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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배 청년에서 기민한 청년 금융맨으로 <국가부도의 날> 유아인
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 박은영 기자 이메일

[무비스트=박은영 기자]
주변 눈치 보느라 하고 싶은 말을 참지 않고 소신 있게 말하고 글 쓰며 대중과 소통하는 배우 유아인, 그가 세상을 바라보고 소통하는 방식에 이견이 있는 사람이라도 그의 연기 열정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서 2018년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택배 청년 ‘종수’로 ‘버닝’ 끝에 휘청휘청 걸어가던 그의 벌거벗은 뒷모습이 생생하건만, 이제 세월을 거슬러 1997년 ‘국가부도 사태’에 직면한 젊은 청년 금융맨 ‘윤정학’으로 관객을 찾는다.

극 중 ‘윤정학’은 경제 혼란 상황을 기민하게 포착해 위기를 기회로 탈바꿈한 인물. 유아인은 ‘윤정학’을 연기하며 자신 안에서 그와 닮은 점을 찾으려 했다고 말한다. 자신 역시 기회주의자적인 면이 있고 잃기보다 가지고 싶고, 놓기보다 쥐고 싶은 사람이라 그에 따라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고. 찝찝한 순간도 분명히 있다고 밝히는 유아인. 현명한 인생 똑똑한 인생 잘 사는 인생! 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라고 ‘윤정학’을 소개한다.


<국가부도의 날>에서 기민하게 움직여 위기를 기회로 바꾸는 타고난 투자가 ‘윤정학’(유아인)을 맡았다. 영화의 완성본을 본 소감은.
지난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영화에 참여한 배우로서 만족스럽다고 말했었는데, 사실 그때는 기술 시사를 통해 봤던 거고 완성본은 이번에 처음 봤다. 주어진 상황과 여건 아래 잘 길어 올렸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체적으로 발란스가 좋더라.

그간 원톱 혹은 투톱인 작품이 대부분이었는데. 이번에는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다고 볼 수 있다. 그만큼 끌린 면이 있을 것 같다.
역할의 비중이 작품 선택에 중요하지 않다고 그간 그렇게 얘기했겄만….이젠 좀 알아줬으면 좋겠다!(웃음) 좋은 작품을 통해 좋은 연기 경험을 쌓는 게 중요하지 내가 극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가는지 여부는 문제 되지 않는다. 공감대가 있고 표현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긴다면, 물론 소화 가능해야겠지만, 작품에 기여하고 싶은 마음으로 참여한다. 그간 내 선택안에 그 의지가 녹아있다고 보면 된다.

이번 <국가부도의 날>의 경우 현대사에 있어 중요한 이야기이고 여러 세대 어떤 계층이 봐도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기에 좋았다. 대부분의 사람이 돈 때문에 울고 웃는 등 어려움을 겪어봤다면 혹은 이 나라에서 어떻게 살 것인지 고민한 경험이 있다면 단순히 영화 속 이야기로 끝나지 않겠더라.

시나리오를 본 후 느낌은. 또, 영화 참여 전후 IMF를 바라보는 시선에 변화가 없었나.
일단 잘 읽혀서 재미있는 시나리오라고 생각했다. 보고 난 후 화도 나고 분하기도 하더라. 영화 내용이 절대적인 팩트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부모님 세대만 해도 언론에 대한 맹신 혹은 미디어에 대해 절대적 신뢰에 지배당한 채 살았다고 느꼈다. 극에서도 IMF 원인을 국민들 과소비로 몰고 가지 않나.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정치 사회적인 문제에서 목격했던 국가와 정부와 권력자의 부조리한 행태가 경제 분야에서도 있었다는 사실에 화가 났다.

그렇기에 우리 영화가 그들의 행태에 단순히 분노를 표출하는데 그치지 않고 늘 깬 눈으로 경각심을 가지고 주위를 살피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마음이다. 보다 선명하게 현실을 바라보고 삶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갔으면 좋겠고, 관객의 선택지를 조금이나마 넓게 해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통화정책 팀장 ‘한서현’역의 김혜수, 재정부 차관 역의 조우진, 평범한 가장 ‘갑수’역의 허준호 등 함께한 선배 배우들에 비해 한참 젊다. 그들과 IMF를 바라보고 기억하는 시선 또한 다를 것 같다.
그렇기에 일정 부분 나만의 몫이 있을 거로 봤다. 젊은 세대로서 (나보다) 더 젊은 세대에게 당시의 상황을 전달하는 거지. ‘윤정학’(유아인)이 영웅적이지도 그렇다고 못된 사람도 아니다. 지극히 현실적인 인물로 나보다 어린 세대를 설득할 수 있겠다 싶었다.

IMF를 뉴스로 접했던 기억이 있다. 아마 국민들 대다수가 언론에 보도가 된 후에야 국가 위기 상황을 알게 됐을 것이다. 영화 속에서와 마찬가지로 실제 충분한 정보를 전달하지 않았으니 말이다. 정부와 권력에 의해 통제된 형태로 언론이 기능했던 것 같다.

말했듯 ‘윤정학’(유아인)은 타고난 투자자인데, 그 내면은 상당히 복잡해 보인다. 돈을 좇는 자신을 냉소하는 면이 보인다고 할까. 그럼에도 돈을 포기하지 않지만 말이다. 연기하며 중점을 둔 부분은. 또 당신이 생각하는 ‘윤정학’은 어떤 인물인가.
국가 부도 위기 상황에서 자신의 이익을 좇는 행위가 지탄받을 수도 부정적으로 비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경제적으로) 잘 살고 싶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을 거다. 우리 안에 내제된 갈등과 욕망에 공감할 수 있도록 ‘윤정학’이 이기적이고 기회주의자적인 면이 있지만, 너무 얄밉게 혹은 비호감으로 보이지 않도록 신경 썼다.

‘윤정학’을 연기하며 내 안에 있는 그와 닮은 점을 찾으려 했다. 나 역시 기회주의자적인 면이 있고 잃기보다 가지고 싶고, 놓기보다 쥐고 싶은 사람이라 그에 따라 선택을 하지만 그 선택이 항상 유쾌하지만은 않다. 찝찝한 순간도 분명히 있다. 양가감정을 느끼곤 하는데 대체로 그렇지 않나. ‘윤정학’은 현명한 인생 똑똑한 인생 잘 사는 인생에 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실제 재테크에 관심이 있는 편인가. 혹 극 중 ‘윤정학’처럼 투자의 촉이 발달한 거 아닌가? (웃음)
전혀.(웃음) 재테크를 잘하지 못하고 관심도 없는 편이다. 다만, 경제 돌아가는 판을 꿰뚫어 보는 듯한 친구(윤정학)를 연기해야 하다 보니 경제 기사를 열심히 찾아봤었다. 당시 비트코인이 유행이었는데, 코인 등락에 따른 사람들 반응을 유심히 살폈었다.

절대적 객관적 기준으로 본다면 사회가 점차 풍요로워짐에도 예전보다 삶의 만족도 혹은 행복감은 적은 게 사실이다. 특히 젊은 세대가 그렇게 느낄 수 있다. 물론 당신 입장에서 공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무슨 소리인지 알겠다. 결국 만족과 결핍이 만드는 감정 상태가 아닐까 한다. 상품이 점점 더 좋고 비싸지면서 빈부격차는 심해졌다. 풍요와 결핍의 심화겠지. 오늘을 살 것인가 내일을 살 것인가는 어려운 문제다. 그에 대한 문제의식은 있으나 뚜렷한 해답이 없다는 데서 무력감을 느끼기도 한다. 우리 영화에서조차 문제를 제기하지만 답은 없다.

전작 <버닝>의 ‘종수’(유아인) 역시 젊은 세대이지만, 이번 ‘윤종학’과는 전혀 톤앤 매너가 다른 인물이다. <버닝> 직후 바로 <국가부도의 날>에 들어갔는데, 연기하면서 간극이 컸을 것 같다.
원래는 <버닝> 촬영 종료 후 들어가는 거였는데, <버닝> 마지막 촬영이 한 달 정도 미뤄지는 바람에 그 여운이 끝나지 않은 상태에서 <국가부도의 날>에 들어갔었다. 처음에는 감정도 감정이지만, 작업 환경에 적응하는 게 어려웠다. 이창동 감독님의 현장은 정말 유일무이하다. 그간 작품 하며 웬만한 현장엔 적응할 수 있는 순발력을 키웠다고 생각했었는데, <버닝> 촬영하며 무장해제당했었다. (웃음) <버닝> 이전, 즉 기존 현장 감각을 되살려내는 데 주력했다. 첫 촬영에서 NG를 여러 번 내서 좀 더 혼자 연습해 볼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아 촬영을 하루 미루기도 했었다. 여러 의미에서 <국가부도의 날>은 이전 작들에 비해 연습을 많이 한 작품이다.

첫 촬영 장면이 무엇인가? 그렇지 않아도 투자 관련 설명회를 비롯해 경제 용어가 많이 사용되니 연습 많이 했겠다 싶었다.
아마 극 중 ‘윤종학’의 첫 등장 신일 거다. 신입 사원들 데리고 연수 가는 장면인데, 장면 자체보다 새로운 촬영 현장에 진입하는 게 좀 쉽지 않았었다. 투자 설명회의 경우 내 주변에 각종(?) 친구들을 불러서 연설하는 장면을 연습했던 기억이 난다.

친구들 반응은 어떻든가. (웃음)
그들이 굉장히 칼날 같다. (웃음) ‘괜찮은데 좀 더 신선하게 해봐’ 혹은 ‘좀 더 방방 뜬 톤으로 해봐’ 이러더라. 마냥 잘한다고 칭찬해주는 친구들이 아니다. 물론 나를 위하는 마음이겠지만, 한마디로 냉철한 관객이다. 그렇기에 정말 고맙고 소중한 친구다. 내가 동료 배우가 많거나 그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는 편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상대적인 것으로 그렇다고 친한 배우가 없다는 건 아니니 오해 말길. 다양한 분야에서 일하는 배우가 아닌 일반인 친구들이 그들의 삶을 보여주는 게 내 연기에 큰 도움이 된다. 연기의 밑천이기도 하고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게 해준다.

투자자를 향해 일장 강의를 하는데, 그 강의 내용을 얼마나 이해했는지?(웃음)
글쎄? 다만, 극 중 ‘정학’(유아인)은 경제 상황을 기민하게 포착해 예측하고 투자자를 상대로 설득하는 사람이다. 그렇기에 친절하고 상냥한 설명보다 강한 자신감으로 믿음을 심어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마치 사이비 종교 지도자가 설파하는 느낌처럼 말이다. 내가 투자 상품을 팔아본 적은 없지만 나름 사업을 하고 있기에 사람들을 설득했던 경우가 꽤 있었다. 그때를 떠올리며 연기했다.

사업이라 하면 ‘스튜디오 콘크리트’(기자 주 한남동에 위치한 갤러리 아뜰리에 숍 카페 등 오픈형 종합 장착 스튜디오)를 말하는 것 같다.
맞다. 극 중 ‘윤정학’이 투자자를 모으는 단계가 처음 콘크리트 사업 동료들과 파트너를 끌어들이던 때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이제 4년 됐는데 같이 참여해준 이들이 다행히 잘 되고 잘살고 있다. 비록 나는 고군분투하고 있지만 말이다.(웃음)

함께 한 배우들에 관해 이야기해보자. 극 중 ‘윤정학’은 정부 관리나 통화정책팀 등 다른 캐릭터들과는 접점이 없이 개별 서사를 지닌 인물이다. 극 중 주요 투자자로 출연한 류덕환 배우와 함께하는 장면이 많은데 호흡은.
굉장히 많이 도움받았다. 덕분에 전혀 외롭지 않게 촬영할 수 있었다. 그는 내가 신인 배우 시절에 나보다 좀 더 성취를 이뤘었고, 젊은 배우의 열정을 보여줬었다. <천하장사 마돈나>를 보면서 꼭 만나서 같이 작업하고 싶었었다. 이번에 만나 영감을 받았고 아주 좋았다. 이후 내가 운영하는 갤러리에 놀러 오는 등 꽤 친해졌다.

말했다시피 극 중 다른 캐릭터와는 직접 부딪치는 장면이 없기에 선배님들이 연기하는 모습은 현장에서 살짝살짝 본 정도였다. 그렇게 잠깐 봤음에도 정말 내공 있는 선배님들이 많이 참여했다는 게 느껴졌었다. 김혜수 선배의 경우는 또 다른, 소위 ‘어나더’ 차원의 힘과 에너지를 지니셨고, 허준호 선배는 존재 그 자체가 형성해 내는 감정이 대단했다. 또, 조우진 선배는 정말 날카롭고 섬세하고 표현이 뚜렷했다.

가벼운 질문 하나 하자면, 영화 엔딩에 20년 후가 나오는데 당신하고 류덕환 배우만 별로 늙지 않았더라?
음, 돈의 힘? 안티 에이징 시술을 받은 걸까.(웃음) 좀 다른 얘기일 수 있는데, 나이든 분장이 참… 숙제인 것 같다. 사실 <사도> 때 내가 분장하진 않았지만, 고민이 좀 있었다. 제작진들도 다 눈이 있는데 당연히 고민할 수밖에 없었지. 내 경우 드라마 <육룡이 나르샤>에서 몇십 년의 세월을 오가며 연기했는데 단순히 성량과 목소리와 표정만으로 표현하기는 힘들다. 당연히 분장이 필요한데 어색한 건 어색한 거지. 조명 연출 연기 CG 등 여러 분야의 기술이 어우러져 표현되지만, 아직까지는 젊음과 늙음, 즉 세월을 완벽하게 콘트롤하긴 어려운 것 같다. 조금씩 나아지지 않을까 싶다. 아, 얘기하다 보니 이 질문이 제일 어렵다!

스포일러 상 자세히 상황을 설명할 수 없지만, 개인적으로 ‘갑수’(허준호)가 나오는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IMF를 겪은 이들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 같더라.
그 부분은 나 역시 흥미롭다. 젊은 세대 입장에서 지금 기성세대의 모습을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수 있는데, 그들을 이해할 수 있는 단서가 된다고 본다. 그들이 처음부터 그랬던 게 아니고 모질 세월을 겪다 보니 점차 독해지는 등 변화한 거겠지. 아버지 세대를 심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름의 이유를 제시한 것 같다.

개인적인 질문으로 들어가 보자. 좀 전에 영화가 삶의 방향에 대해 물음을 던지지만, 딱히 해답은 없다고 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생각하는 잘 사는 삶은 무엇인가.
잘 사는 삶이라…. 아마 사람마다 모두 다른 답을 가지고 있을 거다. 내 인생의 키워드는 균형이다. 마음, 감정, 욕구, 이성 등 내 안의 여러 요소에 솔직하고 그 중 어느 하나에 치우쳐 몰방하는 게 아니라 균형을 이루며 찾아 나가는 삶, 그렇게 살고자 애쓰고 있다. 물론 쉽지는 않다. 어느 날은 감정에 휩쓸리기도 또 어느 날은 욕망에 쏠려 완전히 정신이 없을 때도 있다. 이런저런 많은 생각을 하고 내 삶을 만들어나가기 위해 혹은 그런 여건을 만들기 위해 투쟁(?)하는 그런 과정이 중요한 것 같다.

언젠가 가장 추구하는 가치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았었는데, 현재는 ‘가장’이라는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최고, 제일 이런 것들은 결국 절대성과의 싸움인 것 같다. ‘절대적’이라는 것이 만드는 부끄러움이나 수치심이 있다.

보통 작품 선택 기준은. 우문이지만 작품은 좋은데 캐릭터가 별로인 경우 반대로 캐릭터는 좋은데 전반적으로 작품이 마음에 안 든다면 어떻게 하는지.
보통 어느 하나라도 흡족하면 참여한다. 캐릭터의 경우 마음에 들면 그 비중은 문제 되지 않는다. 또, 극 중 인물에 공감이 된다면 그 인물을 통해 작품과 공감대를 형성해 가기도 한다. 캐릭터, 전달하는 힘 그리고 작품의 영향력 등 몇 가지 발란스가 맞으면 하는 편이다. 내게 안정을 추구하고 어려운 길을 가고 싶지 않은 보수적인 면이 있기도 하지만, 또 그렇게 계속하다 보면 어려운 일을 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 그러다 보면 새로운 장르와 역할을 시도하게 된다.

소신 있게 자기주장을 펼치는 젊은 배우의 대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유아인’이라는 배우 앞에 어떤 수식어를 붙이고 싶은지.
음, ‘어떤 수식어를 붙여도 어색하지 않은 배우’라는 수식어가 좋겠다. 아는 후배가 내가 야비하기도 현실적이기도 한편으론 이상적이고 혼자만 딴 세상에 사는 것 같다고 그러더라. 그러니 따로 노력하지 않아도 필요한 순간 충분히 그렇게 보인다고 하는데…. 그냥 기존에 없던 수식어가 새로 붙어도 자연스러운 배우가 되고 싶다.

향후 활동 계획은.
드라마, 영화, TV 쇼 등 영역을 한정하지 않고 고민하고 있는데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2018년 11월 27일 화요일 | 글_박은영 기자 (eunyoung.park@movist.com 무비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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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UAA, 김재훈 포토그래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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