요. 한 장 한 장 그리는 방식이 시류에 뒤처졌고 비효율적이다, 제작 방식을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인식도 있습니다만, 확장되고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제게 영화란 두 시간짜리 긴 곡과 같아요. 한 편의 영화는 한 곡의 노래와 마찬가지죠. 두 시간이라는 긴 멜로디를 어떻게 즐겁게 만들지 고민하고, 이를 실현하는 방법의 하나로 스토리보드 단계에서부터 소리와 음성을 넣고 여기에 맞춰 그림을 넣는 작업을 합니다.”

독자적인 작업 방식을 소개한 감독은 “재방문해 한국 관객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어 너무 좋아요. 애니메이션을 이렇게 사랑해줘서 감사합니다”라며 마지막 인사를 전한다.


사진제공. (주)미디어캐슬

2023년 5월 8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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