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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기하기 어려운 마력 <가장 보통의 연애> 김래원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휴 그랜트와 아담 샌들러를 좋아한다”는 그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래원은 확실히 로맨스물 남주인공에 어울리는 분위기를 지녔다. 성별에 따르는 전형적인 이미지가 차츰 사라지고 있다고 해도, 선 굵고 수려한 이목구비로 해사한 웃음을 짓는 남배우가 스크린에서 뿜어내는 마력은 여전히, 그리고 언제나 유효하다. 이 마력은 희한하게도 단정함이나 총명함과는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 한 여인을 향한, 우직하다 못해 지나치게 끈덕진 것 같은 미련을 보일 때 비로소 그 힘을 발휘한다. 큰 키에 산만 한 덩치를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만취한 그가 연약함과 지질함을 동시에 내보이며 “자니?”라는 문자를 누르고 있다면 어떤가. 그것도 매일 새벽. 그 진상 면모에 기함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키득대는 웃음이 입꼬리를 타고 스며 나온다면 당신 역시 <가장 보통의 연애>를, 그리고 김래원의 마력을 즐길 충분한 준비가 됐다.

<롱 리브더 킹: 목포 영웅>(2018) 촬영을 마친 뒤 바로 <가장 보통의 연애> 현장에 투입됐다고 들었다. 선거에 출마하는 폭력 조직의 큰형님을 연기하다가 파혼당한 뒤 지질한 모습만 보이는 30대 남자를 연기하려니 간극이 크지 않던가.(웃음)
말한 것처럼 두 작품이 아주 다르다. 새 역할에 적응할 시간이 거의 없이 촬영을 시작했다. 가장 신경 쓴 건 시련의 아픔에 허덕이는 광고회사 팀장의 모습이 진정성 있게 표현되면서도 (로맨틱 코미디라는 장르 특성상) 인물의 분위기가 너무 어두워지지 않도록 하는 거였다. 이를테면 술 취해서 넘어지는 초반 장면에서 보는 사람들이 “어떡해…”가 아니라 “쟤 넘어지는 것 좀 봐.(웃음)” 같은 느낌이 들도록 연기 분위기를 가다듬었다.

<가장 보통의 연애>는 평범한 30대 직장인의 연애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작품이다. 사랑에 치이고 사람에 배신당하며 30대가 된 두 주인공 ‘재훈’(극 중 김래원)과 ‘선영’(극 중 공효진)은 직장 내에서 사생활에 관한 불미스러운 소문에 시달리기도 한다.
직업 특성상 직장생활을 해본 적이 없다. 사내 루머에 관해서는 모르는 게 훨씬 많았다. ‘재훈’이 이별 후에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직장 동료인 ‘선영’에게 실수를 하는데, 그러고 나서 민망해 어쩔 줄 모르며 얼굴을 피하는 것도 이해가 잘 안 되더라. 나라면 실수했다, 미안하다고 말하면서 맛있는 거라도 사겠다고 할 것 같다. 그렇지 않은 모습을 표현하는 게 쉽지 않았다.

언론시사회 당시에도 ‘재훈’과 당신은 별로 닮은 점이 없다고 말했다.(웃음)
‘재훈’은 나랑 잘 안 맞는다.(하하하) 실제의 나보다는 마음이 여리고 순수한 것 같다.

그럼에도 영화 출연을 결심한 데는 이유가 있을 텐데.
만약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연기하면 어떨까 생각해봤다. 나도 저런 때가 있었나 싶은 생각을 하면서 즐기는 눈으로 시나리오를 보게 되더라.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나를 끌어당겼다. 표현력이 너무나 좋은 공효진과 같이 연기하면 분명 내가 느낀 즐거움을 관객에게 전할 수 있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작 공효진은 언론시사회 당시 당신과 서로 견제하고 얄미워하며 연기했다고 표현했는데.(웃음)
나는 되게 잘 지내고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생각인가.(하하하). 진솔한 이야기를 하자면, 이번 영화에서는 되도록 상대를 보조하는 마음가짐으로 연기하려고 했다. 그동안의 영화에서는 내가 맡은 역할이 단독 주인공으로 전체 이야기를 이끌고 신의 분위기를 주도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이번 작품은 시나리오를 볼 때부터 서로의 호흡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고집이 있는 편이고 그동안의 연기 습관이라는 것도 있기 때문에 쉽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공)효진 씨에게 맞추려고 많이 노력했다. 이야기를 하기 보다는 듣는 입장이 돼서 말수가 적고 예전보다 더 과묵해졌다고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어쩐지 (공)효진 씨가 자꾸 나에게 점잖다고 하더라.(웃음)

공효진과는 드라마 <눈사람>(2003)이후 16년 만의 재회다. 오랜 시간 배우로 활동하며 각자의 업력을 쌓은 뒤 재회한 느낌이 꽤 든든했을 것 같다.
(공)효진 씨는 그때도 원체 표현력이 좋았다. 나는 신인으로서 뭔가를 해내기 위해 힘이 들어가 있었는데 그는 굉장히 자연스러운 연기를 했다. 이번에도 많이 느꼈다. 분명 나는 그 신에서 참 (표현을) 못했다고 생각했는데, (공)효진씨가 앞에서 저렇게 연기를 해주니까 장면이 조화롭게 잘 넘어 가지더라. 개인적으로는 아쉬운 장면임에도 신 전체로 보면 꽤 잘 나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게 참 고마웠다. 최근에는 좀 강한 이미지도 얻은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꽤 여린 것 같고 여전히 소녀같다. 아니, 소녀 같은 면이 있는 것 같다! (웃음)

그간 드라마에서는 사랑 이야기에 특화된 부드러운 모습을 보여준 한편 영화에서는 <해바라기>(2006)를 시작으로 <롱 리브 더 킹: 목포 영웅>까지 ‘큰형님’ 스타일의 강한 남성 캐릭터를 연기했다. 당신 얼굴에 전혀 다른 두 가지 모습이 공존하는 느낌이다.
두 면모 모두 가지고 있다는 말을 듣긴 하지만, 로맨스 쪽이 더 잘 어울린다는 이야기를 더 많이 듣는다. <…ing>(2003) <어린신부>(2004) 같은 영화를 한 지 10년이 넘었고, 근래 몇 년 동안은 로맨스 작품 자체가 많지 않았는데도 중간중간 로맨스 장르 시나리오를 받았으니까. 내가 그 장르에서 잘 한다고 생각하셨는지 모른다. 그런데 내 입장에서는 꼭 하고 싶다는 생각은 들지 않더라. (제안 받았던 작품은) 결국 다른 배우가 출연해서 개봉했다. 사실은 (로맨스만큼) 액션물에서도 잘 어울리는 배우가 되고 싶은데… 노력해야 할 것 같다.

마흔, 쉰이 되어도 로맨스물에 잘 어울린다면 그 또한 매력적일 거란 생각인데, 정작 본인은 고민스러운 지점이 있나 보다.
가능할까? 그렇다면 좋을 것 같다. 사실 휴 그랜트나 아담 샌들러를 굉장히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그분들이 나오는 영화를 많이 봤다. 아마 그런 영향을 받지 않았을까 한다. 로맨스물이 힘든 건 사실 (촬영보다도) 이런 인터뷰 자리다. 사랑에 대해서 나도 잘 모르겠고, 안다고 해도 정의하기 쉽지 않은 거라 말하기가 어렵다. 나는 ‘재훈’처럼 (사랑 때문에) 슬픈 일이 좀 생겼으면 좋겠다 싶을 정도로 점점 더 재미없는 사람이 되어가고 있는데…(웃음)



모든 작품이 그렇지만 로맨스물에서는 상대 배우를 잘 만나는 게 특히 중요할 거라고 본다.
그래서 TV 예능 <냉장고를 부탁해>에 출연했을 때 (드라마 <닥터스>에서 함께한) 박신혜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다. 작업을 다 끝내고 나서 생각해보니 촬영 당시 그에게 이런저런 도움을 받고도 고맙단 말을 못 한 것 같아서. (공)효진 씨는 모든 남자배우가 선호하는 여자배우다. 서로 부족한 걸 채워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할 수 있는 사이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물론… (상대 배우로서) 너무나 안 맞는 분도 있었다. 모든 사람 사이가 다 좋을 순 없는 거니까.(웃음)

다음 작품 계획이 있나.
<가장 보통의 연애>가 잘 돼서 오랫동안 푹 쉬고 싶다.(하하하) 다행스럽게도 작품 제안은 꾸준히 들어온다. 최근에는 넷플릭스와 관련한 작업이 있었지만 마음이 썩 내키지 않아서 고사했다. 이제는 정말 하고 싶고, 잘할 수 있는 작품 위주로 하고 싶다. 최선은 다하되 지금까지 쌓아온 걸 의미 있게 쓸 수 있는 방식으로 일하려고 한다. 아마 이전보다는 여유가 좀 생긴 것 같다. 옛날에는 너무나 열정적으로 여기저기에 부딪히며 많은 애를 썼다.

마지막 질문이다. 인터뷰를 끝까지 읽은 예비 관객에게 이번 영화를 추천한다면.
나와 (공)효진 씨가 오랜만에 만나서 너무 좋은 호흡으로 연기해낸 작품이다.(웃음) 보는 분 입장에서는 오래전 풋풋했던 자신의 경험을 떠올릴 수 있을 거다. 기존의 로맨스물보다 훨씬 현실적이고 솔직한 연애 영화가 될 것 같다.


사진 제공_NEW

2019년 10월 7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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