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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힘 실감해… 반지하에서 배우들끼리 친해졌다 <기생충> 박소담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 박꽃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꽃 기자]
<기생충>의 ‘기택’(송강호) 가족은 반지하에 산다. 아내 ‘충숙’(장혜진), 아들 ‘기우’(최우식), 딸 ‘기정’(박소담)은 눌어붙은 음식 냄새와 습기가 뒤섞인 묘한 냄새가 밴 그곳에서 부업으로 얻어온 피자 박스 따위를 접는다. 세상의 빛이 반절만 새어 들어오는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건 술 취해 휘청거리는 이가 부여잡은 위태로운 바지춤 뿐. 빈자의 현실을 정밀묘사하는 이들 가족의 공간은 봉준호 감독의 섬세한 주문에 수많은 스태프의 땀을 더해 완성됐다. ‘기정’역을 연기한 박소담은 실제 같은 그곳 공간의 힘을 실감했다고 말한다. 연기를 쉬며 대기하거나 배우들끼리 이야기를 나눌 때도 반지하를 벗어나지 않은 덕에, 서로 더 빠르게 가까워진 것 같다고 말이다.

<검은 사제들>(2015)을 선보인 다음 해, 부산국제영화제 야외무대에서 관객에게 수줍게 손을 흔들던 모습이 생생하다. 올해는 <기생충>으로 세계적인 규모의 칸영화제에 다녀왔고 작품이 황금종려상까지 받았으니 소감이 더욱 각별할 것 같다.
아직도 얼떨떨하다. 칸영화제 당시 사진을 보고 있으면 내가 정말 그곳에 있었던 게 맞나 싶다. 특히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알고 나서는 ‘아부지’(송강호)가 엄청 보고 싶었다. 시상식 현장 분위기도 들어보고 싶고.(웃음)

당신도 그렇고 최우식도 그렇고, 송강호를 아버지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그게 편해졌다. <사도>(2014)에서 송강호 선배와 함께 출연하긴 했지만 내 촬영이 3~4회차 정도로 짧아 직접 대사를 주고받는 장면은 없었다. 이번 작품에서는 내가 선배를 진짜 아빠처럼 대할 수 있도록 편하게 대해 주셨다. 무슨 짓을 해도 귀여워해 주셔서 고마웠다.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면 (송강호 말투를 흉내 내며) “에~ 뭘~ 또 감사해~” 하신다.(웃음)

혹시라도 진짜 아버지가 그런 호칭을 두고 서운해하시진 않던가.(웃음)
실제 아빠(웃음)는 칸영화제에서 송강호 선배가 상 받는 영상을 캡처해서는 나에게 “야, 너희 아부지가 짱이다!” 하고 연락해오실 정도다.(웃음) 나보다 송강호 선배를 더 좋아하는 것 같다. 내가 영화에서 그의 딸로 나온다니까 영광이라며 얼마나 좋아하셨는지…


<검은 사제들> 이후 한동안 작품 활동을 하지 않은 것 같은데…
배우가 되겠다고 했을 때 아빠는 반대하셨다. 내가 평범하게 살았으면 좋겠다고 하셨다. <검은 사제들> 이후에야 그 의미를 좀 알겠더라. 너무 많은 관심을 받는 게 두려웠다. 이런저런 부담이 커지면서 작품 제안이 끊겼다. 1년 정도는 소속사도 없이 쉬었던 것 같다. 일을 하지 않으면 조급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차라리 조금 쉬니까 마음이 편해지더라.

그러던 중 <기생충> 합류 제안을 받았겠다.
아는 의상 감독님을 통해 봉준호 감독이 나를 만나보고 싶어한다는 연락을 받았다. 처음에는 장난인 줄 알고 답을 안 했다.(웃음) 두 번째 연락이 왔을 때 진짜라는 걸 알았다. 가족 이야기이고, 송강호 선배의 딸 역할일 거라고 했다. 다시 연기를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때쯤이었는데, 그 후로 두 달 동안 아무런 연락이 없어서 얼마나 조마조마했는지...(웃음) 나중에 알고 보니 봉준호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쓰느라 정신없이 바빴다고 하시더라.

한동안 연기를 쉰 것이 도움이 되던가.
그랬다. 충분히 쉬었고 나를 다잡았다. 아마 그런 시간을 경험하지 않은 상태로 <기생충>을 만났다면 영화 속 ‘기정’ 같은 에너지를 보여주지는 못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지쳐 있었나 보다.
대학을 4년 만에 졸업한 건 동기 중에 나뿐일 것이다. 휴학 한 번 하지 않고 악착같이 달렸다. 졸업하던 해에는 한 달에 17번씩 오디션을 봤다. 수없이 떨어졌지만 딱 한 번만 기회를 잡는다면 정말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이었는데, 그러면서 많이 지친 것 같다. 가끔은 아무 생각도 안 하고 ‘멍때릴’ 줄도 알아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돌아온 현장은, 기대한 만큼 즐거웠나.
이렇게 즐기면서 연기해본 건 처음이다. 선배들이 왜 이렇게 신나 있느냐고 물어볼 정도였다.(웃음) ‘기정’의 대사가 마치 실제 내 말투처럼 입에 딱딱 붙는 느낌이었다. 봉준호 감독님도 용기를 많이 주셨다. 그저 나대로 연기하면 된다고 말이다. 워낙 머릿속에 모든 계획이 다 있는 분이신 만큼 내가 뭔가를 잘못한다고 하더라도 바로잡아줄 거라는 믿음이 있었다.

연기해보니 ‘기정’은 어떤 인물이던가.
그림 실력이나 손재주는 확실히 있지만 취업에 계속해서 실패한 까닭에 좋은 경력을 갖추지 못한 친구다. 당차고, 할 말은 다 하고 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고민이 많다. 살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기 때문인 것 같다.

부잣집 사모님 ‘연교’(조여정)를 능청스럽게 속여버리는 장면이 ‘기정’의 역할이다.
여정 언니가 너무 잘 속아줘서 고마울 따름이다.(웃음)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열렬하게 믿어주니 얼마나 사랑스럽던지… 내가 언니에게 “저와 함께 검은 상자를 열어 보시겠어요?” 하니 컷 소리가 난 뒤에 “어유~ 계집애~” 하면서 웃더라.(웃음)

송강호, 장혜진, 최우식과 함께 연기하는 가족 연기도 상당히 즐거웠다고 들었다.
공간의 힘이 컸던 것 같다. 가족들끼리 연기하는 장면은 주로 반지하에서 촬영했기 때문에 대부분 그 공간에서 수다를 떨었는데, 그 느낌이 굉장히 편안했다. 덕분에 배우들끼리 더 빨리 가까워진 것 같다.


영화에 등장하는 공간을 살펴보면 스태프의 노고가 느껴진다.(웃음)
모든 게 실제와 똑같았다. 한번은 반지하에 있는 소품용 냉장고 문을 열었는데 정말 이상한 냉장고 냄새가 났다. 그것마저 감독님의 의도에 따라 미술 감독님이 준비한 거라고 들었다. 과거에는 한 편의 영화를 완성하기 위해 이렇게 많은 분이 애 쓴다는 걸 몰랐다. 촬영 이후에도 배급, 홍보 같은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지 못했다. 아마 내 연기에 신경 쓰느라 주변을 돌아볼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이제 조금은 여유가 생겼나.
장률 감독님의 <군산: 거위를 노래하다>(2018) 촬영장을 혼자 오가면서 이 직업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는 일인지 느꼈다. 조금씩 배워가고 있다. <기생충>까지 마무리한 지금은 시야가 좀 더 열린 것 같다. 이렇게 인터뷰하는 시간도 좋다.

앞으로의 작품 계획은.
박대민 감독님의 액션물 <특송>을 준비 중이다. 또다른 에너지를 가진 나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내년에 또 만나자. 그때도 나를 인터뷰 해줬으면...!(웃음)

사진 제공_ CJ엔터테인먼트

2019년 6월 10일 월요일 | 글_박꽃 기자(got.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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