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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삶으로 이어지는 마술 같은 경험 <행복한 라짜로> 루카 치코바니
2019년 7월 16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알리체 로르와커의 세 번째 작품이자 제71회 칸영화제 각본상 수상작인 <행복한 라짜로>(2018)에는 상반된 두 인물이 등장한다. 소작농 ‘라짜로’와 후작 부인 아들 ‘탄크레디’가 그들이다. ‘탄크레디’는 착하디착한 소작농 ‘라짜로’에게 “우리 아버지는 유명한 난봉꾼이었지, 우린 형제일지도 몰라” 등등 헛소리를 일삼기도 하지만, 사실은 악의 없는 인물. 착취의 수혜자면서 착취의 악습을 무너뜨린 파괴자로 역할 한다. ‘탄크레디’ 역의 루카 치코바니가 깜짝 내한, 한국 관객에게 인사를 건넸다. ‘탄크레디’를 내면에 ‘라짜로’를 품은 인물이라고 소개한 루카 치코바니를 만나 영화에 관해 나눈 이런저런 이야기를 전한다.

<행복한 라짜로>는 마술적 리얼리즘으로 휘감은 판타지이자 현실에 발 딛은 한 편의 우화로 개인적으로 슬픈 행복감을 느꼈다. 참여한 배우로서 영화를 소개한다면.
기존에 보던 것과는 많이 다른 영화로 <행복한 라짜로>는 현재 우리 사회와 그 흘러가는 방향에 관해 이야기한다. 인간성을 상실하고 감정이 메말라 가고 기계의 노예가 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을 비춘다. 영화 속에선 보통 슈퍼히어로가 등장하지만, ‘라짜로’(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는 그런 흔한 영웅의 모습이 아니다. 더구나 사회 역시 그의 편이 아니다. 알리체 감독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고,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

‘라짜로’가 사는 마을의 실질적인 지배자인 후작부인의 아들인 ‘탄크레디’를 연기했다. 형제일지도 모른다는 감언이설로 ‘라짜로’를 속이기도 한다.(웃음) 캐릭터 소개를 부탁한다.
개인적으로 ‘탄크레디’는 다크한 피터팬 같은 인물이라고 느꼈다. 판타지와 모험을 좋아하지만, 강압적인 엄마에 의해 어두운 정신세계를 지니고 있다. 10대 시절에는 뭔가를 깨닫는 시기가 있다. 가정이나 학교 등 주변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큰 변화를 겪는다. 무엇이 선한지 악한지 구별하게 되는데, 극 중 ‘탄크레디’는 엄마의 악행을 알아채고 ‘라짜로’를 비롯한 농장 주민들에 공감한다.

착취의 수혜자였던 ‘탄크레디’가 (의도하지 않았지만) 결국 착취로 쌓은 왕국을 무너뜨리는 파괴자로 역할 한다. 연기하면서 중점 둔 부분 혹은 감독의 연기 디렉션은.
그는 중간지대 인물이다. 어떻게 보면 내면에 ‘라짜로’를 간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선함이 표출된 게 ‘라짜로’라면, 감춰진 건 ‘탄크레디’이다. 알리체 감독님은 내게 어떤 요구나 지시를 하지 않았고 촬영하는 동안 모두 다 함께 성장했었다. 단순히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영화가 내 삶으로 들어온 느낌이었다. 원래 밀라노에 거주하는데 영화를 위해 3개월 동안 시골에 머물렀고 그곳에서 ‘라짜로’역의 아드리아노를 만났는데, 영화가 실제 삶과 이어지는 것 같은 매직을 경험할 수 있었다.

본업이 가수다. ‘탄크레디’역으로 첫 연기에 도전했는데 캐스팅 과정이 궁금하다.
MTV에 나온 뮤직비디오를 본 감독님이 유튜브 등을 통해 나에 대해 더 찾아본 후 연락했었다. 사실 알리체 감독님에 대해 전혀 모르던 상태라 캐스팅 제안 줘서 고맙다고 말하고 전화를 끊은 후 촬영 감독으로 활동 중인 엄마에게 물어보니 깜짝 놀라면서 ‘‘예스’라고 했어야지!’라고 하셨었다. 그 후 바로 로마로 가서 오디션을 봤는데, 연기가 처음이라 엉망이었다. 내가 시간 낭비한 것 같다고, 못할 것 같다고 하자 알리체 감독님이 이 부분을 소화할 때까지 방에서 못 나간다는 거다! 그렇게 방에 갇힌 채 해당 장면을 소화한 후 캐스팅됐다. 감사하다.

시나리오를 본 후 첫 느낌은.
특이했던 게 감독님이 시나리오의 절반만 보여줬었다. 엔딩을 모르는 상태에서 촬영했고, 칸에서 영화를 보고 나서야 비로소 결말을 알 수 있었다. 또 어떤 의미나 상징에 대해 일체의 설명 없이 그냥 스스로 느끼고 해석하면 좋겠다고 했었다.

‘라짜로’ 역의 아드리아노 타르디올로 역시 전문 배우가 아니었다. 그도 첫 연기인 거로 알고 있는데 호흡은 어땠나.
첫만남부터 친해졌고 지금은 친형제 같은 관계다. 처음 만나 6시간 정도 함께 낚시하며 각자의 생활에 관해 이야기했었다. 가령 그는 집안에서 운영하는 와인 농장 이야기를, 나는 밀라노의 클럽 이야기 등등을 말이다. 둘 다 첫 연기라서 정말 좋았다. 아마 다른 배우들이 모두 프로 연기자이고 나만 초짜였다면 정말 괴로워 죽어버렸을지도! (웃음) 밤에 호텔 방에서 연습하며 도움을 많이 주고받았다. 아드리아노는 파워 뱅크 같은 친구다. 어떤 부분을 딱 집을 수는 없는데 그의 말이나 행동에서 느껴지는 에너지가 있다. 나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라 아드리아노를 만난 내 친구들도 똑같은 말을 했었다.

<행복한 라짜로> 작업 전후로 개인적인 변화가 있다면.
<행복한 라짜로>는 실화에 기반해 팽배한 물질주의와 인간성 상실 등을 다루고 있다. 이건 비단 이탈리아 내 빈부 격차의 문제가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주제라고 본다. 더 큰 차와 근사한 집이 마치 행복을 보장한다고 세뇌되고, 이를 아이들에게 주입하기도 한다. 우린 어쩌면 사회에 속고 있는지도 모르고, 피상적인 물질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일 수도 있다. 영화 초반 후작 부인의 소작농이었던 마을 사람들이 이후 사회로 나가 하층에서 끼니를 걱정하며 산다. 후작 부인의 노예였다가 그 주인이 사회로 바뀐 모습이다. 영화를 하면서 개인적인 성향도 많이 변했다. 돈과 물질적인 것보다 인류애와 정신적인 면에 좀 더 관심을 많이 두게 됐다. 내면 자체에 큰 변화가 왔는데 그런 면에서 <행복한 라짜로>는 아주 큰 의미를 지닌 작품이다.

이후 활동 계획은.
이탈리아에서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앞으로 음악은 안 하고 배우만 할 거냐는 것이다. 평소 저스틴 팀버레이크와 데이빗 보위를 좋아하는데 두 사람 모두 음악과 연기를 병행하는 멋진 선배들이다. 이렇게 얘기하면 이탈리아에선 미쳤다고 말한다. (웃음) 그렇게 활동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음악과 연기는 서로 다른 언어일지라도 통하는 게 있기에 동시에 추구하고 싶다. 다만, 연기와 영화는 아직 모르는 게 많기에 좀 더 공부하고 싶다. 운 좋게도 이번엔 감독님이 먼저 역할 제안을 해줬지만, 스스로 자격을 갖추려 한다. 내년 2월 LA에 있는 연기 아카데미에서 장학금을 받고 공부하는 게 현재 희망 사항이다.

또, 이전과 다른 음악을 준비 중이다. 물질만능주의를 비판하고 사회를 각성하는 메시지를 담은 음악을 생각하고 있다. 아트 디자인과 캐릭터는 데이빗 보위를 참고로 할 것 같다. 3D 오디오 기술 도입과 조지아 전통 음악과 새로운 음향 기술과의 접목도 고려 중이다.

최근 당신을 사로잡은 이슈는. 즉 주요 관심사는.
일단 한국에 왔으니 절과 고궁을 방문하고 싶다. 또 전통 의상 한복을 입고 꼭 사진 찍고 싶다. 영화 작업 후 이슬람, 불교, 라마교 등등 다른 종교에 관심이 많이 생겼다. 그 종교들이 결국 아시아와 연결돼 있는 것 같았다. 유럽에서 사라지고 있는 영(정신)적인 부분이 아시아에는 아직 살아 있다고 느낀다. 아시아에 대해 많이 배우고 기회가 되면 자주 방문하고 싶다.

마지막으로 한국 관객들께 한마디!
영화 Q&A와 SNS 등 영화에 대한 관심과 진심 어린 환영에 매우 감사하다. 유니버설 이태리 소속인데 빠른 시일 내에 한국에서 콘서트를 통해 인사드리고 싶다.

2019년 7월 16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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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박광희 실장(Ultra St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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