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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부여보다 있는 그대로 봐주길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권무순 & 남승석 감독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아르바이트하며 만나 친해진 무순-태원, 부산에서 서울까지 달려!
- 세대별 초상화를 그리고 싶었던 남승석 감독, 무순이 지닌 어떤 자신만의 세상 감지해
- 다큐멘터리 캐스팅 제안에 거침없이 수락한 무순, 비비크림 정도의 가면 쓰고 사는 편
- 자연 풍경 속 쓰레기 더미, 20대의 정서적인 괴로움을 스쳐 지나가듯 표현한 것
- 무순, 촬영 당시도 끝난 직후도 특별한 느낌 없었으나 리마인딩 되면 매해 새롭게 다가와
- 무순을 통해서 자신을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된 남승석 감독, 관객도 그렇기를 희망
- 내 생활을 했을 뿐이라는 무순. 그냥 저런 애가 있네, 저런 삶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봐줬으면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 가쁜 호흡을 내뱉으며 달려가는 청년이 있다. 허리춤에 찬 라이트의 형광 불빛이 청년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며 어두운 거리를 비춘다. 그런 뒷모습을 남승석 감독이 조용하게 카메라로 쫓는다. 일상의 어느 날 남 감독의 시야에 청년 ‘무순’이 들어왔다.

다큐멘터리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의 시작은.

남승석 감독(이하 남승석) 전작 <하동채복: 두 사람의 노래>(2017)에서 귀농한 586세대 ‘하동’과 ‘채복’의 일상을 담았다. 젊은 시절 노동운동에 투신, 수감된 후 현재는 귀농해 터전을 일구고 잘 살아가는 그 모습이 좋아 세대별 초상화를 그리는 작업을 이어가고자 했다. 여러 세대 중 특히 20대를 알고 싶은 마음이 컸다. 50대인 나와는 너무 다른 그 세대를 이해하고 싶었다.

남 감독은 무순 씨의 어떤 면에 이끌려 그를 카메라에 담게 됐나. 또 무순 씨는 다큐멘터리 제안을 받고 어떤 생각이 들던가.

남승석 인물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의 경우 캐스팅이 중요하다. (내가) 배울 거리가 있어야 하고, 나와 닮았으면서도 다른 면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무순이 써브웨이에서 아르바이트하는 모습을 6개월간 지켜봤었다. 하루도 빠지지 않는 게 성실하면서도 무언가 자신만의 세상이 있어 보였다. 그러던 어느 날 눈에 멍이 들어 있길래 싸웠냐고 묻기는 그래서 혹시 복싱하냐고 하니 “어떻게 아셨죠?”라고 답하는 거다. 그에게 다큐멘터리 촬영을 제안하니 바로 거침없이 수락하더라.

권무순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아무것도 몰라서이다.(웃음) 제안받고 든 생각은 일단 재미있겠다는 거였다.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할 거리가 생겼다 정도. 나중에 생각해보니 내 20대 모습을 영상으로 찍는다면 그 무엇보다 선명하게 담을 수 있겠더라.

남승석 다큐멘터리의 주인공이 되려면 그 사람이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 처음에는 오케이 하고 촬영에 들어가도, 막상 하다 보면 자신의 일상과 속내, 감정, 생각 등이 사회적으로 공개 노출되는 걸 감당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 면에서 무순은 무대 체질이더라. 현재 밴드 활동 중이라 그런지 말이다. 사실 무순이 복싱한다는 것만 알았지, 음악하고 과거에 프로 바둑 기사를 준비한 것 모두 촬영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권무순 원래 성격이 감추기보다 드러내는 편이다. 평소 비밀을 가지는 주의도 아니라 그런지 내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에 그다지 거리낌이 없다. 같이 달린 ‘태원’의 가면론에 따르면 나 정도면 완전히 맨 얼굴은 아니고 살짝 비비크림 정도만 바른 수준이라고. (웃음)

닮으면서도 다른 인물을 캐스팅하고자 했다고 했는데, 남 감독은 어떤 면이 무순 씨와 닮았다고 생각했는지. 또 다른 점은.

남승석 무모한 도전을 하는 점과 규정되지 않은 삶을 살려고 하는 면이 비슷하다. 무순은 초월적인 건강함과 엄청난 에너지를 지녔다. 이번 작업을 통해 일상 속의 평범함이 가장 위대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또 그런 사람이 잘 살아남는 것이 가장 좋은 세상이라는 것도 느꼈다. 다른 점이라 하면, 나보다 훨씬 젊고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다는 거! 하하.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 스물일곱 무순은 달리기로 국토 횡단에 도전한다. 써브웨이에서 같이 일한 친한 동생 ‘태원’과 함께 달렸다. 부산에서 출발해서 서울에 도착하기까지의 일주일은 무순에게 태원에게 그리고 그들을 카메라에 담은 남 감독에게 결코 잊지 못할 인생의 한때로 남는다.

달리는 것을 지켜보며 순간 박차고 나가 직접 뛰고 싶다는 욕구가 불쑥 치솟더라. 달리기에 나선 어떤 계기가 있다면.

권무순 술자리에서 나눈 얘기로부터 우연히, 충동적으로 시작된 계획이었다. 나는 복싱을 위해 평소 조깅을 아침마다 하고 있고, 태원은 워킹홀리데이를 떠나기 전에 체력을 기르려고 생각한 차였다. 함께 뛰어 볼까 하는 얘기가 나왔고, 이왕 달릴 거 목표를 정해 놓고 하자고. 땅끝마을에서 서울까지? 이렇게 사실 반 농담처럼 시작한 거였다. 해남에서 서울은 그 길이 좀 위험한 요소가 있기도 해 부산에서 서울로 결정했다. 총 일주일을 달렸는데 한 4일 정도 지나니 호흡이 잘 맞기 시작했다. 이후에도 사소한 트러블은 있었지만, 그래도 마음은 편했다.

남승석 그들의 달리기 프로젝트에 대해 전혀 몰랐고, 카메라로 담으면서도 일체의 개입은 하지 않았다. 4~5일 지나서 합이 맞기 시작한 것은 무순-태원 사이의 호흡뿐만이 아니다. 촬영도 마찬가지였다. 차로 두 사람의 뒤를 따라가며 촬영했는데, 며칠 지나서야 운전 속도와 앵글 등이 자리 잡히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달리는 모습을 포착할 수 있었다.

뒷모습을 주로 담은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남승석 다큐멘터리 출연자는 소셜 액터, 즉 사회적 배우라 할 수 있다. 카메라도 일종의 무대와 같아 그 앞에 서면 뭔가를 하게 된다. 그래서 (말했듯) 캐스팅이 중요하고 그에 따라 다큐멘터리의 방향성이 달라진다. 무순은 비정상적이고 맹목적으로 건강한데 (웃음) 그의 뒤를 따르다 보면 어떤 수도자적인 느낌을 받곤 했었다. 현실의 벽에 부딪힐 때 남을 탓하거나 좌절하기보다 초월적으로 극복해 내는 면이 있거든. 그걸 오롯이 담고 싶었다.

비정상적인 건강함과 초월적인 면이라,(웃음) 인상적인 표현이다.

남승석 사실 태원과 무순이 비슷한 면이 있다. 남의 이야기를 안 듣는데 그렇기에 아이러니하게도 영화가 끝까지 갈 수 있었다. 일정 부분 맹목적일 수 있지만, 각자의 신념에 차 있는 두 친구라 어떻게든 눈앞의 난관을 극복해 나갔기 때문이다. 무순-태원의 초월적인 건강함을 어떻게 포착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세상에 복종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관철하는, 거창한 영웅이 아니라 일상에서 자신을 구현해 나가는 사람만이 가지는 아름다운 면모를 자연과 대비해 표현해봤다. 새벽녘 푸르스름한 공기, 석양에 타는 노을 아래서 무순이 그 순간을 음미하고 자연의 숭고함을 느끼는,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담았다. 물론 카메라가 촉발한 행동일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 해도 그가 지닌 어떤 속성과 기질이 묻어나온 거라고 생각한다.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

# 2018년 촬영을 시작한 영화는 2019년에 완성, 2021년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20대였던 무순은 이제 30대에 접어들었다. 밴드 생활을 계속할지 고민하던 무순은 당시 서울의 오랜 자취 생활을 정리하고 수원 본가에 들어갈 참이었다.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던 태원은 귀국했다 또다시 떠났다. 남 감독은 세 여성의 트라우마와 위로 및 기억의 재구성에 기반을 둔 감정 문제를 다룬 다큐멘터리 <감정교육>을 작업했다.

무순 씨는 달리기를 완주 후 나아가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를 통해 얻은 것이 있다면.

권무순 일회적인 이벤트라 당시에는 힘들었지만, 무사히 잘 끝냈다고 생각했을 뿐 특별한 느낌은 없었다. 그런데 이후 영화제에서 영화가 상영되고 그걸 보다 보니 당시가 리마인드 되는 거다. 그러면서 그 시간에 담긴 의미를 발굴하고 되새기게 됐는데 그 과정이 지금도 진행 중이다. 내 인생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라고 생각했었는데 되새김을 통해 내 과거와 주변의 이야기이기도 하다는 것을 알았다. 의미를 찾고, 부여하다 보니 결국 나와 마주하게 되더라. 인터뷰하는 지금, 이 순간도 내 이야기의 하나를 구성하겠지.(웃음) 태원과 만나서도 (달리기) 이야기를 계속하고, 그렇게 매년 의미가 새로워지는 것 같다. 내년에는 아마도 또 다른 느낌일 거다.

태원 씨도 영화를 봤는지. 뭐라고 하든가.

권무순 귀국했다가 워킹홀리데이를 다시 나간 상태인데, 들어온 기간에 함께 GV를 진행한 적이 있다. 태원이가 그렇게 수줍어하는 모습은 솔직히 그때 처음 봤다! 태원과 내가 비슷하면서도 다른 면이 있다. 나는 친구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불러서 같이 봤지만, 정작 가족은 초대하지 못했다. 근데 태원이는 친구들에게는 전혀 얘기하지 않았지만, 어머니와는 같이 왔더라. 부끄러워하는 포인트가 참 다르다.

촬영 당시 밴드 활동의 지속 여부를 고민했는데, 어떻게.. 답은 찾았나. 근황은 어떤가.

권무순 밴드는 지금 쉬고 있지만, 다시 시작할 것 같다. 촬영할 때는 밴드로 뭔가를 이루겠다는 생각이 강했지만, 지금은 단지 좋으니까, 좋아하는 마음으로 팀을 만들어보자고 친구와 이야기하는 중이다. 달리기 일주 중에 들린 충주 술 박물관과 인연이 닿아 그곳에서 잠깐 일하기도 했었다. 그때 관심이 생겨 전공인 역사를 더 공부하고자 대학원에 진학했다. 음, 극 중 보듯이 본가로 들어가 지금도 살고 있는데 분가를 계획 중이다. 좀, 답답해서.(웃음) 복싱은 코치님과 관장님과 원체 친밀해서 자주 드나들며 어린 친구들의 트레이닝이나 스파링을 돕고 있다.

달리는 중에 카메라는 비닐이 산처럼 쌓여 있는 모습, 에어컨 실외기가 잔뜩 적재된 장면 등 의외의 장면을 순간 포착하는데 의도는.

남승석 일종의 메타포로 아름다운 자연 풍경 한편에 의도적으로 배치했다. 쓰레기더미는 20대가 직면한 정신적인 환경을 상징한다. 반짝반짝 빛나는 시기이지만, 현실이 마냥 녹록하지만은 않고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도 안고 있다. 그들이 겪는 정서적인 괴로움을 폐허의 이미지와 연결해 스쳐 지나가듯 표현했다.

극 중 무순 씨의 인터뷰를 보면 계절의 변화가 감지된다. 또 그가 짐을 싸고 난 후 텅 빈 옥탑방에서 인터뷰하는 사이 옆에는 인부가 벽을 해체했다 다시 세우기를 반복한다.

남승석 인터뷰는 무순의 집인 옥탑방에서 진행했다. 공간을 위주로 해 시간을 흐르도록 의도적으로 배치해 삽입했다. 다시 말하면 무순의 이야기는 이어지는 데 공간의 시간은 여름에서 겨울로, 추운 날에서 더운 날로 흐르는 거지. 옥탑방의 벽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것은 20대 공간의 메타포이다. 20대는 집을 (아직) 갖지 못한 혹은 갖기 힘든, 안정적으로 주거 공간을 확보하지 못한 세대다. 벽을 부수고 다시 세우는 장면을 통해, 집이란 공간이 20대에게 어떤 의미인지 이미지적으로 포착했다.

남 감독은 이후 어떤 작업을 했는지.

남승석 세 여성의 감정을 다룬 다큐멘터리 <감정교육>(2020)을 찍었다. 그들이 경험한 트라우마와 위로, 기억을 재구성을 해 퍼포먼스와 인터뷰를 곁들인 다큐 드라마다. 다소 실험적인 형식과 시도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생태적으로 집을 짓는 과정을 따라가는 다큐멘터리 <은엽>을 작업 중이다.

<무순, 세상을 가로질러>가 관객에게 어떻게 다가갔으면 하나.

남승석 나는 무순을 통해서 나를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이해하게 됐다. 관객도 나와 비슷한 감정과 생각을 경험했으면 한다.

권무순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기보다 나는 그냥 내 생활을 했고 카메라는 그것을 담았을 뿐이다. 그냥 저런 애가 있네, 저런 삶도 있구나 하는 마음으로 보면 좋을 것 같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권무순 지금까지 해 온 것. 음악, 복싱, 달리기할 때가 제일 좋다. 아직 그 이상의 것을 찾지 못했다.

남승석 지금 내가 행복한 것은 행복하다고 느끼려고 노력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미래를 위해 현재를 희생했다면, 이제는 ‘지금’을 누리고자 한다. 무순을 보면서 남이 아닌 어제의 나와 비교하는 게 현명하다는 걸 알았다. (웃음)


사진제공. 씨네소파

2021년 4월 21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무비스트 페이스북(www.facebook.com/imov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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