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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은 자신감 불어넣어 주는 감독 <자산어보> 설경구
2021년 3월 30일 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배우의 큰 무기는 연기력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이준익 감독은 자신감을 굉장히 많이 불어넣어 준다.” <소원>(2013)에 이어 <자산어보>로 이준익 감독과 다시 만난 설경구의 표현이다. 흑백으로 제작된 사극 <자산어보>에서 그는 세상에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 ‘정약전’ 역을 맡아 그의 흑산도 유배 시절을 재연한다. 관련 문헌 기록이 많지 않고, 유배 당시 남긴 저서의 수도 동생 정약용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은 까닭에 피상적인 정보만 갖춘 채 촬영을 시작했지만, 긍정적인 에너지로 현장을 편안하게 이끌어준 이준익 감독을 믿고 ‘힐링하듯’ 촬영했다고 말한다.

<소원> 이후 이준익 감독과 두 번째 만남이다.
<소원> 때는 (역할 특성상) 한 씬 한 씬 찍을 때마다 감정이 많이 힘들었다. 함께 출연했던 배우 이레가 어린 나이였기 때문에 혹시라도 연기하면서 내상을 입을까봐 염려가 심했던 터라 감독님은 이레를 돌보고 챙기느라 바쁘셨고. 왜 (힘들어하는) 나한테는 집중을 안 해주는지 그때는 감독님이 되게 얄미웠다.(웃음) 그런데 “(아픈) 감정을 물고 있는 건 당신 하나면 돼. 여기 전체 사람들이 다 그래봐. 분위기가 어떻게 되겠어?” 라고 하시더라. 희희낙락하면서 찍을 수 없는 작품에서도 그 작품(의 무게감)과 현장 분위기 사이의 균형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분이다.

<자산어보>에서는 어땠나.
문경에서 일부를 촬영하고 섬으로 넘어갔는데, 늦장마가 오면서 계속 비가 내리고 큰 태풍도 세 번이나 왔다. 예산이 적다 보니 촬영 없이 하루를 그냥 보내면 데미지가 큰 상황이라 어떻게든 (정해진 분량을) 찍어야 했다. 비가 오는 날이면 감독님은 식사도 못 하고 현장으로 뛰어다니시곤 했는데 그게 고충이라면 고충이었을 것이다. 다만 <자산어보>는 <소원> 때만큼 (감정적으로) 힘들어할 필요는 없었다. 감독님도 자신감을 굉장히 많이 불어넣어 주셨다.

예컨대 어떤 말로 당신의 자신감을 끌어올려 주던가.
길게 말씀 안 하신다. “아, 좋아 좋아 좋아!”(웃음) 그러면 배우들은 힘이 난다. 변요한에게도 “그냥 딱 창대야!” 라고 하시더라. 그러면서 틈새로 원하는 말씀을 하신다. “근데 요거가 조금…”(웃음) 배우의 큰 무기는 연기력이 아니라 자신감이라고 생각한다. 덕분에 즐겁게 연기할 수 있었다.


현장에서 배우들이 다 같이 밥을 해 먹었다고 들었다.
마치 집성촌처럼 배우들이 모여 있는 숙소가 모여 있었고 가운데에는 마당과 밥상이 있었다. 배우들은 매일 이정은 씨 방 앞에 모여서 이야기를 했다. 잠시 왔다 가는 배우들도 현장을 좋아했다. 어느 날 마당에 나가 보면 조승연 씨가 윤동주의 서시를 읊으며 시 낭송회를 하고 있고, 방은진 감독이 두 팔을 벌리고 맨발로 잔디밭을 걸어 다니면서 하늘을 보고 있더라.(웃음) 이준익 감독님은 숙소 앞이 바로 바다여서 쉬는 날 낚시를 하셨다. 현장 분위기가 그랬다. 촬영하면 열심히 하고, 쉬는 날에는 유유자적 자연을 즐길 수 있었다.

동방우, 정진영, 김의성, 류승룡, 최원영, 조우진, 윤경호 등 얼굴이 잘 알려진 배우들이 짧게 출연한다. 모두 현장에 들렀다 갔겠다.
감독님은 ‘정약전’, ‘창대’ 두 인물 외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배우를 쓰는 게 더 리얼할 거라고 생각하셨다. 그런데 내게 의견을 물으시길래,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고 말씀드렸다. ‘정약전’이라는 인물도 교과서에서도 한두 줄로 설명된 정도라 사람들이 잘 모를 텐데, 큰 사건도 없어서 어떻게 보면 ‘밋밋한 즐거움’에 가까운 작품인 만큼 좀 더 친숙한 배우가 나와야 관객이 즐겁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바로 수긍하던가.
양수리 세트장도 아니고 그 먼 섬까지 단 하루를 촬영하러 오라고 하는 건 큰 실례라고 하시더라. 난 좀 더 고집을 보탰다. 일단 연락을 한번 보내 보라고 말이다. 당시 <극한직업>(2018)이 초대박이 났을 때인데, 지금 대한민국 배우 중에 누가 제일 기분이 좋겠냐고 물으며 류승룡에게 (시나리오를) 줘 보라고 했다. “무조건 한다니까!” 라고 하면서. 그런데 (류)승룡이가 책도 안 보고 “뭔데요, 할게요” 한 거다.(웃음) 그가 마지막 캐스팅이었는데, 화룡점정이었다.

색깔 있는 많은 배우가 출연함에도 작품 안에서 잘 어우러진 느낌이다.
우리 영화의 장점은 누구도 튀려 하지 않았다는 거다. 작품 속에 버무려져서 하나로 다 섞여 있다. 만약 누구 하나가 튀려고 했으면 감독님이 딱 막았을 거다.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라고 하면서 말이다. 그중에 조금 개성 있어 보이려고 연기한 건 (얼굴을 구겨서 직접) 화살 코를 만든 조우진인데, 그만 나오면 왜 그렇게 웃기던지.(웃음) 그 정도면 소박하게 튀었다. 참 귀여웠다.


당신은 정약용의 형이자 책 ‘자산어보’를 쓴 정약전 역을 맡아 연기했다.
초반에 후루룩 지가나는 신유박해로 정약전이 유배를 가게 된 이유를 잠깐 다룬 것 외에는, 영화는 그에 대한 어떤 소문도 스펙터클한 사건도 다루지 않는다. 실제로도 정약전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은데, 그래도 그 이름을 배역으로 가져다 쓰는 입장인 만큼 그가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생각하고 상상해야 했다.

‘정약전’을 어떤 인물로 해석했나.
(임금과 백성 사이의) 수평적인 관계를 원하는 게 지금 생각으론 별것 아닐 수 있지만, 아마 그 시대에는 어마어마하게 위험하고 급진적인 생각 아니었을까. ‘정약전’은 그런 자기 사상을 책으로 썼다가는 자기 주변의 모든 사람까지 능지처참 될 게 뻔하다는 걸 알았을 것이다. 그래서 긴 유배를 지낸 학자가 남긴 책치고는 초라할 수 있는 세 편의 저서 ‘자산어보’, ‘표해시말’, ‘송정사의’만 남긴 것 같았다.

극 중 ‘정약전’의 감정을 담아낸 시를 읽는 대목이 여러 편 등장하는데.
솔직히 말하면, 무식해서 시를 잘 모른다.(웃음) 시의 전체적인 무언가를 느낄 정도는 아니었고, 책(시나리오)에서 주어진 텍스트에 매달려서 그대로만 읽었다.

‘정약전’의 유배지 생활은 변요한이 연기한 섬 청년 ‘창대’와 사제간을 형성하면서 전개된다.
‘창대’라는 인물은 책 ‘자산어보’ 서문에 짤막한 서술로 언급돼 있다. 책을 좋아하지만 집이 가난해서 (학업을) 많이 쌓지 못했다고 한다. ‘정약전’은 육지로 나가서 출세하고 싶어 하는 ‘창대’의 욕구를 보고 대노하는데, 아마 ‘창대’가 상처받을 거라고 생각해서 불안했던 게 아니었을까. ‘정약전’은 유언을 통해서 ‘창대’에게 검은색 무명천으로 사는 것도 괜찮은 것 같으니 생각해보라고 말하는데, 그게 그에 대한 (진실한) 마음일 거다.

<자산어보>가 변요한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빛나는 작품이 될 거라고 말했다.
변요한은 <자산어보>라는 작품을 너무 좋아했다. 자기 촬영이 다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지 않고 끝까지 현장에 있었다. 그 누더기 같은 옷을 너무 사랑했고(웃음) ‘창대’로 분장한 자기 모습도 굉장히 좋아했다. 그러니 결과도 무조건 좋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시사회에서는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더라. 여러 복합적인 생각 때문이었을 것 같은데, 울고 있는 사람에게 말을 걸면 쑥스러워할까봐 그러지는 못했다.


‘가거댁’역의 이정은은 <자산어보>의 따뜻한 웃음을 책임지는 인물이다. 당신이 연기한 ‘정약전’은 ‘가거댁’과 친밀한 관계로 발전하는데.
이정은과는 학교 다닐 때부터 워낙 친분이 두터웠다. 그는 나에 대해 속속들이 다 알고 나도 개인적인 일을 포함해 그의 많은 부분을 알고 있다. 대학을 졸업한 뒤에도 뮤지컬 <지하철 1호선>이라는 작품을 꽤 오랫동안 같이 했다. 영화만 처음 같이하는 것일 뿐 그 전부터 꾸준히 이어온 관계다. 존재만으로도 너무 든든하고 감사했다. 그러다 보니 ‘어깨 멜로신’처럼 뒷모습만으로 (감정을) 보여주는 장면이 가능했다. 이정은 씨가 아니었다면 내가 좀 낯간지럽고 창피해할 수도 있었을 것 같은데, 그이기 때문에 장난치는 장면을 편하게 찍을 수 있었다. 사실 그 신은 좀 더 길게 찍었는데 압축된 거다. 아마 길게 보여주면 장난스러워 보일까봐 감독님이 우려하신 것 같다.(웃음)

오래 연기했지만 사극이라는 장르는 처음이다. <사도>(2015) <동주>(2016) <박열>(2017) 등 사극에 일가견이 있는 이준익 감독의 작품으로 첫발을 뗐다.
이준익 감독의 사극은 거의 다 봤다. 그 중에서도 조선시대라는 역사 안에서 벌어진 어마어마한 사건을 다룬 <사도>를 참 좋아한다. 그런데 <자산어보>는 좀 다른 것 같다. 그 전까지는 (사건을) 크게 확대해서 보여줬다면, 이번에는 인물 중심으로 (초점을) 확 좁혀서 집중한 것 같 같다. <자산어보>는 궁궐이나 사대부가 나오는 게 아니라 섬이 주 무대다. 평범하지 않은 사상을 지닌 ‘정약전’이 민초와 함께 흑산도에서 어울리는 모습도 매력적일 것이다.

흑백 영화라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아마 그게 그 시대 흑산도에 맞는 색감이 아니었을까 싶다. 결과물을 보고 나서 흑백이라는 게 참 세련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명암이 굉장히 선명하게 표현됐는데 현장에서 조명에 많은 신경을 썼던 게 떠오른다. 또 촬영 전 감독님이 흑백 영화는 아무래도 인물에 집중되다 보니 거짓말하거나 대충 연기할 수는 없을 거라는 한 마디를 툭 던지셨는데, 그런 부분에서 신경이 쓰였던 생각도 난다. <자산어보> 작업을 하고 나니 컬러 사극에 출연해보면 어떨까 싶다. 퓨전 사극까지는 부담스럽고, 은근하고 고운 천의 색감 같은 게 담기면 예쁠 것 같다는 상상을 하고 있다.

3월 31일(수) 개봉을 확정했다. 코로나19로 극장 상황은 여전히 좋지 않다.
며칠 전 코엑스에 영화를 보러 갔는데 사람이 너무 없어서 깜짝 놀랐다. 오후 5시 넘은 시간이었는데 영화가 끝나고 집에 가려는 8시쯤에도 사람이 없더라. 솔직히 말씀드리면 엄청 충격 받았고, 정말 무서웠다. 코엑스는 원래는 관객이 엄청 많은 극장이고 (흥행이) 잘 안 되는 영화들도 상영관을 잡으려는 곳이다. 그래서 지금도 걱정이다. <자산어보>라는 제목의 어감이 좀 어렵게 느껴져서 접근하기 쉬운 영화는 아닌 것 같은데, 어떻게 헤쳐나가야 할지 모르겠다.(웃음) 도와 달라.

관객이 어떤 마음으로 <자산어보>를 보러 오면 좋겠나.
<자산어보>에는 하루하루가 고단한 상황에서도 따뜻한 정과 웃음을 지닌 민초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두 시간 동안 한숨 내려 두고 가볍고 편안한 마음으로 관람하고, 즐겁게 돌아가면 좋겠다.

사진 제공_씨제스



2021년 3월 30일 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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