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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유되지 못한 시간에 변화를 준다면... <하나레이 베이>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 박은영 기자]
미래의 꿈이 불분명하던 시기, 한 친구가 자신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10여년의 세월을 거쳐 촬영해 완성한 것이 마츠나가 다이시 감독의 데뷔작 다큐멘터리 <피유피루>(2009)다. 친구는 남자에서 여자로 그리고 훌륭한 전위 예술가로 성장했고, 감독 역시 확실하게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확인한 시간이었다. 다양한 세계와 가치관을 지닌 사람들과 교류하며 일상에 대한 애정과 관심이 더욱 높아졌다는 마츠나가 다이시는 <하나레이 베이>는 작가성과 상업성 사이 균형의 고민 끝에 완성한 영화라고 소개한다. 상실을 겪은 후 치유되지 못한 시간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작은 변화의 계기가 된다면, 충분히 가치 있다고 그는 믿는다.

<하나레이 베이>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의 동명 소설이 원작입니다. 소설을 읽은 후 첫 느낌이 어떠셨나요.

처음엔 영화로 만들 것을 전제로 읽어서 그런지 분량이 짧고 스토리가 심플해서 만들기 수월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후 생각할수록 좋은 이야기이고 더불어 희망이 느껴졌어요.

하나밖에 없는 아들이 죽은 장소인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을 10년 동안 찾는 이야기인데요, 어떻게 보면 죽음을 좇아가는 것 같은데 그런데도 부정적인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 대단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죽음은 삶의 시작이고 삶은 죽음의 시작, 마치 둥근 원과 같이 죽음과 삶이 순환한다고 느꼈어요. 양 끝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말이죠. 소중한 이가 세상을 떠난다면 슬픈 것은 당연하겠지만, 이별을 꼭 부정적이 아닌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원작에서 특히 끌린 지점은 무엇인가요.

현대 사회에서 정답이라고 여겨지는 가치관을 뒤집는다는 것입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 대부분의 사람이 하루라도 오래 살고자 하는 건 변치 않는 사실인데요, 인간이 진화하고 문명화되면서 잃는 것을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습니다. 보편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옳다고 생각되는 가치에 대해 질문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영화로 옮기는 작업에서 취사선택이 필요했을 것 같은데요. 원작에서 취한 부분과 새로이 숨결을 불어넣은 부분이 있다면요.

원작이 있다고 해서 이 부분을 꼭 살리거나 사용하겠다고 생각한 부분은 전혀 없었습니다. 일단 원작과 거리를 두고 내 것으로 만드는 작업이 우선이었어요. 원작을 잃고 초고를 쓴 다음 시나리오 헌팅을 위해 하와이를 여러 번 방문했어요. 극 중 등장하는 ‘손도장’ 같은 것은 추가된 부분이고 그 외에도 중심축이 될 만한 에피소드를 직접 가서 새로 발견했습니다.

영화를 보고 어떻게 느낄지는 오롯이 관객의 몫이겠지만, 감독님의 개인적인 바람이 있을 텐데요. 즉 관객이 어떤 감정을 느끼길 바라는지요.

음..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어떻게 받아들일지와 같은 맥락의 질문이 아닌가 합니다. 영화를 본 관객마다 각기 다른 상황이겠지만, 이 작품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전달돼 그들이 앞으로 나아가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영화를 만들며 취재를 많이 했는데 극 중 ‘사치’(요시다 요)에게 손도장을 만들 것을 권유하고 보관해 뒀다가 전달하는 사람은 실제로 그 일을 하는 분입니다. 그가 말하길 다섯 살 아이의 손도장을 10년 동안 맡고 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아이를 잃은 상실에서 헤어나오지 못한 분들의 치유되지 않은 세월에 변화를 준다면 <하나레이 베이>가 충분히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영화를 만들면서 작가성과 상업성을 병행하는 것이 상당히 어려운 일인데요, 만인에게 도움과 공감될지 혹은 일부에게 꽂히는 엣지있게 (뾰족하게) 다가갈지 그사이 고민이 큽니다. 어떻게 하면 타협점을 찾을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만든 영화입니다.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영화는 아들을 잃은 ‘사치’가 극을 오롯이 끌어가니 만큼 캐스팅에 심혈을 기울였을 것 같습니다. 요시다 요의 어떤 모습에서 ‘사치’를 발견했나요.

솔직히 투자를 받으려면 어느 정도 인지도 높은 배우가 필요했고, 배우가 지닌 기존의 이미지와 ‘사치’의 모습이 달랐으면 했습니다. 거기다 40대 여성을 연기해야 하니.. 기존 이미지를 깰 수 있는 배우 풀이 그리 넓지 않았습니다. 이전에 교류가 전혀 없었음에도(웃음), 직감상 요시다 요는 도전해주지 않을까 했죠. 자신의 기존 이미지에 답답해하거나 혹은 또 다른 얼굴을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을지 순전히 저 혼자 생각했는데, 그녀가 흔쾌히 수락해줬습니다. 이렇게 얘기한 적은 없는데 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싫어할지도 모르겠네요.

요시다 요에게 특별히 주문한 연기 방향이 있다면요.

크랭크인하기 전에 세 가지를 말했어요. 계산하지 말고, 연기를 잘하려고 노력하지 말고, 어떤 모습으로 비칠지 생각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잘하고 능숙하게 콘트롤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알다시피 ‘사치’는 아들의 모습이 자신의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자신을 콘트롤하지 못합니다. 그렇기에 배우인 요시다 요가 능숙하게 자신을 조정하며 연기하길 바라지 않았어요. 어느 순간 ‘사치’와 요시다 요가 혼동돼 보이는 게 극의 이해와 몰입에 도움이 될 거로 생각했거든요. 배우들이 자기 역할에 거리를 둔다면 역에서 멀어진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반대로 봅니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것이 해당 캐릭터를 더 잘 표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하나레이 베이> 스틸컷

개인적으로 후반부 ‘사치’가 나무를 힘껏 미는 시퀀스가 인상적이었는데요, 그 부분에서 감독님이 전하는 감정은 무엇인가요.

원래 시나리오에 없던 장면으로 시나리오상에는 숲을 걷는다 정도로 표현됐었습니다. 당시 ‘사치’는 인생을 콘트롤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젊은 서퍼들의 눈에는 보이는 아들이 자신에게는 보이지 않는 상황에 혼동을 느낍니다.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자신의 손에 잡히지 않는 것이 있다는 걸 깨닫는 거죠. 그 장면 촬영 당시 요시다 요에게 지금 힘껏 나무를 밀어보라고 주문했습니다. 당연히 왜 미냐는 질문이 나왔죠. 그녀에게 가장 괴로웠던 순간을 떠올리며 밀면서 한번 싸워보라고 했어요. 어떤 감정이 떠오르는지 보자고 했죠.

예상하고 들어간 연기가 아니라 갑작스러운 전개 속에 그녀를 물리적으로 움직이게 하고 싶었어요. 그를 통해 아무리 몸부림치고 반항해도 변하지 않는 현실에서 오는 무력감을 표현하려고 했습니다. 상대가 요시다 요였기에 그런 연출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 하와이 하나레이 해변의 풍광이 매우 아름답습니다. 영상면에서 신경 쓴 지점은요.

처음 원작을 잃고 ‘사치’가 이 작품의 주인공이지만, 한편으론 자연 역시 주인공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와이를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영화가 완성되지 않을 정도로 말이죠. 촬영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어느 가족>의 촬영 감독인 콘도 류토 감독에게 전적으로 맡겼습니다. 연기와 연출은 내가 제어할 테니 당신은 촬영에 심혈을 기울여 달라고 부탁했죠.

장편 데뷔작 <피유피루>(2009)를 비롯해 <하이브리드>(2013), <화장실의 피에타>(2015) 등 여러 장르의 작품을 선보여왔는데요. 한국 관객에게 감독님의 작품 중 “이건 꼭 봐야 해!”라는 작품을 추천 부탁드립니다. (웃음)

데뷔작인 다큐멘터리 <피유피루> 입니다. 2011년인가 전주국제영화제에 초청돼 상영된 적이 있는데, (현재) 한국에선 보기 힘들다고 알고 있습니다. 내겐 원점 같은 작품으로 게이 친구를 10년 동안, 작은 카메라로 촬영한 작품이에요. 영화감독이 되겠다는 확실한 목표도 없던 시기인데 그 친구가 요청해서 찍기 시작했습니다. 촬영하던 중 나는 감독이 돼야겠다고 진로를 정했고 그 친구는 남자에서 여자로 그리고 전위적인 코스튬플레이로 주목받는 훌륭한 예술가로 성장, 평가받게 됐습니다.

차기 작품 계획은요.

내년 2월부터 오리지널 서스펜스 장편 영화에 들어갈 예정으로 제목은 미정입니다. 지금까지는 시나리오를 직접 썼는데 처음으로 각본가와 작업하게 됐어요. 지난달 멕시코에서 촬영한 단편 <온 더 웨이>는 일본에서 올가을 개봉할 것 같습니다.

최근 감독님을 사로잡은 관심사 혹은 집중하고 있는 사안은 무엇인지요.

현재 L.A 근교에 거주 중인데 인근 대학교에서 ESL 영어 수업을 듣고 있어요. 연령대도 국적도 다양한 사람들과 함께 수업을 듣다 보니 내가 지금까지 몰랐던 세계와 가치관에 눈뜨고 그에 빠져 있는 요즘입니다. 가령, 시리아에서 온 할머니가 한 분 계신데 아주 유쾌하고 재미있는 분이에요. 한 번은 전치사 수업 중이었어요. 자동차와 기차 혹은 지하철이 흔한 교통수단이니 그 앞에 on이나 in을 사용한다고 하니 할머니가 낙하산 앞에는 어떤 전치사를 붙이냐고 묻더군요. 우리끼리 ‘역시 시리아’ 이랬었죠.(웃음) 정말 세상은 넓으면서 가깝다는 것을 실감했고 사람에 대한 재미와 관심이 더 커졌어요. 또 일상에 더 많은 관심과 애정이 생겼고 일상 속에 보물이 숨어 있다는 것을 새삼 느끼는 중입니다. 영화에 대해 더 알고 싶고,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었는데, 사람과 세상에 대한 탐구가 최상의 영화 공부인 것 같아요. 영화를 만들어 누군가에서 영향을 준다고 생각했는데 반대로 내 영화를 본 후에 보여주는 여러 반응에 힘과 영감을 받곤 합니다.

마지막 질문입니다. 소소하게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요.

지금 사는 지역은 저녁 7시~8시까지도 밝은 편이에요. 저녁 무렵 아름다운 빛이 집 안으로 들어오곤 하죠. 한 영화를 마무리한 후 다음 작업 사이 외국에서 준비하는 동안 맛보는 한가로움이라고 할까요. 여유로움을 맛볼 수 있는 자리에 어느덧 올라왔구나 싶은 순간, 평범한 일상의 풍경을 보며 행복감에 젖어 듭니다.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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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홀리가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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