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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 더 건강한 김창옥을 찾아 <들리나요?> 김창옥
2020년 6월 17일 수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소통전문가로 불리지만, 민망한 호칭이다. 무대 위 청중과의 소통에는 상대적으로 능할지 모르지만, 일상에서는 거리가 멀다. 김창옥은 자신을 ‘보통보다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소통에 관심과 목마름이 생긴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지난 19년간 7,000회가 넘는 강연을 이어온 김창옥 강사가 다큐멘터리 <들리나요?>를 통해 맨얼굴과 뒷모습을 여과없이 드러냈다. 오랫동안 마음에 접어 뒀던 숙제를 꺼내 드는 마음으로 시작한 <들리나요?>. 지난 세월 든든한 갑옷이자 한편으론 그를 옥죄었던 ‘강사’라는 타이틀을 벗을 수 있게 해줬다. 필요할 때 필요한 옷을 입게 하고, 성찰과 좀 더 건강한 ‘김창옥’을 찾아 나설 계기를 마련해 준 영화에 고맙다는 김창옥을 만났다.

<들리나요?>는 강연자 ‘김창옥’이 아닌 인간 ‘김창옥’의 맨얼굴과 뒷모습을 드러낸 다큐멘터리다. 아버지와의 관계 회복에 대해 미뤄둔 숙제 같았다고 표현한 바 있다. 오랜 숙제를 꺼내든 계기는.
열 살 딸과 일곱 살 아들 쌍둥이가 있다. 딸과의 관계는 좋은데 아들과의 관계에 문제가 생기더라. 아버지와 교감을 나누지 못했기에 아들들에게 어떻게 행동할지 모르다 보니 나도 모르게 무뚝뚝하고 엄하고 냉정하게 대했던 것 같다. 아들들이 나보고 ‘은혜 아빠’ (기자 주: 김창옥 강사의 딸 이름)라고 부르면서 내 눈치를 보는 거다. 또 아들들이 다니는 어린이집 선생님과 상담해보니 아버지와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하더라. 문제였던 게 문제화된 거다. 더 이상 미룰 게 아니라 해결해야 겠더라.

강연에서 (가볍게) 가족 간의 불화를 언급하는 것과 <들리나요?> 같이 영상으로 남기는 것은 차원이 다른 문제일 것 같다.
이렇게 될 줄 몰랐다. 원래는 아버지를 병원에 모셔 귀 상태를 정확하게 진단받는 게 목표였다. 솔직히 70년 만에 소리를 들을 수 있을 거라고 기대도 전혀 안 했거든. ‘못 듣습니다’라고 확실하게 진단받고, 핸드폰으로 동영상을 찍어 유튜브에 올리려 했다. 이를 통해 아버지와 이야기하고자 했던 거였다. 그런데 영화를 찍다 보니 아버지 이야기는 일부분이 돼 버리고, ‘멀쩡하게 자기 일 잘하고 사는데, 실제 안을 들여다보면 남들과 소통도 못 하고 자기 상처도 많고 지치고 힘든 인간 김창옥’이 부각돼 버렸다.

유튜브 영상에서 다큐멘터리로 발전한 사연은.
김봉한 감독과 사석에서 이러 이러한 유튜브를 계획 중이라 하니 본인이 영화로 만들어 보겠다고 했다. 영화로 만든다고 했지만 사실 개봉할 거라고 크게 기대하지 않았다. 단지 영상전문가가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그 모습을 담아준다면 그것 자체로 의미 있겠다 싶었다. 아주 고급, 퀄리티 높은 가족 앨범을 갖는 느낌으로 접근했다.

공동 연출한 김봉한, 신승환 두 감독이 인간 ‘김창옥’을 철저하게 까발리는 게 목표(?)였다고 밝힌 바 있다. 내용을 보면 그에 상당히 부합하는 모양새인데, 사전에 편집 등을 요구하진 않았나.
촬영하면서는 전혀 보지 못했다. 감독들이 보여주면 연기할 거라면서 안 보여주더라. 두 감독이 그대로 내보내면 활동을 못 할지도 모른다면서 10년 후쯤 무삭제판을 내자고 농담하더라. 즉 편집했다고 한 거다. ‘저 사람은 소통 못 한다’, ‘문제 있다’ 등의 인터뷰는 솔직히 좀 잘랐으면 했다. 보고 난 후 처음에는 화도 났다가 이후는 당혹감이 들고, 그들이 나에 대해 알고 있으면서 표현을 안 하다 인터뷰에 다 쏟아냈네 싶기도 한 게 참 복잡한 감정이었다.

흠…근간은 애정이겠지만, 지인들이 인터뷰를 통해 사뭇 디스하는 모습이다. 그들의 의견에 동의하나.(웃음)
한 80% 수긍한다면 내가 저 정도인가 싶어 20% 정도 억울한 것도 있다. 또 왜 내 현상만 보고 말하는지, 그 현상이 왜 나타났는지 즉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고 마치 선지자나 예언자처럼 말하는 시선이 사실 불편하기도 했다. 문제는 나 역시 누군가에게 똑같이 행동한 것 같아 그 점이 부끄러웠다. (영화 속 보인) 내 행동 자체도 부끄럽지만, 나 역시 컨설팅 혹은 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타인을 재단하고 단정했구나 싶어 그 점이 훨씬 부끄러웠다.

어떤 면이 특히 서운하던가.
음, 가식적이고 포장하려 한다는 것? 젊은 나이에 별다른 프로필도 없이 강연을 시작했다. ‘안녕하세요’라는 한마디도 격식을 차려 말하는 게 예의라고 생각했지 나를 감추려고 포장한 것은 아니었다. 그런 모습이 포장한다고 느껴졌나 보더라. 사실 유난히 기분 나쁜 인터뷰가 있었는데 그 당사자가 영화 본 후 사과 문자를 보내왔고, 그걸 보니 또 마음이 풀렸다. 나이를 먹으니 확실히 삐지는 게 많아진다. (웃음)

‘소통전문가’로 불리는 게 부담스럽다고 했는데 혹시 그 이미지에서 벗어나려는 의도도? (웃음)
소통전문가라는 호칭은 10년 전쯤 책을 출간할 당시 출판 담당자가 붙여준 타이틀이다. 강연하면서 청중과 (상대적으로) 소통이 잘되는 강사일 수는 있을 거다. 하지만 그 외 일상에서는 보통보다 소통이 안 되는 상황에 있었기 때문에 소통에 관심과 목마름이 생긴 사람, 이게 나를 가장 적절하게 표현하는 말인 것 같다. 사실 언론 시사 이틀 전에 와이프가 크게 싸우고 집을 나갔었다. 딸이 내게 전화해 “아빠, 아빠가 엄마한테 사과하면 안돼요?”라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하더라. 그 정도다.

조심스러운 질문이다. 이번 다큐멘터리 제작이 새로운 콘텐츠 개발이라고 보는 시선도 있을 수 있다.
(말했듯) 유튜브를 통해 아버지와 숙제를 하려고 했던 거다. 그럼 왜 직접 말하지 그러냐고 반문할 수 있다. 가족 사이라도 중간에 매개체가 없으면 쑥스러워 (말) 못하는 게 내겐 있다. 우리 가족이 서로 아주 살가운 편이 아니라 더 그렇다. 사이가 나쁘진 않지만 친밀하거나 서로를 돌보는 편은 아니다. 아버지와 직접 이야기가 아예 안 되는 데다 부끄럽고 쑥스러우니 영상을 통해 보여주려 했던 거지.

아버지 얘기로 시작해 점차 내게 포커스가 맞춰지는데 이 또한 원한 방향이 아니었다. 완성본을 본 후, 우리 영화가 상영되는 스크린이 커다란 거울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와 비슷한 시기를 거친 40대와 50대 그리고 우리 엄마와 같은 세월을 보낸 분들이 자신을 보는 따뜻한 거울 혹은 유쾌한 거울이 된다면 좋겠더라. 직업상 강박감이 있어, 이 영화를 콘텐츠로 활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당연히 생각해봤으나 그러기엔 충격을 좀 많이 받았다.

평소 본인 영상을 끝까지 본 적이 없지만, 이번 <들리나요?>는 다 봤고 부끄러우면서도 해방감을 느꼈다고 밝혔다.
30대 초반 기업에서 처음 강연을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주로 해당 분야 성공자 혹은 공부를 많이 한 전문가가 성공 노하우를 소개하는 경우가 많았다. 나는 전혀 그런 입장이 아닌데 청중 앞에 서게 된 거다. 내가 소개하고 싶은 메시지는 어른들이 보통 얘기하곤 하는 평범하지만 ‘어떤 인생의 가치’였던 것 같다. 이를 효과적으로 전하기 위한 방법으로 마치 <왕의 남자>의 광대처럼 분장하고, 캐릭터를 잡기 위해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행동했었다. 그렇게 분칠한 내 얼굴을 보기 싫었다. 사실 분칠한 그 얼굴을 통해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KBS1 ‘아침마당’ 등에 출연했고, 강연자들이 희망하는 성취를 일궜는데 말이지. 이번엔 영화를 통해 분장이 전혀 없는 생얼굴과 뒷모습을 보이는 것 아닌가. 등에 있는 문신, 8번의 허리 시술로 지워지지 않는 흉터 등등 미처 인식하지 못한 것들을 나 역시 처음 봤다. 부끄러우면서도 연민이 느껴졌다. ‘김창옥’이 아닌 한 인간으로 봐 지더라.

가족과의 관계 회복뿐만 아니라 스스로도 치유의 경험이었겠다.
치유라는 느낌의 첫 단계는 커밍아웃이다. 만약 커밍아웃할 거리가 있다면, 경중에 따라 다르겠지만 밥을 먹어도 놀러 가도 모든 면에 스며들 듯 영향을 미친다. 난 이번 기회에 커밍아웃한 거지. 정확히 말하면 감독들에 의해 당했지만 말이다. (웃음) 영화 속에서 감독들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지만, 전반적인 시선을 보면 두 친구가 나를 부드럽고 따뜻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그게 또 한편으로 나를 치유하는 데 도움됐다.

성악을 전공했다. 강연계에 어떻게 발 들였나.
군대 갔다 늦게 음대에 입학했는데 동기들 대부분이 예고 출신이었다. 제주도에 예고가 없다 보니 예고의 존재도 그때 처음 알았고, 동기들의 기본 실력도 너무 뛰어났었다. 나이 많은 공고 출신, 부족한 실력에서 오는 자존심과 열등감이 상당했다. 2년 동안 군복입고 워커 신고, 지기 싫은 마음에 몸에 힘이 잔뜩 들어간 상태로 다녔다. 사랑을 주제로 한 노래를 배우고 부르는데 나는 그걸 음미할 여력이 없었다. 부모님의 도움 없이 자립해야 한다는 생각에 항상 눈과 목소리에 힘을 빡 주고 다녔다. 한번은 교수님께서 ‘눈을 놓고 해’ 이러시는데 나는 ‘무슨 말인지 모르겠습니다’라고 대답하며 여전히 힘주고 있었다.

한번은 ‘헌정’이라는 노래를 너무 세게 부르니 교수님이 ‘아버지 원수 갚냐’면서 노래는 보이고 들려지는 것인데, 너는 보여주고 들려주려 한다고 하셨다. 내가 노래하는 모습이 내가 사는 것과 너무 비슷하다면서 나가서 가을을 보고 오라고 하셨다. 당시 가을이었거든. 속으로 ‘교수님을 바꿔야겠다’고 생각했지. 이후 소리가 바뀌기 시작했다. 바른 자세와 태도로 내가 음악과 관계를 잘 맺을 때 가장 듣기 좋은 소리가 나온다는 것을 알게 됐다. 교수님께서 아주 철학적인 사유로 레슨을 하신 거지. 노래만 바뀐 것이 아니라 내 삶도 바뀌기 시작했다. 낮은 자존감이 올라갔고 강했던 자존심도 좀 내려놓게 됐다. 교수님의 레슨은 마치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기자 주: 제자 ‘미치’가 매주 화요일 옛 스승 ‘모리’를 찾아가 나눈 인생 이야기를 전하는 비소설)같은 거였다. 성악 레슨을 통해 인문학이나 사회철학, 영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들은 것과 마찬가지다. 이처럼 내가 변한 경험을 소개해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성악 레슨을 받고 경험을 살려 목소리를 좋게 하고 싶거나 말하는 일이 중요한 사람에게 레슨하게 됐다. 하다 보니 레슨을 받은 분의 삶도 변하기 시작하더라. 표정도 달라지고 삶이 변하는 것을 보면서 되는구나 싶었고 미국 유학을 생각했다.

그런데 유학가지 않았다.
퍼포먼스와 음성학과 심리학을 통합하여 한 분야를 만들겠다고 생각했다. 그 무렵 한국에 잠시 나와 있던 콜로라도 주립대 교수가 ‘아침마당’ 방송을 본 후 내게 연락해 레슨을 요청했다. 그에게 미국 유학 계획을 이야기하니 미국 가서 뭐 배울 거냐고, 한국에게 임상실험을 하라고, 다양한 사람과 만나 수업하고 데이터를 축적하라고 조언하셨다. 이후 유학 생각을 접고 벌써 20년째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지난 19년간 7,000회가 넘는 강연을 이어왔다. 강연 의뢰를 받을 경우 제일 먼저 하는 작업은.
일단 대상의 관심사를 찾는다. 못 찾으면 소통이 안 된다. 그들이 힘들어하고 반복되는 고통의 이유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찾아내려 한다. 예를 들면 주부가 그 대상인 경우, 그들의 주요한 관심사는 가족 특히 남편과의 관계였다. 그래서 남편의 문제로 시작해 결국 개인으로 돌아가 귀결짓곤 한다. 사회현상으로 시작해도 결국은 개인에게 돌아가는 패턴이다. 그런데 남성들의 화두는 못 찾겠더라. 때문에 강연하는 게 힘들었는데, 결국 굉장한 화두를 발견했다!

뭔가.
바로 ‘나는 자연인이다’라는 방송이다. 한국 40~60대 남성에게 넓은 교집합을 갖고 있어 이걸 던지면 마음의 문이 열리는 게 한눈에 보인다.(웃음) 대한민국 남성은 다쳐도 혼자 치료하고, 심한 상태면 깊은 곳에 숨어들어 홀로 죽음을 맞는 야생 동물과 흡사하다. 그들은 아프다고,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대상 혹은 관계에 있는 사람이 없다. 대부분 센 척하거나 부풀리기 일쑤다. 혹은 자기가 견딜 수 있는 한계를 모르기에 종종 넘어가 버려 큰 문제에 봉착하기도 한다. 부정적인 보상체계를 가동해 술, 담배, 게임, 쇼핑 등에 중독되기도 하지.

당신이 고향인 제주도에 돌집을 마련하고자 한 것도 ‘자연인’이 되고 싶은 마음의 발로인가 보다.
‘나는 자연인이다’와 ‘한국기행’ 프로그램을 한 4년 봤다. 보면서 속으로 ‘가고 싶다, 가고 싶다’를 반복했지. 형편상 떠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니 한 7년 정도 부러워만 했었다. 또 아는 누나와 형이 울진에 산을 가지고 있어 송이 캘 시즌만 그곳에서 지내곤 하는데 한번은 그곳에 놀러 간 적이 있다. 송이를 캐서 라면에 넣어 먹으며 반 자연인처럼 사는 생활이 어찌나 부럽던지. 나도 저렇게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상황과 형편이 안 되지, 이렇게 의식이 흐르는 거지. 인생에는 빅데이터가 있어 삶의 알고리즘이 내가 관심 있는 분야를 자꾸 내 앞에 던져 놓는 것 같다. 내가 그것을 클릭하면, 또 그다음 버전을 보여주는 방식이다. 빅데이터가 SNS나 유튜브에만 있는 게 아니더라. 최근 ‘삶에도 빅데이터가 있다’는 주제로 강연도 했다. 결론인즉슨 ‘나는 자연인이다’가 내 인생에 큰 역할을 한 거지.

아버님이 인공와우 수술로 청력을 회복하셨다. 이후 아버지와의 소통은 어느 단계까지 왔나.
누군가 아버지를 용서하고 화해했냐고 묻더라. 용서와 화해는 본인이 잘못을 시인해야 하는데 그런 말을 (당연히) 안 하신다. (웃음) 그냥 수고했다고만 하시지. 아버지라는 존재를 떠나 한 인간으로 한 남자로 이해하게 됐다. 내가 가정을 꾸리고 세 아이의 아버지가 되니 그 무게를 알겠더라. 심지어 우리 아버지는 여섯이었다. 나는 벌이가 괜찮아 정서의 허기를 쇼핑이나 여행 등으로 채우지만, 그는 무엇으로 채웠을까. 그 남자 ‘김홍주’를 향한 측은지심으로 지금은 바라보게 된다.

<들리나요?> 이후 삶은 어떻게 변할까. 인생의 분수령이라는 표현도 했다.
지금까지 ‘강사’라는 타이틀이 ‘김창옥’을 먹어버린 것 같다. 중세 갑옷처럼 지켜준 것도 있지만, 그에 매몰됐던 것도 사실이다. 지금은 사람이 먼저라 생각하기에 필요할 때 필요한 옷을 입고 싶다. 앞으로는 좀 더 건강한 김창옥을 찾아가는 여행이 될 것 같다. 예전에는 강의하지 않으면 내 존재감이 사라지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쉬면서도 강의를 더 잘하기 위해 골몰했지. 하지만 지금은 쉴 때는 쉬고 하고 싶을 때는 하고 그러려고 한다. <들리나요?>에 고마운 점이다. 나를 성찰하게 했다.

마지막 질문! 요즘 소소하지만 행복한 일이 있다면.
<들리나요?>를 홍보해야 하는데 저예산 영화라 홍보비가 부족한 상황이다. 나라도 해야겠다 싶어 유튜브 채널 ‘김창옥 TV’에 어제 영상을 하나 올렸다. 영화를 본 딸과의 인터뷰(?)이다. 딸에게 영화 보고 궁금한 점을 질문하라고 했더니 아빠는 오토바이 헬멧이 왜 그렇게 많냐고 묻더라. 그래서 내가 정서의 허기를 느껴서 샀다고 했다. 10살 딸과의 추억이 생긴 것 같아 기분 좋다. 인터뷰하는 모습을 보면서 뿌듯하고 행복했다.


2020년 6월 17일 수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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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목요일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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