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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한국인’의 이야기, 애플TV+ <파친코> 배우 윤여정
2022년 3월 29일 화요일 | 이금용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이금용 기자]
동명의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한 애플TV+ 오리지널 드라마 <파친코>가 25일(금) 베일을 벗었다. 1900년대 초 한국을 배경으로 역경과 고난 속 일본에서 살아남은 한 강인한 여성과 1987년대를 사는 그의 손자를 통해 전쟁과 평화, 사랑과 이별에 관해 그린 애플TV+의 야심작이다. 극의 중심에 선 ‘선자’를 연기한 <파친코>의 주역 윤여정 배우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안긴 <미나리>(2020) 이후 첫 작품이라 많은 주목을 받았다.
미국에서는 <미나리>의 ‘순자’를 두고 '새비지 그랜마더'라더라. (웃음) 상을 받은 건 순전히 운이었다. 그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탔지만 여전히 똑같은 친구와 만나 놀고 똑같은 집에 살고 있다. 내 나이가 고마운 건 처음이다. 지금은 아카데미인지, 오카데미인지 싶지만 만약 30~40대에 이 상을 받았다면 둥둥 떠다녔을 테니까 말이다. 물론 받는 순간엔 좋았지만 아카데미 상이 나를 변화시키지는 않았다. 나는 나대로 살다가 죽을 거다. (웃음)

<파친코>에서 나이든 ‘선자’를 연기했다.
'선자'는 굉장히 강인한 여성이다. 내가 나이 들고 보니 인생은 다 선택이더라. '선자' 역시 누구와 연애하고, 결혼하는지 모두 자신이 선택한 일이다. 안전하고 편안한 선택지를 두고 다른 걸 택한다. 이 여자의 강인함은 생존 욕구에서 비롯되었고 그게 나와 닮았다. 물론 나라면 아마 그런 선택은 못 했을 거다. 100년 전 쯤에 살던 여자일 텐데 어떻게 이런 정직한 선택을 하고 강직하게 살아왔을까? 그런 게 참 부럽더라. 나와 닮았지만 이렇게 닮지 않은 면들도 있다.

작품을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해 많이 배웠다고.
우리나라가 일본에 점령당했을 때, 일본으로 건너갔던 이들이 한국으로 돌아오지 못하면서 자이니치가 생겨났다. 아메리칸 드림과는 다르다. 우리나라가 해방되고 금방 한국 전쟁이 일어나며 우리 정부에서 재일 교포까지는 챙길 수 없었고 그들은 일본에 남겨지게 됐다. 자이니치는 일본에 남게 됐지만, 성도 바꾸지 않고 한국어를 배우며 한국인의 정신을 이어가려고 했다. 조총련에 관한 이야기도 우리가 알던 것과는 다르더라. 한국어를 가르치는 곳이 조총련밖에 없었고 남, 북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오로지 한국인의 정신으로 조총련을 찾게 된 거다.

재일동포에 관해 많은 걸 알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상은 그렇지 않더라. 극중 '선자'의 아들 '모자수' 역을 맡은 박소희 배우는 자이니치다. 그에게 '자이니치라는 말이 재일 동포를 얕잡아 부르는 말이 아니냐'라고 조심스레 묻자 그는 한국인인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면서 오히려 자부심을 가지는 단어라고 했다. 나중에 그에게서 '자이니치'에 관한 역사를 들었는데 정말 가슴이 뭉클하더라. <파친코>를 통해 내가 모르던 걸 알게 됐고 많이 배우게 됐다. 역사의 아픔이란 건 이런 거구나, 개인의 고통이나 아픔은 비할 바가 못 되는구나 싶더라. 그간 몰랐던 역사적 이야기를 들으면서 정말 많이 울었다.

캐릭터를 준비하면서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인가.
지금 잘 안 쓰는 단어 같은데 ‘선자’는 ‘끼끗한’ 인물이다. 아마 이북 사투리 같다. 삶에 대한 존엄성과 품위가 있는 여성, 그 시대를 산 한국 여자를 내가 대표해서 표현하고 싶었다. 어떤 배역을 내가 꼭 해야겠다고 생각한 건 굉장히 오랜만이었다. 연기를 하면서는 전체적인 서사나 너무 복잡한 지점까지 들여다보면 연기가 복잡해지니 '선자'의 감정에만 집중하려고 했다.

손자 ‘솔로몬’(진하)과 같이 등장하는 장면이 많은데, 모든 장면과 대화가 인상 깊더라.
배우에게 연기란 함께 호흡을 맞추는 거다. 혼자서는 할 수 없다는 뜻이다. 모노드라마는 혼자 자신에게 취해 있는 것 같아서 안 한다. (웃음) 우선 내 나이에 맞는 연기라 좋았다. ‘솔로몬’이 자이니치라서 (하고자 하는 대로) 일이 안 풀릴 때 ‘선자’는 '니 안 하면 안 되나' 그저 한마디 거들 뿐이다.

특히 ‘선자’가 오사카 알박기 할머니의 집에서 쌀밥을 먹고 눈물 흘리는 장면의 여운이 엄청났다.
완성된 장면을 보고 '그래, 영화와 드라마는 다 같이 하는 거지' 싶더라. (웃음) 협업은 어려운 일이지만 동시에 아름다운 일이다. '선자'가 흰 쌀밥에서 고향의 맛을 느끼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은 우리의 협업이 만들어낸 결과다. 그 장면을 찍을 때 총괄 프로듀서가 매우 중요한 장면이라면서 강조했는데, 그 장면을 인상 깊게 보셨다면 정말 감동적인 일이다. 프로듀서가 정말 공들인 장면이니까. 사실 나에게는 그 장면뿐만 아니라 모든 장면이 다 중요했다.

<그것만이 내 세상>(2018) 이후 오랜만에 사투리 연기를 선보인다.
<그것만이 내 세상> 때 사투리를 배우느라 연기를 망쳤다. (웃음) 사투리에 너무 집중해서다. 나는 사투리 연기에 트라우마가 있다. 예전에 <꽃보다 누나> 이우정 작가에게 '사투리 연기를 도와달라'고 한 적이 있었는데, 이 작가가 말하기를 '그건 가르쳐 줄 수 없다. 그 지역에서 태어나지 않는 이상 완벽하게 할 수 없다'며 찬물을 확 끼얹더라. (웃음) 내가 할 수 있는 건 악센트로 포인트만 주는 정도다. 사투리 연기를 하면 내 연기를 하기 어려워진다.

'선자'는 오랜 시간 일본에서 살았으니 언어도 달라지지 않았을까.
‘선자'에게 사투리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몇십 년을 살지 않았나. 여러 가지가 뒤섞여 이상한 언어를 쓸 수밖에 없다. 내가 생각한 '선자'의 언어는 그런 식이었다.

한국, 미국, 일본을 넘나드는 글로벌 작품인 만큼 한국계 미국인들이 대거 제작에 참여했는데 이들과의 협업은 어땠나.
70년대 미국의 작은 동네에서 산 적이 있다. 내가 영어를 잘 못 하니 미국인 친구들이 친절하게 도와줬던 기억이 난다. 사실 당시에는 인종차별을 잘 못 느꼈는데 우리 아들 나잇대의 사람들을 보니 인종차별을 많이 느끼며 살았더라. 그 얘기를 들으면서 그들이 국제 고아라고 생각했다. 한국말을 못 하니 한국에서도 이상함을 느끼고, 미국에서도 미국 사람이라 인정해주지 않는 거다. <미나리> 때 정이삭 감독을 보면서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이번 작품도 그랬다. 꼭 내 아들 같아서 돕고 싶은 마음이 드나 보다. (웃음) '글로벌 프로젝트니까 출연해야지' 같은 마음이 아니라 이런 짠한 마음이 있기 때문에 <미나리>, <파친코> 같은 작품에 계속 참여하게 되는 거 같다.

이번 작품으로 기대하는 바가 있다면.
그런 게 어딨겠나. 나는 단순한 사람이라 그냥 많은 사람들이 재밌게 봐주시길 바랄뿐이다. (웃음) 아무리 멋진 예술 작품이라고 해도 아무도 안 봐주면 그게 무슨 소용이겠나.

사진제공_애플T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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