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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라는 매체 안에 나를 담다”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 감독
2021년 12월 7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지난해 초, 드라마 촬영을 위해 벨기에 머물던 배우 유태오는 팬데믹 선포와 봉쇄로 인해 낯선 도시 앤트워프에 홀로 남겨진다. 외로움과 막막함, 고립된 시간을 기록으로 남기기로 한 유태오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시작한다. 장을 보고, 음식을 만들어 먹고, 운동하고,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 나가 홀로 춤을 추기도 하는 등 자연스럽게 포착하거나 혹은 철저한 계산으로 연출된 컷은 쌓여갔다.

한국에 돌아온 그는 앤트워프의 기록과는 잠시 거리를 뒀다가 10월이 지나서야 다시 꺼내어 편집에 들어갔다. 올 1월에 한국에서의 일상을 다시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 시작, 합쳐서 완성한 작품이 <로그 인 벨지움>. 유태오가 유태오에게 쓴 영상 편지 같은 사적인 정서와 실험적이고 아기자기한 시도가 돋보이는 매우 유니크한 작품이다.

“정식 개봉한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고맙죠. 당시엔 고립 상황을 기록하고 친구에게 보여주려고 했을 뿐인데 말이죠. 아쉬운 점은 내 머릿속의 그림을 한정된 자원으로 만들어야 해서 온전히 표현 못 한 부분이 있다는 거예요. 그래도 이렇게 뚝딱뚝딱 만들었다는 사실에 뿌듯해요. 나중에 ‘어려운 여건에서도 잘 해냈구나’하고 칭찬할 지도요.”(웃음)

영화는 ‘사람이 외로울 때 그 사람은 진짜가 된다, 진짜 자기자신’ <구멍>(2000)으로 유명한 대만 감독 차이밍량의 말을 인용한 문구와 이어지는 경쾌한 피아노 연주로 시작한다.

“차이밍량을 평소 좋아해서 그의 말을 인용했어요. 천재 피아니스트로 불리는 박지찬 군의 선율이 고독하고 어딘가 외롭고 또 드라이한 유러피한 감성을 살리는 느낌이라 이런 감수성이 오프닝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앤트워프 뮤지엄 광장에 정말 좋아하는 행위예술가 크리스 버든의 전시물이 있습니다. 거의 매일 찾아가 그 앞에서 멍 때리고 시간을 보냈거든요. 그의 ‘H빔 스컬처’와 <베를린 천사의 시>를 모티브로 엔딩을 가져가자고 시작부터 마음먹었죠.”

극 중에는 현재 고립된 유태오, 가끔 유태오를 찾아 불쑥 나타나는 비니를 쓰고 안경을 낀 또 다른 유태오, 그림자로 표현된 과거의 유태오까지 세 유태오가 등장한다. 그들이 한국어, 영어, 독일어로 주고받는 대화를 통해 유태오 자신이 지닌 근원적인 멜랑꼴리와 감수성, 영화, 그리고 삶과 존재의 의미에 관한 문답을 통해 내면을 드러낸다.

“100% 다큐멘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감독이 개입하고 음악을 깔고 구성을 하다 보면 감독의 스토리텔링이 들어갈 수밖에 없잖아요. 장르는 다큐로 구분했지만, ‘다큐픽션’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아요. 사실을 바탕으로 상상을 더해 표현한 부분도 있고, 또 이런 식으로 마음속을 드러내며 실제인지 허구인지 헷갈리게 하는 측면이 있어요.”

“영화라는 매체 안에 나를 담고 싶었어요. 20년 후에 봤을 때 적어도 실망하고 싶지는 않아서 여러 구도를 고안했죠. 또 세 태오가 등장하다 보니 나름 변화를 줘야 했거든요. 평상시의 태오는 살짝 주눅들어 보이게끔 아이라인을 높여, 영상 속 태오는 자신만만하니 좀 더 아이라인을 낮추는 등 촬영 각도에 신경썼어요. 그렇게 총 80시간 정도를 촬영했습니다.”

<로그 인 벨지움>은 벨기에와 한국 촬영분으로 크게 두 파트로 구성되는데 특히 벨기에 파트는 구도와 영상 등 혼자 어떤 식으로 촬영했을지 메이킹이 궁금해지는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주어진 자원을 최대한 활용한 독특한 구성과 편집의 묘가 돋보인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튼을 열었다 치는 등 일부러 방금 일어난 듯한 연기를 하기도, 커튼 사이로 들어오는 빛 속에서 멍 때리는 내 모습을 각도를 조정해 찍기도 했어요. 그때 주로 입고 있던 셔츠에 제가 좋아하는 배우, 이탈리아 서부극에 나오는 전설적인 배우인데요. 상, 하, 좌, 우 사각 형태로 각기 다른 그의 얼굴이 프린트되어 있거든요. 이런 식으로 제 생활도 여러 모습으로 분석하여 다양한 각도로 촬영해 봤죠.”

“사실 편집을 염두에 두고 찍지는 않았어요. 스크립터도 모니터링도 없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감에 의지해서 기승전결과 구도에 신경쓰며 촬영했어요. 즉흥적인 연기처럼 느끼게끔 하려고 이런저런 준비를 많이 했던 것 같아요. 촬영에 대사까지 붙어야 하니 어떤 신은 이틀간 촬영한 것도 있다니까요.”

격렬히(?) 운동한 후 샤워하면서 빨래를 쓱쓱 비벼 빤다. 일석삼조를 꾀한 그 친근함이란! 고기와 소시지 등은 동이 나고 비건 푸드만 남은 마켓의 진열대에서 당시의 분위기를 읽을 수 있다. 태국 식품점에서는 레드빈을 사서 단팥을 만들어 앙버터를 먹고, 뚝딱뚝딱 만두를 제조해 낸다. 진정한 금손이다. 외로울 때는 애정하는 크리스 버든의 작품 앞에 수시로 가서 배회하고, 아무도 없는 밤거리에서 홀로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현실에서 상상으로 넘어가는 트랜잭션에 집중했어요. 왜냐하면 그 순간이 자연스럽지 않으면 설득이 되지 않거든요. 영어로 오디션 보고, 독일어로 과거의 감정을 얘기할 때도 마찬가지고요.”

“가장 어렵고도 뿌듯한 장면은 밤거리에서 홀로 춤춘 시퀀스예요. 새벽 여섯 시 반까지 춤추다 보니 나중에는 춥고 힘들었어요. 그땐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어떻게 담을지에 집중해서, (편집할 거리가 있어야 하니) 열심히 찍었던 것 같습니다.”

유태오는 키릴 세레브렌니코프 감독의 <레토>(2018)에서 구소련 80년대 자유의 아이콘이었던 고려인 출신 락커 ‘빅토르 최’로 분해, 2018년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되는 영광을 안았다. 당시 무비스트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이방으로서 느끼는 공허와 외로움, 멜랑꼴리함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이런 정서는 <로그 인 벨지움>에서도 감지된다.

“경험치가 쌓이면서 정체성이 변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변한다기보다 물이 흐르는 듯 유동적이라고 할까요. 그렇지만 근원적인 외로움은 어쩔 수 없습니다. 항상 느낄 거로 생각해요. 이건 타국에서 태어난 이방인으로서 살면서 획득한 것이 아닌 어쩔 수 없이 타고난 거죠. 과거와 변한 게 있다면, 이젠 멜랑꼴리함과 외로움이 나의 감수성을 더욱 풍부하게 해주는 요소로 생각해요. 어떻게 보면 아티스트에겐 장점 혹은 어떤 특권일 수 있어요. 우울함에 매몰되기보다 이를 직업적으로 어떻게 끌어 올릴지 고민합니다.”

유태오는 <로그 인 벨지움>을 ‘영화로 쓴 에세이’ 같다고 표현한다. 평소 스토리텔링에 관심이 많다고 말하는 그는 언젠가는, 당분간은 연기에 집중하겠지만,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어떤 형식이나 매체든 구분없이 꺼낼 기회가 오길 희망한다. 이번 작업에는 배우자인 니키 리 사진 작가가 프로듀서로 촬영에 참여했다.

“사물이나 현상을 대하는 다양한 생각이 있는데요, 저는 달리 느낄 때가 있거든요. 이런 것들이 쌓이면서 오는 외로움이 있어요. 이를 스토리텔링에 담아 보편적으로 느끼게끔 하는 것, 그게 제 숙제 같아요. 요즘 느낀 걸 <로그 인 벨지움>으로 풀었다면, 과거 그러니까 20대의 생각과 감정을 또 다른 이야기로 풀어낼 수 있겠죠.”

“선입견 없이 편한 마음으로 보면 적어도 시간 낭비라는 생각 없이 귀가하지 않을까요. 예술 영화를 볼 때의 지루함은 저도 못 견디는 편이라, 자체로 재밌는 걸 봐야 하는 사람이라서요. (웃음) 재미있게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니키는 소울메이트이자 창작 파트너, 그리고 너무 좋은 배우자예요. 한 번 대화를 시작하면 너무 재미있어서 밤을 새울 때도 있습니다.”라고 표현하는 유태오. 최근 흥미롭게 본 작품 중, 제임스 네스터의 저서 ‘호흡의 기술’, 넷플릭스 영화 <환상의 버섯>, 다니엘 크레이그의 마지막 본드 <007 노 타임 투 다이>를 추천한다.


사진제공. ㈜ 엣나인필름

2021년 12월 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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