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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문10답] 건물에 깔려 진정성을 외치다, 넷플릭스 <차인표> 차인표
2021년 1월 15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배우 차인표가 2008년 <크로싱> 이후 12년 만에 상업영화 주인공으로 관객을 찾는다. 차인표가 타이틀이자 소재이자 주제인 <차인표>는 허구와 사실이 혼재된 모큐멘터리 같은 극영화. 과거의 영광에 빠져 사는 한물간 스타가 알몸으로 건물에 매몰된 후 체면 때문에 구출을 거부하는 웃픈 상황을 그린 코미디다. 자뻑, 허세, 노출 등 자신을 회화화한 코미디에서 차인표는 스스로를 내려놓고 망가지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특히 극 중 차인표는 ‘진정성’을 입에 달고 사는 인물, 실제 차인표에게 진정성에 대해 물었다. 배우로서는 연기를 잘하는 것과 좋은 작품을 하는 것, 개인으로서는 신뢰와 책임감이라고 답한 차인표와 나눈 화상 대화를 공유한다.

Q1.<차인표>를 통해 기존의 이미지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인다. 시나리오를 받고 선뜻 수락했는지 궁금하다. <차인표> 탄생 과정에 대해 좀 들려 달라. (웃음)
일단 영화 제목이 ‘차인표’, 내 이름이라는 게 가장 부담됐다. 제작을 맡은 어바웃필름 김성환 대표가 국내에서 배우 이름이 영화 제목으로 사용된 사례가 없는 만큼 진취적이고 실험적이라고 설득했지만, 아무래도 희화화 한 코미디라는 점에서 부담감이 사라지지 않았다. 2015년 받은 첫 제안은 고사했고, 2019년 다시 제안받고서는 해보기로 결정했다. 사실 2015년만 해도 내가 극 중 ‘차인표’의 처지, 다시 말해 작품 제작 과정에서 알고 보니 혼자만 제외된다든지 또 일이 없어 전전긍긍하는 상황이 현실과 괴리감이 컸거든. 이후 4년간 섭외도 별로 없고, 실제로 들어갔던 작품에서 나만 제외된 경우도 있고 해서 이제는 할 때가 됐구나 싶었다. 극 중 차인표처럼 고정된 이미지가 있고, 그 때문에 정체돼 있다고 생각해 작품을 통해 깨고자 했다. 아내에게 샤워하다 건물에 깔린 후 우스꽝스러운 탈출기라고 하니 처음엔 ‘굳이 해야 하냐’면서 만일 하고 싶으면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라고 조언했었고, 이번에 다시 얘기 꺼내니 그럼 열심히 해보라며 응원해줬다.

Q2. 공개 소감과 개인적인 감상은 어떤가. 혹시 시나리오에 당신의 의견이 반영된 점이 있을까.
넷플릭스를 통해 1월 1일 공개돼 처음 봤다. 생각보다 코믹한 부분이 덜 하다고 느꼈다. 단순히 코미디가 아닌 어떤 틀에서 벗어나고 싶은 인물을 성찰하는 영화라는 생각이다. <차인표>는 각본을 쓰고 연출을 맡은 김동규 감독이 오랜 기간 나를 멀리서 관찰하면서 얻은 주관적인 느낌을 객관화했다고 생각한다. 그렇게 쓴 시나리오에 내가 이렇다 저렇다 의견을 낸다면 그건 다큐 혹은 예능이 될 거라 그의 생각을 바꾸고 싶지 않았다. 다만 정치인, 국회의원이 되고 싶어 하는 지점만은 수정을 부탁했다. 유사한 소문이 있었어서 이를 다시 상기시키고 싶지 않아서다.

Q3. 공개 후 반응을 좀 살펴보고 있는지. 인상적인 리뷰가 있다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것 같다. 좋게 보신 분께는 감사드리고, 안 좋게 보신 분께는 미안한 마음이다. 개인적으로 젊은 세대가 많이 봐서 기분 좋다. 그들과 소통할 방법이 없었는데 이렇게 피드백을 받는 것이 기쁘다. 또 예전 팬들이 연락을 많이 주신다. ‘찐팬’이라면서 오랫동안 기다렸다고 하는데 죄송하더라. 왜 그들을 망각하고 살았지, 뭐 이런 마음이 들었다.

기억에 남는 건 어느 남자분이 쓴 ‘코미디 영화인 줄 알고 봤는데 보고 나니 앞으로 삶의 태도가 달라질 것 같다’는 리뷰였다. 영화에 출연한 내 의도에 부합하는 것 같아 특히 인상에 남는다.
 <차인표>
<차인표>

Q4. 깨고 싶었던 이미지라 하면 무엇일까.
정확하게 표현하기 힘든데 (나에 대한) 대중의 고정관념이 내가 깨고 싶은 이미지라고 생각한다. 그간 (대중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인내하고 조련하고 맞춰 살았던 것 같다. 한편으론 그 안정되고 편안한 틀 안에 머물면서 일한 것도 있다. 깨고 싶지만, 혼자 깰 방법도 모르겠고 작품을 통해 깨나가는 게 좋은데 그럴 만큼 섭외가 들어오지도 않았다. 누군가는 이번 <차인표>를 통해 예전 이미지를 상기시켜 오히려 고착화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도 하고 또 그 이미지를 다시 찾고 싶은 것은 아닌지 반문하기도 하는데 그렇지 않다. 스타로서 대중에게 다시 큰 사랑을 받고자 하는 욕망도 없고 또 연기에서 얻는 작은 보람이 소중하기에 고정된 이미지에 가두고 싶지 않다.

Q5. 희화화의 대상이 되는 게 쉽지 않았을 거다. 또 체중감량을 많이 한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가.
말했듯이 제일 부담이 된 것은 ‘차인표’라는 제목이었다. 연안 차씨의 일원으로 집안 어르신도 계시고, 가족도 있는데 말이지. 두고두고 남을 것 아닌가. 그러다 부담감의 본질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봤었다. 차인표가 뭐 그렇게 대단한 이름 석 자인지, 이름을 통해 붙잡고 싶은 게 무엇인지 또 그 붙잡고 싶은 것 때문에 작품을 못 해야 하는지 질문해봤다. 결론은 아무 것도 아니라는 거였다. 내가 집착했던 차인표라는 이름 자체가 극 중 폐허가 된 건물처럼 날 옭아매고 있는 거였더라. 당시 운동과 다이어트를 병행하며 한 7킬로가량 감량했었다. 극 중 그의 외모가 작품이 (잘)안 들어올 만한, 날카롭고 시니컬한 인상이어야 했거든. 아내가 눈 밑 지방이라도 간단하게 시술한 후 촬영하라고 조언했는데 고집부리고 하지 않았다. 그 결과가…하하하.

Q6. 줄곧 무너진 체육관 속에 갇힌 상태로 극이 진행된다. 촬영 현장과 그 과정이 궁금하다. (웃음)
전체를 약 한 달간 촬영했고 내가 갇혀 있는 장면은 3~4일 동안 세트장에서 진행했다. 답답하긴 했지만, 다행히 긴 시간이 아닌 데다 진행이 빨라서 좋았다. 목 받침이나 눕는 각도 등 세트장을 나름 인체공학적으로 설계해준 덕분에 그리 힘들지 않았다. 또 똑같은 세트장을 두 개 지어 편하게 움직일 수 있게끔 배려해줬다. 기도하고, 강아지가 재채기하는 등 환상 시퀀스는 그곳에서 촬영했다.

Q7. 영화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진정성’이다. 배우로서, 개인으로서 ‘차인표’의 진정성은 무엇일까. 또 당신에게 있어 연기란.
배우로서는 연기를 잘하는 것, 좋은 작품을 하는 것이 아닐까. 개인으로서는 신뢰와 책임감이라고 생각한다. 극 중 차인표를 보자면 배우 일은 소홀히 한 채 사회인으로서의 진정성을 부각한다. 진정성이란 단어가 희화화된 것을 보면서 ‘학생은 공부해야 학생이고, 배우는 연기해야 배우’라는 윤종빈 감독의 말마따나 (내가) 연기는 살짝 뒷전으로 한 채 진정성을 외친 게 아닌가 싶더라.

내게 배우란 직업이다. 그런데 썩 잘하지는 못하는 일(?)이라는 생각이다. 잘하고 싶지만… 아직 갈 길이 먼 직업이자 일이다. 그렇다고 누군가와 경쟁하거나 명예를 겨루고 싶다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제의 나보다 좀 더 선하고 감사할 줄 아는 마음으로, 연기 스펙트럼이 좀 더 넓어졌으면 하는 바람이다.

Q8. 특히 마음에 드는 장면과 아쉬운 장면을 꼽는다면.
손가락 절단 장면을 좋아한다. 촬영하면서, 나중에 영화로 보면서 카타르시스라고 할지 묘한 해방감을 느꼈다. 관객도 그 장면을 좋아했으면 싶더라. 아쉽다기보다 특히 마음에 안 드는 시퀀스가 있다. 건물이 무너지기 전 샤워장에서 머리 감으며 혼자 손가락 흔드는 장면이다. 찍을 때도 민망하고 힘들었는데 역시나였다. 다시 찍고 싶기도. (웃음)

Q9. 당신에게 드라마 <사랑을 그대 품안에>와 영화 <차인표>는 어떤 의미일까.
<사랑을 그대 품안에>로 벼락스타가 됐다. 그전에는 무명에 단역을 몇 개 했을 뿐이었다. 한마디로 차인표를 세상에 알렸고, 아내와 만나게 해준 어떻게 표현해도 부족한 한없이 고마운 작품이다. 덕분에 첫 영화에서부터 주인공을 맡을 수 있었다. 당시 군입대 시절인데 국방부에서 제작한 영화로 데뷔했거든. 이후 영화를 몇 편 했으나 흥행이 잘 안 되었고, 마지막 주연작은 2008년 개봉한 <크로싱>이었다. 이후 작은 규모의 좋은 영화에 조연으로 참여했으나 상업영화와는 거리가 멀어졌다. 그러다 12년 만에 주연을 맡은 영화가 <차인표>다. 좋은 영화에서 주연을 맡은 것만으로 슬럼프에서 벗어날 스테핑스톤(디딤돌)이 됐다고 생각한다. 게다가 코로나로 개봉이 미뤄지면서 넷플릭스를 통해 여러 나라에 동시 공개되어 감사하게 생각한다. 이를 계기로 앞으로 좀 더 활발하게 활동하면 좋겠다.

Q10.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일이 있다면.
작년 한 해 코로나로 힘들었지만, 의도치 않게 덕분에 행복한 점도 있었다. 자녀가 성장한 이후 이렇게 오래 붙어있은 적이 없다. (웃음) 아들이 벌써 대학생이고 딸들은 사춘기인데 1년 내내 강제(?)로 붙어있으면서 새록새록 알게 된 것들이 많다. 또 그동안 시간이 없어 미뤄뒀던 독서를 할 수 있어 좋았고, 제작 관련 준비를 조금씩 하고 있는 요즘 또한 참 행복하다.


사진제공. 넷플릭스

2021년 1월 15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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