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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극장, 독립영화제, 독립영화인’ 강릉시네마떼끄 박광수 사무국장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 산과 바다, 호수 그리고 그윽한 커피 향이 은은하게 퍼지는 강릉, 자체로 인기 관광지인 도시지만 영화계 특히 독립영화계에 있어 그 의미는 좀 더 각별하다. 강원 지역 유일한 독립예술관이자 민간이 운영의 주체인 ‘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이하 신영)과 매해 8월 관객을 한여름밤의 시네마로 초대하는 올해 22번째 생일을 맞은 ‘정동진독립영화제’(이하 정동진영화제) 덕분이다. 1996년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함께 보고 싶은 영화를 보기 위해 만들어진 영화 관련 비영리민간단체 ‘강릉시네마떼끄’는 설립 이후 오늘까지 극장과 영화제를 통해 독립영화를 사랑하는 관객에게, 어려운 여건에도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독립영화인에게 든든한 지지자 역할을 담당해 왔다. 신영의 프로그래머로 정동진영화제의 집행위원장으로 강릉 독립영화계의 중추로 활약하고 있는 박광수 국장을 만났다. 코로나 시기를 헤쳐가는 중인 극장과 영화제의 오늘과 내일에 관해 나눈 이야기를 전한다.

코로나 국면이 어느덧 10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신영의 현황은 어떤가.
1월, 즉 코로나 이전보다 관객수와 매출액이 70~80% 급감했다. 코로나 확산세가 조금 완화된 시기에도 비슷한 수준이었다. 다만 대형 영화들이 코로나로 인해 개봉을 미루거나 OTT 플랫폼으로 직행하는 것과 달리 한국 독립영화와 외국 예술 영화는 꾸준히 개봉하는 추세다. 덕분에 적은 수라도 관객이 계속 유입되고 있고 단 하루도 휴관 없이 극장을 열 수 있었다. 어떻게든 관객과 만남을 시도하는 독립·예술 영화가 있기에 신영은 영화를 매개로 일상을 이어갈 것이다

‘포스트(post) 코로나’를 넘어 ‘위드(with)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표현이 어느 때보다 체감되는 요즘이다. 신영 나아가 독립예술극장의 전망을 어떻게 보나.
코로나로 인해 극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피하는 기류가 형성됐다. 실제로 얼마나 위험한지, 또 국내 방역 수준의 높낮이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내가 걸릴 수 있다는 공포심이 가장 크게 작용하고, 흔히 사람 많이 모이는 곳으로 영화관을 떠올리는 게 문제다. 사실 극장만큼 입출입이 확실하고 안전한 실내 공간도 드문데 말이다. 코로나 상황이 종식되거나 백신이나 치료제가 나와 사회가 안정된다고 해도 지금보다는 낫겠지만, 코로나 이전보다 크게 좋아질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코로나 이전엔 쉽게 접근할 문화 생활 중 하나가 영화라는 인식이 강했다. 코로나 이후 이런 생각이 급격히 변하지는 않겠지만, 어떤 형태로든 변화가 올 것은 자명하다. 코로나가 변화의 시발점이 된 것은 맞지만, 모든 변화가 코로나 탓은 아니겠지. 관객이 독립·예술 영화를 꾸준히 찾지만, 규모가 크다고는 말하기 힘든 현실 아닌가.

이번 사태를 거치며 영화진흥위원회가 행한 한발 늦은 대처에 불만의 목소리가 크다.
의료나 사회적으로 예민하게 레이더를 켜 놓는 집단이 아니라 그런지 사태 파악도 그 대처도 너무 안일한 모습이었다. 대형 극장이든 신영같이 작은 극장이든 솔직히 한두 달 버틸 여력은 있다. 그 사이에 선제적으로 혹은 그에 준하도록 발 빠르게 움직였어야 했는데 실상은 정반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가 알기로 5~6월까지도 실태조사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부랴부랴 실태 조사 후 토론회나 간담회를 몇 차례 진행했으나 요식 행위나 마찬가지였다. 기획재정부와 문화체육관광부의 승인이 필요하다는 변명만 앞세우며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하지 못했다. 영진위는 매시기마다 회피하려는 태도를 견지해왔고, 거듭되면서 점점 영화인의 신뢰를 잃고 있다. 특히 코로나 관련 영진위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끝까지 상급 기관을 핑계로 댔다.
강릉시 중심가에 위치한 신영극장, 2016년 운영난으로 잠정 휴관한 극장은 강릉시의 지원 결정과 회원들의 휴관 중에도 지속된 후원에 힘입어 2017년 3월 재개관했다.
강릉시 중심가에 위치한 신영극장, 2016년 운영난으로 잠정 휴관한 극장은 강릉시의 지원 결정과 회원들의 휴관 중에도 지속된 후원에 힘입어 2017년 3월 재개관했다.

6,000원 할인 쿠폰 등 170여억 원을 지원했으나 극장, 제작, 배급, 홍보 등 산업 내 어떤 부문에도 그리 도움되지 않았다는 평가다.
영화진흥위원회는 말 그대로 영화를 진흥하기 위해 존립하는 기관이다. 그러려면 외부의 의견을 청취해야 하는데 그 기회를 제대로 제공하지도 못했고, 일부에서 낸 의견을 수렴하고 반영하는 정도 역시 매우 미흡했다. 하다못해 자체적으로 관련 정책을 생산하고 시행하고 평가받기라도 해야 하는데 그럴 여력이 없어 보인다. 내부적으로 힘들면 영화인들에게 손을 내밀어야 하는데 그렇지도 않다. 정확히 뭘 하는 기관인지 의문이지만 그럼에도 한두 사람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조직은 아니라고, 영화를 진흥하고자 하는 스탭들의 마음은 진심이라고 믿고 싶다.

독립·예술전용관 지원 정책은 어떤가. 또 영진위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영진위가 연초에 발간하는 연감에 그해의 정책, 지원, 사업 계획과 총예산 규모와 집행에 관해 상세히 나와 있다. 일차적으로 그에 따라 집행하면 되고, 진흥이 상대적으로 더 필요한 곳은 더 지원하길 바란다. 비록 이번 코로나 지원 대책 설계는 실패했지만, 영진위가 일을 많이 하는 편이고 디테일하게 잘하는 부분도 많다. 또 독립·예술 전용관을 좀 더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방안에 관해 고민도 많이 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영진위) 사무국과 민간 사이 소통이 원활했고, 우리 같은 극장이 크게 어려운 시기를 영진위 덕분에 버틸 수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 지난 6월 2일부터 4일간 ‘Film in Gangneung 2020’이 신영에서 진행됐다. 강릉시와 강릉국제영화제가 사업비를 전원 지원했다. 확보된 예산은 상영 영화 제작에 참여한 지역 영화인들과, 상영 공간을 제공한 신영, 인디하우스 등의 단체에 골고루 분배됐다.

‘강릉독립영화 특별상영회’ 관련해 ‘의미 있는’ 신호라고 평가했다. 어떤 점에서 그런가. 또 기획전의 시작은.
지난 4월경 강릉시에서 코로나로 인해 극장 운영이 어렵다는 이야기를 들었다면서,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묻는 연락이 왔었다. 신영의 경우 강원영상위원회가 지원하는 사업을 진행 중이고 또 시로부터 받는 지원금이 있어 극장이 아닌 지역 영화인을 지원하는 사업을 제안하게 됐다. 풀을 만들고 그 풀에 들어오는 모든 인원을 지원하는 게 어떻겠냐고 하니 전향적으로 흔쾌히 응했고, 진행과 설계 모두 우리 쪽에 전적으로 맡겨줬다. 강릉엔 영화를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들에게 영화를 직업으로 해도 괜찮겠다는 어떤 ‘신호’를 준 거라 지원금의 크기와 별개로 의미가 크다고 생각한다. 사업비를 지원할 강릉시와 강릉국제영화제가 지역 영화인들에게 ‘믿는 구석’ 혹은 ‘기댈 언덕’이 되겠다는 선언이라고 할까. 지역영화제가 지역영화인에게 직접 지원한 최초의 사례이자 바람직한 선례가 될 거로 생각한다.
▲ 그간의 상영작 포스터가 걸린 신영 극장 복도 전경 ▼신영극장 내부, 1관 200석 규모
▲ 그간의 상영작 포스터가 걸린 신영 극장 복도 전경 ▼신영극장 내부, 1관 200석 규모

# 지난 11월 5일 강릉국제영화제가 개막했다. 개·폐막식 등 일체의 행사를 생략하고, 2박 3일이라는 짧은 일정으로 규모를 대폭 축소해 진행했지만, 코로나 국면에도 불구하고 오프라인 진행이라는 데 유의미하게 평가된다. 지난해 첫발을 내디딘 영화제가 앞으로 국제영화제로서의 위상을 이어갈 것이라는 강력한 의지의 표현으로 읽힌다.

강릉국제영화제가 지역 영화 제작 활성화를 위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단편 제작 지원을 공모했다. 지역 영화계에 반가운 소식이 아닌가 한다. 강릉국제영화제와 관련해 지역 영화인들의 여론은 어떤가.
최악의 상황에서 최악은 피했다는 것? (웃음) 작년에 처음 영화제 소식을 듣고 걱정을 많이 했는데 생각보다 잘 하고 있는 것 같다. 김동호 위원장님이 출범 당시 모쪼록 빠르게 법인화를 추진해 독립적인 구조를 갖도록 하겠다고 약속하셨는데 올 초에 진행해 주셨다. 쉽지 않은 과정인데 많이 애쓴 결과라고 생각한다. 또 코로나 국면에 빠르고 현명하게 판단해 무사히 잘 치른 것 같다. 강릉이라는 이름을 달고 국제영화제로 출발했으니 특색도, 의미도, 걱정하는 사람도, 칭찬하는 사람도 많은 영화제로 자리매김하길 바란다. 한마디 덧붙이자면, 작년과 올해의 진행 상황을 지켜보며 김동호 위원장님의 탁월한 역량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더라. 정말 상상을 초월하는 상황이어서 그분이 아니었다면 쉽지 않았을 거다.

# 매년 8월 첫째 주 강릉 정동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한여름 밤 야외 시네마가 열린다. 친구, 연인, 가족들이 삼삼오오 모여 ‘별이 지는 하늘, 영화가 뜨는 바다’에서 영화 그리고 사람과 만난다. 관객과 영화가 적극적으로 교감하는 한여름 영화 축제, 대안·독립·낭만의 영화제로 탄생한 정동진독립영화제가 올해로 벌써 22회를 맞았다.

5월 전주국제영화제를 시작으로 국내외 영화제는 힘든 선택을 해야 했다. 개최와 취소와 연기, 온라인과 오프라인, 기간, 작품 수급 등 어려운 결정이 뒤따랐다. 정동진독립영화제는 약속한 시기에 예년과 같은 형태로 관객과 만났다.
대부분의 영화제가 온라인 상영으로 대체하거나 취소했고 일시적으로 휴관을 결정한 극장도 꽤 있었다. 그만큼 코로나 국면에 극장과 영화제가 안전에 취약한 면이 있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이런 취약함이 한편으로는 영화와 극장 그리고 영화제의 의미를 재확인해 준 것이 아닌가 한다. 영화제에서 관객은 같은 공간, 같은 시간 속에서 영화를 관람한다. 극장도 마찬가지다. OTT 플랫폼을 통해 영화를 보는 것과는 다른 집단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영화제가 결코 포기하기 힘든 부분이 아닌가 한다. 뉴노멀이든, 영화가 저무는 시대이든 영화제의 의미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 믿기에 때로는 과감하게, 때로는 보수적인 태도를 취하며 잘 치렀다. (웃음)

과감하고 보수적으로! 예년과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우리 영화제는 프리미어 상영을 기본으로 하는 영화제가 아니다. 즉 해당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제를 찾기보다 정동진에 놀러 왔다가 야외에서 독립 영화를 관람하는 경험이 오히려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온라인 개최는 대안이 될 수 없었고 다만 관객 안전을 위해 보수적으로 판단해 영화제 출입을 주 출입구로만 제한했다. 원래대로라면 정동초등학교에 담벼락이 없어 어디에서든 행사장 출입이 가능했었거든. 또 영화 관람은 오직 배치된 의자에서만, 우리 영화제 고유의 풍경 중 하나인 모기장 천막과 돗자리는 아쉽지만 금지했다. 또 안전을 위해 1일 관객을 500~600명 선으로 제한했고, 현장 발매가 아닌 사전예약을 통해 관람을 확정했다. 노쇼를 위해 소정의 예약금 결제를 받았지만, 결코 향후 영화제의 유료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유료화 진행 계획은 없으며, 예매 비용과 같은 금액의 굿즈를 제공했다.

영화제를 지켜온 장본인으로서 그간 변화의 흐름을 짚는다면.
해마다 바뀌는 게 놀라운 점이다. 나쁘게 보자면 영화를 표현하는 방식이나 주제 혹은 소재가 당면한 이슈에 따라 유행을 탄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난 그게 독립영화의 힘이요 에너지라고 생각한다.

# 강릉 출신은 아니지만, 강릉에 자리 잡고 강릉시네마떼크 사무국장으로 쉬지 않고 달려왔다. 극장과 영화제를 통해 공간과 시간을 잡아 둔 그는 강릉 영화계에 있어 없어서는 안 될 꼭 필요한 주춧돌로 보인다.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해 시작한 일, 남들은 돈 내고 보는 것을 돈 받으며 보는데 얼마나 행운이냐는 그에게 ‘독립영화’와 ‘영화’에 관해 물었다.

원론적인 질문을 하자면 ‘독립영화’를 어떻게 규정하겠나.
예전엔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영화를 ‘독립영화’라고 이야기했었다. 그대로 따른다면 대기업에서 제작비를 댔어도 그 영향력에서 자유롭다면 독립영화라 하겠지만, 중요한 것은 영화를 만드는 사람의 의지와 선택에 달려 있다고 생각한다. 즉 돈을 목적으로, 돈을 벌고 싶다는 마음으로 특정한 장면을 넣던가 뺀다면 독립영화라 할 수 없다. 감독과 제작자가 어떤 의지를 담아 만들었는지 보는 입장에서 읽히거든. 또 흔한 이야기라도 기존의 문법에서 벗어나 새롭게 풀어내거나 영상 면에서 혁신적이거나 매우 실험적인 시도를 했다면 독립영화로 볼 수 있을 거다. 단 하나로 어떻다고 정의하기 어려운 시대이고 굳이 구분하는 것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질문을 받았기에 대답하자면, (상업적) 검열 나아가 자기 검열을 안 하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

마지막 질문! 당신에게 영화란. 또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글쎄… 영화 보는 것을 아주 좋아했다. 보는 것이 좋으니 트는 것도 좋더라. 예술, 독립 영화가 구하기 어렵고 보기 힘든 시절에 나는 직업 삼아 돈을 받고 봤으니 운이 좋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할 수 있어 복 받았다고 생각한다. 즐거운 일은 사회인 야구단에서 야구하고, 집에서 프로야구 중계 보는 거다.(웃음)

사진제공_강릉독립예술극장 신영

2020년 11월 26일 목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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