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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들도 나만큼 아버지를 좋아했으면..<우상> 이수진
2019년 3월 25일 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방언이 터진 것인지 의미를 알 수 없는 연설로 객석을 사로잡는 한 남자가 있다. 관객은 그를 향해 열렬히 환호하며 우뢰 같은 박수를 보낸다. 연설자는 ‘구명회’(한석규), 아들이 뺑소니 사고를 친 탓에 벼랑 끝까지 몰렸던, 과거 전도 유망한 정치인으로 어떻게든 기어올라 단상에 섰다. <한공주>이후 5년 만에 <우상>으로 관객을 찾은 이수진 감독은 이 마지막 장면에 어쩌면 말하고자 했던 대부분이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며, 객석에 앉아 열광하는 그들이 바로 당신은 아닌가 묻는다.

<우상>에는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능력 모두 판이한 두 아버지가 등장한다. 각기 아들을 둔 아버지는 자신의 정의를 가지고 앞을 향해 직진해 간다.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권력과는 거리가 먼 소시민인 아버지가 아들이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그 억울함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상상했던 것이 <우상>의 시작이었다는 이 감독. 아버지를 향해 무한한 애정을 드러내며 이 감독은 어릴 때나 지금이나 아버지가 너무 좋다고 고백하면서 희망한다. (자신의) 아들이 딱 자기만큼 아버지를 좋아하기를..



# <우상>

<우상>을 매우 흥미롭게 봤다. 주변 반응은 어떤가.
흥미롭게 보는 분도 있는 반면, 난해하다는 분도 있다. 영화에 대해 이야기하며 은유와 상징이 있으니 곰곰이 생각해 보면 좋을 것이라고 말한 게 어떤 편견 혹은 선입견을 주입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게 어려운(?) 이야기 아닌데… 좀 실수한 것 같다. 관객이 부담 갖지 않고 선입견 없이 봐주시면 좋겠다.

불친절하다고 느낄 수 있는 지점이 분명 있긴 하다.
아마 시나리오 쓰는 단계에서 불친절할 수 있다고 느꼈다면 방향을 틀었을 거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던 거지. 다만 분명한 의도를 전형적인 리듬이 아닌 새로운 리듬 안에 담아보고자 했다. 어떻게 보면 한 박자 빠른 것일 수도 아니면 늦은 것일 수도 있는데, 관객이 다소 당황하든 혹은 긴장하든 생각할 수 있는 빈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불친절함은 낯섦과 유사할 수 있다. <우상>이 지닌 약간의 결이 다른 지점 때문에 그렇게 다가갈 수 있는데 요새는 관객 취향의 폭과 깊이의 정도가 높아졌다고 생각한다. 다소 낯설지만 어렵지 않게 접근할 수 있지 않을까.

전작 <한공주>(2014)가 굵은 직선 같은 느낌이었다면 <우상>은 은유와 상징 등 곳곳에 요철 깔린 곡선 같은 인상이다. ‘우상’을 이야기함에 있어 자식을 위해 왜곡된 선택을 하는 부모를 소재로 끌고 온 이유는. 썩 새로운 이야깃거리는 아니지 않나.
복선과 메타포가 들키는 순간 더 이상 복선과 메타포가 아니라고 생각하기에 그것들을 숨겨 심어 놓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노골적인 게 아니라 은은하게 다가가고 싶었거든. 또 숨겨진 것들을 찾으라고 강조하는 게 아니다. 안 찾아도 좋지만, 찾는다면 그 과정에서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시스템 안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해가는가를 이야기하고 싶었기에 소재보다 그 안에 있는 사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한공주> 이전에 <우상> 이야기 구성하던 때 여러 동기가 있었는데, 이야기만 놓고 보자면 내 아버지를 생각했던 것 같다.

그래서인가. 극 중 두 아버지(한석규, 설경구)가 등장한다.
아버지는 주어진 일에 정말 충실한 삶을 산, 권력과 아주 거리가 먼 분이시다. 그런 아버지가 아들인 내가 억울한 상황에 처한다면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아버지가 할 수 있는 억울함을 푸는 방법 또는 복수는 무엇일까. 소시민이 취할 수 있는 억울함을 향한 복수가 <우상>의 시작 계기 중 하나였었다.
 <우상> 스틸컷 '유중식'(설경구)
<우상> 스틸컷 '유중식'(설경구)

‘구명회’(한석규) ‘유중상’(설경구) ‘최련화’(천우희) 세 인물의 첫 등장이 상당히 인상적이다. 아들과 똑같은 노란색 머리로 등장한 ‘유중식’이 특히 그렇다.
세 인물의 첫 등장과 퇴장에 신경을 썼다. 그게 인물을 말해 준다고 생각했기에 대사와 공간 그리고 색감과 조명 등을 달리했다. ‘유중식’ 첫 등장의 경우 하루 동안 그 장면만 촬영했다. 배경이 새벽부터 해가 뜨기 전까지라 촬영할 수 있는 시간이 제한적이었거든. 게다가 비 오는 장면이라… 살수차가 동원됐고, 낙수와 빗소리 등등 합을 맞출 게 많았고, 보조출연자와 연기자 그리고 구급차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어울려야 했다. ‘중식’에게 아주 중요한 장면이라 공을 많이 들이긴 했지만, 하면서는 스무 번까지 간 줄 몰랐었다. 모든 합이 딱 맞춰진 그 한 컷을 찍고 나니 스무 번 촬영했더라. (웃음)

제작이 결정되지 않은 시기에 한석규 배우에게 각본을 주었는데, 배역을 특정하지 않았다고 하던데.
아트하우스에서 이미 투자가 어느 정도 확정된 상태에서 제안 드린 건데 아마 (한) 선배는 그 사실을 모르셨던 것 같다. 처음 시나리오 보시고 마음에 드는데 제작할 수 있겠냐고 우려를 표하시더라. 사실 선배님이 ‘중식’을 맡으면 어떨까 했는데, 말미에 ‘구명회’는 누구를 생각하고 있느냐고 넌지시 물으시더라. 그래서 누구라고 답했더니 ‘명회’ 후보군 중에서 자신도 빼지 말고 포함해 고려해 보라고 하시더라. 이후 몇 번 만날 때마다 점점 건의(?)의 강도가 세졌다고 할까.(웃음) 나 역시 캐스팅을 확정했던 게 아니라서 당연히 좋았다.

<한공주>에 이어 천우희 배우와 함께 했다. 극 중 ‘최련화’는 가장 미스터리한 인물이 아닌가 한다. ‘최련화’ 역에 처음부터 천우희 배우를 염두에 뒀던 건 아니었다고?
시나리오 쓸 때 미리 배우를 연상하며 쓰진 않는다. 연상하면서 쓰면 아무래도 그가 지닌 기존 이미지를 차용하게 되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시나리오를 완성한 후 캐스팅을 고려하는 편이다. ‘최련화’는 극 초반부에 이름만 언급될 뿐 직접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관객이 그 얼굴을 궁금하며 상상하길 바랐다. 천우희 배우는 이미 너무 유명해서 신인 배우로 가면 좋겠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생각해보니 신인이 과연 그 연기를 할 수 있을까 우려되더라. 처음부터 기성 배우를 생각했다면 당연히 천우희 배우가 일순위였다. 늦게 연락을 한 것이 좀 속상했던 듯 나중에 문자로 왜 먼저 안 줬냐고 묻더라. 이런 전후 사정을 이야기하니 아주 쿨하게 받아들였고, 특히 캐릭터와 시나리오를 정말 좋아해서 매력 있는 역할로 어렵겠지만 도전하고 싶다고 했었다. 결과적으로 매우 흡족한다. 촬영한 것을 보며 나도 모르게 히죽 웃을 정도였다.

얼마 전 신드롬적인 인기를 모았던 <스카이캐슬>에서 차 교수의 쌍둥이 아들 중 둘째 ‘차기준’으로 눈도장 찍은 조병규 배우가 ‘구명회’의 사고 친 아들 ‘요한’으로 등장한다. 반갑더라.
당시 오디션을 통해 캐스팅했는데 이렇게 뜰 줄 몰랐다. 처음 사진으로 봤을 때 밋밋한 느낌이었는데 실제 보니 눈빛이 너무 맑았다. 연기 역시 꾸미는 게 아니라 있는 모습 그대로를 꺼내 놓는 듯하게 자연스러웠다. 드라마를 보진 않았지만, <우상> 음악 감독이 <스카이캐슬> 음악을 담당해서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우상> 스틸컷, '최련화'(천우희)
<우상> 스틸컷, '최련화'(천우희)

잔인함을 직접 표현하진 않지만, 상당히 폭력적이고 잔인한 수위가 높은 느낌이다. 몇몇 장면이 남긴 강렬한 잔상 덕분(탓?)인 듯하다.
스릴러 장르를 선택하면서 최대한 폭력과 잔인함을 보이지 않은 채 관객이 긴장하게 하고 싶었다. 물론 직접적인 장면이 몇 군데 있긴 하지만, 가까이서 보이진 않는다. 되도록이면 간접 이미지와 사운드로 표현하려 했다. 그게 더 무섭고 강렬할 것 같았거든. 특히 어떤 장면에서 잔인하다고 느꼈는지? 궁금하다. (웃음)

‘구명회’(한석규)가 ‘최련화’(천우희)에게 주사 놓는 장면이 개인적으로 무섭고 움찔하게 되더라. 이전에 보지 못했던 색다른 장면이었고, ‘구명회’의 행동이 다소 이해되지 않는 부분도 있었다.
음, 그럴 수 있다. 바늘을 찌르는 것을 바라보며 실제 (자신이) 찔리는 것 같이 느끼도록 의도한 것도 있다. 과정을 많이 안 보여주고 건너뛰어 결과물을 제시함으로써 그 과정을 상상하게 하고, 그때까지만 해도 ‘구명회’가 아직 완전히 악화(惡化)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의 행동에 의문이 들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 그를 타고난 ‘악인’으로 그리고 싶지 않았다.

지하 차고를 청소하며 흐르는 물, 욕조에 가득 받은 물, 빗속에서 벌어지는 사건 등등 영화 속에 ‘물’이 자주, 의미심장하게 등장한다.
영화에서 중요한 이미지 중 하나다. 상황마다 달리 적용되겠지만, 일부는 ‘구명회’의 양심의 출렁임이라고 볼 수 있다. 그는 타고난 사이코패스가 아니라 순간 선택을 잘못한 후 점차 악으로 향하는 인물이다
 <우상> 스틸컷, '구명회'(한석규)
<우상> 스틸컷, '구명회'(한석규)

‘최련화’의 연변 사투리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솔직히 잘 안 들렸는데, 영화관에서 보는 경우 되돌리기가 불가능한데.. 자막을 깔지 않은 특별한 이유라도?
자막을 넣을지 진지하게 생각 중이었는데, 어제 일반 시사 후 연변 사투리에 대한 질문이 많아서 가뜩이나 고민이 더 많아졌다.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그 부분만 자막을 넣는다면 전체적인 흐름에 방해되고 혼자 너무 튈 것 같아서이다.

우리 사회의 끊이지 않는 사건과 사고가 <우상>을 만들 게 된 계기라고 얘기했었다. 구체적으로 어떤 사건과 사고인지.
그런 질문을 많이 들었는데, 분명히 영향을 미친 사건이 있다. 구체적으로 특정한다면 이미 지나간 과거로 치부될 것 같아 언급하는 게 조심스럽다. 영화를 보다 보면 느끼는 접점이 있을 듯하다.

‘구명회’가 대중을 모아 놓고 연설(간증?)하며 방언이 터지는 엔딩이 특히 많은 함의를 담고 있다고 본다.
그 마지막 장면이 영화를 만들고 싶었던 주 이유라고 할 수 있다. 혹시 누군가를 맹목적으로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구명회’의 연설을 들으며 박수를 보내는 객석에 앉아 있는 대중이 내가 아닐까 하고 자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우상>을 만들며 힘들었던 점 또는 기뻤던 점은.
음, 무엇보다 좋았던 건 한 선배와 노래방에 가서 <8월의 크리스마스> 주제곡을 선배의 목소리로 직접 들었다는 것이다. 영화 하며 전화 통화를 제일 많이 한 것은 한 선배, 술을 자주 마신 건 설 선배, 문자를 가장 많이 한 건 천우희다.

힘들었던 일보다 기억에 남는 건 (한 선배는 말하지 말라고 했지만) 촬영 중에 한 선배 어머님이 돌아가셨었다. 선배가 비보를 듣고도 전혀 내색을 안 하시고, 본인 분량 촬영이 끝난 후에도 상대 배우가 촬영하는 모습을 다 지켜본 후 떠나셨었다. 나중에 알았는데, 어찌나 감사하면서도 죄송스럽던지.. 그 마음이 오랫동안 지속될 것 같다.

# 이수진

당신의 우상은 무엇인가. 혹시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좇던 시기나 경험이 있는지.
무언가를 맹목적으로 좋아하거나 따르지 않았었다. 어린 시절에 친구들은 배우나 가수를 무작정 좋아하고 했는데, 그때도 그렇지 않았던 것 같다. 성인이 되면서는 뭐.. 우상이라고 할 수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가장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은 아버지다. 아까 잠시 말했듯 가족을 위해 주어진 일에 아주 열심히 살아오신 분으로 올해 유치원 통원 차 운전일을 정년퇴직하시고 가족들 먹거리용 작은 농사를 지으신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좋았고, 지금도 좋은데 내가 아버지를 좋아하는 만큼 우리 아들이 나를 좋아해 준다면 기쁠 것 같다.

단편 <적의 사과>(2007)와 <한공주>(2014) 그리고 <우상>까지 모두 각본을 직접 썼다. 기회가 주어진다면 다른 사람 글로 영화를 만들 의향이 있는지.
내가 하고 싶던 이야기를 누군가 써준다면 엄청 고마운 일이다. (웃음) 그렇다면 꼭 내가 쓴 시나리오가 아니라도 당연히 만들 수 있다. 예전에 이창동 감독님이 그런 좋은 시나리오가 있다면 아마 그 작가가 직접 찍지 않겠냐는 말을 하셨는데… 그렇지, 그만큼 좋은 글을 만나는 게 쉽지 않을 거다.

당신에게 영화란 무얼까.
그런 질문을 스스로 던지곤 하며 많이 생각하고 알아가는 중이다. 나에게 영화는 단순히 직업 혹은 돈을 벌고 생활하기 위한 수단은 아닌 것 같다. 우리가 만든 영화가 개봉한 후 극장에서 내리면 그대로 끝나고 사라진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중에 감독이 죽더라도 영화는 남아서 누군가에게 보여지고 회자되지 않을까. 그게 영화의 힘이라고 본다. 때문에 영화를 만듦에 있어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된다. 집요하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데 그만큼 치열하게 작업하는 편이다. 좋은 컷을 향한 욕심도 크고, 그 결과 본의 아니게 주변의 스태프와 주위를 괴롭히게도 된다.

차기작 계획은.
여러 일을 병행하는 것을 잘 못한다. <우상>을 개봉하고 관객과 만나고 그런 일련의 과정이 마무리되는 시점에서 다음 작품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다. 한 선배가 미리미리 생각해서 3년에 한 편씩 은 하라고 하셨는데 말이다. 나도 많이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최근 행복한 순간이 있다면.
어제 같이 일했던 스태프와 배우들이 활짝 웃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게 제일 기분 좋았다.


2019년 3월 25일 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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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CGV 아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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