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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문일답] 대중적으로 가장 친근한 결과물 <보건교사 안은영> 이경미 감독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미쓰 홍당무><비밀은 없다><페르소나> 등을 통해 독창적인 스토리와 스타일을 펼쳐온 이경미 감독이 넷플릭스 <보건교사 안은영>으로 도전에 나섰다. 오리지널이 아닌 원작이 있는 작품을 영상화하는 것도, CG 작업에 이토록 공들인 것도, 완결된 영화가 아닌 시리즈로 만든 것도 모두 이 감독에겐 새로운 경험이었다. 작업하는 과정에서 작가의 머릿속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누렸고, CG 작업이라는 흥미로운 세계에 입문했고, 다음 화를 클릭하게 하는 미션을 수행해야 했다. 그 결과 대중적으로 가장 친근한 결과물을 얻었다는 이경미 감독을 화상으로 만났다.

Q1. <보건교사 안은영> 공개 후 사차원 같다는 평이 종종 보이는데, 반응을 살펴보는지. 기억에 남는 반응이 있다면.
열심히 찾아보고 있다. (추석) 연휴 내내 핸드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대체로 예상했던 반응인데 의외인 것은 내 예상보다 많은 분이 좋아한다는 거다. 기억에 남는 것은 ‘아무도 말리지 않았냐’면서 별 반 개 준 것? (웃음) 그래도 <보건교사 안은영>은 지금까지 내가 만든 작품 중 가장 대중적이지 않을까 한다.

Q2. 오리지널이 아닌 원작이 있는 작품을 바탕으로 했는데, 어땠나. 또 영화와 드라마의 연출 호흡에 있어 차이점이 있다면.
그간 직접 쓴 글로 연출했는데, 이번 <보건교사 안은영>은 아마도 혼자 쓰라고 하면 죽을 때까지 쓸 수 없는 이야기일 거다. 원작 이야기 안에 가능성을 발견하고 해석하고 창작하는 과정이 새로웠고, 어떻게 영상으로 어필할지 고민하는 작업이 즐거웠다. 작가의 머릿속을 상상하는 재미가 컸다. 드라마와 영화의 가장 큰 차이는 영화는 두 시간안에 클리어하면 되는데, 드라마는 50분 내외로 해서 계속 연결해 나가야 한다. 50분 안에 해당 이야기를 소개하고 감정을 주고 그 흐름을 다음화로 이어지게 해야 한다는 게 참 다른 부분이었다. 그 때문에 연출적으로도 역시 도전이었다.

Q3. 연출하면서 중점을 둔 부분과 전체적인 톤앤 매너는.
원작의 재기발랄하고 긍정적인 면을 계승하면서 좋아하는 에피소드를 살리고 싶은 욕심이 컸다. 원작은 옴니버스 구성이라 시리즈로 어떻게 연출할지 많이 고민했다. 해당 화가 끝나면 다음 화를 클릭하게 하는 것이 미션이라 이야기 구조를 클리프행어식으로 짰다. (기자 주: 클리프행어- 소설이나 영화들의 작품에서 쓰이는 줄거리 장치로 주인공이 어렵거나 위협적인 상황에 처하거나, 이야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충격적인 결말을 맞게 되는 것을 가리킨다) 또 히어로물의 성격을 가지고 있기에 그 점을 살리면서 ‘안은영’(정유미)의 성장드라마로 방향을 가져갔다.

전체적으로 만화 같은 분위기로 가되 유치하지 않으면서 중독성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유머의 수위를 어디까지 가져갈지가 중요한 부분 중 하나였다. 미장센적으로 만화적이나 너무 잡스럽게 보이면 안 되니 과장하되 절제해야 했다. 그래서 젤리는 알록달록 형형색색으로 채색한 반면 현실 풍경은 차분하게 가져갔다. 공간도 마찬가지다. ‘안은영’은 경계에 선 인물로 현실 세계에서 가상의 세계를 터치하는 인물이라 보건교사면서 고독한 킬러가 연상되도록 그의 공간을 텅 비고 생활감이 느껴지지 않도록 꾸몄다. 은영의 방에 있는 액자를 뒤집어 놓는다든지, 갓 이사 온 듯이 상자를 쌓아놓는다든지 해서 언제든 떠남을 준비하는 인상을 주려고 했다.
 <보건교사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Q4. 전세계 공개인 점을 고려해 극에 반영한 점, 즉 글로벌 시장을 염두에 두고 신경 쓴 지점이 있다면.
넷플릭스 플랫폼이기에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되는 것을 당연히 염두에 두고 반영했다. 음악적으로는 한국어 가사가 들어간 음악을 많이 사용하자고 음악감독에게 제안했었다. 한국인 관객 입장에서는 오히려 거슬릴 수도 있는 지점이지만, 세계 여러 나라 관객에게 우리말을 자주 들려주고 싶었거든. 게다가 초현실적인 세상을 다루니 사람의 목소리가 깔린다면 은근히 좋을 듯싶어 6화에선 떼창을 넣기도. (웃음) 또 한국어 문자를 마치 미장센처럼 자주 화면에 노출시켰다. 그리고 아이들의 놀이방이나 수산 시장 등은 원작에 없는 부분이지만, 한국 문화를 소개하고자 일부러 등장시켰다.

Q5. 이지은(아이유)이 주연한 옴니버스 영화 <페르소나>로 넷플릭스와 인연이 있지만, 본격적인 협업은 처음이다. 어떻게 작업하게 됐는지. 또 넷플릭스가 창작자에게 높은 자유를 보장한다고 알려져 있는데 과연 그렇든가.
<페르소나>의 경우 이지은 배우에게 받은 영감으로 옴니버스를 만든 후 넷플릭스로 간 것이기 때문에 엄밀히 따지면 넷플릭스와의 협업이 아니다. <비밀은 없다>(2015) 이후 다소 무기력한 감정에 빠졌었다. 영화를 관객에게 더 보여주고 싶어도 (극장에서 내리니) 채널이 없더라. 그러던 차에 넷플릭스를 접했고, 당시는 국내에 넷플릭스가 상륙하기 전이었다. 막연하게 넷플릭스 채널을 통하면 극장이 아니라도 관객과 호응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었다. 이후 넷플릭스가 한국에 안착했고, <보건교사 안은영>을 내게 먼저 제안해줬다. 넷플릭스가 창작자에게 허용도가 높지만, 기본 가이드가 있고 그 부분은 지켜야 한다. 예를 들면 ‘이렇게 갈 경우 논란이 될 수 있다’고 고지는 하나 해당 장면을 삭제하라고는 안 한다. 그런 면에서 창작의 자유가 보장되는 것은 확실하다. 아마 넷플릭스가 아닌 다른 채널이었다면 소재도, 음악도 중간에 컷팅 당할 부분이 너무 많아 이야기 자체가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듯하다.

Q6. 두 주역, 정유미와 남주혁 배우와 함께 작업한 현장은 어땠나. 두 배우에게 칭찬 한마디! (웃음)
한마디로 둘 다 너무 사랑스러운 배우다. 영화보다 훨씬 빨리 돌아가고 정신없는 현장이었는데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두 배우 덕분이었다. 유미 씨는 촬영이 없는 날에도 놀러 와 같이 밥을 먹을 정도로 작품에 큰 애정을 보여줬었다. 배우로서 유미 씨는 예측이 안 되는, 상상할 수 없는 연기를 한다. 어떤 대사도 본인의 것으로 다 소화해 낸다. 특히 만화적 표정이 살아 있고 평소에도 리액션이 풍성한데 그 점이 극에 잘 녹아든 것 같다. 싹 비우고 카메라 앞에 서는 유미 씨와 달리 주혁 씨는 준비를 많이 해오는 편이다. 그가 준비한 것을 보여주면 현장에서 모두 빵 터졌었다.
 <보건교사 안은영>
<보건교사 안은영>

Q7. 극 중 ‘안은영’의 의상이 특색 있는데 전반적인 콘셉트는. 또 사건 전후 등장하는 오리 떼의 천연덕스러운 모습이 극이 지닌 발랄하고 엉뚱한 에너지를 높이는데, 원작에 있던 설정인지 혹시 새로 창작한 것이라면 ‘오리’를 등장시킨 이유는.
원작에 오리가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너무 좋아하는데, 아쉽게도 그 에피소드를 넣을 수가 없어 오리 아이템만 살렸다. 극의 저변에 깔린 삶과 죽음에 대한 물음, 기이한 사건이 벌어지는 학교와 만화적인 분위기 등 이질적인 요소를 아우르고 무드를 살리는 데 오리가 적합하겠더라. ‘오리가 왜 있지?’ 이런 질문이 떠오르기 전에 ‘오리 너무 좋아, 귀여워’ 이렇게 직관적인 이미지로 받아들이길 바랐다.

‘안은영’이 입은 의상의 경우 처음엔 굉장히 만화적인 옷도 입어보는 등 여러 번의 피팅을 거쳐 결정했다. 유미 씨가 만화적이면서 여전사적인 이미지를 가져가되 유치하지 않도록 그 경계를 잘 타려 했다. 퇴마 여전사이기에 편한 복장이면서도 달려가는 장면이 많아 바람에 예쁘게 날리도록 레이어가 많은 옷을 택했고 소재 또한 이에 맞췄다. 패턴을 넣기보다 심플하게 갔고, 터틀넥을 입어 비밀스러운 느낌을 주려 했다.

Q8. 젤리를 비주얼라이징하면서 신경 쓴 지점은. CG작업에 공을 들였을 것 같은데 해보니 어떻든가.
젤리를 보고 ‘귀여운데 징그럽다’는 극단적인 두 느낌이 동시에 들기를 바랐다. 레퍼런스로 삼으려 징그러운데 예쁘거나 아름다운데 끔찍한 것들을 자연에서 많이 찾아봤었다. 젤리의 물성은 통통 튀면서 동시에 기분 나쁘게 끈적거리는 감촉으로 가져갔다. CG 작업을 해보고 싶어 덤볐는데 생각보다 너무 힘들었다. 연기로 표현하는 것은 현장에서 테이크를 가져가면서 상황과 인물을 다듬을 수 있는데 CG 작업은 그게 안된다. 동작, 색채, 애니메이션 등을 세세히 정하고 들어가는데, 한번 길을 잘못 들어가면 돌이킬 수 없더라. 도중에 ‘이 길이 아닌가 봐’가 용납되지 않는 거지. 너무 힘들어 다시는 못하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음악 깔고 완성된 것을 보니 다음엔 좀 더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도? 늪에 빠졌다. (웃음) 흥미로운 작업이다.

Q9. 학생 역들을 신인들로 캐스팅했는데, 이유는. 또 이번에 못 담은 에피소드가 많은 데 다음 시즌 계획은 어떤가.
새로운 얼굴을 보여주고 싶은 욕심이 늘 있었고, 이번이 기회다 싶어 기존의 드라마에서 보기 힘든 다양한 얼굴을 보여주려 했다. 심지어 안면인식 장애가 있는 분이라도 확실하게 배우의 얼굴을 구분할 수 있도록 말이지. (웃음) 오디션을 많이 봤다. 덕분에 개성 있고 참신한 신인들과 함께 할 수 있었다. 다음 시즌은 (알겠지만) 내가 아니라 넷플릭스가 결정할 문제다. 이번에 밑밥을 깔아 놓거나 아껴 둔 에피소드가 있으니 다음 시즌은 내가 아닌 누가 만들어도 흥미로울 것이다.

Q10. 가장 마음에 드는 장면은.
5화에 ‘피할 수 없으면 당해야지’라는 대사를 하는 장면이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중도하차 하려다 다시 하기로 마음먹으면서 그 대사를 썼다. 보통 ‘피할 수 없으면 즐기라’고 하지만, 절대 즐길 수 없는 게 있지 않나.

Q11. 당신에게 영화란. 또 최근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은.
흠… 어려운 질문인데, 내게 영화란 대리만족이다. 내가 되고 싶은 사람, 보고 싶은 세계, 느끼는 감정을 영화를 통해 다른 사람에게 소개하고 맛보게 하고 싶다. 행복한 일은…고양이 두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최근에 남편이 어쩌다 길냥이 열 한 마리 밥을 먹이게 됐다. 아침 점심 저녁으로 그들을 돌보는 게 우리 부부의 소소한 즐거움이다.


2020년 10월 16일 금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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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_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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