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검색
검색
영화가 관객에게 말을 걸다 <82년생 김지영> 김도영 감독
2019년 11월 1일 금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82년생 김지영>은 이제 그 이름 자체로 하나의 유명 인사가 되었다.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을 읽은 사람이든 아니든, 김도영 감독의 영화를 본 이든 보지 않은 이든 그 제목이 상징하는 바에 관해서는 또렷이 인지하고 있다. <82년생 김지영>은 출산 이후 여성의 삶을 말하는 영화다. 그 어디서부터 시작한 삶이 나의 엄마를 타고 내려와 나와 내 누이, 아내, 딸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언어와 영상으로 경험할 때, 관객은 필연적으로 주변의 소중한 사람을 떠올리게 된다. 독자의 지극한 공감을 끌어낸 조남주 작가의 소설이 김도영 감독의 동명 영화로 다시 우리 앞에 당도한 지금. 쉽지 않은 여건 속에서도 잠시간 주변 이들의 삶을 돌아보려는 이들의 뜨거운 진심을 타고 <82년생 김지영>은 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건네는 중이다.

개봉 후 반응이 우호적인 것 같다.
다행이다. 관객이 많이 좋아해 주는 것 같다. 내가 만들었지만, 영화가 스스로 많은 관객에게 다가가는 기분이다.

어떤 의미인가.
상업 영화 틀 안에서 제작을 하면 작품이 감독의 의지대로만 갈 수는 없다. 이 영화는 수많은 회의와 토론을 거쳐서 만들어진 결과물이다. 그런 속에서 영화가 생명력이 있는 하나의 인격체처럼 느껴지는 순간이 있었다. 내가 영화를 택한 게 아니라 영화가 나를 택해서, 조금은 몸을 낮추고 더 많은 사람에게 다가가려고 하는구나… 싶었다.

82년생 김지영과 당신은 띠동갑이다.(웃음) 처음 작품을 읽고 당신보다 12년 뒤에 태어난 김지영에게 어떤 생각을 품었는지.
단편 영화 <자유연기>(2018)를 준비하던 중 작품에 참고하기 위해 원작 소설을 읽었는데 공감을 많이 했다. 82년생을 다루는데 어째서 내 경험과 그리 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슬프기도 했고. 세상이 많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여성의 삶은 그렇게까지 좋아지지는 않은 건가... 세상이 변하는 만큼 사회적 관습이나 작은 틀도 변화하면 좋겠는데 말이다.



‘김지영’의 삶은 아이를 낳은 뒤 송두리째 변화한다.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뒤 매일 집에서 젖꼭지를 소독하고, 장난감을 닦고, 아이 기저귀를 갈고, 약을 먹이고… 영화가 묘사하는 ‘김지영’의 삶은 출산, 육아를 경험한 대다수 여성의 보편적이고 구체적인 경험과 맞닿아 있다.
영화에 내 경험이 녹아있다. 201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전문사 과정에 입학했다. 어느 날 아이가 수족구병에 걸려 어린이집에 보낼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전염이 되는 병이니까. 하필 발표가 있는 날이라 학교에 안 갈 수도 없고, 결국 아이를 데리고 갔다. (기자 주: 영화에서는 ‘대현’(극 중 공유)의 직장 동료가 유치원에 가지 못한 아이를 데리고 눈치를 보며 출근한다.)

남편, 엄마, 언니와 남동생, 전 직장 선후배, 시가 가족 등 ‘김지영’ 이외에도 다양한 인물의 에피소드를 집어넣어 이야기를 풍성하게 했다는 평가다.
그 목적은 오로지 ‘김지영’의 서사를 강화하기 위해서였다. 주변 인물의 사정을 알뜰살뜰 잘 보여줘서 관객에게 잘 이해하게 한다기 보다는, ‘김지영’이 몸담은 환경이 어떤 곳인지를 둘러보기 위해서였다. ‘김지영’의 주변 인물은 모두 평범하다. 악의도 그다지 없는 사람들이다. 조남주 작가의 원작 소설에서 받았던 주변 인물에 관한 인상을 놓치지 않고 구현하려고 노력했다.

공유가 연기한 남편 ‘대현’역은 원작 소설보다 설득력 있게 그려냈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나는 어쩐지 남편을 바라보는 당신의 냉담한 시선을 느꼈다고 해야할까…(웃음) 완전히 공감했다기보다는, 철저히 이해하고자 노력한 결과물처럼 보인다.
(하하하) 그런 뉘앙스를 주고 싶긴 했다. 다들 너무 따뜻하게 그렸다고만 하더라.(웃음) ‘대현’은 보통 사람, 그리고 아내를 걱정하는 단지 착한 사람이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어떤 인물이든 이해해보려고 했다. 시어머니, 고모님, 심지어 카페에서 ‘김지영’에게 ‘맘충’이라고 말하는 사람까지도. 역할을 맡아준 실제 배우를 만난 뒤에 작업이 굉장히 즐거워진 측면도 있다. 평면적이지 않고 살아 있는 인물을 연기하려 노력해준 배우들 덕에 인물에 하나의 결을 더 입혀 완성할 수 있었다.

‘김지영’의 전 직장 상사 ‘김팀장’역은 어떤가. 젊은 여성 관객에게는 든든한 감정을 불러일으킬 만한 인물이다. 여러 어려움에도 사회생활을 포기하지 않고 꿋꿋하게 직업 활동을 이어나가는 선배로서 ‘김팀장’은 어떤 안도감을 준다.
‘김팀장’은 원작 소설에서도 묘사된 인물이다. 실력에 걸맞은 자리로 올라가지도 못하지만 그렇다고 영웅이 될 만큼 만능도 아닌, 이 사회에서 어떻게 해서든 살아남으려고 하다 보니 이런저런 후회가 있는 인물이다. 촬영을 하면서 ‘김팀장’이라는 역할이 박성연이라는 배우를 만나 꽃이 피었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의 유머 감각과 좋은 에너지 덕분에 역할이 굉장히 재미있어졌다.

어린 시절부터 경험한 남자 형제와의 차별, 직장 내 화장실에 설치된 몰래카메라, 늦은 밤 뒤따라 오는 낯선 남자까지… 영화는 오랜 시간 여성들이 경험한 상황까지 속속들이 열거하는 편이다.
원작 소설이 사회에 화두를 던진 건 ‘김지영’이 어린 시절부터 공기처럼 감돌았던 (여성을 향한) 차별을 다뤘기 때문이다. 조남주 작가가 언젠가 식초에 담긴 오이라는 비유를 든 적이 있다. 오이가 아무리 싱싱하고 좋아도 식초에 담긴 이상 피클이 된다고 말이다. 우리가 바라봐야 하는 건 오이의 품종이나 크기가 아니고 오기가 어디에 담겨 있는지다. 소설이 그랬듯 영화에서도 우리를 둘러싼 문화와 풍경이 충분히 짚이길 바랐다.

영화를 만들면서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은 없었나. 최근 개봉한 다큐멘터리 <우먼 인 할리우드>(2018)에서는 이미 수십 년 전 할리우드의 여성 차별에 맞섰던 이들을 조명한다. 나보다 앞서 그렇게 많은 선배들이 소리를 쳤지만, 여성의 현실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는 막연한 불안감이 뇌리를 스치더라.
<페미니스트- 닫힌 문을 열고>(2018)라는 다큐멘터리에서도 비슷한 내용을 봤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딸을 데리고 여성 시위에 나온 엄마가 눈물을 흘리더라. 내가 옛날(1970년대)에도 이런 시위에 나왔었는데, (2017년에도) 또 나오다니! 하면서.(웃음) 그때 또 다른 사람의 인터뷰가 나오는데, 그 말이 마음에 쾅 하고 와닿았다. 그래도 우리 때보다는 ‘쪼금’ 나아지지 않았어? 하더라. 어쩌면 사회 변화의 흐름은 또다시 끊길 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성의 삶을 말하려는) 시도를 계속하다 보면 언젠가는 우리 삶도 조금 더 나아지지 않을까?



영화를 고깝게 보는 이들은 여전히 논쟁을 이어가고 있다. 당최 ‘김지영’이 뭐가 그렇게 억울하냐는 입장이다.(웃음)
자신과 관계 맺고 있는 이들과 잘 공존할 방법을 생각하게 되는 시대인 것 같다. 그분들의 억울함은 도대체 무엇이고, 어떤 이유로 그렇게까지 화가 났는지 좀 더 많은 토론이 이루어진다면 좋을 것 같다. 그 출발은 상처를 바라보는 것부터일 것이다. 다른 사람이 상처가 있다는데 굳이 없다고 하지도 말고, 자신도 어디가 아픈 건지 정확하게 봐야 한다. 그래야 치유의 과정을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

타인에게 공감하는 건 인내와 정성이 필요한 일이다. 하지만 안면몰수하고 욕부터 갈기는 건 단박에 가능한 일 아닌가.(웃음) 많은 사람들이 상대를 살피기보다는 일회적이고 소모적인 방식으로 자기감정을 배출하는 것 같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국에는 공존에 관해 고민하고, 행동까지 나아가야 한다고 본다. 물론 소설 한 권, 영화 한 편이 그런 대단한 역할로 사람들을 이끌지는 못할 것이다. 하지만 누군가는 소설과 영화라는 창을 통해 바깥을 바라보지 않을까. 모른척하거나 그저 스쳐 지나가는 사람도 있겠지만 분명 누군가는 달라붙어 자세히 바라볼 것이다. 그러면 단단했던 의식에 작은 균열이 나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작은 단서나 조각을 찾을 수도 있다. 물론 그 균열은 그동안 엄마의 삶을, 친구의 삶을 바라보면서 수없이 고민한 당사자의 결과물일 것이다. 나 역시 영화를 만들면서 내 인생의 어떤 지점이 더욱 선명해졌다고 본다. 관객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기를 바란다.

마지막 질문이다. 최근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은.
따뜻한 아침 햇살에 눈떴을 때 두 아이가 달라붙어서 나를 마구 괴롭히는 순간, 그 순간이 참 좋다.

사진_이종훈 실장(스튜디오 레일라)

0 )
1

 

1

 

1일동안 이 창을 열지 않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